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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473화 (473/1,303)

473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있다 (1)

조태진은 혈액종양내과 중에서도 주로 혈액질환을 보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암센터 1층에 해당 외래가 있었고, 덕분에 수혁은 그리 오래지 않아 조태진 외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태화 의료원이 대학 병원의 대학 병원 노릇을 하고 있는 데다가 각종 혈액암에 있어 조혈모세포이식센터를 가장 먼저 도입한 병원이기도 하다 보니 환자가 정말 많았다.

[여긴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아픈 사람이 많군요.]

‘그렇지. 음……. 암 환자 보는 일이 쉽지 않지.’

제아무리 수혁이나 바루다가 우수하다고 해도, 암을 정복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난 세기 인류는 암과의 싸움에서 결국 지고야 말았다는 보고서까지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갈아 넣었음에도 그랬다.

다행히 최근 면역 치료와 같은 개념이 나오면서 생존율이 올라가고 있지만, 여전히 ‘정복’이란 단어는 암에 있어서는 어불성설이었다.

똑똑.

수혁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버린 환자들을 지나 조태진이 있는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사원이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빠꼼히 내밀었다.

“이수혁입니다. 부르셔서.”

“아, 네. 잠시만요. 지금 다른 환자 보고 계셔서요.”

“네네. 기다릴게요.”

얼핏 안을 들여다보니 분위기가 심각했다.

젊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이번에 진단을 받게 된 모양이었다.

모든 암 선고가 충격이겠지만 나이가 젊으면 젊을수록 아무래도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을 거 아닌가.

덜커덕.

더 보기가 힘들어 문을 닫았으나 그 틈새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환자의 울음은 아니었다.

‘어머니구나.’

[이럴 땐 늘 보호자가 더 울더군요. 왜 그런 거죠? 아무리 그래도 아픈 사람이 더 힘들 텐데.]

‘뭐……. 자식 먼저 보내는 부모만큼 힘든 사람도 없다고 하니까.’

[아직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사실 나도 그래.’

[저야 인공지능이니 그렇다 치지만 인간인 수혁이 그러는 건 좀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내가 고아라 그래, 인마.’

[그런가. 본능 문제 같은…….]

스멀스멀 번지는 어두운 분위기를 이겨 내기 위해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곧 문이 열렸다.

“엄마, 엄마 괜찮아. 치료할 수 있다잖아.”

“아이고……. 내 새끼……. 아직 어린데……. 아직 어린데…….”

“여보, 일단 갑시다. 바로 무균실로 가래……. 안 그럼…….”

“그래, 조태진 교수님……. 알아봤는데, 내가…… 환우회 가입해서 물어보니까 진짜 잘 봐주신대.”

환자가 도리어 엄마를 위로하는 다소 이상해 보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조태진이나 사원 그리고 외래 간호사들에게는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다른 고형암에 비해 발병 나이가 젊은, 심지어 소아암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게 바로 혈액암이지 않은가.

외래를 보다 보면 이런 일이 흔했다.

“저, 삼촌. 저 왔어요.”

“어어. 그래. 여기 의자 따로 빼놨어. 앉아, 앉아.”

그래서 그런가 조태진은 그리 찜찜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 줘야겠다 다짐했을 뿐이었다.

의사가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되겠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의사가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치면 오히려 제대로 된 치료를 못 하는 수가 생겼다.

해서 의식적으로라도 혈액 쪽 교수들은 마음을 다잡는 연습을 했다.

“무슨 환자예요, 저 환자는?”

반면에 수혁은 같은 내과 의사라도 이런 일에 익숙지가 않지 않은가.

해서 조금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조태진도 금세 진중한 얼굴이 된 채 답했다.

“ALL-Acute lymphoblastic leukemia(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야. 요새 자꾸 피곤하고 멍 들어서 로컬 갔다가 피검사 결과 나오자마자 나한테 의뢰돼서 왔어.”

“아, 아이고. 그럼…… 오늘 바로 항암 들어가야겠네요?”

“어. 거기 원장님이 동문이라 환자 보내기 전에 전화부터 해 주셔서 미리 무균실 잡았지. 지금 이송 요원 따라서 가시면……. 이제 바로 치료 시작이지.”

“어쩐지…… 분위기가…….”

ALM.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약자인데, 진행이 무척 빠를뿐더러 무엇보다도 출혈의 위험이 컸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송되다가 뇌출혈이 와서 잘못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때문에 이게 진단이 되면 바로 병실로 보내서 항암을 시작해야 했다.

그나마 진행이 빠른 만큼 항암제에 반응은 좋은 편이라 출혈의 위험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재발도 흔해 환자와 의사로서는 정말이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병이었다.

“그래, 그렇지. 그래도……. 우리 병원 성적은 꽤 좋은 편이야. 그리고 요새는 옵션이 좀 있잖아. 하다가 순번 오면 조혈모 이식도 고려해 볼 수 있고……. 하여간.”

조태진은 머릿속으로 이때껏 본 환자들을 떠올렸다.

속절없이 떠나보낸 환자도 많았지만, 여전히 생을 붙잡고 있는 환자가 훨씬 더 많았다.

거기에 한 손 보태고 있다는 게 조태진의 자부심이었다.

아무튼, 오늘 수혁을 부른 건 이 때문이 아니라,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함이었던지라 조태진은 곧 화제를 돌렸다.

“아까…… 그 환자분 좀 불러 줘요.”

“네, 교수님.”

사원은 조태진이 말이 있자마자 밖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밀리는 외래인데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점심도 못 먹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였다.

‘한 달에 두어 번은 그러시잖아?’

어쩔 수 없을 때도 있기는 했다.

병원 입장에서야 모든 환자가 그저 하나의 환자일 뿐이지만.

환자 당사자는, 특히 방금 암이 진단된 환자는 교수에게 궁금한 게 정말 많을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게 없다고 해도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조태진의 외래는 지연 상습범이라 할 수 있었다.

“김다원 환자분, 들어오세요.”

“네. 들어가자. 다원아.”

사원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급히 환자를 부르자 대기 중이던 환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젊은 환자였다.

그거 외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생김새였다.

목이 굉장히 짧았다.

“아…….”

“어, 클리펠 파일 증후군 환자야.”

“그렇군요.”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질환은 아니었다.

유병률이 약 4만 분의 1이었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이 질환의 가장 큰 특징은 경추가 융합된 형태를 띤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한 경부 운동 제한도 있었다.

그 외에 난청, 낮은 후경부 모발선 등도 동반되었다.

“환자분은 못 들으셔.”

“인공와우는 안 했나요?”

“이게…… 선천성 난청인데, 그때는 인공와우가 보편적이지 못했잖아.”

“아……. 언어 습득이 안 된 난청이구나.”

“그렇지.”

인공와우란 선천성 난청을 비롯한 전농, 그러니까 아예 소리를 못 듣는 환자에게 주로 이식할 수 있는 기기이다.

이게 대한민국에서 보편화 된 이후로 언어 장애 환자가 급격히 줄고 있었다.

난청이야 일정 비율로 태어나는 것이니만큼 어떻게 할 수 없으나, 다른 동반 기형이 없는 경우엔 인공와우를 통해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나이가 좀 있는 환자들은 미처 수술을 받지 못한 경우가 왕왕 있었다.

수혁은 잠시 환자를 안타깝단 눈으로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클리펠 파일 증후군에서 혈액학적 이상이 있던가?’

[아뇨. 없습니다.]

‘음…….’

[다른 질환이 동반된 것이라고 봐야겠군요.]

‘그럴…… 수 있지.’

클리펠 파일 증후군 자체에는 혈액학적 이상이 없다는 걸 떠올린 까닭이었다.

혼자 그렇게 알았나 했으나, 바루다도 확인해 주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문제가 있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나의 만성 질환은 언제나 다른 질환의 위험 인자로 작용할 수 있었으니까.

“알겠지만 클리펠 파일 증후군은 우리 과랑은 원래 크게 상관은 없어.”

“네.”

“소아과에서 경과 관찰하는 환자셔, 원래는. 그…… 이기자 교수님.”

“아, 네.”

조태진은 최근 도는 소문을 의식해서 그런지 수혁의 눈치를 살피며 이기자 교수 이름을 꺼냈다.

수혁은 어차피 성인 둘의 일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참이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다만 환자 얘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럼 이번에 여기는 왜 오신 거죠?”

“이거. 혈액검사에서 혈소판이 갑자기 8만 대로 뚝 떨어졌어.”

“어…….”

“그전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거든. 원인 감별을 해 달라는데, 바로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

조태진은 이미 수혁이 어떤 사람인가에 관해 보호자에게 얘기를 해 둔 참이었다.

보호자들도 수혁의 얼굴이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태화 의료원에 다니는 환자나 보호자치고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터였다.

워낙 병원 내부에서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어서였다.

월드 스타 이현종, 라이징 스타 이수혁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광고를 뿌리고 있었다.

이에 더해 몇 번인가 매스컴까지 타 버려서 정말 스타 의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해서 보호자들은 조태진과 수혁의 대화를 들으며 잠자코 있었다.

“음……. 일단 클리펠 파일 증후군과 관계는 없을 거 같아요.”

“응. 비뇨기계 이상도 동반될 수 있기는 한데…….”

“네. 혈뇨도 없고. 사실 거기서 이상이 있다면 혈소판보다는 빈혈 소견을 보였겠죠.”

“그렇지. 맞지.”

“음…….”

어떻게든 두 석학이 해결을 해 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동시에 지금까지 이기자 교수에게 외래를 다니면서 쌓은 신뢰 덕분이기도 했다.

그나마 때에 맞춰 교정받을 수 있게 해 준 덕에 남들보다 목이 짧다는 인상을 받을 뿐, 아주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상담 중인 인공와우도 만약에 받게 되면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있었다.

물론 하나씩 하나씩 해결이 되어 가는 마당에 갑자기 혈액종양내과에 가 보란 말을 들어서 좀 충격이긴 했지만.

하여간 보호자는 태화를 믿고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없습니다. 뭔가 더 검사를 해 봐야겠어요.”

“응, 그래.”

“근데…… 지금 제가 보기엔 환자분 멍이 없는데……. 보통 8만 정도면 관절 부위는 멍이 들지 않나요?”

“어, 나도 그게 좀 이상한데. 여쭤보니까 워낙 조심성이 있으시대, 환자분이. 소리가 안 들리니까 오히려 더…… 좀 그러신가 봐.”

“음……. 8만이면…… 애매한 수치긴 하죠.”

“그러니까.”

그보다 수치가 낮으면 조심하고 자시고 할 거 없이 무조건 멍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아니, 멍 정도가 아니라 내부 출혈도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8만은 좀 애매했다.

해서 수혁은 일단 입원하면 더 지켜보기로 대화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에 관한 생각을 접은 건 아니었다.

‘갑자기 혈소판이 떨어질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봐.’

[이제 막 시켜요?]

‘원래 그랬는데.

[사실 맞습니다. 그냥 한번 얘기해 봤어요. 네, 분석합니다.]

바루다와의 대화는 이어 나갔다.

대부분의 경우 그 어떤 책이나 논문보다 이 녀석과의 대화가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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