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화 김승규가 온다 (3)
소란스럽던 회의실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비단 싱가포르 사람들만 입을 다문 게 아니라, 태화 측 인원도 입을 다물어서 그랬다.
이식외과 조교수들도 아직 김승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 바짝 어는데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바루다의 보정을 받을 수 있는 긍정왕 이수혁 말고는 그 누구도 김승규 앞에서 하고자 했던 말을 할 수 없었다.
‘아, 생각났다.’
[뭐가요?]
그렇게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앉고 있으려는데, 수혁이 돌연 김승규를 보며 말했다.
이게 꽤 놀라운 일이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진 못했다.
모두가 될 수 있으면 김승규를 다시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서였다.
덕분에 수혁은 아주 편안하게 바루다와의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김승규 교수님 누구 닮았는지. 생각났어.’
[저런 사람을 닮은 사람이 있어요? 흉악범인가.]
평소 같았으면 이런 얘기 꺼내면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뭐라 했을 바루다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더없이 진중해졌다.
이 정도 얼굴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면 의학적으로 접근해 봐도 좋을 거 같아서였다.
절대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얼굴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김승규도 아주 어릴 적에는 저 정도는 아니었다는 진술이 있었다.
그러다가 학생 때 아마 복싱을 하면서 얼굴이 더 무서워졌다고 했다던가.
막판에는 적수를 찾기 어려워 관장이 농담 삼아 한국이 헤비급 월드 챔피언 감을 의료계에 빼앗겼다고 한탄했다는 말도 있었다.
‘하나야마 카오루라고…….’
[야쿠자죠? 일본 이름인 거 보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야쿠자가 맞긴 한데.’
[일본도 만만한 나라는 아니군요. 저런 얼굴이 있다니. 거기서 필시 전국구겠죠.]
‘전국구라면 전국구지.’
수혁은 바루다의 추측이 꽤 정확한 것에 놀랐다.
하나야마 카오루라는 사람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 『한마 바키』라는 만화에 나오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하여간 프로필은 야쿠자에 5대 조직의 보스 아닌가.
작중 평을 대강 요약하면 사람이 아닌데, 김승규는 그런 사람과 많이 닮아 있었다.
‘교수님 키가…….’
[190은 넘죠.]
‘100kg도 넘겠지?’
[눈알은 장식입니까? 당연히 넘죠. 140kg은 될 거 같은데.]
‘이쪽도 인간이 아니구나.’
[사실 볼 때마다 왜 의사를 하고 있나 싶긴 합니다.]
‘석좌 교수잖아. 야, 너 태화 석좌 교수가 아무나 하는 건 줄 아냐.’
[다른 쪽으로…… 그러니까 폭력을 수행하는 쪽으로 갔으면 석좌 교수가 아니라 석좌 할애비라도 됐을 겁니다.]
‘음.’
부정하기 어렵단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김승규의 등장에 충격과 경악에 휩싸여 있던 싱가포르 종합 병원의 원장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무서워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않나.
게다가 상대는 삼합회가 아니라 의사였다.
‘유명하신 분이잖아. 얼굴로 평가하는 게 옳은 일은 아니지. 얼마나 기분이 나쁘시겠어……. 그래, 내가…… 용기를 내서 어떻게든!’
원장은 이미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나마 김승규에게 극존칭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입을 열었다.
마이크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나서였다.
너무 떨어서 두 번 친다는 게 네댓 번 치기는 했는데, 하여간 입을 열기는 열었다.
“태화 의료원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싱가포르 종합 병원의 원장 홍웨이라고 합니다. 닥터 홍이라고 불러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나마 목소리는 떨지 않았다.
원장 정도 되면 수천 명 앞에서 발표한 적도 많지 않겠나.
김승규 앞에서 해 본 적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가능해야만 했다.
“태화 의료원과 싱가포르 종합 병원이 정식으로 진료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더 나아가 국제 진료소 설립 또한 공동으로 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것을 계기로 태화 의료원의 전문의 선생님들이 싱가포르 종합 병원에 와서 많이 배우고 또 반대의 경우도 종종 생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원래 말문이라는 게 털썩 막히게 되면 열리는 게 쉽지 않지만 한번 털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법이었다.
덕분에 원장은 원래 하고자 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김승규가 보이지 않는 쪽을 바라보면서이긴 했지만 하여간 그의 목소리는 김승규에게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이상한 소리 하면 화내라고 했지.’
김승규는 여기 오기 전에 있었던 김다현 이사장과의 미팅을 떠올렸다.
담이 큰 사람도 자신과 마주하면 딴 데를 보거나 하기 마련인데, 과연 태화 바이오라는 거대 그룹을 이끄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주 당찼다.
명료하게 자신이 이번 미팅에서 해야 할 일을 전달해 주었다는 뜻인데, 간단해서 좋았다.
그리고 그 뜻이 너무 노골적이라서 싫기도 했다.
‘나는 대체 이놈의 얼굴 덕을 언제 보려나.’
사실 살면서 꽤 여러 번 봤을 게 뻔한 얼굴이었지만, 적어도 김승규가 원하는 방향의 이득이었던 적은 많이 없었다.
특히 병원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오죽하면 아직 레지던트 때 교수들이 너는 환자 깰 때 얼굴 들이밀지 말라고 했겠는가.
그 말이라도 당당히 해 주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얼굴 보면서 하면 무섭다고 편지로 써서 보내서 더 열 받았다.
‘벌써 화났나.’
옛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래 봐야 남들 같았으면 무표정하네 싶을 정도의 변화였으나, 김승규 얼굴이다 보니 느낌이 달랐다.
원장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어찌 되었건 교수 회의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쉽지는 않았다.
보기 싫어도 눈길이 가는 얼굴이 눈앞에 떡하니 놓여 있지 않나.
“그럼 일단 저희끼리 협의했던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이건 태화와 협의한 결과가 아니라 저희가 원하는 사안입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용기를 내도 마지막 말만은 해야 될 거 같았다.
여지를 주지 않으면 저 우람한 주먹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서였다.
설마하니 간 이식이라는 섬세한 수술하는 사람이 주먹질을 하겠나 싶기도 했지만, 생긴 건 너무 휘두름 직하지 않나.
“그래, 말해 봐.”
원장의 말에 김승규가 태화 의료원 대표답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은 친절했지만, 얼굴이랑 같이 묶어서 보면 마약 거래라도 하는 거 같았다.
왜 태화 놈들은 이런 사람을 보냈을까, 원장은 속으로 욕을 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닥터 장을 위시한 친 태화파, 다시 말하면 이수혁-리홍이파는 원장을 다소 아니꼽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원장파는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지들이 대면한 거 아니다 이거지.’
말이 회의지, 이미 내부 회의는 다 마치고 하는 회의다 보니 말하는 이는 두 명뿐이었다.
아니, 태화는 생명이나 바이오 측에도 하나 발언권이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 테니 셋일까?
하여간 지금은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조용한 마당이라 원장은 이 세상에 김승규와 단둘만이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끝이 없을 거 같은 기분이었고, 요약하면 개 같았다.
“우선 저희가 주목한 것은 태화의 통합진료센터입니다.”
“음.”
“내과…… 진료 능력이 정말 우수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내과 측은 다수결에 의해 진료 범위를 넘어갔거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 국제 진료소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뢰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잘됐군.”
처음부터 기분 상하게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우선 내과 얘기부터 꺼냈다.
하지만 사실 더 깊숙이 생각해 보면 이것도 실책이었다.
김승규는 내과가 아니지 않나.
이식 외과 얘기부터 했어야 했다.
“그다음 이식 외과는…… 사실 저희도 역량이 아주 뛰어나긴 합니다. 태화 못지 않…….”
“응?”
아니, 아니었다.
이럴 거면 이식 외과 얘기는 나중에 했어야만 했다.
세계 최고는 나라는 자부심 하나로 사는 사람 아닌가.
원장은 눈치 말아 먹은 사람은 아니어서 김승규의 표정 변화와 거의 동시에 말을 바꾸었다.
“간 이식은 아니고요. 다른 이식 말입니다.”
“으음.”
“그러다 보니…… 우선은 적극적으로 홍보한다기보다는 원하는 사람에 한해…….”
“홍보를 아예 안 하면 태화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지?”
“네네, 저희도 그 점이 염려스러웠어요. 그래서 말인데…… 태화에도 이런…… 이런 광고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원장은 김승규의 말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포스터 하나를 띄웠다.
포스터엔 한국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세계 최고의 병원, 싱가포르 종합 병원에서의 이식 수술을 고려해 보세요! 한국에서 내 대기 순번을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광고였다.
아주 노골적인.
심지어 장기 기증이 활발하지 않아 대기 순번이 길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이식 외과의 약점을 꼬집는 문구가 은연중에 들어가 있었다.
“이런 걸 내 병원에 걸자고?”
“아니……. 엄밀히 말하면 교수님 병원은…….”
“우리는 뭐라고 걸고?”
“동일한 문구로 거시죠.”
“애초에 세계 최고의 병원이 여기가 아닌데?”
“최고의 병원 중 하나…… 아닙니까?”
“하하.”
원장의 말에 김승규가 껄껄 웃었다.
몸을 일으키면서였는데, 이 때문에 원장은 따라 웃지 못했다.
뒤에 있던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같은 편이라 생각하고 있는 닥터 장 측도 그랬다.
‘뭐 사람이 저러냐.’
얼굴도 얼굴인데 몸이며 손이며 다 흉기지 않나.
“말장난하지 마.”
게다가 저 얼굴로 오래 살아서 그런가, 싫어하면서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간단하기는 했다.
그냥 얼굴을 들이밀면 됐다.
“힉.”
“최고면 하나여야지. 이 중에 나보다 간 이식 잘하는 놈 있어? 나와 봐.”
김승규는 말을 하면서 원장 뒤에 선 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눈을 깔았다.
일단 실력에서 밀리기도 했거니와, 여기서 괜히 나섰다가는 맞을 거 같아서였다.
“저따위 문구를 넣은 포스터를 병원에 놓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거기 너 외과지. 일로 와 봐.”
“어…….”
하지만 나오라고 할 때 안 나와도 맞을 거 같았다.
지목당하지 않은 모든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 지목당한 외과 과장이 앞으로 나왔다.
“네가 썼어?”
“아, 아뇨.”
“그럼 누가 썼어.”
“원장님…….”
“어어, 자네! 그렇게 말하면 어떻…….”
과장의 말에 원장이 기함했다.
저 새끼가 날 여기서 묻으려고 하나 싶었다.
해서 말리려고 했으나, 김승규가 나섰다.
“누가 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게 내 눈앞에 나왔다는 게 중요하지. 하여간 네가 저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 이거지?”
“네네. 그러문요.”
“그래, 그렇다는데 왜 원장이 이럴까? 문구 바꿔.”
“어…….”
“과장이 아니라잖아. 여기 뭐 원장 독재야?”
“아닙니다. 아니에요.”
“바꿔.”
“어떻게…….”
“싱가포르 종합 병원에서도 이식 수술이 가능은 합니다.”
“은은 뺴는 게…….”
“그래 그거 빼고 그대로 해.”
“알겠…….”
“그리고 다른 과는? 계속해 봐.”
“네.”
“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