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35화 (535/1,303)

535화 뭐니 이게 (2)

홍창기는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계속해서 들여다보았다.

하나는 어제 응급실에서 찍은 거, 다른 하나는 오늘 아침에 병동에서 찍은 거, 마지막 하나는 방금 중환자실에서 찍은 포터블 엑스레이 사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뭔가 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니면 같은 사람 사진은 아닌갑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불과 어제오늘 사이에 벌어진 거라 이거지?’

홍창기는 솔직히 양심 있으면 중간에 며칠씩 텀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안 되지 않나.

이렇게까지 빠르게 진행하는 폐렴은 극히 드물었다.

아니, 솔직히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홍 교수. 어떤 거 같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태화 병원의 실세인 기조실장이자, 중환자 의학의 선구자이고 동시에 호흡기내과 교수인 홍창기에게 신현태가 딱히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물었다.

‘모르는 거 눈치챘구나.’

홍창기는 앞에 열거한 수많은 직위가 무색하지 않게 바로 신현태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물론 이현종처럼 모른다고 해서 놀릴 만한 사람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신현태도 원장이지 않나.

심지어 끗발 날리는 중이었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꽤 오래갈 거 같았다.

수혁의 지지자인데, 수혁이 요새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라서 더 그랬다.

그렇다면 이럴 때 너무 무능해 보이는 건 좀 곤란했다.

‘아주 짚이는 게 없지는 않지.’

다행히 홍창기는 말할 게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일단…… 일반적인 감염은 아닙니다.”

“아니, 그건 나도 알지.”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휘몰아치는 상황인 거 같아요.”

“응?”

“사이토카인 폭풍…… 아니겠습니까? 보통 감염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진 않으니까요.”

“오.”

애초에 성인 호흡곤란 증후군의 가장 흔한 기전이 이것이지 않나.

신현태도 알고는 있었을 텐데, 당장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었을 터였다.

감염내과에서 많이 보는 형태의 질환군도 아니긴 하고.

“응, 그래. 그렇네. 원인이 뭐건 간에 지금 이 악화는…….”

“네. 원인을 찾아서 교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기는 한데 일단 급한 치료는 이걸 좀 가라앉히는 거죠.”

“그럼 조심스럽게 스테로이드를 써 볼까?”

“네. 면역이 정상이었으니…… 주의하면서 써 보는 게 좋겠습니다.”

“좋아, 좋아. 우리 홍 교수. 협진 내길 잘했네.”

“하하, 저야 뭐 맨날 보는 게 폐니까요.”

덕분에 홍창기는 면을 세울 수 있어 좋았다.

‘휴. 원장님 앞에서 그나마…….’

그래서 허허 웃고 있는데,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감히 높으신 분들 얘기하는데 누군가 하고 보니 이현종이었다.

“이거 사이토카인 폭풍 의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

방금 전까지 훈훈해질락 말락 했던 분위기에 찬물을 딱 끼얹으면서였다.

‘후배였으면 쳤다, 진짜.’

홍창기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애써 참았다.

신현태 원장이 존대하는 상대 아닌가.

딱히 그래서 어려운 것만도 아니었다.

이현종은 뭐가 되었건 태화 의료원 내과 의국이 배출한 사람 중 최고 스타였다.

수혁이 가파르게 따라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이현종이 우위에 있었다.

“네네. 그럴 수 있죠.”

“이거 뭐 스테로이드만 쓴다고 좋아지는 거 맞어? 첫날 왔을 때도 여기 봐 봐. 폐렴이 있잖아.”

“네…….”

“지금 사진 확 안 좋아진 거야, 뭐……. 과도한 면역 반응으로 물 차고 그래서인 거 같지만……. 그렇다고 이 폐렴 그냥 두면 죽을 거 같은데?”

“맞습니다.”

“그럼 원인을 찾아야지.”

“네.”

게다가 이현종은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학적으로 보면 구구절절 다 옳은 말들이었다.

확실히 이 환자는 감염 원인을 밝혀야 살릴 수 있었다.

지금 얘기가 나온 치료는 정말이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는데?”

“음……. 아직 컬처가 안 나와서요.”

“컬처가 안 나왔다고 아무것도 몰라? 엑스레이의 패턴하고……. 어? 이렇게 급격하게 ARDS로 빠질 수 있는 거 정도는 추릴 수 있잖아?”

“음…….”

이현종의 말에 자극된 다른 교수 셋, 그러니까 장덕수, 신현태, 홍창기 모두 다시 한번 엑스레이를 째려보았다.

이현종이 방금 던진 화두를 곱씹으면서였다.

‘그래……. 검사 없던 시절에도 환자 잘만 보던 게 우리 내과야!’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반은 구라였다.

검사가 없던 시절에도 환자를 잘 보긴 했지만, 그만큼 많이 놓치기도 했으니까.

물론 의미 없는 시도는 아니었다.

추론은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늘 중요한 과정이었다.

특히 직접 뭘 보고 진단 내릴 수 있는 경우가 다른 과보다 극단적으로 드문 내과에서는 그랬다.

“이게 이상하네.”

“뭐가?”

이현종의 자극이 도움이 되기는 했는지, 홍창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운을 뗐다.

아까 영 모르겠다는 얼굴과는 확실히 달라 보이는 표정을 하고서였다.

하여간 이 자리에서는 폐렴에 관한 가장 전문가 아닌가.

이현종이 제아무리 월드 스타라고 해 봐야 심장 전문이지 않나.

수혁처럼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게 아닌 이상, 고도로 발달해 버린 현대 의학에서 분과 전문의는 감히 절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뭐…….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운데요. 여기 어제 왔을 때 엑스레이 보면…… 확실히 폐렴이 있기는 있어요. 고열을 일으킬 정도인가라고 하면 그건 좀…… 아니긴 한데. 하여간 있기는 있죠.”

“네, 저도 이때는 폐렴은 그냥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홍창기의 말에 장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렴도 발열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되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발열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래서 불명열에 무게를 두고 입원을 시켰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확 진행을 해 버렸으니, 폐렴이 주된 문제였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긴 했지만.

하여간 지금도 어제 검사 결과만 두고 보면 같은 결정을 내릴 거 같았다.

“네, 가벼워요. 근데 잘 봐요. 특징이 세균성 폐렴에 가깝단 말이죠.”

“아……. 그렇네. 음. 우측에만 있는데…….”

“근데 이런식의 사이토카인 폭풍을 일으키는 건 대개 바이러스성 폐렴입니다. 뭔가 좀 이상해요.”

“흐음……. 그렇네. 이상하네.”

홍창기의 말에 장덕수가 턱 밑을 긁었다.

잠자코 둘의 말을 듣고 있던 신현태나 이현종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현종은 신현태나 나머지와는 달리 조금 불만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두를 던졌고 뭔가 돌아오긴 했다.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이 환자의 경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결과물이 나온 건 아니었다.

“역시 드문 케이스겠는데…….”

“바이러스성 폐렴에서 급격한 ARDS로 진행했던 케이스를 뒤져볼까요?”

“그게 좀 더 효과적이겠습니다.”

“흐음……. 그럼 일단 흩어질까?”

“네. 아무튼, 중환자실에서 보고 있고, 스테로이드도 들어가고 하면 한시름 놓을 수는 있겠죠. 다만…… 여기서 더 빨리 진행해 버리면 그때는 정말 큰 문제가 되는데…….”

“그거까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

홍창기의 말을 신현태가 가로막았다.

이상적으로는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게 맞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의사들 뜻대로만 된단 말인가.

사람의 몸이란 우주처럼 베일에 싸인 부분이 너무 많아서, 여전히 무슨 병인지조차 모르고 죽어 가는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진단이 되었다 해도 치료 방법이 없어 속절없이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때문에 경험 많은 의사가 되어 간다는 건 동시에 어느 정도 환자에 대해 포기하는 법도 배워 간다는 뜻이 되었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었고, 이 자리에 있는 네 명의 의사는 모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라 단박에 신현태의 말을 이해했다.

“그래……. 그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죠.”

“그래.”

“그럼 뭐 새로운 거 있으면 연락 줘요.”

“어, 나는 또 회의가 있어서.”

해서 넷은 곧장 할 일을 하기 위해 헤어질 수 있었다.

신현태는 일단 회의가 또 있어서 거기로 향했다.

“어디 가요, 형은?”

“나? 나는 잠깐.”

“아니, 오늘 회의 과장 회읜데?”

“어어, 잠깐만.”

“이 양반이 또 튀어?”

“환자 생각도 안 하니, 너는?”

이현종도 그 회의에 들어가야 했으나 이현종은 하루에 회의를 두 개나 들어갈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었다.

핑계만 찾고 있던 참이었는데 딱 어려운 환자가 떴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신현태도 이현종이 회의를 두 개 연속으로 들어올 거란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어서 그냥 몇 번 구시렁거리는 것을 끝으로 멀어져 갔다.

반면 홍창기는 중환자 의학의 선도자답게 일단 중환자실에 남아 다른 환자를 보았다.

장덕수는 외래를 향해 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수님, 그럼 잠시만 좀.”

“어어, 외래는 가야지.”

홍창기에게 부탁을 한 다음이었다.

이현종은 그렇게 셋이 각기 일터로 흩어지는 것을 보다가, 다시 환자를 돌아보았다.

약이 들어가서 그런가 아니면 삽관이 돼서 그런가 하여간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 보였다.

동시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보니 영락없는 중환자로 보이기도 했다.

아까 들어 보니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는 엄마라던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역시 수혁이를 불러야겠어.’

홍창기도 신현태도 장덕수도 모두 태화 의료원이 자랑하는 인재들이긴 했다.

셋이 머리를 맞대면 뭐라도 되기는 할 터였다.

거기에 이현종까지 있다?

게임 끝 수준이었다.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어, 수혁아.”

“네, 아빠.”

비밀 병기 수혁이 있지 않나.

실마리가 보이는 상황이라면야 그냥 두겠는데, 지금은 그저 한번 고민해 보자 수준이지 않나.

이럴 때면 수혁을 부르는 게 나았다.

“중환자실로 좀 와 봐.”

“응? 협진 없었는데?”

“어, 근데 하나 있어. 아까 회의 갔다가 신현태가 후다닥 뛰길래 뭐 있구나 싶어서 따라왔거든. 그랬더니만 어려운 환자가 하나 있네.”

“아……. 알겠어요. 가야죠.”

어려운 환자.

수혁은 그 단어 하나에 들뜨기 시작한 기분이 황당하게 느껴졌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몸이 되어 버린 걸까?

스산한 의문이 스쳐 갈 때쯤 바루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환자일까요?]

수혁만큼이나 들뜬 목소리였다.

예전 같았으면 미친놈이란 생각만 들었을 텐데.

지금의 수혁은 버린 지 한참 된 몸이었다.

‘그러게. 어려운 환자라고 대놓고 말하는 거 보면…….’

[중환자실이라지 않습니까? 시간이 별로 없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떠들 시간도 없어요.]

‘아, 그렇지. 그래, 빨리 가자.’

[네. 달려요.]

‘달리는 건 무린데.’

[안대훈 있지 않습니까. 부축하라고 하죠.]

심지어 이른 점심을 먹고 있던 참이었는데도 밥 생각이 싹 달아날 지경이었다.

진짜 안대훈에게 부축하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려 보니, 녀석도 이미 준비를 마치고 서 있었다.

“가실까요? 교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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