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화 여기도? (6)
조직검사라고 하면 다 같은 조직검사 같겠지만, 사실은 종류가 꽤 다양했다.
분류법에 따라 더 세세하게 나눠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떼어 내는 조직 크기에 따른 분류일 터였다.
“그래, 복강경으로 떼는…… 절제 생검이 제일 좋기는 해. 좋기는 한데.”
어떤 암은, 그러니까 갑상샘암 같은 경우에는 세침 흡입 검사만으로도 진단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갑상샘암이 그냥 한 종류가 아니라 유두암, 여포암, 수질암, 미분화암 등으로 나뉘어 꽤 복잡함에도 그랬다.
하지만 조태진이 주로 보는 혈액암, 그중에서도 림프종은 그렇지가 못했다.
이쪽은 전체 조직을 들여다봐야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했다.
심지어 표지자에 따라 따로 염색을 해야 하기도 했다.
“지금 이 환자는 그걸 절대 견딜 수 없어요.”
“그렇겠지. 게다가…… 아무리 복강경이라 해도 어찌 됐건 배에는 상처를 내는 거니까, 치료가 하루 이틀이라도 더 밀리지.”
때문에 절제 생검을 선호했다.
진단이 정확해야 치료가 정확하게 들어가고, 혈액암과 같이 빨리 자라는 암에서 초기에 적절한 항암 치료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항상 절제 생검이 우월한 건 또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상처를 내야 하지 않나.
생검 대상이 목에 있어서 그냥 딱 거기만 직접 째서 뺄 수 있다면 다행인데, 배 안에만 있다면 수술 범위가 커져서 환자의 몸에 무리가 가기도 하거니와 수술 후 회복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수도 생겼다.
“일단 경부 쪽에 임파선이 있다면 좋겠는데…….”
“아직 모르는 거야?”
“네, CT를 안 찍어 봐서요.”
“아니……. 왜 영상이 이렇게 보이는데 안 찍었지?”
“뭐 폐렴이 오지 않았으면…… 주말 지나고서라도 복강경 하 조직 생검을 해 봤겠죠.”
“아, 그걸 기다렸다. 안일했네.”
“네.”
사실 어떻게 보면 안일했다기보다는 안전하게 가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모든 병원이 그렇듯 싱가포르 국립 병원도 주말에는 모든 인원이 나오지는 않지 않겠나.
생검을 해 놔도 응급이 아닌 이상 바로 조직검사 의뢰가 접수되진 않을 터였다.
게다가 복강경이라 해도 어찌 됐건 수술은 수술이니 월요일에 시행하는 것이 술 후 관리에도 더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주치의들이야 주말이건 휴일이건 나오겠지만 당직이 아닌 스태프들, 그러니까 교수들은 쉬기 마련이기에 그랬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든 결과가 제일 중요한 법이었다.
특히 기회가 단 한 번뿐일 때가 많은 의학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근데 지금 이 환자…… CT는 도저히 안 되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영상에서 초음파하 세침 흡입 검사하는 게 쉬워 보이진 않아서 말야.”
“그건 그럴 거예요. 장간막이 지금 거의 고정되어 있기는 해도……. 간처럼 가만히 있는 조직은 아니라서요.”
“응, 게다가 염증이 있는 부위라…… 오히려 흡입한 부위에서 피 나면 그때 가서 열어야 될 수도 있어.”
지금 둘이 얘기하고 있는 검사같이, 환자에게 가해지는 위해를 극단적으로 줄인 검사들을 최소 침습 검사라 했다.
취지도 좋고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에서 환자에게 좋은 편이었는데, 늘 그런 건 또 아니었다.
최소긴 해도 어찌 되었건 어느 정도는 침습적이라는 얘기 아닌가.
그렇다 보니 피도 나고 했는데, 환자의 상태가 좋지 못하면 못할수록 피가 잘 멎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엔 죽기도 했고 더러는 오히려 복강경으로 지혈이 어려워 배를 열어야 하기도 했다.
“으음. 그것도 그렇겠네요.”
“약간 아쉽긴 하네. 그치?”
“네.”
수혁은 조태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아쉽다고 하는 건지 알겠어서 그랬다.
‘이하언 교수님이나…… 김진실 교수님이라면 할 수 있을 텐데.’
[네, 그 둘은 영상의학과의 외과 의사죠.]
태화 의료원은 워낙에 간 이식이 많은 병원이기도 하거니와 간이나 췌장 등등에 문제 생긴 환자들을 많이 보는 병원이지 않나.
외과 역량이 뛰어나긴 하지만 모든 환자를 다 외과에서 처리하기엔 무리일 정도로 많이 몰렸다.
거기에 소화기내과 쪽의 역량도 뛰어나다 보니, 최소 침습 검사나 치료를 정말 많이 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하여간 술기는 많이 하는 사람이 장땡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이하언이야 숨 쉬듯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김진실은 그런 이하언에게 거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고수였다.
‘여기는 괄목할 만한 논문이나 성과는 없었어.’
[네, 관련 논문은 단 한 건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태화의 복부 영상의학과에서는 이게 된다고? 싶은 위치의 종양에 고주파를 찔러 넣는다거나 혹은 암 덩이 조직검사를 일상처럼 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냐고 하면, 태화에 있다가 다른 병원으로 간 외과에서 이걸 왜 복강경으로 해 달라고 하냐고 싸울 지경이었다.
남들에게는 그게 당연한데 태화는 다 해 주니까 사람들이 적응하게 되었단 얘기였다.
‘그럼 조태진 교수님 말대로 목에 임파선이 있는지 없는지를 좀 봐야겠는데.’
[CT를 찍어야 할 텐데……. 지금 당장은 어려워 보입니다만.]
그 말은 곧 지금 수혁이나 조태진이 생각하는 게 정말 더럽게 어려운 술기란 얘기였다.
해서 일단은 우회하기로 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게 잘 안 되었다.
“그래도 환자 상태가 좋아지고 있어요.”
“응……. 그렇긴 하네. 차트를 보니까. 약이 잘 듣기는 하는 거 같아.”
“네, 엄청 세게 넣어 버려서요.”
“잘했어. 이런 환자는 좀 너무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치료해야 해. 때를 놓쳤다가는…….”
둘의 토론이 잠시 소강상태를 이루었다.
결론이 기다려야 한다는 쪽으로 나서 그랬다.
그때 갑작스런 환자의 악화를 겪은 보호자들을 달래 주러 나갔던 왕팡과 왕팡의 지정의 교수가 들어왔다.
“아, 저분이 이수혁 교수님입니다.”
“으음.”
수혁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양 때문이기도 했고 아까 회의에서도 봐서 그랬다.
김승규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왔지만, 하여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지가 뭔데 내 환자를…….’
자존심이 팍 상했다 이 말이었다.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는 또 없었다.
뭐가 되었건 왕팡의 말을 들어 보니 이 환자가 지금까지 숨 붙어 있는 게 이 녀석 덕인 거 같기는 해서였다.
다만 그걸로 끝을 내고 싶었다.
더 개입하는 건 안 되었다.
‘국제 진료소도 없는데 뭘 벌써 의뢰를 해? 게다가 이 사람 우리나라 의사도 아니잖아.’
다소 꼰대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뭐 얘기는 들었습니다.”
“네, 하하.”
[수혁, 이 사람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바루다가 없었다면 수혁은 지금 교수가 지은 억지 미소에 넘어가고 말았을 터였다.
하지만 바루다의 표정 분석 능력은 이제 경지에 오른 참이었다.
‘그래?’
[네, 돌이켜 재생해 보면 아까 회의실에서도 원장 뒤에 서 있었습니다. 양이 말했던 내과 내의 적 중 하나라 판단됩니다.]
‘오케이. 그럼 어떻게 할까?’
[의료법상 약자는 우리 쪽입니다. 앞에서는 우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하고, 마음대로 해 버리시죠. 어차피 환자 살리고 나서는 뭐라 못 할 겁니다. 리홍이 의원도 있고 하니까요.]
‘좋아.’
아마 예전의 수혁이었다면 바루다의 다소 망나니 같은 말에 일말의 불안감이라도 느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수혁은 벌써 몇 번이나 아선에 가서 깽판을 놓은 참 아닌가.
여차하면 칠성도 갈 용의가 생긴 마당이었다.
외국이라도 해서 용기가 사그라들진 않았다.
벌써 속으로는 내가 해 봤더니 결과가 좋으면 다 가만히 있던데? 와 같은 희망찬 사고 회로만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고생은 하셨습니다만……. 두 분도 싱가포르 오셨는데 여기 구경은 해 보셔야죠. 지금 이 시간이면…… 옳지, 나이트 사파리가 좋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해서 수혁은 뒤늦게 나타나서 억지를 부리는 교수의 말에도 화가 정말이지 단 하나도 나지 않았다.
“뭐라고요? 아니, 우리 수혁이가.”
“형, 일단 제가 할게요.”
“어? 어어. 알았어.”
오히려 화가 난 것은 조태진이었다.
물론 그 또한 수혁의 꼭두각시나 마찬가지였기에 수혁의 제지가 있자마자 순한 양이 되었다.
사실 김승규처럼 한판 싸우자고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고 있던 교수는 잘됐다 싶었다.
‘그래, 그 인간이 이상한 거지. 무슨 놈의 의사가 말야.’
생각해 보니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조폭도 아니고 의사가 그렇게 생겨서 그렇게 행동하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건너 건너 들어 보니 벌써 이식외과는 회진 안내까지 하고 있다지 않나.
병원 접수하러 온 것도 아니고 대체 뭔 짓인지 알 수 없었다.
리홍이가 주도하는 건만 아니었다면 경찰이라도 불었을 터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하여간 수혁은 양과 왕팡과 눈으로 신호만 나눈 채 중환자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나이트 사파리인지 나발인지로 가는 대신 병원 앞에 위치한 호커 센터에 가서 대충 밥으로 때울 만한 것을 사서 조태진과 먹었다.
‘내 코스 요리.’
정말 끼니를 때웠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음식이었기에 조태진은 머릿속으로 광동 요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나기도 했다.
“어쩔 건데?”
“신호 주면 다시 들어가야죠.”
“좋다. 약간 떨리는데? 그래도 되나?”
“명색이 교순데 병원에 하루 종일 있겠어요? 곧 나갈걸요.”
수혁과 남들이 모르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게 재밌어서 그랬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현종이나 신현태는 이런 적까지는 없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에 다 먹고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오, 오래요.”
“좋아. 가자.”
“몸은 왜 숙여요?”
“몰래 가는 거니까?”
“더 수상해 보이는데…… 형은 덩치도 크잖아요.”
“아, 하긴. 그래, 그래. 당당하게 가자.”
“지금 팔이랑 다리랑 같이 나가는 거 알아요?”
“오.”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법 같은 일을 저지르는 거라서 그럴 수도 있었다.
의대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언제 이런 짓을 해 봤겠나.
하여간 둘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애초에 처방을 잘 내놔서 그런가. 환자는 그사이에도 눈에 띄게 호전이 되어 있었다.
아까는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이제 이거론 죽진 않겠다 싶었다.
“CT도 찍을 수 있겠어. 경부랑 흉부 다 찍자.”
“아, 네. 선생님. 처방 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 컨펌은 필요 없어?”
“아까 양한테 두 분 토의하는 거 전해 듣고…… 제 생각인 것처럼 노티 해 놨습니다.”
“잘했네.”
왕팡이 꽤 눈치가 빠른 덕에 CT까지는 진행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어렵게 찍어 놨더니만 목이 깨끗했다.
이쪽에서 절제 생검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었다.
영상의학과에 의뢰를 해야 했다.
“네? 아유……. 어렵겠는데.”
전화를 받은 당직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워낙에 어려운 일인 데다가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어서 그랬다.
다들 낙담하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수혁에게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저지르죠?]
‘응? 뭘?’
[김진실 교수도 왔잖아요. 지금 쉬고 있을 텐데 불러요.]
‘아……. 그럴까? 그게 낫겠다.’
미친 소리였는데, 수혁도 미친 사람이라 그냥 그렇게 결정을 해 버리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