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67화 (467/1,303)

467화 같이 살려구 (3)

베테랑 의사들이 바짝 긴장할 만큼 환자는 꼬장꼬장한 정도가 아주 장난이 아니었다.

딱 센터 내에 들어서면서부터 공기가 바뀔 지경이었다.

“기원이는 어디 갔어.”

대뜸 건네는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기원이?

그게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 이기원 어디 갔냐고!”

성까지 같이 듣고 나서야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기원.

현 여당 원내대표이자, 5선 의원이면서 동시에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였다.

그런 사람을 아무리 어머니라지만 다른 사람들도 있는 앞에서 이름을 탕탕 부르다니.

성미가 괄괄한 것으로 워낙에 유명하다고 하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지금 국회에…….”

“어미는 싫다는 병원 들여보내 놓고 지는 일이나 하러 가?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지가 직접 오든가!”

“그…… 지금 워낙 중요한…….”

“어미는 안 중요하다, 이건가?”

이대로 두었다가는 아주 하루 종일 비서만 혼낼 거 같았다.

해서 수혁이 총대 메고 나서려는데, 그걸 본 이현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가 볼게.”

“어…….”

“나 아직 아들한테 일 떠넘길 만큼 늙지는 않았어.”

“오…….”

뒤에 있던 신현태가 용기 있는 이현종의 모습에 응원을 보냈다.

하여간 사람이 좀 괴짜지만 이럴 땐 멋있지 않은가.

괜히 신현태가 이현종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저, 환자분?”

이현종은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서서 이기원 원내대표의 어머니, 그러니까 환자에게 다가갔다.

난데없이 호칭이 환자가 된 사모는 이건 뭐냐는 얼굴로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칠성에서는 그 누구도 그녀를 환자라 부르지 못했다.

모두 사모님이라 불렀다.

그럴 만한 지위에 있는 데다가, 성미도 괄괄하니 하는 수 없었다.

‘이것 봐라?’

그런데 감히 환자라 불러?

그것도 초면에?

“누구, 나 말이에요?”

하지만 비서를 대하듯 하진 않았다.

그래도 정치인 아들을 둔 사람 아닌가.

옛날이라면야 함부로 하겠지만, 이제 세상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특히 이목이 많을 땐 조심해야 했다.

“네, 환자분.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고 하셨죠?”

“네. 맞아요. 심장이 느리게 뛰어서. 근데 치료가 무슨 페이스 메이컨지 뭔지 달아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거 싫거든. 들어 보니까 자석 같은 거 닿으면 심장 멈춰서 죽는다며. 이건 이대로 두어도……. 그렇게 빨리 죽지는 않는다던데.”

이현종은 건성으로 들으며 비서가 방금 건넨 파일을 내려다보았다.

‘조현희…… 여자 69세. 아, 이 사람이 조현희구나?’

그제야 이현종은 이 사람이 그 자체로도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한때 준재벌가 딸이면서 동시에 배우, 그리고 성깔 더러운 걸로 유명하지 않았던가.

이현종은 나이가 들어도 사람이 참 변하지 않는다는 걸 상기하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자석 닿는다고 멈추지는 않습니다. MRI 정도 되는 아주 강력한 자기장이 문제를 일으키는 거죠.”

오해는 풀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아주 오래된 형태의 페이스메이커라면 몰라도 최근 나오는 것들은 그렇게 엉망이 아니었다.

세계의 석학들이 연구하고 만드는 물품을 이렇게까지 무시하는 건 좀 곤란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공항 드나들 때도 문제 있다던데? 난 겨울…… 이 나라에서 안 보내거든.”

이건 좀 재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맞는 말이긴 했다.

특히 미국과 같이 보안이 까다로운 나라에 들어갈 때는 귀찮아질 터였다.

페이스메이커가 기본적으로 금속이라 무조건 탐지기에 걸리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 해결 방안은 있었다.

“의사 진단서나 소견서 있으면 됩니다. 치료 목적으로 단 물품에 시비 거는 공항이나 나라는 없어요.”

“그거 받으러 맨날 와야 되잖아요. 가뜩이나 병원 오는 거 싫어하는데……. 외국 나갈 때마다 오라고? 당장 다음 달에도 동창회끼리 쿠바 가기로 했는데, 안 될 말이지.”

“음.”

이현종은 처음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오랜만에 누군가를 때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마 뒤에 수혁이 없었다면,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환자만 아니었으면 틀림없이 그랬을 거 같았다.

‘아니지. 결혼도 해야 하는데……. 감방 갈 수는 없지.’

원내대표 엄마를 후두려 까면 어떻게 될까?

높은 확률로 구속이 될 터였다.

이현종도 꽤 높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현행범인데 뭐 어쩌겠는가.

해서 이현종은 참았다.

그리고 본인이 해야 할 일이 이 인간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는 걸 떠올렸다.

‘와, 다행이다. 칠성 병원에서 누가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새끼 불쌍하네.’

혹 다른 질환이 아니라 그냥 서맥이라도 괜찮았다.

설득에 실패하면 다시 돌려보내면 되지 않겠는가.

칠성 병원의 누군가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었지만, 우선 살고 봐야 했다.

해서 이현종은 간신히 웃음을 되찾고 입을 열 수 있었다.

“뭐, 들으셨겠지만 서맥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럼 그렇게 싫어하는 페이스메이커 안 달아도 됩니다.”

“칠성 병원에서 진단한 건데요?”

“칠성 병원이 뭐요.”

“거기 큰 병원이잖아요. 여기보다 더 크지. 그럼 더 잘…….”

“어허, 어허. 환자분이 뭘 잘 모르시나 본데……. 겉만 뺀지르르한 돌팔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네?”

이번엔 조현희가 놀랐다.

우리나라에 의사가 15만 명 가까이 있으니 이상한 놈들도 많기는 하겠으나, 그 이상한 의사를 대면한 적은 없어서였다.

이렇게 대놓고 남의 병원을 디스할 줄이야?

‘음. 마음에 드는데?’

이상한 일이지만, 이현종이 좀 좋아졌다.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일까?

설명하기 어려운 논리로 인해 동질감을 느꼈다.

“거기서 무슨 검사했습니까?”

“홀터요.”

“아, 홀터. 병원 싫어하시는 분이 무작정 달지는 않았을 테고…….”

이현종은 상대의 태도가 좀 변하거나 말거나 자기 할 말만 이어 나갔다.

원래 진료할 때 그의 스타일이 이랬다.

일단 환자가 있는데 진단명을 모르겠으면 그걸 알아낼 때까지는 그것만 팠다.

“최근에 증상이 심해졌어요, 혹시?”

“아…….”

이현종이 예의 우수한 머리를 돌린 보람이 있었다.

조현희는 대번에 놀랬다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두근거림의 횟수도 늘고, 지속 시간도 늘었어요?”

“어……. 네.”

칠성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 이현종이라는 의사는 혹시 점쟁이 빤스라도 입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긴 했다.

원래 부정맥이라는 건 심장의 전도에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닌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정맥이라면 모르겠지만, 후천적으로 발생한 경우엔 점점 심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몸은 나이가 들수록 망가지는 법이니까.

“그래서 검사를 하셨구만. 홀터도 근데 이게 어려운 검사거든요. 무지렁이들은 판독을 못 해.”

“무지렁이…….”

“하여간 여기 오셨으니까 한번 보죠. 진단명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검사야 별다른 걸 하진 않을 겁니다. 그렇게 안 불편한 검사라는 건 알죠?”

“아……. 그렇죠. 뭐. 그래. 해 봐요.”

처음 들어설 때와는 달리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환자를 보며 신현태가 허 하고 소리를 내었다.

비서는 아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있었다.

딱히 이현종이 공손하게 대한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어찌 저럴까.

비결이 있다면 배우고 싶었다.

“여기 누워요?”

“네. 제가 직접 하진 않을 거니까 걱정은 마시고.”

“해도 되는데?”

“네?”

“농담이에요.”

심지어 조현희는 끼까지 부리고 있었다.

왕년에 날리던 배우였던 만큼 지금도 한 미모 하는 편이었다.

아마 다른 노년의 의사라면 마음이 움직였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일편단심 이기자 바라기인 데다가, 이런 쪽으로는 전혀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 미동도 없었다.

“뭐라는 거여. 여기 좀 검사해 주라.”

“네!”

이현종이 나가자, 인턴이 들어가 심전을 했다.

원래 환자가 여자라고 해서 딱히 여자 인턴이 가지는 않지만, 여자 인턴 손이 노는데 굳이 남자를 들여보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해서 여자 인턴이 들어갔고, 잡음 없이 검사가 끝났다.

“어디 좀 봐 봐.”

이현종은 인턴이 나오자마자 손부터 내밀었다.

결과지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수혁과 신현태도 뒤에 따라붙었다.

“심장박동 수가 43회. 완전 서맥이네. 노인네 심장이 이렇게 뛰면 당연히 힘들지. 보니까 아주 운동한 사람도 아니던데.”

“그렇네요. 43회면……. 증상이 있을 수준인데요?”

“어, 그래. 이건 드물지.”

딱히 심장을 따로 전공한 의사가 아니더라도 서맥이라는 진단이 가능할 만큼이나 명백한 서맥이었다.

43회라는 수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긴 했다.

선천적으로 심장박동이 좀 느린 사람도 있고, 마라톤 선수처럼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은 심장이 한 번 뛸 때 워낙에 많은 피를 보낼 수 있어서 느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인에서는 아니었다.

심지어 조현희는 일반인 정도가 아니라 노인이었다.

“확실히 서맥이 맞을 거 같긴 한데…….”

게다가 칠성에서 서맥이라고 진단을 한 상황이지 않은가.

아까는 의도적으로 돌팔이네 뭐네 하기는 했지만, 이미 태화 출신들도 거기 가 있었다.

그중에는 이현종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놈도 있었다.

박국진이라는 새끼가 돈 주고 빼 가긴 했지만.

하여간 실력을 인정해 줄 정도는 된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홀터는 해 봐야지. 그거 하고 보자고. 환자분은 옆에 보호자들 계속 있을 거죠?”

이현종의 말에 비서 중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일하는 사람도 아닌데 비서가 하나가 아니라 셋이라니.

이현종은 참 희한한 삶도 있다고 여기며 말을 이었다.

“그럼 딱히 활동 제한은 안 할 거예요. 병원 밖으로만 나가지 말고 봅시다. 나가면 안 되는 건 아닌데, 다시 안 올 거 같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맥일 확률이 높기는 했으나, 이현종은 그렇다고 해야 할 검사를 안 해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해서 홀터를 달기로 했고 다행히 조현희가 몽니를 부리지 않아 그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비서진들을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또 행패를 부리긴 했지만.

아무튼, 이현종 앞에서는 아니었다.

덕분에 이현종은 자리에 차분히 앉아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수혁아, 서맥이 아니면 뭐 같아?”

대화라기보다는 토론에 가까웠다.

병원이라서는 아니었다.

원래 의사들은 머릿속에 든 게 보통 이것뿐이라 사석에서도 질환 얘기나 환자 얘기를 많이 했다.

“음……. 달리 가능성이 있는 게 있을까요 서맥인데.”

“아, 서맥은 맞지. 근데 환자 증상을 악화시키는 게 서맥이 아닐 수도 있잖아.”

“아……. 하긴. 활동량이 적으면 좀 기운이 없을 수는 있어도 두근거림은 없겠죠.”

“그래. 그렇지?”

“그래도 서맥일 가능성이 크죠.”

“그것도 그래, 망할. 아니지, 서맥이 맞으면 칠성으로 보내면 되지. 아우, 저 사람 설득할 자신은 없다.”

그렇게 한창 머리를 흔들고 있으려니, 누군가 센터 내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익숙한 목소리도 함꼐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환자 보호잔데……. 잠시 상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기원 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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