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화 뭐니 이게 (3)
안대훈만 있었다면 아무리 부축을 받는다고 해 봐야 속도가 나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 옆에는 우하윤이 있었다.
“타시죠.”
“이걸……?”
수혁의 팬클럽 회장, 부회장으로 시작해 이제 수혁교 대주교, 주교가 된 안대훈과 우하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로의 팔을 교차해 인간 가마를 만든 채였다.
“뭐야?”
“갑질 하나 보다…….”
“어쩜……. 병원이 군대보다 더한다더니.”
둘이야 어떤 숭고한 뜻에서 벌인 짓이겠지만 남들이 볼 때는 그저 이상한 짓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세상에 어떤 놈들이 자발적으로 남 앞에서 무릎을 꿇겠는가.
“이, 이러지는 말자.”
“이게 빨라요.”
“나도 알지. 아는데…….”
“그럼 망설이지 마시고. 저희 이거 하려고 요새 스쿼트도 합니다.”
“이걸……?”
예전의 수혁이라면 질색 팔색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에게 영향을 끊임없이 받는 걸 보면 알겠지만, 남들에게 쉽게 물드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인간관계도 극단적으로 좁지 않나.
맨날 보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에 안대훈, 우하윤 정도가 다였다.
어떻게 된 게 다섯 명 모두 딱히 정상이라거나 보통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아예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수혁도 그렇게 되었다.
‘교주님 망설이신다.’
‘그러게요. 드디어 우리의 진심이…….’
하여간 매일같이 수혁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혁의 모든 행동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둘은 즉시 수혁의 의중이 애매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실 거절 당할 게 뻔하다 생각하고 저지른 짓인데 이렇게 나올 줄이야.
둘은 감동의 눈물이 나오려는 걸 애써 부여잡고는 수혁의 발아래로 억지로 자신들의 팔을 들이밀었다.
“하나, 둘, 셋.”
“웃차.”
그리곤 수혁을 가마 태워 중환자실로 향했다.
“와……. 미친. 저거 뭐야?”
“새파랗게 어린놈이 저 저.”
“나이도 지긋하신 양반인 거 같은데……. 웃고는 있어도 어? 속으론 무슨 생각 하겠어.”
지나는 이들 중 보호자나 환자들, 그러니까 수혁이나 안대훈을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이들은 전부 수군거렸다.
아니, 손가락질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안대훈이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외모만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질 않지 않나.
그에 비해 수혁은 교수치고 지나치게 어린 나이인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동안이기까지 했다.
“저 미친놈들. 기어코…….”
“이수혁 교수님 저런 거 진짜 싫어하던데…….”
“점잖으신 분인데 교주님, 교주님 하더라고.”
그에 반해 의료진은 안대훈과 우하윤을 비난했다.
둘이 수혁교에 심취해 있다는 건 딱히 비밀도 아니었기에 그랬다.
물론 다들 그런 반응만 보이는 건 아니었다.
이제 수혁교의 교세가 꽤 융성해지고 있어서였다.
“주교님 계 탔네.”
“나도 어깨 튼튼한데…….”
지나는 이들 중 몇몇은 아쉽다는 얼굴로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다.
하여간 수혁은 둘의 도움에 힘입어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중환자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이구, 충신들 나셨네.”
이현종은 요란하게 등장한 수혁을 보며 눈을 흘겼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감히 수혁을 목말 태우다시피 한 둘에게 눈을 흘겼다.
‘이따 현태한테 해 보자고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아, 아빠. 환자는요?”
“응, 이쪽. 저기에 있어.”
“으음…….”
수혁은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가마에서 내린 후 바로 안으로 들어섰다.
태화의 중환자실이 다른 병원들에 비하면 제법 광활한 편이긴 했으나 그래 봐야 몇 베드 되진 않아서 금세 환자를 찾아갈 수 있었다.
‘흐음……. 상태가 별론데.’
[오래 앓은 거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응. 피부색이나…… 근육의 양이 거의 일반인과 차이가 없어.’
[네, 아주 급격하게 진행한 질환인 거 같군요.]
환자에 대한 첫인상은 대개 이러했다.
원래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대부분의 감염 질환이 이런 경과를 밟는다고 하지만, 나이를 고려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노인들이 감기 잘못 앓았다가 패혈증이나 폐렴으로 사망하는 건 그 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 노화로 인해 몸이 망가져 있기 때문 아닌가.
“음.”
“사진이 이래. 어제 응급실로 왔다는데…….”
“잉? 이게 오늘 찍은 거예요?”
“응, 그건 아침. 이게 아까 11시쯤?”
“진행이 뭐 이리 빨라요? 사이토카인 폭풍인가?”
“아마 그런 거 같은데……. 왜 휘몰아쳤는지는 알 수가 없어.”
“그러게요. 음.”
사이토카인 폭풍은 어떤 자극에 의해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너무 과하게 반응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의미했다.
보통 나이 든 사람에게서보다는 젊은 사람에게서 훨씬 흔하게 나타났는데, 이게 상대적으로 훨씬 흔하다는 거지, 절대적으로 보면 극히 드문 상황이었다.
이유는 어지간히 흔한 감염병에 대해서는 이미 인류가 어느 정도 적응한 지 오래라 쓸데없이 과민 반응하는 경우가 없어서였다.
한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건 이제 최악도 상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역학조사는 진행 중이에요?”
거기까지 순식간에 생각이 미친 수혁은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이현종은 과연 내 새끼라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회의하러 사라져 가던 신현태가 돌연 역학조사를 지시했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응, 감염내과가 괜히 감염내과가 아니더라. 환자 해외 방문 이력이랑 같이 지내는 가족들은 괜찮은지 여부 바로 확인 들어갔어.”
“혹시 뭐 알아낸 건 없고요?”
“뭐 딱히…… 해외 방문한 적 없더라고. 신혼여행 간 게 마지막이래. 적어도 8, 9년은 됐을 테니 그건 관계없겠지.”
“그렇군요. 가족들은요?”
“가족들도 그래.”
옛날 대한민국 같았으면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해외 방문한 이력이 없었다면 그냥 해외에서 발원하는 질환은 아닐 거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글로벌 시대라는 말을 늘 실감할 수 있지 않나.
현재 대한민국 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잘 살펴보면, 과장 조금만 보태서 열에 하나는 외국인이었다.
“접촉력은 없고요?”
“그거까지는 아직 몰라. 우리 병원 차원에서 하는 거라.”
“잉? 질본에서는 안 해요?”
“아직 딱히 진단된 게 없잖아. 걔네가 뭐 먼저 한 적이 있나. 하여간 가족들은 증상도 없어. 그래도 혹시 몰라서 최대한 사회생활 줄이고, 조금이라도 증상 생기면 연락 달라고 했어.”
“그렇군요. 음.”
대개의 과민 반응은 익숙지 않은 병원체와 접촉했을 때 생기는 법이었다.
해서 수혁은 일단 외국에서 주로 유행하는 질환을 의심했는데, 그건 아닐 가능성이 커 보이는 상황이었다.
“일단 환자를 좀 볼게요.”
“응, 혹시 모르니까 장갑 껴. 우리야 버린 몸인데 너는 혹시 모르니까.”
“네, 아빠.”
이현종은 아까 수혁에게 건넸던 마스크가 제대로 끼워져 있나를 확인하고는 장갑도 건네주었다.
사실 나이를 고려해 보면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은 이현종일 텐데, 그래도 자식 걱정이 우선인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눈물 나는 자식 사랑이라 할 수 있었다.
‘으음.’
[눈 뒤집어 까 보세요.]
‘조금 순화해서 말해 줄래?’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요?]
‘뒤집어…… 아니다, 됐다.’
환자는 삽관이 된 상태였기에 당연하게도 약도 맞고 있었다.
의식이 없다는 얘긴데, 눈을 보기 위해선 눈꺼풀을 뒤집어 까야만 했다.
‘음.’
[빈혈, 황달기 모두 없습니다.]
‘그렇네. 정상이네.’
장갑 낀 손으로 살짝 뒤집어 보니 그저 깨끗하기만 했다.
입안도 조금 건조해 보일 뿐 그 외에 심각한 발적은 없었다.
목에 만져지는 덩이도 없었다.
꾸루룩.
다만 청진 시에는 호흡음이 죄 지저분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딱히 중요한 소견은 아니었다.
폐 소리가 지저분할 거라는 건 딱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어서 그랬다.
‘복부 청진은 별거 없구만.’
[만져 보죠.]
‘눈으로 봐서는 딱히 이상해 보이는 게 없는데.’
[그렇다고 검진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그래.’
수혁은 실망한 얼굴로, 그러나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환자의 배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 촉진을 해 보았다.
그러다 우측 상복부에 손을 댔을 때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음?’
[좀 더 깊숙이 찔러 보세요.]
‘어어. 내 착각 아니지?’
[네. 조금 커져 있습니다.]
‘으음. 왜 갑자기 복부가 이럴까?’
[알 수 없습니다만…… 확실히 간의 팽대가 있습니다.]
간의 종대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조금 커져 있다는 건데, 다른 사람의 간과 비교해서는 아니었다.
간은 체격에 따라 크기가 다른 장기라서 그랬다.
다만 갈비뼈에서 이토록 멀리 벗어난 곳에서조차 쉬이 만져질 정도라면 얘기가 좀 달랐다.
‘이게 지금 생긴 걸까?’
[알 수 없습니다. 문진이 필요한데, 환자가 자고 있군요.]
‘깨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닌데……. 일단 차트를 볼까?’
[아, 마침 장덕수 교수 환자군요. 이 교수는 꼼꼼하죠.]
‘응, 잘됐네.’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기록에 집착해야만 했다.
환자에 대한 정보는 전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쓰는 게 좋았다.
어디서 어떤 힌트를 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과 의사들이 의사 중에서도 여기에 진심인 편이었는데, 장덕수는 그중에서도 심했다.
신현태가 이현종처럼 천재가 아니라면 꼼꼼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던 때가 있어서였다.
‘직업은 주부…… 거주 형태는 주택이고……. 흠. 이런 걸로는 알기가 어려운데.’
[기저질환도 없고 음주나 흡연도 안 하네요.]
‘주 3회 운동을 하네. 조깅이긴 한데, 이 정도면 훌륭하게 관리하는 편인데.’
[그래서 그랬나? 배에 딱히 군살이 없었습니다.]
‘으음…….’
환자는 지극히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과 비교하더라도 상위 5% 안에 들 거 같았다.
대학 병원 의사들은 입이나 털 줄 알지, 실제로 자신들이 떠들어 대는 건강 상식의 십 분지 일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 아닌가.
맨날 시간 없다는 핑계만 댈 뿐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건강한 사람이다 보니 딱히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멍한 얼굴로 있다 보니 옆에 있던 이현종이 끼어들었다.
“너도 모르겠어?”
“네.”
“전혀?”
“간 종대가 조금 있기는 한데…….”
“그래? 그건 몰랐는데.”
“심하지는 않아요. 다만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있어요.”
“왜?”
“환자 생활 습관을 보면 딱히 간이 평상시에 문제가 있었을 거 같진 않아서요.”
“으음……. 그래? 간 수치는 정상이었는데.”
“그게 변하면 유레카가 되는 거죠.”
“그렇네.”
“문제는 변하더라도…….”
수혁은 말끝을 흐렸다.
이현종은 굳이 뒷말을 듣지 않아도 뭔 말을 하려는지 알 거 같았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는 간 수치가 뛰어도 뭐 때문인지는 알기가 어렵지. 진짜 괴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