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9화 뭐니 이게 (6)
“말라리아라고?”
신현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아마 수혁이 2년 차거나 3년 차 때였으면, 이런 생각도 들었을 터였다.
그래 우리 수혁이가 아무리 불세출의 천재라 해도 어떻게 모든 걸 다 알겠냐, 뭐 이런 식의 생각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현태의 수혁에 대한 애정과 판단이 달라져 있었다.
‘말라리아라? 그럴싸한가?’
감염내과 교수로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자신의 경험을 부정할 정도였다.
“네. 말라리아요. 다른 소견들을 배제하고 간만 뚝 떼놓고 보면 지금 가장 가능성이 큰 질환은 말라리아입니다.”
수혁은 그런 신현태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신현태는 그 말을 들으면서 여전히 자신의 경험을 부정하려 애썼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게까지 수혁을 사랑하지는 않아서, 뭔가 다른 말들이 튀어나왔다.
우선 장덕수가 그랬다.
“음. 근데…… 폐에 있는 문제를 배제할 수 있나? 그럴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냐.”
감염내과 교수이면서 동시에 신현태의 수제자 아닌가.
당연하게도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 하는 말도 합리적이었다.
“음, 그래. 급성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을 배제해서는 안 돼.”
정말 그랬는지, 옆에 있던 홍창기도 끼어들었다.
장덕수와는 달리 신현태의 눈치를 조금 보면서였다.
홍창기는 신현태가 수혁을 얼마나 기이할 정도로 아끼는지 너무도 잘 알아서 그랬다.
“아니, 일단 수혁이 말을.”
아니나 다를까 신현태는 주책바가지처럼 끼어들려 했다.
하지만 수혁이 더 빨랐다.
“급성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이 왜 발생하죠?”
게다가 그 말이 질문이어서, 장덕수와 홍창기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다.
왜 발생하지? 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딱히 어려운 질문은 아니라, 곧 답이 나왔다.
어디까지나 교수 레벨에서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는 얘긴데, 여기는 뭐 다들 교수였으니 별 의미 없는 얘기일 터였다.
“간단하게 말하면 면역 반응 때문이지.”
“삼출액이 발생하면서 흉강에 물이 차는 거지.”
“네, 기전이 그렇죠. 그럼 원인은?”
“원인?”
“네.”
수혁은 당연하다는 듯 들려오는 말에 또 질문으로 응수했다.
이번에도 역시 교수 레벨에서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지만, 다른 교수들이 싹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잠시 망설이는 구간이 있었다.
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홍창기였다.
“제일 흔한 건 패혈증이지.”
“뭐……. 그렇지. 패혈증이지.”
“네. 폐렴은 어때요?”
“페렴은…… 생각보다 드물지.”
“음, 그래. 그렇게까지 흔하진 않지.”
“네, 꼭 폐렴이 선행되어야 할 필요는 없죠.”
수혁은 방금 패혈증이 가장 흔한 원인이라는 것을 제 입으로 말한 홍창기와 거기에 열렬한 동의를 보낸 장덕수를 돌아보았다.
나머지 세 명, 그러니까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으로 대변되는 이수혁 빠돌이는 벌써 두근거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새끼 빌드업 한 거 같은데?’
‘그러니까 수혁이 말 좀 들어 보라니까.’
‘그분이 오셨을 때의 수혁이가 제일 멋있다니까.’
구체적인 생각이야 다들 다르긴 했지만 요약하면 얘네들 발라 줘, 뭐 이 정도라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수혁은 그런 기대를 저버릴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럼 다시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말라리아는 일종의 패혈증 상태일까요, 아닐까요.”
“어…….”
“그…… 음.”
그와 동시에 홍창기와 장덕수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말라리아가 패혈증 상태라고? 처음엔 의구심은 물론이거니와 반발심마저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말라리아라는 병 자체가 원충을 피로 흩뿌리면서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 아닌가.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호발 하는 말라리아는 삼일열 말라리아, 즉 Plasmodium vivax라는 원충이 일으키는 병이라지만 얘도 원리는 같았다.
“그렇게…… 볼 수도 있네.”
“네, 그렇다면 말라리아도 충분히 급성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어……. 그런가? 하지만 아직 그런 보고는…….”
“보고가 없었다고 해서 아예 없었다고 보는 건 무리예요. 놓쳤을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으음.”
홍창기는 놓쳤을 거라 단언하는 수혁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를 다 듣고 보니 확실히 말라리아가 그럴싸해 보이지 않나.
하지만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절대 의심하지 못했을 터였다.
애초에 대한민국은 말라리아에 대해 그리 커다란 걱정을 하지 않는 나라라서 그랬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말라리아가 진짜 끔찍한 질환인 건 맞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맥을 못 추지 않나.
게다가 대한민국은 의료 시스템이 워낙에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이기도 해서, 일반적인 삼일열 말라리아로는 치명적인 경과를 밟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아무리 초기에 의심을 하지 못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역으로 치명적인 경과를 밟으니까…… 아예 말라리아라는 의심도 하지 못했다, 이건가.’
홍창기뿐 아니라 장덕수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수혁의 환자 프레젠테이션은 언제 들어도 설득력이 있었다.
대단하지 않나.
얘기를 듣기 전에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은커녕, 아예 리스트에도 없던 질환명인 말라리아가 이제 둘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검사를 해 보죠.”
“어떤 검사를 우선적으로 해 볼까? 아니, 다 긁자.”
“네. 다 긁어야죠. 하지만 지금 의미가 있을 만한 검사는…….”
“음, 뭔데?”
말라리아를 진단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우선 가장 흔히 쓰이는 혈액도말 검사 그리고 아크리딘 오렌지 염색, ELISA(enzyme-linked Immunosorbent assay, 효소면역측정법)는 말라리아 원충의 단백질 항원을 이용하여 대량의 시료를 검사할 때 사용하는 혈청학적 검사, 말라리아 원충의 MSP와 CSP 유전자 등을 특이 프라이머로 보는 PCR 즉 유전자 검사였다.
이 중에서 혈청학 검사는 검사 시간이 1주일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조기 진단에는 합당하지 않았다.
[다른 검사들도 제한이 있죠. 지금 패혈증을 일으켜 급성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을 일으켰다는 의심을 하고 있으니…….]
‘역시 도말검사겠지.’
[네, 그렇습니다.]
생각을 정리한 수혁은 그대로 말을 이었다.
“말초혈액도말검사입니다.”
“이건 위음성이 나올 수도 있잖아?”
장덕수가 그 말을 듣자마자 답했다.
그의 말대로 말초혈액도말검사는 설령 환자가 말라리아에 감염이 되어 있다고 해도, 원충이 혈액에서 검출이 안 되면 마치 걸리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합리적인 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수혁과 바루다는 이 점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다.
“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환자가 말라리아에 의한 ARDS(성인 호흡곤란 증후군)가 생겼을 거라 의심하고 있죠. 그렇다면 말초혈액도말검사에서 원충이 반드시 검출이 되어야 할 겁니다.”
“아……. 패혈증을 의심하고 있으니까?”
“네.”
“그건…… 그것도 그렇네. 하지만 바이박스면 삼일열인데…… 날짜가…… 날짜가 안 맞잖아? 이 환자 응급실로 온 날 열이 났으니까 삼일열이라고 하면 내일이 피크야.”
“네, 맞아요. 그래서 오늘 해 보고 안 나오면 내일 해 보려고 합니다.”
“아.”
이미 다 인지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질문이었기에 답변은 빈틈이 단 하나도 없었다.
장덕수는 이번에도 설득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 많이 배우네.’
이현종은 그런 장덕수를 보며 낄낄 웃었고, 신현태는 조금 안쓰러워했다.
‘미안하다. 내가 부족해서……. 근데 수혁이가 너무 천재라 어쩔 수가 없다. 디씨로 치면 우리는 로빈이야. 수혁이는 수퍼맨이고.’
잘 가르치지 못했단 생각에서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뒤로 가면 갈수록 그냥 수혁에 대한 찬사만 이어졌다.
“역시 오셨다니까 그러네. 빨리 검사해 보죠.”
조태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 타령이었다.
그게 뭐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일단 검사를 하기로 했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고 검사 중에 딱히 침습적인 검사가 없기도 해서 굳이 보호자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푹.
바로 피를 뽑았다.
숙련된 간호사는 환자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늘을 딱 찌르자마자 피를 뽑아냈다.
“어, 김 교수.”
그사이 신현태는 진단검사의학과에 전화를 걸었다.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우리 수혁이 말이 맞지? 내가 틀렸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가 미쳐 버렸구나, 드디어’ 싶을 정도로 간절했다.
세상에 나름 원장까지 해 먹을 정도로 명성도 있고, 또 실력도 있는 사람인데 내가 틀리길 바라다니.
과연 자신이 신씨가 아니라 이씨길 바랐던 사람다웠다.
아버지가 이 말 들으면 당장 회초리라도 들고 뛰어오겠지만, 어쩐단 말인가.
마음이 자꾸 기우는 것을.
“아, 원장님. 어쩐 일이셔요?”
“어어. 지금 인턴 샘이 검체 들고 뛰어갈 거거든? 가, 가!”
신현태는 상대 교수가 전화를 받자마자, 이제 막 헥헥 거리며 뛰어온 인턴의 등을 툭툭 쳐 댔다.
다른 사람이 재촉을 해도 인턴은 달려야 하는 사람 아닌가.
병원 밑바닥이라는 말이 제일 어울리는 직급이라 그런데, 지금은 원장이 치고 있었다.
“네, 네!”
해서 인턴은 숨 돌릴 새도 없이 최선을 다해 뛰었다.
병동에 다다다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였는데, 그걸 수화기 너머에서 듣고 있던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도 덩달아 긴장했다.
‘대체 뭔 검체가 오길래 이렇게 원장님이?’
최근 수혁에 대한 애정과 이현종 때문에 점점 명성이 흐릿해져 가고 있기는 해도, 신현태는 여전히 인품으로 유명한 사람 아닌가.
근데 인턴을 무슨 말 채찍질하듯 재촉해서 보내?
보통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
“무, 무슨 검사길래.”
“도말검사 해야 해.”
“아, 네네. 어떤 걸 의심하나요.”
“말라리아.”
“말라리아요?”
해서 긴장 빡 하고 듣고 있었는데, 말라리아라는 말을 듣자마자 김이 팍 새는 느낌이었다.
그래, 말라리아라는 병도 중요한 병이긴 했다.
오죽 힘든 병이면 우리 조상님들이 학질이라고 불렀을까?
하지만 솔직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누가 막 죽어 나갈 만한 병은 아니지 않나.
근데 이렇게 호들갑이라니.
‘이수혁 교수나 이현종 원장님 연관된 일인가?’
김 교수는 언젠가 들었던 루머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오면 바로 보면 되는 거죠?”
어딘지 평온해져 버린 말투를 쓰면서였다.
신현태로서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용인해 주기로 했다.
‘얘는 눈앞에서 수혁이가 하는 말을 못 들었잖아.’
원장이라서, 어른이라서는 아니었다.
김 교수는 자기가 어떤 이유로 용서받았다는 것도 모른 채, 잠시 후 달려온 인턴에게서 검체를 넘겨받았다.
“이제 보겠습니다.”
“어. 보이면 바로 말해.”
“네. 음. 음.”
“뭐야, 뭔데.”
“네. 뭐고 자시고…… 말라리아입니다. 원충 드글드글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