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화 도와주세요, 교주님 (6)
우창윤 교수는 법이 규정하는 최대 속도로 병원에 도착했다.
끼이익.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주차에서 시간을 깨나 허비했을 테지만, 우창윤은 기조실장이라 그런 게 없었다.
아선 병원은 특히 병원 임원진, 그중에서도 고위 보직자들에 특혜를 제공하는 병원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지정 주차가 가능할뿐더러 위치도 좋았고, 너비도 넉넉했다.
덕분에 우창윤은 A7, 그러니까 대형 차량을 그리 어렵지 않게 주차하고 즉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연구실……? 아냐. 아냐. 뭔가…… 뭔가 불안해.’
원래는 일단 연구실로 가는 게 맞았다.
평교수일 때는 몰라도 기조실장이 되고 난 후로는 이런저런 알림이 많아서였다.
결재할 서류도 매일 쌓였고, 외부에서 보내오는 메일도 많았다.
워낙에 벌여 놓는 일이 많아서였다.
띵.
하지만 오늘은 병동으로 향했다.
느낌이 쌔했다.
아까 이현종이 으하하 거렸던 것도 그렇지만, 출입증이나 이런 것들의 위치가 어제 기억과 미세하게 어긋나 있어서였다.
태화 사람들이야 우창윤을 그저 수재 수준이라 폄하하지만, 우창윤 본인은 자신을 천재라 여기고 있었다.
그것도 불세출의 천재 수준으로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래서 쓸데없이 일상에서의 감을 예민하게 갈고 닦은 바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어, 그래요.”
우창윤은 출입증을 매만지며 병동에 내려섰다.
그리곤 묘하게 인사해 오는 병동 사람들의 얼굴이 밝다는 걸 눈치챘다.
이 정도야 뭐 흔한 일이니 그렇다 치고 넘어가도 좋았다.
일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니만큼 축하할 만한 일이 있을 수 있지 않겠나.
“어, 교수님?”
“응. 회진 준비됐어?”
“아……. 네. 7호실 환자분만 정리하면 됩니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온 탓에 레지던트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원래 불성실한 놈이었으면 여기서 뭐라고 하겠지만, 우창윤은 나름 열심히 하던 녀석임을 떠올렸다.
그래서 참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7호실 환자라는 말 또한 우창윤을 멈칫거리게 했다.
“7호실? 뭐 어제 또 이벤트 있었나?”
“네?”
우창윤의 말에 레지던트는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불손한 표정은 금세 숨겼지만, 천재를 자처하는 우창윤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왜 그러지?”
“아……. 네, 교수님. 그. 네.”
레지던트는 그런 우창윤의 질문에 여전히 당황한 채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러자 곧 7호실 환자의 의무 기록이 떴다.
그중에서도 경과 기록이었는데, 기록 일자가 어젯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놀랍게도 작성자는 우창윤이었다.
‘나 이 시간에 술 먹고 뻗었을 텐데?’
설마 환자에 대한 놀라운 애정과 집착으로 취한 채로 여길 왔나?
나란 녀석 정말 대단하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록에 다가갔다.
레지던트는 자연스레 자리를 비켜 주었다.
우창윤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꽤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 교수이기에 눈치 살피는 기술이 생겨서였다.
하여간 우창윤은 자리에 털썩 앉고는 정신없이 자신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기록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환자 고혈당이 경구 혈당 강하제는 물론 인슐린에도 잘 조절되지 않음. 심각한 당뇨라 판단하기에는 순간적인 인슐린 반응은 정상적으로 보임. 속효성 인슐리제제 인젝 시 나타나는 저혈당 에피소드가 이를 증명함.]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했다.
‘이건 내가 쓰는 기록 폼이 아닌데.’
대부분의 의사가 비슷한 투로 기록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면밀하게 살펴보면 개개인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었다.
특히 병원이 다른 경우엔 더욱 명확했다.
양식이나 약자에 대해서는 의대 때 배우지 않다 보니, 심지어 병원마다 쓰는 약자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아예 과 이름도 다르게 표기하기도 하니 우창윤이 수혁이 작성한 기록에 대해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설마하니 다른 병원 놈들이 여길 밤중에 처들어와서 진료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우렁 의사도 아니고,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란 말인가.
[체네 조직의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해 있거나, 췌장의 인슐린 분비능의 감소가 아닌 다른 원인을 감별하는 것이 좋겠음.]
근데 또 읽다 보니 자기가 했던 생각하고 비슷하긴 했다.
꿈결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당연한 일이긴 했다.
요새 다른 업무 할 때가 아니면 늘 7호실 환자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환자를 위해서이기도 했으나, 평생 당뇨를 보아온 사람으로서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다.
친한 정신과 의사가 평하기로는 나르시시즘이 있다고 들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우창윤은 자기 정도면 충분히 사랑스럽다 여겼으니까.
‘내가 썼나……? 술 취하면 이러나? 아닌데?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우창윤 교수는 아리까리 한 얼굴로 기록을 계속 읽었다.
[가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진단명은 부신의 종양이나, 복부 CT상 관찰된 것은 없음. 갑상샘 초음파에서도 음성 소견이었으며, 타 병원에서 촬영한 brain MRI에서도 뇌하수체 선종 관찰되지 않음.]
여기까지가 딱 우창윤 교수가 매번 고민하던 단락이었다.
그 또한 우수한 의사이니만큼 사고가 여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어졌으나, 여기서 딱 끊기기 일쑤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흉부 엑스레이도 매일 보았으나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영상에서도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한데 다음 기록을 보자, 눈빛이 와장창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모든 기록과 검사 결과를 리뷰 한 결과, 흉부 엑스레이에서 좌측 기관지 부분 음영이 종괴 가능성이 있어 보임. 기관지 유암종인 경우 이소성 ACTH 증후군을 아주 작은 크기에서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고려, 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Chest CT(Noncontrast) 시행함.]
아무리 술이 취했다고 해도, CT를 그냥 막 찍지는 않았을 터였다.
찍었다 하더라도 잊었을 리는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여간 찍은 CT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결과를 꾹 하고 눌렀다.
밤에 찍어서 그런지 아직 판독은 뜨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누군가 영상을 만졌는지 기관지 부위에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다.
‘이건 뭐여?’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여다보니 이미 해당 부위만 잘라다 경과 기록에 붙여 놓은 참이었다.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기록을 작성한 건 우창윤이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가 우창윤의 아이디로 기록을 작성한 것일 뿐이었다.
우 교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기록에 영상 사진을 잘라다 붙인 적이 없어서였다.
사실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몰랐다.
‘기관지…… 유암종…… 이거…… 이게 있어?’
경과 기록을 보니, 유암종에 합당한 소견이며 실제로 이소성 ACTH 증후군을 일으키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혈액, 소변 검사를 내겠다 쓰여 있었다.
처방을 보니 빈틈없이 처방이 주르륵 나가 있었다.
심지어 기관지 유암종에 대한 조직검사를 위해 흉부외과 측에 협진까지 나가 있었다.
너무도 사려 깊고 자연스러운 진단 경과였다.
‘이거 설마…….’
처음 보는 일은 아니었다.
우창윤은 이걸 벌써 몇 번이나 본 바 있었다.
처음은 태화 의료원 증례 발표회였다.
‘이수혁…….’
우창윤은 이제 아침에 마주쳤던 이현종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얄팍한 미소가 왜 튀어나왔을까.
그건 분명 우위에 있는 사람이나 지을 법한 미소였다.
최근 맹렬한 속도로 따라잡히고 있는 병원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미소란 얘기였다.
“이런 젠장.”
“어…….”
우창윤은 저도 모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 봐야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이었기에 모두가 욕설을 들었다.
“아, 아니.”
우창윤은 손을 휘저어 니들에게 한 게 아니란 것을 밝히고는 한창 데이 번에게 인계 중인 나이트 번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시니어 간호사는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마른침을 삼켰다.
의사와 간호사가 수평관계에 있는 건 맞지만, 우창윤이 그냥 의사는 아니지 않은가.
기조실장이란 직함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어제 이 인간 본 적 있어요?”
우창윤은 간호사의 걱정과는 달리 핸드폰을 내밀었다.
인상 좋은 할아버지 사진이 떠 있었는데, 이현종이었다.
태화에서 찍고 보정까지 한 거라 딱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우창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니어의 모습에 다른 사진도 보여 주었다.
이번엔 신현태였다.
“어…….”
“봤어요?”
“네. 어제…… 어제. 근데 태화 사람이에요? 여기 교수님인 줄 알았는데?”
“하, 이 미친.”
우창윤은 다시금 욕설을 내뱉고는 이수혁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시니어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어, 이분도 봤어요. 7호실 환자 보고 왔어요.”
“하……. 또 누구 본 사람 있어요? 이놈들이 진짜.”
“네. 얼핏 봤는데, 교수님 따님 같던데요?”
“응? 내 딸? 하윤이?”
“네.”
“어……?”
우창윤은 대체 어떻게 이놈들이 여기 왔을까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 환자에 대한 진단을 고민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고민했다.
냉정한 상태였다면 어렵지 않게 프락치를 잡아냈겠지만, 자기 딸이다 보니 모든 혐의에서 빗겨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니어 입에서 하윤의 이름이 나온 이상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내 딸이……?’
우창윤은 소문난 딸 바보였다.
그렇다 보니 딸에 대해 나쁜 생각을 하기 어려웠는데, 자연히 사고도 그런 쪽으로 흘렀다.
‘이 녀석이 아빠 도와주려고……. 그래도 이건 좀 선 넘었지, 하윤아…….’
그럼에도 쉽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 태화 놈들, 그것도 이현종, 신현태, 이수혁을 끌고 여길 오다니.
게다가 진단에 성공까지 하다니.
이렇게 되면 어디 쪽팔려서 고소라도 할 수 있겠나.
딸까지 얽혀 있으니 절대 불가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교수님, 이 사람들 그럼 무단 침입한 거예요?”
“어, 어 아니. 아니에요. 내가 요청했는데, 어젯밤에 왔을 줄은 몰…… 몰랐지.”
“아, 그렇구나. 어쩐지 당당하더라.”
“그래요?”
“네.”
당당하기까지 했다, 이거지.
개새끼들.
우창윤은 후 하고 심호흡을 하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뭐가 되었건 환자 진단명을 알게 되지 않았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 환자 살았어. 이거 몰랐으면…….’
ACTH에 대한 검사야 오늘 원래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이상하게 나왔다고 해서 바로 기관지 유암종을 진단하긴 어려웠을 터였다.
시행착오를 며칠 더 겪어야 했겠지.
그랬다간 환자도 안 좋아지고, 머리카락도 줄었을 게 뻔했다.
“7호실 가자.”
“네.”
해서 우창윤은 애써 위안 삼고 7호실 환자에게 갔다.
그리고 여태껏 환자를 봤던 것 중 최고로 당당하게 진단명을 밝히고, 앞으로의 계획까지 싹 설명하고 돌아왔다.
“아이고, 박사님, 역시…… 감사합니다.”
환자의 감사를 듣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았다.
씨익 미소까지 나왔다.
그때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이현종이 보낸 문자가 떠 있었다.
<만족하셨길 바라요, 태화의료원 통합진료센터장 이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