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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469화 (469/1,303)

469화 천재를 쥐어짜면 (2)

이기원 의원과 조현희 환자는 수혁과 이현종에게서 도무지 눈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 조현희는 방금 어택이 와서 어지러운 와중임에도 불구하고도 그랬다.

서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이렇게 되면 페이스메이커를 안 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조현희는 죽기보다 싫은 걸 안 해도 돼서 좋았고, 이기원 의원은 허망하게 어머니를 잃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 좋았다.

아무리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해도 어디 천륜이 저버린다고 저버려진다던가.

그에게만큼은 세상 하나뿐인 엄마였다.

“아…….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요.”

“네, 확실하진 않아요. 하지만 아까보다는 확률이 올라갔습니다.”

그런 둘을 향해 수혁과 이현종은 거의 동시에 답을 해 주었다.

부자지간이라기엔 얼굴이 안 닮은 둘이었으나, 이렇게 보니 또 천상 부자 같았다.

행동이나 이런 것들이 너무 비슷해서였다.

“그럼 언제 결과가 나오는 겁니까?”

“이거…… 환자 몸에 달고 있는 거 떼 봐야죠.”

“지금 떼 면 안 되나요?”

“아뇨. 아직 단 지 10시간도 채 안 지났어요. 또 다른 이벤트가 있을 수도 있어요. 최대한 많은 이벤트를 봐야 진단이 정확해집니다.”

이현종은 다급한 얼굴의 이기원을 마주한 채 말을 이었다.

여느 때처럼 의학적인 상식에서만 기반한 말이었다.

마음이야 보호자를 달래고 싶었지만, 타고난 성미 때문에 없는 얘기는 못 했다.

“아…….”

“그러니까 우선 오늘은 주무세요. 어지러울 텐데, 눈 감으시고.”

이현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현희 환자에게 잠이나 자라는 말까지 남기고 병실에서 빠져나왔다.

갑질에 익숙한 조현희로서는 아주 어색한 상황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칠성에서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한 1시간가량은 교수나 하다못해 레지던트라도 자리를 지켰다.

그런다고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건 의사는 물론이거니와 조현희도 알았다.

하지만 기분은 다른 얘기 아닌가.

“허.”

조현희는 휑하니 사라져 간 이현종의 뒷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하지만 별반 방법도 없었다.

이미 사라져 갔고, 여기 간호사들은 이현종 때문인지 몰라도 훨씬 강경해서 그랬다.

아무리 갑질에 능숙하다 해도 뻗을 자리 보면서 뻗어야 하지 않겠나.

칠성과는 달리 딱히 기부금 낸 내역도 없는 곳에서 조현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애꿎은 비서에게 화나 내는 것뿐이었다.

“거참……. 저 인간 뭐 있대?”

“알아 올까요?”

“음.”

비서야 말을 어떻게든 받아 줘야 하지 않는가.

해서 일반인에 불과한 이현종의 뒤를 파겠단 말도 했다.

어차피 제풀에 꺾일 걸 예상해서였는데, 의외의 답이 들려왔다.

‘대체 얼마나 잘났길래, 나한테 이러지?’

하다못해 노인정에 가도, 그러니까 조현희의 배경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다들 그 앞에서는 껌뻑 죽었다.

배우 출신이니만큼 키도 큰 데다가 평생 관리를 해 와서 여전히 꼿꼿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어서였다.

얼굴이야 뭐 말할 것도 없었다.

타고난 데다 관리까지 하면 원래 나이에서 10년 아니, 20년도 젊어 보일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그에 비해 이현종은 그냥 그 나이대로 보이는 할배였다.

“알아봐.”

“네?”

“알아본다며?”

“아, 네.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그래. 흠.”

그런데 감히 나에게 함부로 대해?

조현희는 두근거림과 동시에 짜증을 느끼며 명을 내렸다.

이러한 사실 따위는 전혀 알 리 없는 이현종은 이기원도 보낸 후, 퇴근할 준비를 했다.

“수혁아, 가구 보러 가 줄 거지?”

“아, 네.”

원래 같으면 수혁은 좀 더 남아서 레지던트도 보고 공부도 하겠으나 오늘은 예외였다.

[이현종이 가자고 하면 가야죠.]

‘오……. 공부 빼도 돼?’

[저 인간 요구가 있으면 그래야죠. 그게 사람 된 도리입니다.]

‘너한테 그런 걸 듣고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수혁은 정말 이상하죠. 사람이 맞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바루다마저 허락했다.

이현종은 지금의 수혁이 있게 해 준 은인이자, 앞으로도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줄 아버지이기에 그랬다.

그렇다고 이기자 교수랑 같이 사는 데 쓸 가구까지 보러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하여간 자식 된 도리라는 게 있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곧 옷을 챙겨 입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두 노 교수를 모시는 건데 운전은 본인이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였다.

빵.

나름 갸륵한 마음씨였는데, 한 방에 진압되었다.

“이 교수? 타. 운전 내가 할 거야.”

이기자 교수가 루비콘을 타고 나타난 탓이었다.

딱 이기자 교수가 몰 거 같이 생긴 차였다.

거칠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단정된 느낌.

그 안에 탄 이기자 교수는 운전대 앞에 예의 그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옆에 있는 이현종은 다소곳이 앉아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귤을 까 주고 있었다.

‘왜 어울리냐.’

[이현종…… 병원 내에서 모습하고는 많이 다르네요.]

‘그러니까.’

병원에서는 아니, 학회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정말 대단한 교수 아닌가.

누구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느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조수석에 앉아 귤이나 까 주는 귀요미였다.

“혼자 탈 수 있겠어? 이거 차체가 높아서.”

수혁이 놀라고 있는 사이, 이기자 교수의 차가 딱 앞에 섰다.

듣고 보니 확실히 차체가 높았다.

“네. 운동해서……. 등으로 타면 됩니다.”

“오.”

그럼에도 수혁은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었다.

바루다의 조언에 따라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이었다.

부우웅.

수혁이 차에 타자마자 차가 출발했다.

밖에서 보기엔 멋졌으나, 승차감은 개판이었다.

바닥이 딱딱해서 그런가 노면이 그대로 느껴졌다.

수혁이 알기로 이현종은 이런 차를 극혐 했다.

운전도 안 하는 주제에 신현태에게는 무조건 세단 사라고 닦달하고, 수혁의 제네시스를 사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역시, 우리 기자. 운전도 잘하네.”

하지만 지금 보조석에 앉은 사람은 이현종이 아닌 건지, 아니면 이미 사랑에 영혼을 팔았는지 행복해 보였다.

[저런 모습이 일반적인 연애의 결과물이라면 비추 드리고 싶군요.]

어찌나 볼썽사나운지 바루다는 물론이거니와 수혁조차 연애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뀔 지경이었다.

‘나도 저러고 싶진 않네…….’

하여간 차량은 곧 도심을 빠져나가 외곽에 있는 가구 거리로 접어들었다.

애초에 어디 돌아다닐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빌트인 된 오피스텔에 살아 침대 말고는 딱히 가구 살 일도 없던 수혁으로서는 아주 낯선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 오고 나서야 걱정이 들었다.

‘근데 나 가구 진짜 모르는데.’

누구에게 추천할 만한 실력이 아니란 것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그에 비해 바루다는 꽤 여유로워 보였다.

[괜찮습니다, 수혁.]

‘응?’

[저는 가구 좀 압니다.]

‘뭔…… 내가 인테리어 잡지 같은 것도 안 보는데.’

[영화랑 드라마는 보죠. 거기 나오는 가구를 조합과 제가 분석한 이기자 교수의 취향을 연결하기만 하면 됩니다.]

‘음.’

굉장히 그럴싸한 말이지 않은가.

바루다가 이렇게까지 말해서 뭐가 안 된 적은 드물었다.

오죽하면 수혁이 연애 말고 딴 건 다 맡겨도 되겠다 여기겠는가.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또 들었다.

‘근데 이현종 교수……. 우리 아빠 취향은 고려 안 해?’

[여기까지 오면서 못 느꼈습니까?]

‘뭘?’

[저 둘의 관계에서 갑은 이기자입니다.]

‘음……. 하긴 좀 을 같긴 해.’

[을이요? 정도 안 됩니다.]

바루다는 수혁의 의문에 명쾌한 답을 내리곤 가구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말 자신이 파악한 이기자의 취향에 맞춰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톤의 가구를 추천했다.

“어……. 이거 검정 철제. 소재가 잘 어울리는데.”

“오. 정말? 딱 마음에 드는데? 근데 이렇게만 두면…….”

“여기 위에 노란 스탠드 두면 어때요? 포인트도 살고.”

“와……. 인테리어 전문이네.”

수혁은 그저 바루다의 말대로 떠들어 댈 뿐이었다.

평소와 다른 게 없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의학에 대해서는 수혁도 꽤 실력이 는 참이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바루다의 말을 옮기는 건 이제 드물었다.

마치 3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마저 들 지경이었다.

“좋아. 아주 만족했어. 밥은 내가 쏜다.”

하여간 덕분에 이기자 교수는 만족했다.

‘고맙다, 수혁아. 오늘 덕분에 면 좀 섰어.’

그에 따라 이현종 교수도 크게 만족했다.

[이거지. 교외로 나오면 한우죠.]

공을 세운 바루다도 만족했다.

이기자 교수가 안다는 집으로 갔는데, 거기 소고기가 아주 일품이어서였다.

마블링도 적당한 데다가 귀한 새우살이 계속 나왔다.

알고 보니 거기 주인댁 손주를 이기자 교수가 살려 준 적이 있어서였다.

대학 병원 교수들이랑 다니다 보면 왕왕 이럴 때가 있는데, 오늘 아주 제대로 수혜를 받은 셈이었다.

“자, 그럼 홀터 떼 볼까요?”

바루다가 어제 먹은 소고기 맛을 계속 음미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 홀터 검사기를 제거할 시점이 되었다.

이현종은 그렇게 제거된 홀터 검사기에서 결괏값을 죽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제일 먼저 확인한 지점은 어제 증상이 있었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수혁도 못내 그게 궁금했던 참이라,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바루다를 채근하고는 눈알을 굴렸다.

[뭡니까, 급한 거 아니면…….]

‘급해. 개급해. 지금 홀터 뗐어.’

[네? 언제…… 아……. 죄송합니다. 어제 새우살이…….]

‘내가 더 사 줄 테니까 일단 지금은 이거 봐.’

[그럴 능력이 됩니까?]

‘인마 나도 이제 교수고 로열티도 받는데……. 돈만 따지면 이기자 교수님보다 더 벌지.’

[아, 네. 인정합니다. 알겠습니다.]

새우살을 더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바루다는 바로 집중했다.

그 결과 수혁은 이현종이 해당 지점을 짚었을 무렵부터 녀석의 협력을 구할 수 있었다.

“음.”

“역시…….”

전반적인 환자의 심전도는 서맥을 그리고 있는 게 맞았다.

이것만 보면 당연히 페이스메이커를 떠올려야 하는 것도 맞았다.

하지만 하루 중 가장 강렬하게 증상을 호소했을 땐, 그 바로 직전에 오히려 빈맥이 있었다.

“빈맥-서맥 증후군(Tachycardia-bradycardia syndrome)이구만.”

“네. 환자의 서맥은 바로 이 빈맥 때문이에요.”

쉽게 말하면 심방에서 발생한 세동이 빈맥을 초래하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심전도가 대략 10초 가까이 멈추었다가 서맥이 된다는 얘기였다.

바로 정답을 말한 둘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음, 그럼 치료는…… 근데 결국, 치료는…….”

하지만 수혁은 결국 이 증후군 또한 서맥의 큰 갈래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말은 곧 치료의 원친은 여전히 페이스메이커란 얘기였다.

그러나 이현종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심장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모험적인 학자이지 않은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고 실행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단지 젊은 시절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의 이현종은 더 이상 조수석에 앉아 귤이나 까는 귀요미가 아니라, 당대의 대학자요 뛰어난 의사였다.

“아니, 아냐. 이렇게까지 빈맥이 서맥을 일으키는 게 분명하다면……. 시도해 볼 수 있는 다른 치료가 있어.”

“네? 페이스메이커 달고, 빈맥은 약으로 조절하는 게 아니라요?”

“약 성공률이 얼마지?”

“60…… 정도죠.”

“낮지, 그래서 안 그래도 내가 다른 걸 생각해 보고 있었는데 이 케이스가 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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