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화 정형외과도 (2)
정형외과 교수 류동진은 김선웅 교수의 기대 어린 눈을 받으며 영상을 띄웠다.
우선은 엑스레이였다.
“음.”
“으음.”
“어떻게 봐도 골절인데.”
“그렇지? 그래도 팔꿈치다 보니까, CT도 찍었다고.”
“아, 그래?”
“응. 뭐 인대라도 갈렸으면 어째.”
“하긴…… 그건 그래.”
관절은 우리 생각보다 더 복잡한 곳이었다.
운동선수들이 괜히 관절 부상을 제일 우려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워낙에 움직임에 관여하는 요소가 많아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음……. 이렇게 봐도 단순 골절이네.”
“응. 팔꿈치라 까다로워 보이긴 해도, 뭐……. 그렇게 복잡한 케이스는 아니었단 말이야.”
“그렇네. 수술은?”
“녹화했지.”
“잉?”
“아, 난 원래 다 따 놔. 언제 어떻게 쓸지 모르니까.”
수술 녹화라는 게 대학 병원급에서는 흔한 일이긴 했다.
자기 수술을 복기하는 차원에서도 유용했을뿐더러, 아주 잘 된 수술 같은 경우에는 편집해서 후학 양성에 쓰기도 좋았다.
문제가 있다면 제대로 된 녹화는 꽤 어렵다는 점이었다.
작정하고 찍는다면 모를까, 그냥 일상적으로 찍는 녹화는 뒤통수에 가리고 기구에 가려서 정작 수술 부위는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무릎도 그런데 그거보다 훨씬 작은 팔꿈치는 정도가 더했다.
“야, 넌 왜 이렇게 머리를 박고 수술하냐? 머리가 큰가?”
“네가 머리 크다는 얘기를 해? 원근감께서?”
“아, 실언했네.”
이번에도 그랬다.
보이는 게 별로 없어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해서 한마디를 했더니만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잊고 살았던 옛 별명까지 들었다.
늘 가까이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원근감이라고 불렸는데, 나이 마흔이 넘어서까지 그 별명을 듣게 될 줄이야.
“아, 보인다.”
김선웅 교수는 잠시 한숨을 쉬다가 이내 손가락질을 했다.
류동진이 머리를 치운 사이에 수술 부위가 보여서였다.
부러진 뼈가 아주 잘 고정이 되어 있었다.
사이에 낀 인대나 다른 조직도 없었다.
“흠.”
“잘 됐지?”
“본인이 그런 말을 할 정도는 되는 거 같은데?”
“그래, 잘 됐다니까?”
이만하면 어디 가서 이 수술 잘 됐다고 떠들어도 욕 먹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수술하고 잠깐 정도야 통증이 있을 수 있겠지만, 6개월가량 지속되는 건 이상한 일이란 뜻이었다.
“수술 후에 찍은 영상은 없어?”
“있지. 원래 루틴 하게는 안 찍는데……. 하도 아프다고 하니까 어째.”
류동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대고는 엑스레이를 띄웠다.
수술 전 영상이 아직 떠 있었기에 비교가 딱 되었다.
“음…….”
“이걸로는 이상이 전혀 보이지가 않아.”
“그렇네.”
“내가 그래서 처음에는 꾀병인가 했다니까. 근데…… 아냐. 아닌 거 같아.”
“어떻게 알아, 그걸?”
“그랬으면 나한테 소송을 걸건 뭔가 했겠지. 근데 올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그냥 안 아프게만 해 달래. 되게 점잖아. 아프다는 소리만 안 하시면 최고의 환자라니까.”
“흐음…….”
김선웅은 잠시 류동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대학 병원 교수들, 그중에서도 외과계 의사들이 그러하듯 원래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외모였다.
죽도록 고생을 하다 보면 다들 이렇게 되기 마련이었다.
정작 이 생각을 하고 있는 김선웅 교수도 어디 가면 60줄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놈이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믿을 리가 없지.’
왜 이렇게 늙어 보일까?
수술방에 햇볕이 들이 쬐는 것도 아닌데.
교수가 되는 과정에서부터 고생해서였다.
믿었던 윗사람이, 나만 믿고 펠로우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했던 사람이 정작 개처럼 일하고 나면 토사구팽하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친인척이나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친 놈에게 밀리는 사람도 너무 많았다.
갖은 고생을 해서 겨우 교수가 되고 나면 이제 라인 경쟁이었다.
그나마 태화 의료원은 그런 게 좀 적다고는 하지만,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외래 기록이야.”
“응. 그래.”
해서 김선웅은 류동진의 말마따나 환자의 통증이 진짜일 것이라 상정하고 기록을 살펴 나가기 시작했다.
환자의 증세 호소는 수술 직후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있었다.
“잉……. 두 달 후부터네?”
“응. 그 전에도 약간 아파하긴 했는데, 그거야 뭐. 수술 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수준의 통증이었지.”
“그런데 점점 심해진 거구나.”
“응. 아주 이상하다니까?”
“MRI 같은 건 안 찍어 봤냐?”
“뭐……. 고정 핀을 티타늄으로 했으니까, 가능했지. 안 찍을 이유도 없고……. 환자분이나 보호자분도 협조적이고.”
“그렇군. 어디 봐봐.”
MRI도 찍은 상태였는데, 그냥 봐서는 뭐가 문젠지 잘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유합 부위가 일반적인 뼈와 좀 달라 보이긴 했으나, 원래 뼈가 다시 붙을 땐 그럴 수 있지 않은가.
가뜩이나 이쪽 부위는 세부 전공이 아닌 김선웅으로서는 머릿속으로 하나도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표정이 꽤 노골적이었던지, 류동진은 한눈에 그런 김선웅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다.
“모르겠지?”
“어? 어.”
“에휴. 내가 나도 모르는 걸 너한테 보여 주면서 뭔 기대를 한 건지.”
“아니, 근데…… 음.”
“근데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김선웅이 운을 떼자, 류동진은 다시금 기대하는 얼굴이 되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최근 김선웅의 실적이 퍽 좋아서였다.
딴 게 아니라 수혁 수술해 주었던 것이 잭팟을 터뜨려서였다.
국내 환자들뿐 아니라, 몽골, 중국, 러시아 그리고 중동 부호들이 주로 찾아와 무릎 보는 의사가 정형외과 매출 탑을 찍을 지경이었다.
“어……. 있긴 있는데.”
“말해 봐. 너 엉뚱한 논문 좋아하잖아. 지금 하는 그 보조기 수술도 그거 하다가 완성한 거 아니냐?”
김선웅 교수가 해외에서 먼저 발표되었던 수술의 술기를 개선하고 발전시킨 덕이었다.
생각이 좀 유연하다는 뜻인데, 류동진은 김선웅의 바로 그러한 면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김선웅이 입에 담은 건 류동진의 바람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 이수혁 교수가 운영하는 통합진료센터. 거기 의뢰하는 건 어때?”
“어……? 통합진료센터?”
“너 설마 모르는 건 아니지?”
“알기야…… 알지.”
류동진은 긴가민가한 얼굴이었다.
의사들처럼 모래알같이 흩어진 집단도 드물지 않은가.
내과 쪽 일이라 생각했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되든 말든 류동진은 자기가 하는 일에나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심지어 병원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센터임에도 그랬다.
“이 새끼, 잘 모르는구만.”
“내과 센터를 내가 왜 알아야 해.”
“거기 내과만이 아니라 다른 과도 다 봐.”
“그거야 그냥 하는 소리고. 실제로는 내과 계열만 보는 거 아냐?”
“아니라던데?”
“아니라고?”
“어.”
“말이 되니.”
물론 정형외과 의사로서 자부심이 아무리 크다 해도 대학 병원에서 진짜 의사가 누구냐고 한다면 내과 의사를 뽑을 용의는 있었다.
바이털이 흔들릴 때면 누구나 내과 의사를 찾아야 하는 법이기에 그랬다.
하지만 정형외과 질환에 대해서도 그럴까?
아예 궤를 달리하는 질환군이었다.
적어도 류동진은 그렇게 믿었다.
“밑져야 본전이잖아. 어차피 너도 모른다며.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형외과 의사가 뼈에 대해서 내과에 묻는다고?”
“거기 둘이 보통 내과 의사냐? 천재지.”
“천재…… 천재는 맞지. 그래도 공부한 적이 있을까?”
“있더라. 특히 이수혁, 그 친구는 좀 달라.”
“네, 네가 수술 좀 해 줬다고 너무 편드는 거 아니고?”
“야, 내가 그런 사람이냐?”
“그런 사람이야, 너.”
“맞긴 해. 그래, 내가 편애하는 편이지. 근데 너도 편애하잖아. 내 조언 허투루 듣지 마라.”
“음.”
김선웅 교수는 자신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류동진을 보며 이현종을 떠올렸다.
‘정형외과 지금 협진 하나도 없는 거 알지? 하나는 꼭 보내.’
‘어떻게 보내요……. 저는 아직 모르는 게 없는데.’
‘와 이 새끼, 이거. 욕 나오게 건방지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보낼 만한 환자가 없다는 얘기죠.’
‘다른 애라도 보내라고.’
‘어떻게 설득을 해요.’
‘류동진 친하잖아. 편애하는 사람이니까, 조언한다고 해 봐.’
‘밑도 끝도 없이요?’
‘환자 물어보거나 고민하는 환자 있으면 하라고. 내가 무슨 미친놈이야?’
일정 부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지만,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또 그때는 편애한다는 말이 뭔 효과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넌 네가 얘기 꺼내 놓고 뭘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응? 아니, 뭐.”
“하여간……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이수혁 교수야 여기저기서 떠들어 대긴 하지. 이현종 교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 그렇지.”
“알았어, 내가 내 본다. 근데…… 환자 외래 환자라 입원해 있지는 않은데, 그래도 되나?”
“나야 모르지. 일단 의뢰나 내 봐. 알아서 하실걸?”
“그래.”
내내 회의적이던 류동진은 금세 협진 의뢰서를 작성하고는 센드 버튼을 눌렀다.
말만 저렇게 했지 속으로는 다 준비를 했던 모양이었다.
김선웅은 조금 놀릴 작정으로 빙글거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되게 잘 쓰네.”
“고진 선처 앙망합니다? 우리는 이게 루틴이지.”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하여간 이 환자 생각했더니 또 골 아파. 오늘 저녁에 시간 되냐? 되겠지, 뭐.”
“야, 이혼했다고 맨날 시간 되는 줄 알아?”
“응.”
“사실 돼. 어디 가게?”
“어디 가긴. 닭 튀는 데로 가자. 보드람.”
“아, 치킨을 시켰는데 호텔 음식이 왔네, 거기?”
“응.”
“고고.”
둘이 낄낄거리며, 마치 학생 때와 같은 모습으로 외투를 걸치는 동안 수혁은 의뢰서를 읽어 내려갔다.
‘60세 여자 지속되는 팔꿈치 통증이라.’
[수술 후 지속된다는 걸로 봐서는 수술로 인한 것도 고려를 해 봐야겠군요.]
‘수술은 잘 됐다고 쓰여 있는데?’
[원래 집도의가 다 그렇게 말하죠. 수술 망쳤다고 하는 집도의 본 적 있어요?]
‘없긴 해.’
생각해 보니까 그렇긴 했다.
외과계 의사 치고 수술 망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은 하나도 못 봤다.
이 사람도 으레 그렇듯 그냥 하는 말일까 싶어서 기록을 살폈는데, 빈말은 아닌 듯했다.
영상까지 첨부했다는 것부터가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뭐 보세요?”
잘하네 하면서 수술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누군가 다가왔다.
통합진료센터 사람은 아닐 터였다.
아까 다 해산시켰으니까.
아마 이 의뢰서도 좀만 늦었으면 보지 못했을 터였다.
어차피 일찍 집에 가 봐야 넷플릭스나 보다가 잘 거 뻔하니 뭉그적대다가 띵동 하는 소리에 달려온 참이었다.
“대훈이? 넌 안 가냐?”
“집에 가 봐야 뭐…….”
“아.”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알 거 같았다.
이 자식도 외로울 터였다.
그러니까 수멘이나 하고 다니지 않을까.
갑자기 동정심과 동질감이 든 수혁은 속으로 눈물을 훔치곤 옆자리를 권했다.
“치킨 먹을래?”
“좋죠.”
“이거 보면서.”
“더 좋죠. 정형외과예요?”
“어, 왜. 너도 알겠어?”
“아뇨. 근데 공부는 하고 있습니다.”
“여기…… 오려고?”
“제 일생일대의 목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