소설리스트

A.I 닥터-562화 (562/1,303)

562화 으음? (1)

“41세 남자 환자입니다. 2일 전 발생한 복통을 주소로 응급실로 내원했습니다.”

“으음.”

사람이 노티를 자주 듣다 보면 느낌이라는데 오게 마련이었다.

나이 40세에 복통이라.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위염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요. 얘들이 무슨 위 연차한테 노티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병원 교수에게 노티 하는 건데요. 게다가 분위기가 안대훈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내가 무서워해야 된다는 건가?’

[아뇨, 어느 정도 믿어도 된다는 뜻이죠.]

‘하.’

[왜 그러십니까?]

‘아냐, 하긴…… 안대훈이 그 자식이…….’

안대훈만큼 수혁을 생각하는 아랫사람이 있을까?

이상하게 윗사람 복은 완전 터져서 신현태에 이현종에 조태진 그리고 김진실 등등 많지만, 아랫사람은 믿고 뭘 시키거나 맡길 만한 사람이 적지 않나.

물론 별로 아랫사람 챙기지 않고 거의 가르치는 포지션만 가져간 수혁의 잘못도 있긴 하지만, 하여간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적은 것도 드문 일이었다.

그 와중에 안대훈은 어떠한 사람인가.

부르는 호칭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진심으로 수혁을 따르는 놈이었다.

아마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 정도는 내지 않을까?

“계속해 봐요.”

“네.”

안 그래도 으음하는 소리에서 언짢음을 느꼈던지라 가만히 있었던 양은 수혁이 다시 말하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노티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휴. 진짜 까다롭긴 하구나.’

확실히 안대훈에게 들었던 것처럼 쉬운 인간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인간은 진짜 천재 아닌가.

보는 세상이 완전히 다를 텐데 어찌 평범한 나 같은 인간에 만족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도 들었다.

“15년 전부터 하루에 고량주 한 병씩 먹었던 환자입니다.”

“아이고.”

물론 오해였다.

수혁은 자신에게 바루다가 박혀서 이렇게 우수해졌다는 걸 늘 자각하려 애쓰는 사람 아닌가.

게다가 스스로는 이현종보다 훨씬 부드러운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실제로 이현종보다는 더 잘해 주는 편이었다.

다만 케이스에 몰입하고자 할 때는 본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바루다의 특성이 나오는 거라 해야 할까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때는 까칠해질 따름이었다.

‘고량주를 하루 한 병?’

[알코올 의존증 환자겠군요.]

‘그래, 그럼…….’

[가능한 질환은 아주 많습니다. 리스트를 뽑아 보자면…….]

다행히 지금은 천천히라도 몰입할 수 있는 히스토리였다.

일단 소주가 아니라 고량주가 나왔다는 것부터가 신선하지 않나.

확실히 중국 문화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리고 3개월 전 개원 위해 직장을 관두었습니다.”

“음? 개원?”

“아, 네. 환자 이비인후과 의사입니다.”

“아아……. 알겠어요.”

이비인후과라.

그래, 거기 주당이 많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에 고량주 한 병을 마셔?

‘여기는 이비인후과가 좀 더 빡센가?’

[중국 문화권은 두경부암 발병률이 다른 문화권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아…….’

우리가 흔히 이비인후과라고 하면 그냥 콧물 뽑아 주고 귀 파 주는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비인후과의 정식 명칭은 이비인후 두경부외과이지 않나.

두경부암을 중점적으로 본다는 얘긴데, 바루다의 말대로 중국 문화권은 두경부암 발병률이 꽤 높았다.

이유로는 아무래도 발효차가 뽑히고 있었다.

자연 발효는 그나마 괜찮은데, 화학 물질로 빠르게 발효를 시키는 불법 차들이 대량으로 유통이 되고 있지 않나.

게다가 차는 기본적으로 뜨거운 음료다 보니 지속적인 열 손상까지 일으켰다.

거기에 더해 두경부암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뽑히는 인유두종바이러스에 대한 대중 인식도 낮았다.

‘맨날 혀 자르고 하다 보면 술이 땡길 수도 있지.’

[그러니까요. 괜히 두경부외과 교수님들이 술고래인 게 아니죠.]

일반적인 암과는 달리 얼굴을 잘라 내야 하다 보니 집도의로서는 스트레스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건전한 방법으로 푸는 사람도 많지만 정작 환자에게는 술 마시지 말라고 해 놓고선 자기는 의존증 수준으로 마셔 대는 이들도 많았다.

“개원 준비하던 중 한 달 전부터 전신 쇠약감 발생하였고, 2주전부터는 물만 마셔도 토하는 증세가 발생했습니다.”

“응? 그럼 그게 주된 호소 증상 아닌가?”

“환자분은 배 아픈 게 제일 문제고 이틀 전부터 아파 오기 시작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아, 그래요. 으음…….”

술을 15년 동안 마셨고, 전신 쇠약감이 있으며 구토에 복통이라.

아직 나이가 젊기는 하지만, 젊다고 해서 몸을 함부로 굴려도 계속 회복되는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사실 나이가 마흔이 넘었으면 마냥 젊다고 하기도 좀 그랬다.

“위암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내시경을 하면 될 일 아닌가?”

암에 걸려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양도 그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아, 네. 맞습니다. 근데…… 환자가 말이 좀 어눌해서요.”

“말이 어눌해? 원래 그랬던 건…… 아니, 아니겠지. 개원을 준비했다면.”

“네, 보호자 진술에 따르면 이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그건 언제부터 그런 거지?”

의학에서 증상의 종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발병의 시점이었다.

그게 언제인지에 따라 예후가 달라지기도 하거니와, 증상의 발현 시점 순서에 따라 아예 진단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제대로 된 의사라면 자신이 노티 하는 증상에 대해 그 정도는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역시, 이것도 물어보시는구나.’

다행히 양은 이미 안대훈에게 이러한 점을 지적받은 후였다.

덕분에 수혁이 일차적으로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는 완벽하진 않아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같이 살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진술은 아닐 수 있는데……. 일단 여기 오면서부터라고 했습니다.”

“같이 살지 않는다라.”

“네.”

“관계는?”

“아들입니다.”

“혹시 같이 사는 보호자는 없어요?”

“없습니다. 배우자는 이혼해서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아.”

하긴 술을 그렇게 마셔 댔으니 결혼 생활이 유지되기는 어려웠을 거 같았다.

아니면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겨서 마시는 걸 수도 있고.

하여간 좋지 않았다.

제아무리 친한 친구나 동료가 있다고 해도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지 않겠나.

특히 건강 이슈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게 있는 법인데, 대개의 경우 지병은 약점으로 인식되었고, 그래서 다들 숨기려 노력했다.

“머리 CT는? 술을 그렇게 먹었으면 혈압이나 당뇨 떄문에라도 출혈 또는 경색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게…….”

흔히 술이 담배보단 낫지 않냐고들 하는데, 그건 정말 담배에 비교해서 그런 것이지 사실 술도 백해무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양을 아주 조절해서, 예컨대 음식에 곁들여서 먹는 정도로 먹는 거라면 유익하진 않더라도 일단 아주 해롭진 않겠지만.

이 정도로 때려 먹으면 무조건 해로웠다.

무슨 문제건 생겼을 게 뻔했다.

하지만 양은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는 수혁에게 아니라는 말을 해야만 했다.

“아뇨, 정상입니다. MRI에서도 정상 소견을 보였습니다.”

“으음?”

보통 자기 의견이 틀리면 기분이 나빠야 정상이겠지만, 수혁은 그제야 오히려 케이스에 훅 하고 빨려 들어갔다.

[머리는 괜찮은데 어눌해졌다. 베르니케 뇌병증일까요?]

‘으음……. 그렇다고 하기엔 발병 시기가…….’

[보호자가 같이 살고 있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도, 며칠 내에 발생하고 그러는 병은 아니잖아.’

잦은 음주는 티아민, 그러니까 비타민 B1의 흡수를 저해하고 이로 인해 베르니케 뇌병증이 생길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만성 질환이었다.

물론 급성 증상을 일으키기도 하긴 했지만, 이거까지 알아내려면 지금 여기서는 불가했다.

“응급실 온 지 얼마나 됐지?”

“이제 막 MRI까지 찍고 괜찮다는 거 확인한 참입니다. 그래서……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어떤 과에서 받을지도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음.”

수혁은 이미 마음을 굳힌 지 오래였다.

‘수혁아, 어려운 일은 김승규 교수한테 다 맡기고 너는 그냥 우수한 모습만 보여 줘. 그걸로 너 할 일은 된 거야.’

신현태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실제로 태화 생명이나 바이오에서 나온 이들도 수혁을 존중할지언정, 이 출장에서의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이미 김승규를 주축으로 해서 저 앞으로 나가 있지 않나.

다행히 현장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저번 주에 수혁이 이 현장에서 일하던 이의 생명을 살려 준 덕이었다.

“저, 형.”

수혁은 아예 발걸음을 뚝 하고 멈춰선 후 조태진을 불렀다.

조태진이야 언제건 수혁이 있는 곳이라면 수혁에게 집중하고 있는 사람 아닌가.

정말 뜬금없이 부른 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곧장 답을 해 왔다.

“어, 수혁아.”

“저는 병원으로 가 보려고요.”

“그 환자 어려워?”

“네.”

“혈종?”

“아뇨, 그쪽은 아닌 거 같아요.”

“그럼…… 나는 여기서 내가 할 일 하는 게 나을 거 같네.”

게다가 상식적인 답을 해 왔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몇 시간 전에 신현태에게 전화를 받아서였다.

‘미친놈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외국에서도 남의 환자를 봐?’

들으면서 내가 왜 이 소리를 듣고 있나 싶기는 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수혁이 한 일 아닌가.

‘네가 수혁이 형으로 간 건데 옆에서 말리거나 아니면 안 들키게 했어야지!’

하지만 신현태가 조태진을 수혁의 형으로 인정해 주는 바람에 잠시 서운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형으로서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만 들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조태진 걔는 바보야, 수혁 바보.’

뭔가 이현종의 꾀에 넘어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원래 출장 가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걸 안 하면 휴가지, 출장이겠는가.

“네, 형. 그럼 저는…….”

“아, 이 교수.”

해서 조태진은 깔끔하게 수혁을 보내 주는데, 김진실 교수가 뜻밖에 나섰다.

“네”

“배랑은 관계있나? 복통이 주소 같던데.”

“아……. 네. 관계있습니다.”

“그럼 내가 갈까?”

“아, 안 계셔도 돼요?”

“어쩐 일인지 여기 과장이 갑자기 납작 엎드려서. 영상 쪽은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어.”

“아……. 그럼 뭐.”

어제 일이 없었다면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과 바루다는 초음파만 보고 장간막에 있는 그 조그마한 임파선을 바늘로 절제 생검 하는 걸 본 참 아닌가.

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김진실이 같이 가 주겠다고 하는 건 천군만마와 함께하는 것과도 같았다.

“같이 가시죠.”

“그래, 가자. 그랩 부를까?”

“아, 아뇨.”

해서 수혁은 핸드폰을 집어 드는 김진실을 부지 밖으로 이끌어 내면서 말을 이었다.

“리홍이 의원이 여기 있는 동안 저 차 타라고 했어요. 기사분도 계셔서 바로 타면 됩니다.”

“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