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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530화 (530/1,303)

530화 이렇게까지 나와? (5)

신현태와 이현종 그리고 이수혁 모두 하루 이틀 된 사이가 아니지 않나.

이현종의 말만 딱 듣고 본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 정도는 알아차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좋아, 그럼 애초에 스카우트 제의한 것처럼 하자 이거지?’

‘그래, 내가 판 깔 테니까 자연스레 입 털어.’

‘저는 박국진 교수님 장점에 대해 말할게요.’

해서 셋은 정말 잠깐, 바로 마주하고 있는 박국진은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짧은 순간에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계획을 딱 세워서 2층으로 향했다.

박국진은 미리 잡아 둔 자리를 가리키고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허허 웃었다.

“이거 두 분만 오시는 줄 알고……. 저를 이렇게까지 생각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수혁 교수 미안해요.”

“아냐, 아냐. 수혁이 거 지금 사 오면 되지.”

“아.”

“뭐 해?”

원래 의도는 여기서 제일 어린 놈이 이수혁인데 오늘 걸 몰라서 아무것도 안 샀으니, 먹고 싶으면 가서 사 먹으란 뜻이었는데 어찌 된 게 이현종의 태도가 이상했다.

‘나보고 다시 가서 사라는 건가?’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물론 이제 몸담고 있던 병원에서는 인수분해 당해서 쫓겨나게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학회에서 위치도 있고 그렇지 않은가.

‘하긴 이현종 교수님이 아들 사랑이 지극하다고 했지.’

그래, 이건 아마 이현종 교수의 실수일 거라 생각하면서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신현태는 감히 네가 수혁이 거를 안 샀냐는 얼굴로, 정말이지 지엄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계단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박국진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 뭐라 했겠지만, 지금은 둘이 하여간 여기까지 와서 고마운 상황이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해서 박국진은 수혁에게 메뉴까지 물은 채 아래로 향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역시 이현종, 신현태가 수혁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단 생각만 들겠지만 둘도 나름 큰 병원에서 잔뼈가 굵은 교수들이지 않나.

나름 노회한 면이 있다 이 얘기였다.

“일단 박국진이 스카우트하는 건 찬성이야?”

“네. 교수회의 거쳐야 하기는 할 텐데……. 박국진 정도 커리어면 거물이죠. 설득할 자신 있어요.”

“그럼 연봉은?”

“잘려서 오는 거니까……. 그냥 칠성 정도로 맞춰 주면 될 거 같아요.”

“그거 얼마냐고 묻고 그대로 준다고 해? 약간 모양 빠지잖아?”

“음……. 그럼 우리 정교수 대우로 하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뭐라 할 확률은?”

“없지 않아요? 어차피 박국진 교수 심장 쪽인데……. 형이 단도리 하면 되잖아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

이현종과 신현태는 박국진이 내려간 사이, 대화의 디테일한 면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이 양반들이 만만치가 않네요.]

‘그러니까. 맨날 헤헤 웃어서 몰랐네.’

바루다와 수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제법 감탄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둘 다 엄청 대단한 사람이 맞는데 하고 가까이서 지내다 보니 이런 모습을 아예 잊고 있었던 탓이었다.

“어, 오네.”

“오케이. 수혁아 너는 너무 끼어들 필요 없고……. 그냥 박국진 교수 소문이 좋다 뭐 이런 얘기만 해. 실제로 학회 내 평가 괜찮은 사람이니까.”

“네.”

수혁까지 해서 셋은 박국진 교수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시치미를 뚝 뗐다.

박국진이야 의심할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또 셋 다 연기가 꽤 좋기도 해서 아무 의심도 하지 못한 채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민망하단 얼굴을 한 채였다.

“어휴……. 이거참. 다 알고 오셨으니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디 가서 얘기할까 싶었는데…….”

조금은 회한에 찬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당연히 그럴 터였다.

이건 수혁보다는 이현종이나 신현태가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둘 다 태화에 몸담은 시간이 길지 않나.

그냥 몸만 담고 있던 게 아니라, 정말이지 청춘을 다 갈아서 병원에 충성을 다한 둘이었다.

각기 방식이야 좀 달랐을지 몰라도 하여간 그랬다.

근데 그 병원이 뒤통수를 쳐?

지금 박국진처럼 쓴웃음이나마 짓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 그 참……. 사람들이 너무하네.”

“대체 뭐가 계기가 된 거야? 우리야 자네한테 관심이 많기는 했는데……. 그 정도까지 기밀은 모르겠더라고.”

그렇다 보니 둘은 연기라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박국진은 자신도 모르게 남아 있던 일말의 경계심마저 풀어 버리고 대화에 임했다.

“말하자면 긴데……. 시작은 뭐 오래됐죠. 저랑 원장단이랑 삐걱댄 지는…….”

평소의 박국진이었다면 아니, 오늘만 아니었다면 이런 얘기까지는 안 했을 터였다.

술 마신 것도 아닌데 왜 쓸데없이 병원의 치부를 함부로 드러낸단 말인가.

막말로 이 둘이 오기는 했으나 말만 오가고 계약서에 도장은 안 찍힐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박국진은 그저 내부 고발자가 될 뿐이고, 칠성에서는 절대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아……. 그래, 뭐. 인사부장 하다가 그만두기도 했잖아.”

“하필 내 제자 데려가고 관뒀니. 그 전에 관두지.”

“아, 형은 좀.”

신현태는 어려운 얘기 꺼내려는 박국진에게 또 뭐라고 하는 이현종을 말렸다.

다행히 박국진은 이미 털어놓을 작정이었던지라, 이현종이 뭐라 하든 말든 딱히 영향을 받진 않았다.

“그거 말고도 몇몇 부딪힌 게 있어요. 그중에서 제일 그랬던 건.”

박국진은 의외로 이현종이 아니라 수혁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좀 어려워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는데 그가 말을 이을 때까지는 그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박국진이 수혁을 어려워할 만한 일은 없어서였다.

“바루다입니다.”

“풉.”

그런데 갑자기 바루다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수혁은 입에 머금고 있던 요거트 스무디를 푸 하고 뱉었다.

[아, 아깝게.]

‘야, 너 이름이 나왔는데 안 놀라고 배겨?’

[그래도 요거트 스무디는 선 넘었죠.]

다행인지 뭔지 많이 물고 있진 않았어서 멀리 튀지는 않았다.

신현태와 이현종 또한 놀란 얼굴이 되어 휴지로 테이블을 닦았다.

박국진은 그런 게 당연하다는 듯 잠자코 바라보았다.

“바루다?”

“우리가 개발 중이던?”

이현종과 신현태는 그런 박국진에게 되물었다.

타이밍이 너무 급작스러워서였다.

갑자기 바루다라니?

모두 잊고 있던 이름인데, 왜 칠성에 있는 박국진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네, 그 바루다요.”

“어……. 칠성에서도 따라 만들고 있었나?”

“아, 네. 그것도 그렇긴 했죠. 원래 칠성이 태화에서 하는 거 많이 따라 해서 크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런데……. 바루다도 그랬는 줄은 몰랐네. 근데 그건 병원 차원에서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아? 우리나 칠성이나 모든 계열사가 전자와 후자로 나뉘는데 병원은 그중에서도 서자잖아.”

신현태의 말에 박국진은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확실히 좋은 사람이라 그런가 생각이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의사라면 이게 정상이지.’

지금 칠성의 원장단들이 이상한 거 아니겠는가.

의사라면 사람 살리는 건 최우선으로 둬야 하는데 어찌 중상모략에 빠져서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단 말인가.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어디 가서 말씀하실 만한 내용도 아니라……. 그냥 여기서만 듣고 넘기셔요. 지금은 그래야 합니다.”

“어, 어어.”

“얘기해 봐.”

“저도 듣고 있습니다.”

워낙에 박국진의 말투가 진중했기에 셋은 저도 모르게 박국진을 향해 머리를 모았다.

박국진은 그렇게 모인 머리들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군가 볼까 봐 경계까지 해 가면서였다.

“바루다가 처음 시연 보였을 때 기억하시나요?”

“기억하지.”

“그때 센세이션 했지.”

“으음.”

이현종과 신현태는 뿌듯해했고, 수혁은 갑자기 껄껄 웃기 시작한 바루다 때문에 애매한 소리만 내었다.

애초에 이들의 반응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 박국진은 개의치 않았다.

“네, 태화에서도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칠성에서는 완전 위기라고 인식했어요. 태화도 비슷한 계획이 있을 텐데, 칠성도 빨리 국내 최고 자리를 선점하고 칠성 화재를 통한 병원 진료 보험 체계를 확립하고자 하거든요. 근데 바루다가 제대로 개발이 되면 물 건너가겠다 싶었던 거죠.”

“으음.”

“저는 그때 이미 인사부장 일로 원장단하고 사이가 틀어졌어서 회의에 한 번도 들어가진 못했어요. 사실 들어갔던 사람 자체가 거의 없기는 합니다.”

“회의? 대책 회의까지 했다고?”

“네. 안국태랑 지금 원장님은 확실히 들어갔고…… 칠성 전자 측 사람들도 끼어 있던 거 같아요. 장소도 병원이 아니었는데……. 저도 이게 계속 궁금해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다녀서 이만큼이나마 아는 거지, 그땐 회의 자체를 몰랐어요.”

“으음…….”

이현종과 신현태 그리고 수혁 모두 한 번씩 눈을 맞추었다.

바루다에 대한 대책 회의를 하는 것 정도는 이상하긴 해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 내부 인사들 아무도 모르게 한다?

이건 이상했다.

“그런데 회의가 열렸을 거라 추정하는 날짜 바로 뒤에 바루다가 터졌더라고요.”

“어?”

“뭐야, 그럼. 칠성에서?”

“아니, 뭐 이건 그냥 시기가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태화 측에서 후에 발표하기로 바루다에는 결함이 없었다고 했죠?”

“그랬지.”

“그거 정확한 내용입니까?”

“태화 전자 측으로부터 들은 내용이야. 아무것도 없다고 했어. 뭐 우리한테까지 숨긴 거라면 어쩔 수 없겠는데……. 하여간 기기 결함이 있었다고 해도 그만한 폭발력으로 터지는 건 있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지. 아무리 그래도 누가 일부러 그랬으리라고는 의심하지 못했었는데…….”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칠성 병원이 있는 쪽을 노려봤다.

드르륵.

그러다 소음이 있어서 고개를 돌려 보니 이현종이 벌써 얼굴이 벌게진 채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이 우리 수혁이 다리를!”

“어어, 형.”

“넌 왜 그러고 있어? 화도 안 나냐?”

“정황상 그럴 수도 있다지, 그랬다는 게 아니잖아.”

“박국진 교수 얼굴 보니까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래 봐야 다 심증이야. 물증이 없잖아. 칠성이야, 칠성. 저기 어떤지 몰라?”

“우린 태화야!”

“정확히 말하면 태화의 조각이지. 가서 형이 누구 얼굴이라도 쳐 봐. 당장 구속되지.”

“아오.”

이현종은 신현태가 만류한 뒤로도 길길이 날뛰다가, 수혁이 아빠 소리를 하고 난 후에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물론 수혁이라고 해서 속이 시끄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루다가 난리가 났다.

[역시 우리 창조주들이 기계를 허투루 만들었을 리가 없죠! 그게 제일 이상했습니다!]

‘아니, 인마……. 너 옛날에는 지금처럼 우수하지 않았거든. 뭔 실수를 했을지 어떻게 알아? 네가 말했잖아. 내 감각기를 이용해서 지금처럼 발전한 거라고.’

[그렇다고 터지게 만들었을까요? 태화 전자는 세계 최고입니다.]

‘그…….’

[칠성을 어떻게든 엿을 먹여야겠어요. 괘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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