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83화 (483/1,303)

483화 정형외과도 (1)

“으하하하.”

센터에 앉아 있던 이현종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되게 기분이 좋나 보네.’

[오다가 우창윤 교수 만났다고 하지 않았나요? 놀렸을 겁니다.]

‘사실 걸리면 안 되는 거 아냐?’

[불법이라고 듣기는 했죠.]

‘뭐…… 설마 그걸 신고하진 못할 거 같긴 해.’

수혁은 만약 자신이 우창윤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해 보았다.

병원인 학회만큼 소문이 빠른 곳이 없는 만큼, 신고하는 즉시 전국에 있는 대학 병원 교수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될 터였다.

말하자면 우창윤 교수가 진단하지 못한 걸 단 하루 만에 태화 사람들이 가서 무단으로 진단했다는 걸 알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저에게 정세에 관해 묻는 건가요?]

‘아, 모르나.’

[저는 의료 목적 인공지능입니다.]

‘나보단 나을 때도 많잖아?’

[질문하면서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셨길 바랍니다.]

‘후.’

수혁은 바루다의 일침에 잠시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하여간 바루다보다는 나은 점이 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름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선 대표 교수보다 우리가 낫다는 게 확 드러나 버리잖아. 의료법 위반으로 걸기고 어려운 게 우리는 그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어.’

[음. 잘 모르는 얘기입니다.]

‘걍 들어, 그럼.’

[아까부터 듣고 있죠.]

‘후. 아무튼,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무조건 이득이다 이거지. 우창윤 교수님 성향도…… 쪽팔려서라도 말 못 할 거고. 하윤이도 껴 있고.’

[좋다는 얘기죠?]

‘응.’

[예이.]

‘후.’

수혁은 어째 호응을 받았는데도 기분이 나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루다의 표정과 태도를 보면 딱 이해가 갈 터였다.

그사이 이현종은 누군가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아까보다도 더 함박웃음을 지은 채였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교수님…….”

“너무 고마워?”

“하…….”

“어디 가서 말할 거야? 그럼 나도 같이 소문내 주고.”

“아뇨, 아닙니다. 그냥 그…….”

“왜왜.”

빙글거리는 모습이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얄미웠다.

아마 전화하고 있는 상대는 미칠 지경일 터였다.

실제로 그랬다.

우창윤 교수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머리카락을 움켜쥐었을 지경이었다.

머리 감을 때 외에는 절대 머리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야야. 자리 피하자.’

‘어……. 완전 빡친 듯?’

아선 내과 레지던트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물론 이현종은 더 날뛰었다.

“왜 그러는데에.”

“하……. 이제…… 여기 오지 마시라고요.”

“으응? 의뢰가 있으면 가야지. 근데 나도 가고 싶지는 않아.”

“네?”

“그냥 환자 보내. 그럼 깔끔하잖아. 왜 되지도 않을 환자를 굳이, 음. 끊었네.”

아선과 칠성이 곤조 부린답시고 환자 안 보내는 것에 열이 받아서였다.

이현종은 진심으로 환자를 위한다면 센터에 보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실제로 결과가 다르지 않은가.

센터에 온 환자들은 모두 제때 진단이 되었고,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

질환 자체가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도 왕왕 있기는 했으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혁아, 빵 먹자. 슈크림.”

이현종은 또 한 번 껄껄 웃고는 수혁을 불렀다.

“아, 그럴까요?”

어차피 오전 회진은 다 돈 참이었다.

외래도 없고.

환자는 다 정리됐다.

레지던트들이야 회진 돌면서 둘이 내준 숙제에 푹 빠져 정신이 없었지만, 원흉인 둘은 널럴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병원 빵집 슈크림은 맛있기로 소문난 빵이었다.

[음……. 딸기 슈 말하는 거죠?]

‘응. 딸기 슈.’

[그거 만든 사람은 상 받아야 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느 정도냐면, 슈 나오는 날은 따로 그거 때문에 병원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환자 보는 데 방해가 되기에 금지한 데다가, 밖에도 프랜차이즈가 생겨서 그렇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베이커리에 들어섰다.

“어, 안녕하세요.”

“원장님.”

“안녕하세요.”

여기저기서 인사가 쏟아졌다.

그중엔 센터장이란 호칭도 있었으나, 아무래도 원장이란 호칭이 더 많았다.

불문율처럼 보직을 한 번이라도 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했던 보직 중 가장 높은 보직으로 부르는 원칙이 있어서였다.

“센터장인데.”

정작 당사자인 이현종은 그런 걸 진짜 싫어했다.

허례허식이 싫기도 했거니와, 원장으로 있던 시절이 그리 좋지도 않아서였다.

됐을 땐 그래, 정치질 없이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거 같아 기분이 날아갈 거 같았지만.

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 별로였다.

의사가 환자를 봐야 하는데, 뭔 놈의 회의가 그리 많단 말인가.

‘그나마 막판에 이 녀석 밀어줄 수 있어서, 그건 좋았지.’

이현종은 수혁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울증에 걸렸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해서 수혁의 뒤통수를 한번 쓸어내려 주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와……. 저 부자는 어떻게 저렇게 사이가 좋냐?’

‘그러니까. 우리 아빠는 맨날 뒤통수 때리기만 하는데.’

‘꿀 떨어지는 거 봐.’

‘근데 나라도 이수혁 교수님 같은 아들 있으면 이쁘긴 할 거 같아.’

‘하긴……. 진짜 천재지. 내과 질환은 모르는 게 없을걸.’

‘그럴 거 같어. 다른 질환도 본다는데 그건 어떠냐?’

‘외과계는 몰라도 소아과, 신경과는 잘 본대.’

‘화……. 시벌, 미쳤네.’

이현종이야 이현종 자체로 슈퍼스타이지 않은가.

원장이 되기 전에도 순환기 내과 월드 스타였고, 원장도 막판에 이르러서는 나름 한 방을 보여 줘서 경영진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집단 감염 시 대응은 완벽하다는 말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수혁 또한 워낙에 유명한 사람이라 당연하다는 여기저기서 둘을 두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자리가…….”

“이 자식들은 병원 놀러 왔나. 왜 이렇게 자리가 없어.”

둘은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리부터 찾았다.

특히 이현종은 방금 자신에게 인사 날렸던 이들에게 타박하기도 했다.

일은 안 하고 왜 놀러 다니냐는 투였다.

상대는 그러는 댁은 왜 이 시간에 여기 왔냐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런 말을 하기엔 직위도 명성도 실력도 다 딸려서 입을 다물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수혁아, 자리 났다.”

“아, 네.”

보통은 이런 걸 자리가 났다고 하기보단 뺏었다고 하지 않나요.

수혁은 이제 굳이 숨기지 않고 바로 말했다.

그러자 이현종은 껄껄 웃었다.

“괜찮아.”

“뭐가요?”

“몰라.”

“아, 네.”

제대로 된 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이현종은 원래 의학적인 거 외에는 이런 인간이니까.

하여간 곧 주문한 슈와 커피가 나와서 둘은 음식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병원 빵에 오버하는 거 아니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태화 의료원의 베이커리는 호텔 태화에서 만드는 정말 제대로 된 빵이었다.

처음으로 호텔 밖으로 진출한 곳이 이 병원이니만큼 검증된 맛집이라고 보면 되었다.

“와.”

“맛있네.”

“미쳤네요, 진짜.”

“그러니까. 비싼 거 말고는 다 좋아. 역시 태화는 뭘 해도 잘한다니까.”

둘이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이, 병원의 또 다른 누군가는 고뇌에 빠져 있었다.

“하아.”

“왜.”

정형외과 연구실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한숨이 쉴 새 없이 새어 나왔다.

김선웅 교수는 방금 한숨을 내쉰 친구에게 물었다.

친한 사이이기도 하거니와, 옛 생각이 나서이기도 했다.

‘전에 이수혁 교수 수술한다고 깝치다가…… 이현종 원장님하고 신현태 원장님이 날마다 찾아와 지랄할 때 내가 저랬지.’

혹 너도 괜히 VIP 수술하겠다고 까불다가 된통 걸렸니, 뭐 이런 생각이 났다는 얘기였다.

“아니, 이게…… 환자 중에 좀 이상한 환자가 있어.”

“이상한 환자……? 진상 말하는 거야?”

김선웅 교수는 말하면서도 좀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진상이야 어디든 있기 마련 아닌가.

어디 식당 주인들 후기 들어 보면 기가 찰 지경이었다.

그런 것처럼 환자들 중에도 진상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그나마 태화는 그 정도가 훨씬 덜했다.

“응? 아니, 아니. 진상……. 처음에는 그런가 했는데 아닌 거 같아.”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가 아니면 더 갈 데가 없으니까.

명실공히 국내 제일이지 않은가.

칠성과 아선이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이 세 병원끼리의 전원은 드물었다.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뭔가 껄끄러워서였다.

대놓고 환자 보내라고 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 이현종뿐이었다.

“그래? 뭔데.”

“너는 하지라 모를 텐데, 말해도.”

“아니, 뭐 내가 답을 알려 주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전에 기억 안 나?”

“뭐.”

“나 그 내과 놈들한테 시달릴 때.”

“아……. 그때. 그때 네가 나한테 하도 하소연해서 나도 힘들었지.”

그럴 만하다 싶기는 했다.

이현종이 와서 한 30분 얘기하고 가면, 다음은 신현태가 갔다.

심지어 후배라 김선웅 대하기가 껄끄러울 게 뻔한 조태진도 이따금 와서 압박을 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미친놈들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래, 그때 내가 많이 도왔지.”

“응. 그냥 얘기나 해 봐. 털어놓는 게 도움이 된다니까.”

“알았어.”

김선웅 교수의 말에 주로 상지를 다루는 교수, 류동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형외과답게 키는 컸지만, 답지 않게 체격이 좋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메뚜기 같은 인상을 준다, 이 말이었는데 그래도 수술은 꽤 잘했다.

태화같이 큰 병원 외과 교수 중엔 정작 수술은 별로고 논문만 잘 쓰는 사람도 많은 법인데, 이 양반은 둘 다 잘했다.

“61세 여잔데.”

“골절?”

“어. 골절.”

“어딘데?”

60세 여자는 넘어지는 거 자체가 위험이었다.

여성 호르몬이 줄어들면서 남자에 비해 골절 위험이 크게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이어트라도 했던 적이 있다면, 그 위험이 더더욱 컸다.

해서 김선웅은 당연하다는 듯 골절이냐고 물었고, 류동진 또한 비슷한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팔꿈치.”

“어? 팔꿈치?”

“응. 일단 안 좋겠지.”

“안 좋지. 팔꿈치는……. 어우, 어렵지.”

그렇다면 위치가 문제인데, 팔꿈치라는 말에 김선웅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원래 관절 부위의 문제는 해결이 어려워서였다.

그나마 무릎은 관절 치환술이라도 나왔지, 팔꿈치는 그것도 어려웠다.

“진짜 어려웠는데……. 수술은 잘됐거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잘됐어. 다행히 뭐 끝에만 조각나긴 했지만……. 하여간.”

“근데 뭐가 문제야?”

“아프대.”

“아프다고? 그야…… 당연한 거 아냐? 수술하면 아프지.”

“지금 6개월 지났어.”

“어? 6개월이 지났는데, 아파? 그건 좀…….”

김선웅은 눈으로 말했다.

진상 아니냐고.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근데 아냐. 진짜 아파해. 심지어 운동 범위도 제한됐어.”

“사진은?”

“찍었지. 별문제 없어. 잘 붙었어. 근데 아프대.”

“흐음…….”

모르겠단 말에 김선웅은 저도 모르게 이수혁을 떠올렸다.

언젠가 봤던 그의 우수함은 도저히 잊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어서였다.

‘아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형외과적인 문제야. 게다가 수술이랑 연관된 걸 무슨…….’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사이 류동진은 노트북으로 환자 차트를 띄웠다.

“사진 볼래?”

“어, 어어.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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