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화 김승규가 온다 (1)
점보 식당은 칠리 크랩 전문점으로 아주 유서 깊은 식당이라 할 수 있었다.
요즘에야 핫 하게 떠오르는 크랩 전문점이 꽤 많은 데다가, 점보 식당의 가격 정책 때문에 싱가포르 여행에 있던 필수 방문지로 여겨지진 않는다지만 조금 윗세대에게 점보 식당은 꽤 특별했다.
조태진이 그랬다.
“여기가…… 와, 나 레지던트 때 뭣 모르고 왔다가 그냥 나갔잖아.”
“너무 비싸서요?”
“어. 지금도 비싼데, 그때는 진짜 비싸다고 느껴지더라고. 그때만 해도 싱가포르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물가가 비쌌거든. 근데 지금은 뭐……. 서울 밥값도 장난 아니라.”
“그러니까요. 웬만한 파인 다이닝 하려면 이것보다는 더 나가잖아요.”
“아, 그렇지. 너는 더 잘 알겠다. 현종 교수님 때문에 엄청 다닌다며?”
“달리 돈 쓸데도 없고……. 다니다 보니까 파인 다이닝의 매력이 또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이현종이 한 끼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 심지어 어떨 때는 20만 원이 넘는 식당을 다니는 걸 보면서 돈 지랄도 저런 돈 지랄이 없지 싶었다.
솔직히 맛만 따지면 돼지갈비에 물냉면만 한 것도 거의 없지 않은가.
아무리 비싼 돼지갈빗집이라고 해도 보통 10만 원이면 둘이 배 터지는데 왜 여길 오나 했던 적도 있다는 얘기.
하지만 자꾸 다니다 보면 뭔가 눈이 뜨인 기분이 들었다.
파인 다이닝을 다니는 건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모양과 코스에 담긴 셰프의 철학 등을 즐기는 것 아닌가.
특히 수혁은 익숙한 재료에서 낯선 맛을 나게 하는 재주가 있는 셰프를 좋아했다.
[사람이 돈을 버는 건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지요.]
사실 무엇보다 바루다 때문이기도 했다.
인공지능 주제에 식탐이 그득한 이놈은 지금도 침을 질질 흘리면서 요리 대기 중인, 그러니까 수조 속에 있는 크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좋냐?’
[파인 다이닝도 좋지만, 칠리 크랩 같은 건 우리나라에서 먹기 어려우니까요.]
‘하긴 제대로 하는 집이 거의 없지.’
[조태진이 열심히 연구했군요. 수혁이 먹을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말입니다.]
‘그건 너거든.’
수혁이 조태진과의 대화와 바루다와의 대화를 용케 헷갈리지 않고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직원이 다가왔다.
“어…….”
“둘이요.”
“아,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직원은 수혁의 얼굴을 보고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조태진의 둘이란 말에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받은 자리는 창가 자리였다.
강가가 내려다보이는, 그야말로 명당이었다.
그냥 예약도 어려운 곳이라는 걸 아는 수혁은 감사한 눈으로 조태진을 바라보았다.
조태진은 그 눈빛만으로 그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드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여기 내가 한 달 전부터 전화 한 열 통은 했을 거야. 여기서 그렇게 고백을 한다네? 연인들 때문에 우리 귀한 수혁이가 말야, 제일 좋은 자리에서 못 먹을 뻔했지.”
“아, 그래요? 고백의 명소면…….”
그런 자리면 우리가 앉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대체 뭐라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강가를 잘 보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다 보니 다른 자리보다 약간 높았는데, 그래서 그런가 다른 이들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뭐여?’
[모르겠습니다만, 제 분석에 따르면 다들 기대하고 있군요.]
‘너 처음 보는 사람 감정은 잘 모르잖아?’
[인류 공통된 정서에 대해서는 그나마 분석이 가능하죠. 뭔가 재미난 걸 기대하는 듯한데요.]
‘으음.’
수혁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조태진이야 딱히 남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고.
그는 마치 첫 데이트 나온 사람처럼 수혁의 반응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근데.”
“어, 수혁아.”
“내일은 병원으로 가는 거죠?”
“어 주말이라…… 외래 없으니까. 내일하고 모레 양일에 걸쳐서 싱가포르 종합병원 측 사람들 만나야지. 인적 교류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환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지가 필요해.”
“쉽게 될까요?”
“우리야 뭐…….”
조태진은 출발 전에 신현태 및 태화 생명 측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내과 쪽은 리홍이 의원도 그렇고 닥터 장도 그렇고 해서 문제없습니다만 다른 과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식외과 쪽은 그래도 저희 쪽이 워낙 간 쪽으로 유명해서 얘기가 될 거 같고요, 정형외과나 다른 과들은 가서 더 얘기를 해 봐야 합니다.]
요약하면 간 이식과 내과 전반적인 환자들은 크게 걱정할 거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태화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과들도 잘돼야 하긴 할 텐데, 아직 조태진은 그렇게까지 시야를 넓힐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태화 의료원 일행을 이끌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 앞에서 어쭙잖게 나대다가는 글쎄 싱가포르 해협 앞바다를 의식 없이 떠돌게 되지 않을까.
“하긴 김승규 교수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응. 그분 오시는데…….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설렁설렁하고 있는 걸 거야.”
“그건 그래요. 그분이 있는데 감히 뭐. 근데 진짜 바쁘신 거 같아요. 오늘 못 온 것도 갑자기 이식 잡혀서 그런 거죠?”
“응? 아, 응. 사실 이제 밑에 사람한테 좀 맡겨도 될 텐데……. 그런 사람 있잖아. 자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 마음 놓이는 사람. 사서 고생이지.”
김승규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식 때문에 내일 올 텐데, 태화 의료원 사람들은 말은 안 하지만 다들 한 가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과연 싱가포르 사람들은 김승규 교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단 대한민국에서는 교도소에서조차 전국구로 오인받을 만한 인상이라는 게 입증이 되었는데, 그게 글로벌 하게도 먹힐지가 너무 궁금했다.
몇몇 호사가들은 내기도 했다.
삼합회로 오인받는다, 아니다로.
수혁과 조태진은 오인받는다 쪽이었다.
옷만 제대로 입고 오시면 무조건이었다.
“어, 음식 나오나 보다.”
얘기를 하다 말고 조태진이 부엌 쪽을 돌아보았다.
말한 대로 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오고 있었는데, 어찌 된 게 아무것도 안 든 사람 한 명도 따라붙었다.
‘비싸서 그런가…… 서비스가 좋네.’
조태진은 좋은 게 좋은 거라 믿는 사람이라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긍정적인 걸로만 따지면 수혁도 만만치 않아서 별생각 없이, 그저 크랩만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데 아무것도 없이 온 종업원이 다른 종업원이 크랩을 내려놓는 사이에 인사를 건넸다.
인사하는 것 정도야 뭐 식당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한데, 이미 들어온 이후에 하는 건 좀 낯선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종업원은 어딘지 모르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해서 수혁은 바루다에게 물었다.
‘나 이 사람 본 적 있냐?’
[스쳐 지나간 사람은 용량 때문에 다 지우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데이터에 있냐고.’
[아뇨, 없습니다. 기억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기억하는 거 같은데? 상대는 기억할 정도로 친밀한데 지운 것도 있어? 아니면 내가 너무 인상적인가?’
[수혁, 수혁의 얼굴은 누누이 말하지만 평범한 편입니다.]
‘화장발 잘 받잖아.’
[화장발을 잘 받기는 하지만, 평소 화장을 하고 다니진 않으니 무의미한 발언입니다.]
‘휴.’
빡치는 대사였지만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얼굴만으로 누군가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려면 아주 잘생기거나 김승규처럼 폭력을 거리낌 없이 행사할 수 있을 것처럼 생겨야만 했다.
“어, 네.”
“혹시…… 이분 아닌가요?”
해서 조금 민망한 얼굴로 인사를 받았더니, 종업원이 대뜸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뭔가 하고 보니 앰뷸런스 내에서 찍은 듯한 영상이 떠 있었다.
[친구가 찍었네.]
‘언제 찍은 겨?’
[모르겠습니다. 전혀 그쪽은 집중하지 않아서.]
앰뷸런스 안에서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지 않나.
아니, 그와는 반대로 사람을 살렸다.
때문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제가 맞습니다.”
“그렇군요!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친구가 제 친구이기도 한데…… 죽다 살았다고 들었거든요.”
“아, 그래요? 그럼 이 영상은?”
“개인적으로 받은 거예요. 아까 뉴스에서도 선생님 사진이 나왔는데 어렴풋이만 나와서 긴가민가했거든요. 그래서 여기 온 거 같다고 말했더니 영상을 보내 주었습니다.”
“아……. 뉴스?”
“네. 모르셨구나, 하긴. 외국 분이신데 우리 방송은 안 보시겠죠. 지금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 식사하시는 분들 중에도 보신 분 많을걸요?”
“오.”
종업원이 마지막 말을 하면서 식당 전체를 가리켰기 때문에 수혁도 덩달아 그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실 종업원 둘이 한 테이블에 가는 것도 드물거니와 한참 떠드는 것도 낯선 일이다 보니 다른 손님들도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방금 뉴스에 나온 의사가 저기 있다지 않나.
불미스러운 뉴스였다면 또 모르겠는데, 대한민국 의사가 생면부지의 싱가포르 젊은이를 살렸다는 훈훈한 내용의 뉴스였다.
게다가 리홍이 의원의 부탁으로 인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미화되어 있었기에 대중의 호감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짝짝.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 보니 조태진이 벌떡 일어선 채 북한 사람처럼 열렬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이고.”
한 명만 이러면 이상하지만 이내 종업원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 중 마음씨 좋은 사람들부터 덩달아 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저 멀리 떨어져서 뭔 일인지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박수를 쳐 댔다.
‘대박.’
혹시 몰라 따라왔던 기자는 또 건수 올렸단 생각에 사진을 찍었다.
제목은 글쎄 뭐로 할까.
친구의 생명을 구해 준 보답으로 식사 대접하는 종업원 정도?
돈이야 저 둘이 내겠지만, 어차피 정정 보도는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지 않나.
심지어 정정 보도는 최대한 숨겨서 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사진 좋네요. 이 은혜는 제가 잊지 않겠습니다.>
신나서 문자를 보내니 리홍이한테도 단박에 답장이 왔다.
다른 이었다면 말만 하고 입 닦네 하고 욕이라도 했겠지만, 로열패밀리의 말이 갖는 무게는 천금과도 같은 법이었다.
기자는 언제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하면서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 후로는 별일이 없었다.
수혁과 조태진은 음식을 맛나게 먹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김승규 교수를 마중 나가야 했기에 너무 늦지 않게 호텔로 향했다.
“지금 랜딩 한 거 같은데?”
조태진은 창이 공항 맞이방 쪽에 서서 말했다.
수혁을 향해서였는데, 사실 모두에게 말한 거나 다름없었다.
태화 의료원 사람들은 전원 온 탓이었다.
원장이 온다고 해도 쓸데없이 다 이동하진 않을 거 같은데, 상대가 김승규다 보니 말 한마디 하지 않았음에도 다들 알아서 왔다.
“근데 푯말 같은 거 없어도 됩니까?”
싱가포르 종합병원 측의 닥터 장과 양도 왔다.
둘은 혹시 김승규가 여기 못 보고 지나칠까 봐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수혁은 그런 둘을 보며 씩 웃었다.
“걱정 마요. 저기 김승규 교수님이 나타나면 모두가 알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