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518화 (518/1,303)

518화 객혈 (4)

생각이 정리된 수혁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전조 증상도 없이 일어난 일이다 보니 옆에 있던 이들은 모두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심지어 우하윤마저 그랬을 정도니, 옆에 있던 펠로우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 그거도 흔한 일이야. 경과 관찰해.’

해서 보고를 했더니 이번에도 매크로 같은 답변만 날아왔다.

적극 감시를 하라고 해 놓고서 이렇게 무성의한 반응이라니.

제아무리 원장이라고 하지만 선 넘는 거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하여간 수혁은 둘의 격한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눈은 환자를 정확히 보고 있지 않아서 정말이지 무서웠다.

‘오……. 오셨나.’

‘이게 괜찮은 거라고?’

하윤과 펠로우는 그런 수혁을 보면서 정확히 반대되는 생각을 했다.

하나는 안심했고 하나는 이보다 더할 수 없을 만큼 깊은 혼란에 빠졌다.

물론 수혁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까 했던 내시경과 CT 영상을 띄워 놓은 채 검사 결과와 환자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역시 아무리 봐도 지금까지 검사한 것에서는 이상이 없어.’

[네. 기관지 혈관의 문제는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전에 시행한 고주파 하 전극도자절제술이 원인이 되어서……. 그 열로 폐정맥이 좁아지면서 생겼을 가능성이 커.’

[네, 그렇습니다.]

폐정맥이 좁아진다는 건 그만큼 거기에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모세혈관 단위에서 터질 수도 있다는 얘기로 이어졌다.

아무리 조영제를 넣는다고 해도 모세혈관의 문제는 볼 수 없는 게 현실이지 않나.

기관지 내시경이야 직접 보는 것이니만큼 아무래도 그보다는 나을 수 있겠으나, 이 또한 내시경의 굵기 때문에 모세혈관 레벨에서의 출혈을 자세히 살피는 건 어려웠다.

즉 문제가 있어도 지금까지 한 검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되었다.

논리적으로 많이 가다듬어진 이론이라는 건데 문제는 대체 어떤 검사를 해야 이걸 검증할 수 있냐였다.

“하윤아.”

“네, 교주, 아니, 교수님!”

물론 수혁에게는 다 방법이 있었다.

해서 하윤을 부르자, 아까와는 달리 교인 모드가 되어 있던 하윤이 교주라는 말을 주워 넘기다 제대로 된 답을 했다.

수혁은 줄리어스 시저가 브루터스를 보던 표정이 되어 하윤이 너마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곤 말을 이었다.

이런 건 정정을 해 주면 오히려 남들의 오해를 더 받게 되는 법이었다.

“심장내과 콜 해서 transthoracic echocardiography(가슴 경유 심장 초음파 검사) 지금 가능할지 물어보자.”

“네? 지금 시간이…….”

“몇 시지?”

“정규 시간은 끝났습니다.”

“그래? 우리 저녁도 안 먹고 달렸어?”

“네.”

저녁 안 먹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긴 했다.

원래 대학 병원에 있다 보면 예사로 굶곤 했다.

오죽하면 직원 식당에서조차 9시까지는 밥을 준비해 놓겠는가.

그 때문에 인력을 따로 배치해야 되는 걸 생각해 보면, 얼마나 흔한 일인지 반대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수혁은 그것에 대해 놀라진 않았다.

‘내 집중력이 진짜 이제 경지에 올랐구나.’

다만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생각에 빠졌다는 것에 놀랄 따름이었다.

이것도 어느 정도 이현종을 닮아 가고 있는 것인데 놀랍게도 바루다가 딱히 태클을 걸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어느 정도 종용하고 있었다.

[네, 집중력은 천재의 영역에 있군요.]

바루다가 판단하기에 수혁은 어느 정도 나르시시즘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랬다.

이런 인간은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야 더 열심히 하는 법이었다.

그래야 더 빨리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지 않겠나.

다시 말하면 죄다 계산해서 말하는 거다 이건데, 수혁은 그때마다 진심으로 흥분하는 편이었다.

‘그렇지, 후후.’

해서 밥도 안 먹은 주제에 의욕이 충천해서 나섰다.

“그래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아……. 네, 아마도요?”

하윤도 그런 수혁을 보며 밥은 좀 먹이고 하시죠 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하윤 또한 태화의 일원이었고 동시에 내과 의사이기에 그랬다.

한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고 있고, 또 그 생명이 얼마간 자기 손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 이상 밥 생각을 우선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럼 해 보자.”

“네.”

해서 하윤은 곧 전화를 걸었다.

조마조마하는 마음이 들기는 했다.

왜냐면 정규 시간이 아닌데 정규 팀에 전화를 하는 건 선 넘는 행위여서 그랬다.

다 같이 바쁘기에 쉬는 시간만큼은 명확히 해 줘야 하는 곳이 바로 대학 병원인데 그걸 금하려 하고 있었다.

‘그래도 심장 쪽은 괜찮을 거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믿는 구석이 있기는 했다.

이현종이 비록 소속이 이제 통합진료센터로 바뀌긴 했지만, 지금 태화 의료원에 있는 심장 내과 사람들은 전원이 다 이현종의 제자였다.

그냥 명목상 같은 병원 사람이니 제자라고 합시다 라는 느낌이 아니라 진짜 제자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아들인 이수혁의 말발은 그 안에서 거의 최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네, 곽미경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물론 아직 여기가 누군지 밝히지 않았기에 반응은 영 까칠하기만 했다.

우하윤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킨 후, 말을 이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2년 차 우하윤입니다. 통합진료센터 이수혁 교수님 환자분 가슴 경유 심장 초음파 검사 의뢰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아.”

원래 노티 할 때 누구 교수 환자입니다 라고 밝히는 건 예의는 아니었다.

시니어 교수 환자인 경우 그냥 나이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있어서, 듣는 사람 기분이 한없이 나빠지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곽미경에게 이수혁은 조금 특별한 존재였다.

‘교수님 아드님이시네.’

일단 그 이현종의 아들이지 않나.

보통 대학 병원 교수가 너 내 밑에서 일하면 교수 시켜 줄게 라고 하는 건 거의 구라라고 보면 되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빈말이라고 해야 할까?

교수 자리라는 건 하늘이 내리는 것이기에 그런데, 이현종은 약속을 지켰다.

병원과 싸워 가면서, 이만한 사람이 다른 병원에 가면 태화의 막대한 손해가 될 거라고 핏대를 세워 가면서였다.

은혜를 갚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이 똑띠가 웬일이지?’

게다가 이수혁은 그저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천재이지 않나.

분하긴 하지만 곽미경으로서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전 세대 최고의 천재라는 이현종조차 나보다 낫다는 말을 습관처럼 할 정도의 천재였다.

궁금증이 확 일었다.

“나 지금 퇴근하던 길인데, 일단 돌아갈게요.”

“아, 죄송합니다.”

“아니, 그럴 거 없어요. 무슨 환잔데 그래요?”

“그…….”

생각해 보니 우하윤은 아직 전화하라고만 들었지, 왜 전화하라고 했는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해서 어버버 하고 있으려니 옆에 있던 수혁이 손을 내밀었다.

마치 구세주가 내 손을 잡아라 하는 느낌이었으나, 우하윤은 똑똑한 사람이었기에 이성을 부여잡과 전화기만 건네주었다.

“이수혁입니다. 이 환자 2년 전, 3년 전 심방세동에 대해 고주파 하 전극도자절제술을 시행 받았는데……. 그 때문에 아무래도 폐정맥 협착이 온 거 같습니다.”

“네? 어…….”

듣고 보니 가능한 얘기긴 했다.

하지만 두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었다.

아니, 검사도 없이, 그러니까 지금 의뢰받은 검사도 없이 단언할 수는 없는 현상이기도 했다.

“그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말하자면 긴데…… 이 환자 폐 실질에서 대량 출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저는 그 원인이 폐정맥 협착에 의한 폐 고혈압일 거라 추론하고 있습니다.”

“음.”

천재와의 대화가 늘 그러하듯 논리가 널뛰듯 했다.

하지만 다행히 곽미경 교수는 이현종에게 워낙에 다년간 시달려서 그런가 이런 면에 있어서 익숙한 편이었다.

“우선 알겠습니다. 갈게요.”

“네, 교수님. 그럼 초음파실로 갈까요?”

“네. TTE는 그냥 막 할 수는 없는 검사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직자한테는 제가 전화해 놓을 테니까, 그냥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아뇨, 우리 사이에.”

해서 곽미경은 가타부타 더 묻는 대신 유턴을 한 후, 액셀을 밟았다.

낮 시간에는 끝없는 환자 행렬로 인해 막히는 길이었으나 정규 시간이 끝난 다음이라 그런가 쭉쭉 밟는 대로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차를 급히 세우고 올라가 보니 이미 환자는 초음파실에서 준비를 마친 채 누워 있었다.

“삽관했네요?”

“네. 액티브 블리딩이 있어서요. 지금도 언제 또 터질지 모릅니다.”

“방향은 좌측이 의심되고요?”

“네. 그건 확실합니다.”

“알겠습니다. 흐음.”

빨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광경이었다.

지체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지 않나.

세상에 피가 기도에서 나는 환자에게 하는 심장 초음파라니.

이현종에게 수학한 만큼 정말 많은 경험을 쌓아 온 곽미경으로서도 해 본 적이 많지 않은 일이었다.

슥.

해서 서둘러 초음파 프로브를 휘둘렀다.

‘역시 제대로 배우셨네.’

[네. 술기를 잘하네요. 괜히 이현종이 후계자 격으로 키운 게 아닙니다.]

이현종은 전 세대 사람이다 보니, 그리고 또 의학과 결혼했다고 선언했을 만큼이나 병원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보니 심장 내과 전문의로서도 드물게 심혈관 중재 시술과 더불어 초음파 그리고 부정맥까지 전부 아우르는 사람이었다.

곽미경은 그중에서 초음파 쪽으로 들이 팠는데, 이현종에게 제대로 배운 데다가 이쪽으로 집중을 해서 그런지. 정말이지 신속 정확 그 자체였다.

“일단 좌심실 기능은 66%로 정상 범위에 있고요.”

“네. 우심방, 우심실은 어떻죠?”

심장의 좌심방 좌심실은 온몸으로 피를 보내는 곳이고, 우심방 우심실은 폐로 보내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폐 쪽은 어떻냐는 질문이었는데,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곽미경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천재는 달라도 다르구나. 이걸 어떻게 추론한 거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무튼, 확인한 결과는 답해 주어야 하지 않나.

바로 말을 해 주기로 했다.

“우심방, 우심실 차가 56mmHg예요. 폐 고혈압이 있어요. 이전 기록에는 없었다고 했으니 이번에 새로 생긴 거죠. 꽤 심한 편이고요. 이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계속 문제가 일어날 겁니다.”

“바로 스텐트라도 박아야 할까요? 원인은 협착일 텐데.”

“음.”

사실 곽미경이 확인한 것은 폐 고혈압이지, 정맥 협착 자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가 맞았다면 원인도 맞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네, 확신한다면 미룰 이유가 없죠. 응급으로 시행해도 좋겠습니다.”

“아빠가 잘하겠죠?”

“이현종 교수님이요? 당연히 최고죠. 근데…….”

“근데요?”

“환자 보고 계시는 거 같던데.”

“아……. 아까 응급실에서 사라졌지.”

괜히 사라지진 않았을 터였다.

한창 이기자 교수와 시작하던 무렵일 땐 연애하러 갔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이기자가 병원에서는 자제하라는 지엄한 명을 내린 후로는 그런 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걱정 마세요. 제자 부르면 되지. 제가 전화할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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