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화 병원 실사 (2)
수혁은 느리게 달려 나가면서 허물어지듯 쓰러지는 환자를 관찰했다.
폐건물 2층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자칫하면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바로 옆에 동료들이 있어 그런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가슴을 붙잡고 있어. 심근경색 또는 협심증 가능성이 있겠는데.’
[체격이 건장하고 딱 봐도 나이가 어려 보입니다. 선천성 이상도 고려해야 합니다.]
‘심하지 않은 심장 중격 결손 같은 걸까?’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우선 가까이 가서 보죠.]
‘오케이.’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환자는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것만으로 단정 짓는 건 위험한 일이었지만, 급할 땐 위험한 질환부터 소거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단과 처치가 가능한 의료 기관으로의 이송이었다.
“네, 여기 탕종 류 로드 인근 국제 진료소 부지입니다. 인부 한 명이 가슴 통증 호소하며 쓰러졌습니다. 최대한 빨리 앰뷸런스 보내 주십시오.”
다행히 이곳엔 의사들이 많았고, 심지어 같이 온 사람들도 태화 생명이나 바이오에서 일하는, 말하자면 의료 쪽에 한발 걸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안내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 현지 의사인 닥터 양이지 않나.
그는 수혁이 가리킨 곳에서 환자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전화부터 걸었다.
“알겠습니다. 혹시 원하는 병원 있습니까?”
“가능하면 싱가포르 종합병원입니다.”
“네, 도로 교통량 및 환자 상태 봐서 조치하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병원은…… 라플스 병원입니다만 차이가 많이 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 종합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일러 두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예상 도착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7분 정도 됩니다.”
“네.”
7분이라.
싱가포르의 극악한 도로 교통 사정을 감안하면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다.
앰뷸런스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범칙금이 부과되기 때문인데, 그 덕에 죽을 사람이 꽤 많이 살아나는 나라 중 하나였다.
물론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서울에서는 그리 부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버스 전용 차로가 생기면서 극적으로 이송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안도한 얼굴이 된 양은 그제야 환자를 향해 달렸다.
“이거 필요하지 않을까요?”
옆을 돌아보니, 현장 소장이 어느새 제세동기를 들고 뛰고 있었다.
심장이다 보니 이게 딱 필요할 거라 여긴 모양이었다.
‘모양새를 보니까 심근경색이긴 한데…….’
완전히 멈춘 거라면 사실 딱히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제세동기가 영화에서 보면 마치 만능인 거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아서였다.
부정맥이라면 절대적이겠지만 그게 아닌 경우에는 주로 리듬 읽어 내는 게 고작일 때도 많았다.
하지만 굳이 들고 뛰고 있는데 필요 없다는 말을 할 건 아니지 않나.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들고 오시죠!”
이미 양은 여기 오늘 태화와 리홍이가 합작해서 보낸 기자들이 몇 섞여 있을 거란 사실은 잊은 지 오래였다.
딱히 양이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투철해서는 아니었다.
원래 사람이 죽어 넘어가고 있고, 그 사람을 봐야 하는 책임이 얼마간이라도 내게 있다면 다른 생각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겠나.
게다가 지금은 교주 수혁이 솔선수범해서 환자에게 달려간 참이었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수혁은 정석대로 환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굉장히 세게 두드렸으나, 환자는 반응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의식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어.’
[네, 맥박 좀 짚어 보시죠.]
‘오케이.’
수혁은 빠르게 환자에 관한 파악을 해 가면서 심폐소생술 상황 발생 시 따라야 하는 프로토콜대로 움직였다.
태화 의료원 자체가 모든 의료진을 대상으로 워낙에 빡세게 CPR 교육을 하는 데다가, 수혁은 명색이 내과 교수 아닌가.
전문가라 이 말이었다.
‘맥박은 있어.’
[그렇군요. 그렇다면…….]
‘경색이나 협심증이야. 리듬을 봐야겠는데.’
[뒤에 제세동기 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혁은 바루다 덕에 일반인 수준의 감각을 짤막하게나마 보상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
“여기, 제세동기 있습니다! 흉부 압박할까요?”
곧 도착한 양이 소장이 건네준 제세동기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동시에 가운 팔뚝을 걷어 올렸는데, 그뿐만 아니라 뒤따라온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맥박이 없다면 언제든 정석대로 가슴을 꾹꾹 눌러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수혁은 정장 윗도리를 훌훌 벗어 던지는, 심지어 개중에는 그냥 땅바닥에 내려놓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조태진이 그랬다, 교수진을 보며 외쳤다.
“아뇨, 맥박 있습니다!”
“아.”
그 순간 양을 비롯한 여럿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상황에서 맥박이 있다는 건 꽤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어찌 되었건 간에 심장이 어지간히 혈압을 유지할 만큼은 뛰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그랬다.
‘어쩌면 살겠다.’
이런 생각이 모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의사들이 이렇게 많은데 뭐 하는 건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병원에서 하는 전문적인 심폐소생술이 제한된 상황에서 심장마비는 생환율이 지극히 낮았다.
물론 워낙에 전문가들이다 보니 어찌어찌 병원 도착할 때까지 살릴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모든 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손상의 범위였다.
너무 많이 진행한 상황에서는 그 누가 붙어도 소용이 없었다.
“설치했습니다!”
양은 안도만 하고 있는 대신, 옆에 신도처럼 뛰어들어 무릎까지 꿇은 조태진과 더불어 제세동기를 설치했다.
그러자 모니터에 환자의 심장 리듬이 떴는데, 수혁은 그걸 보자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ST 분절의 하강 소견 관찰되고……. 심장박동 수는 90회…… 심근경색입니다.”
제대로 된 심전도는 아니라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되었는지 파악은 어려웠지만, 하여간 심근경색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아까 안도했던 이들의 얼굴이 다시 경직됐다.
현대 의학이 발달해 오면서 심근경색을 비롯한 여러 혈관 질환들에 대한 생환율이 올라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심근경색은 심각한 병이었기에 그랬다.
사실 심장 부여잡고 쓰러져서 의식이 거의 소실된 것부터가 심각하긴 했는데, 이렇게 리듬으로 확인하고 나니 어쩐지 더 확실해지는 기분이었다.
“여기 계신 분 중에, 이분하고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죠?”
수혁은 절망하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가면서였다.
처음부터 이 환자에게 뭔가 다른 이상이 있을 거라 예상하지 않았나.
가까이 와서 보니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환자는 건장할뿐더러 너무 젊었다.
일반적인 협심증이나 심근경색과는 거리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문진이 답이었다.
“아, 제가 좀.”
수혁의 질문에 누군가 손을 들고 나섰다.
체격은 왜소했지만 나이는 환자와 비슷해 보였다.
기껏해야 24, 25이나 되었을까?
이 나이 때는 단지 어떤 집단 내에서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도 친해지곤 하지 않나.
친하다는 말이 그럴싸해 보였다.
“저기 앰뷸런스 오는데, 같이 가 주실 수 있나요?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어차피 환자는 의식이 없으니, 환자에게 묻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그렇다면 가까운 사람에게라도 문진해야만 했다.
“아…….”
손들었던 청년은 저도 모르게 현장 소장을 바라보았다.
현장 소장은 가뜩이나 자기 담당일 때 사람 쓰러져서 심란하던 차라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가. 사람 목숨이 중하지.”
“네, 그럼 제가 가겠습니다.”
덕분에 환자의 친구는 수혁과 함께 앰뷸런스에 타기로 결정되었다.
원래 앰뷸런스에는 보호자 한 명 정도가 동승하는 게 국룰 아니던가.
하지만 의료진들이 있을 땐 예외로 쳐주는데, 그래 봐야 보통 두 명 더 타는 것이 최대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조태진과 닥터 양이 초조한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 굴러온 돌 새끼가…….’
‘여기는 제 구역입니다만?’
둘 다 누구랄 것 없이 서로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조태진이야 자기는 교수인 데다가, 수혁과 친한 걸로 따져도 우위에 있으니 당연히 자기가 가야 한다고 믿었고, 닥터 양은 딴 거 다 필요 없고 자신은 로컬이니 자기가 가야 한다고 믿었다.
하나 동시에 서로의 장점을 인지하고 있어서 불안했다.
그렇게 수혁의 입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머지 않아 수혁이 입을 열었다.
앰뷸런스가 이미 도착해서 이송용 침대를 밀고 오고 있는 참이라 시간을 더 끌기도 어려웠다.
“좋아요. 음, 닥터 양. 저랑 같이 타죠. 현지 의사가 있으면 저분들도 아무래도 더 신뢰가 가겠죠.”
“예쓰! 아니, 네!”
선택받은 건 양이었다.
그럴싸한 이유였기에 조태진은 섭섭하면서도 섭섭함을 티내지 못했다.
[조태진도 좀 챙기죠. 이상한 사람이기는 해도 좋은 사람입니다.]
‘내 주변이 다 그렇지.’
[반박할 만한 말을 찾기 어렵군요. 어쩌다 인간관계가 그렇게 됐습니까?]
‘나도 모르지. 아무튼.’
수혁은 시무룩해진 조태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은 그랩 타고 오세요. 인계하고…… 어쩌고 해도 시간 오래 안 걸릴 테니까. 실사는 다른 분들이 알아서 하겠죠.”
“어, 어?”
“싱가포르 종합병원으로 가게 될 거 같은데, 거기 주변에 갈 데 많아요. 호텔 가기 전에 거기서 식사해요.”
“오, 오. 좋지!”
조금 다독여 줬더니만 조태진은 금세 희희락락해졌다.
바로 앞에 쓰러진 환자를 두고 있어서 자제하고 있기는 해도 입꼬리가 씰룩거린다는 얘기였다.
나름 혈액종양내과에 있으면서 안 좋은 환자 많이 본 주제에 이런다는 건 지금 평정심을 완전히 잃었단 얘기였다.
“그럼 저는 갑니다.”
다 큰 어른이 이러는 꼴을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급한 일이 있지 않나.
수혁은 환자를 들것에 싣는 것을 돕고는 곧장 앰뷸런스에 탔다.
타자마자 한 일은 우선 안에 뭐가 있는지 훑는 일이었다.
‘대강 응급 처치 정도는 다 할 수 있겠어.’
[네, 여기도 꽤 훌륭하네요.]
‘싱가포르 정도면 선진국이지.’
[그러네요.]
대강 뭘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정리가 된 수혁은 즉시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혹시 얼마나 걸릴까요?”
“지금 상황이면…… 15분은 걸립니다.”
“15분이라.”
빠르다면 빠르다고 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심장 환자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막막한 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 이 환자는 이제 막 증상이 생긴 것도 아니지 않나.
급했다.
‘여기서라도 뭘 해야겠어.’
[네.]
해서 수혁은 환자의 가슴에 다시 심전도를 달았다.
아무래도 앰뷸런스 안에 구비된 심전도는 보다 제대로 된 기계여서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심전도상 lead II, III, aVF에서 ST 분절의 하강소견…… 아까보다 하강 정도는 호전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경색과 협심증 가능성 둘 다 있어.”
“혈압은.... 수축기 70입니다.”
“맥이 약해졌다 싶었는데.”
“그럼 도부타민, 노르에피 줄까요?”
“음, 잠깐만.”
수혁은 양의 질문에 즉각 답하는 대신, 엉겁결에 같이 앰뷸런스에 타게 된 환자의 친구를 돌아보았다.
너의 말에 따라 환자가 살지 죽을지 결정된다는 식의 표정을 지으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