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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523화 (523/1,303)

523화 내가 심장 전문이야 (4)

이현종은 그런 조태진을 붙잡았다.

“미친놈이.”

욕을 한 사발 해 주면서였다.

누구도 심하단 생각을 하진 않았다.

솔직히 좀 너무한 건 조태진이었기에 그랬다.

의사가 병원에서만큼은 환자만 생각해야 하는데 잿밥에만 관심을 두어서 되겠는가.

“아, 왜요.”

“아 왜요? 환자 보라고 불렀는데 아 왜요?”

“무슨 환잔데요. 딱 보니까 심장인데.”

그러나 조태진은 애써 달려왔는데 수혁이 안 보인다는 사실에 정신이 좀 돌아 버린 상황이었다.

감히 전 원장인 이현종에게 틱틱 댈 지경이었다.

이현종은 그런 조태진을 보며 대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단 얼굴이 되었다.

“저기, 조 교수님. 왜, 왜 그래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초에 이현종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못한 흉부외과 교수마저 바늘방석에 오른 느낌이 들었다.

‘미쳤나.’

진짜 미쳤나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직속 상관에게 개길 수가 있는가.

아무리 내과가 칼잡이가 아니라 외과계에 비하면 콩가루라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었다.

“왜 그러긴요. 무슨 환잔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조태진은 오늘 하루만큼은 삐뚤어지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삐딱한 답만 했다.

이현종은 이따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뭐가 어찌 되었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토의 아닌가.

게다가 저놈이 저런 모습을 계속 보여 준다면, 흉부외과 앞에서 체면이 이만저만 박살 나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 얘기하면 정신 차리겠지.’

어찌 되었건 간에 이놈도 의사 아닌가.

그것도 대학 병원 의사였다.

“이 환자 PCL이야.”

“PCL?”

아니나 다를까, 딱 병명만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조태진의 얼굴이 달라졌다.

PCL, 즉 Primary cardiac lymphoma(원발성 심장 림프종)는 너무도 희귀한 질환이어서 그랬다.

조태진은 혈액종양내과 의사로 이제 10년도 넘게 살아왔음에도 제대로 본 일이 없을 지경이었다.

“정말요?”

“응. 생긴 게 딱 이상해서 초음파 보고 추론했지. 그거 말고는 가능성이 없어.”

“어……. 허……. 그럼 수술도 해야 할 정도예요?”

“응, 이거 봐. 이게 환자 초음파야.”

“아이고……. 심장이 이게. 음. 벽을 뚫었구나.”

“그래. 근데 그래서 수술 범위를 완전 절제는 안 돼.”

“그렇죠. 테이블 데스 하겠는데.”

방금까지 이수혁 없다고 투덜대던 놈이 맞나 싶게, 실로 혈액종양내과 의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흉부외과 교수는 이 새끼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찌 되었건 간에 제대로 된 대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참이라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수술 전 검사는 괜찮대요. 그래서 수술하려고 하는데……. 절제 범위가 애매해서요.”

“음……. 항암 치료할 거 고려하면……. 정말 딱 증상 없어질 정도로만 잘라야겠는데요? 어차피 이거 뭐 수술로 완치 꾀할 수 있는 병은 아니니까요.”

“그래요? 제 판단에는 이 정도인데.”

“아……. 음. 괜찮을 겁니다. 근데 문제는 심장이라 수술하고 바로 항암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아……. 다시 자라겠구나.”

“네, 그걸 고려해서 절제 범위를 정해야 합니다.”

“이거 어려운데.”

흉부외과 교수가 낭패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원래 심장 수술이 다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건 절제 범위 선정부터 수술 후 치료까지 하나하나 다 난관이었다.

아니, 진단이 제일 어려웠을 텐데 그건 이현종이 넘어 준 참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넘겨주는데, 환자 살려야지.’

의사 된 도리이기도 하거니와 흉부외과 의사로서는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거의 떠먹여다 준 거 아닌가.

근데 못 살려?

그럼 이현종이 말하는 것처럼 흉부외과는 심장 내과 밑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 거 같았다.

설마하니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싶기도 했으나, 이현종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터였다.

원래 교수들이 다 자기 과가 최고라는 부심을 갖고 산다지만, 이현종은 자기 과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라 그랬다.

“다학제 요청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끙끙대다간 사고 칠 거 같았다.

해서 머리를 좀 모으기로 했다.

“다학제?”

그때 이현종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흉부외과 교수를 바라보았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는데, 그러라고 지은 표정이었으니 오해는 아니었다.

“네. 다학제요. 영상의학과랑 핵의학과도 모으죠. 그사이에 찍을 수 있으면 PET CT도 찍고요.”

“PET CT가 그렇게 금방 되나? 우리 병원 요새 환자 많아서…….”

“지금 시간이면 얼추 될걸요. 핵의학과에 부탁하면…….”

“퇴근할 텐데.”

“그러니까, 아무튼, 제가 전화해 보겠습니다.”

흉부외과 교수는 이현종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으나, 이미 환자 치료에 대한 키가 넘어온 이상 감정에만 신경 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믿는 구석도 있었다.

핵의학과 교수는 절대 흉부외과 교수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어, 박 교수.”

“응, 웬일이에요?”

외래 보다가 쓰러진 것을 살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제때 수술하지 않았다면 죽었을 터였다.

세상에 외래 보다가 갑자기 대동맥박리라니?

별일이 다 있다 싶었다.

게다가 핵의학과 교수는 객관적인 기준에서 봐도 몸이 퍽 좋은 편이어서 더했다.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아이고, 뭐든지요.”

생명의 은인이다 보니 그때부터 핵의학과 교수는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PET CT도 안 찍어 줄 리가 있겠는가.

물론 찍는 건 교수가 직접 찍진 않겠지만.

안 되는 일도 교수가 진심으로 나서면 대개는 되게 되는 법이었다.

“환자 한 분 계신데……. 좀 급해서요. 심장에 림포마가 생겼네.”

“네? 그럴 수가 있어요?”

“네. 아주 드문데 가능은 해요. 그래서 PET CT를 찍어야 되는데…… 수술도 급해요. 심장이다 보니까 벌써 증상이 있어서요.”

“아아, 알겠습니다.”

원래 PET CT는 그렇게 응급으로 찍는 검사가 아니었다.

애초에 암이라는 게 응급으로 뭘 해야 하는 경우가 적어서 더했다.

하지만 예외라는 말이 대체 왜 있겠나.

이런 상황이 늘 있어서 그랬다.

갑상선 암 중에서도 미분화 암은 응급이라 칭할 만하지 않던가.

심장 안에 생긴 암이라면 그보다 더할 수도 있었다.

“그럼 보낼까요?”

“네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 나오면 바로 다학제 하고 싶은데 그것도 가능할까요? 미안해요. 가능하면 오늘 하려고.”

“아이고, 네네. 환자 살려야죠. 알겠습니다. 회의실로 오세요.”

“그래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생명의 은인이신데 당연하죠.”

예상대로 핵의학과 교수는 넙죽 부탁을 받아 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현종은 조금 뚱한 얼굴이 되었다.

‘응급으로 치면 우리도 만만치 않게 해결해 주는데 왜 나한텐 안 그러지?’

배은망덕한 놈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무례가 허용되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드르륵.

하여간 환자는 곧 핵의학과로 이송되었다.

그사이 조태진과 이현종 그리고 흉부외과 교수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다학제에 올 교수들을 불러 모았다.

그중에서 이현종은 다소 열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그래도 깽판을 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있으니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도 그렇게라도 해서 집도의가 안정을 되찾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는가.

‘수술 조지면 안 되지.’

자신도 수술까지는 아니지만, 시술을 하는 사람이라 잘 알았다.

누구보다 자기 확신이 있어야만 실수를 줄일 수 있었다.

다른 과여도 실수가 용납이 안 될 텐데, 심장을 만지는 의사들이지 않나.

티끌 같은 확률이라도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일단 해 두는 것이 좋았다.

“다행히 전이는 없습니다.”

얼마 후 간이 다학제 컨퍼런스를 위해 이현종, 조태진에 더불어 흉부외과 교수와 핵의학과 그리고 영상의학과 교수들이 모였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방금 검사를 시행한 핵의학과 교수였는데 그가 띄운 영상을 보니 과연 전이는 없었다.

어떻게 아느냐고 하면 원래 PET CT라는 게 전이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검사여서 그랬다.

당을 많이 소모하는 곳이 노랗게 빛나게 보이는 영상인데, 암은 다 빨리 자라는 조직이니만큼 노랗게 빛나게 된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었다.

물론 심장도 원래 노랗게 빛나는 곳이라 다소 헷갈리는 상황이었으나, 핵의학과 교수도 교수 자리를 고스톱 해서 딴 게 아닌지라 정확하게 판독해 주었다.

“경계선을 보시면 대량 4cm가량 되는 종양입니다. 심장을 느리게 하지 못하고 찍어서 추측에 불과하기에 자세한 사항은 수술장에서 확인해야만 합니다.”

몇 가지 제한점도 있기는 했지만 하여간 다른 이들에 비하면 정확한 편이었다.

“CT에서도 비슷한 소견입니다. 심장에 박동 때문에 경계가 불명확해 보이는 종양이 있고 그 외에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영상의학과에서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때 흉부외과에서 절제 범위는 그럼 어떻게 할까 하는 질문을 던졌고, 모두들 조용해졌다.

심장 절제 범위를 결정하는 건 너무 부담이 되어서 그랬다.

아무리 영상이나 핵의학과 교수라 해도 그랬다.

이럴 땐 아무리 회의를 오래 해 봐야 결론은 하나였다.

“그럼 이렇게 하지.”

해서 이현종이 하나하나 지목해서 물은 후 종합해 주었다.

“일단 절반가량 절제하는 것으로 하되, 정확한 사항은 들어가서 정하는 거로. 어때?”

다시 말하면 흉부외과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사실 어떻게 자르라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말했다 해도 들어가서 봤을 때 상황이 다르면 집도의 멋대로 해야 하지 않은가.

이현종이 한 일은 그걸 명시화해 준 것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좀 나았을 텐데, 하필 이현종이라 살짝 기분이 나빠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학제까지 열어 준 마당에 더 뭘 요구할 수는 없어서, 흉부외과 교수는 터덜터덜 수술실로 향했다.

환자에게 따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아까 다학제 컨퍼런스 때 따로 보호자까지 불러다 얘기를 한 까닭이었다.

“쫄지 말고. 나도 별일 없으면 들어가 줄 테니까.”

“아니……. 그건 좀.”

“심장이잖아. 내 조언이 아쉬울 수도 있을걸?”

그런 흉부외과 의사의 뒤를 따른 건 의외로 이현종과 조태진이었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항암치료 효과를 가늠해 봐야 하고요……. 또 동결 절편 결과에 따라 절제 범위를 조금 달리 생각해야 할 수도 있어요.”

둘 다 필요에 의해서였다.

흉부외과 교수는 개인적으로 조태진만 들어왔으면 했지만, 듣고 보니 또 이현종의 조언이 천금 같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상대는 이현종, 그러니까 세계 최고의 심장내과 의사이지 않나.

애초에 이 환자를 진단해 낸 것도 이현종이었다.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절대 생각지 못했으리라.

“알겠습니다. 대신 제가 중요한 거 할 때는 너무 시끄럽게 하시면 안 됩니다.”

“어유, 내가 무슨 실습생인가? 낄 때 안 낄 때 모르고 나대게 하하. 괜한 걱정이야.”

“네네. 저도 그렇습니다. 하하. 걱정 붙들어 매세요.”

이상하게 걱정하지 말라는데 걱정이 더 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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