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3)
수혁은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분명 당직방인데 생경한 느낌이었다.
일단 벽이 구불거렸다.
의자도, 모든 것이 그랬다.
심지어 거울에 비친 수혁의 얼굴은 동그랗게 팽창되어 터질 거 같아 보였다.
이른바 시각 정보 인지의 왜곡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래서…… 눈동자가 그렇게 흔들렸나?’
[네. 아이의 기록을 보면 엄마의 얼굴이 부어 보였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주 나이가 어린 아이라면 모르겠으나, 12살 아이에서 이런 표현이 괜히 나오진 않겠죠.]
‘정말 그렇게 보였구나.’
[네. 흔히 편두통에서 동반되는 전조 증상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입니다. 아지랑이 정도로는 이만한 인지 왜곡을 일으킬 수 없어요.]
‘그래, 이건…… 이건 마치.’
수혁은 오래전 읽었던 동화를 떠올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주인공 앨리스가 말 그대로 이상한 나라에 가는 얘기이지 않은가.
어릴 때야 그저 재미난 이야기로만 읽혔을 뿐이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의학적인 접근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작가가 편두통을 알았단 사실이 밝혀지면서였다.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질환으로 인해 보았던 환각, 정확히 말하면 시각적 인지 왜곡으로 인해 본 이상한 광경을 소설적 영감으로 차용했을 거란 얘기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 기분인데.’
[문헌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게 되니 정말로 묘하군요.]
그 후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편두통뿐만 아니라 다른 질환 또는 수면 부족 등에 의해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속속 보고되고 있었다.
‘이렇게 보이는구나.’
[네. 아이가 힘들었겠군요.]
‘선행 인자는 역시 편두통이겠지?’
[다른 원인도 가능은 하지만 너무 드뭅니다. 이것도 드문 경우 아닙니까?]
‘그렇지. 이 증후군 자체가 너무 드물지.’
특히 소아에서 주로 생기는 증후군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담당 의사가 정확히 의심하지 않는 이상, 문진만으로 진단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의 진술은 성인들처럼 명확하지 않기에 그랬다.
아니, 성인들이라 해도 비슷했다.
너무 낯선 증상이다 보니 오히려 다른 뇌 병변을 의심하고 엉뚱한 진단 및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아무튼,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으로 증상에 대한 체험까지 한참 아닌가.
진단은 물론이거니와 치료 계획까지 다 된 마당이었다.
‘좋아. 그럼 가 보자.’
[네.]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가동 범위를 줄였다.
어차피 오래 지속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일종의 오버 클록이기에 그랬다.
칩이 타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고칠 방도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저벅저벅.
수혁이 당직방으로 갔다가 다시 소아과 병실에 나타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기껏해야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뭔가 변화가 있기에 턱없이 적은 시간이라는 얘기.
하지만 수혁의 발걸음엔 아까와는 달리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노골적으로 나는 이제 알았다는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에, 아직 아이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던 주치의나 담당 간호사는 물론이고 환자 어머니 또한 수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혁은 그렇게 이목을 끈 상태에서 아이를 향해 걸었다.
“으…….”
여전히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아까처럼 온몸을 떨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강한 진통제가 들어가니 좀 나은 모양이었다.
‘졸린가 보네.’
지금 아이의 통증을 가라앉히는 데 쓰인 약은 부작용으로 필연적인 졸림을 유발하는 약이었다.
그 말은 곧 일상에서 쓸 수는 없는 약이란 뜻이었다.
통증이 심할 때야 당연히 통증 조절이 우선이겠으나, 결국은 환자의 일상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앨리스 증후군은 약이 있었다.
특히 편두통에 의한 것은 더더욱 그랬다.
“서아야.”
“네…….”
수혁은 천천히 서아를 불렀다.
아이는 수혁을 올려다보지 않고 대답만 했다.
누가 가르쳐 주기도 했겠지만, 이렇게 통증이 있을 때 빛을 보면 더 아파 온다는 걸 본능적으로 배운 탓이리라.
“아이고……. 우리 서아.”
엄마는 그런 아이 보는 것이 힘겨운지 고개를 돌렸다.
눈물을 글썽이면서였다.
주치의와 담당 간호사만이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과연 뭘 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똑똑한 건 아는데…… 소아과는 다른데. 우리도 엄청 방대하다고…….’
내과만큼은 아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방대한 학문이지 않는가.
게다가 소아는 성인과 달리 상태가 휙휙 바뀔 수 있어서 어찌 보면 더 어렵다고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다를 수도 있어.’
다만 기대도 있기는 했다.
워낙 수혁에 대한 소문이 무성해서였다.
“머리 아플 때, 벽이 구불구불해지지는 않았어?”
“아……. 그렇게 보여요.”
“사람 얼굴도?”
“네.”
“엄마 얼굴이 부어 보였다는 게…… 동그랗게 커 보였다는 거지?”
“네네.”
기대와는 달리 수혁이 하는 말은 이미 기록에 있는 말들이었다.
편두통에서 흔히 동반될 수 있는 전조 증상에 대한 진술이었다.
해서 소아과 레지던트가 한숨을 짓고 있는데, 돌연 수혁이 그를 돌아보았다.
같은 레지던트도 아니고 교수와 레지던트 사이이지 않은가.
깜짝 놀랐다.
“어, 엇.”
“아이 진술 자세히 들어 봐요.”
“네?”
“기록 보니까 그냥 전조 증상으로 판단했던데…….”
“아, 네. 환자들이 보통 이렇게 말해서요.”
“지금 아이는 아플 때라고 명시하잖아요.”
“그…….”
“그리고 벽이 구불구불해 보인다고 했죠? 이따 아이 좀 더 괜찮아지면 그거 그려 보라고 해 보세요. 아마 정말 구불구불하게 그릴 겁니다.”
“어…….”
소아과 주치의는 수혁의 말에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편두통 환자들에게서도 그렇게 보이는지 어쩌는지 잘 알지 못했기에 그랬다.
아무리 공부를 한다 해도 환자의 증상은 유추만 할 따름 아닌가.
실제 그 병을 체험하지 않는 이상 완전한 이해는 불가했다.
아직은 그랬다.
현대 의학의 한계는 여러 지점에서 명확하게 존재했다.
“아, 편두통은 그냥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거 같은 느낌입니다. 절대 시각적인 정보를 바꾸지 않아요.”
“아…….”
“그림을 그려 보면 주변 풍경이 바뀌지 않죠. 시각 정보 인지 왜곡은 진짜 드문 거예요. 시각만큼 우리가 강력하게 사용하는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럼 아이가 편두통이 아니라는 겁니까?”
“편두통은 맞죠. 아주 드문 형태인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토피라메이트가 전혀 듣지 않았던 거예요.”
수혁은 자신의 말을 자장가 삼아 잠들어 버린 서아의 이마를 쓸어 주며 말을 이었다.
“대표적인 약이 잘 듣지 않고, 통증의 정도와 빈도가 증가하면서 동시에 시각적 인지 왜곡을 일으키는 경우……. 편두통에서 뭘 의심해야 합니까? 특히 소아에서요.”
설명이라기 보다는 질문이었다.
설마하니 여기서 갑자기 질문이 들어올 줄은 몰랐던 주치의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수혁의 얼굴을 보아하니 기다려 줄 모양이었다.
하긴 아이도 자는데 달리 할 일도 없기는 했다.
“어…….”
“모르나?”
“그…….”
“질책하는 건 아니에요. 모를 수도 있지, 이건.”
빈말은 아니었다.
사실 내과 레지던트도 아니니 공부 안 한다고 혼낼 입장도 아니기도 했거니와, 실제로 어려운 질환이기도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니.
아마 어지간한 대학 교수조차 처음 들어 보는 사람이 많을 터였다.
레지던트가 그거 모른다고 혼낸다면 그게 미친놈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알죠?”
해서 수혁은 어차피 아이가 깨기를 기다릴 겸 해서 썰이나 풀기로 했다.
센터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아직 없었다.
‘새엄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수혁은 열린 사람이었다.
원래도 그런 편이었다가, 바루다가 머리에 박히면서부터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도 살다 보면 다 일어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덕이었다.
하지만 이현종과 이기자의 러브 라인은 너무 의외이지 않은가.
가슴을 열어젖히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시간도 필요했다.
“아, 알죠. 그 이상한 토끼 나오는 거 아닌가요?”
“그거 처음에 앨리스가 어떻게 되면서 시작하죠?”
“네? 아……. 몸이 커지던가, 작아지던가.”
“그렇죠. 정확히는 보이는 게 바뀌면서 시작하죠.”
“아…….”
“보이는 게 바뀌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가 편두통을 앓았던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잦은 빈도의 편두통이었죠. 자라면서 없어졌다고는 하는데…….”
수혁은 아이와 함께 엄마도 돌아보았다.
없어진다는 말은 일부러 한 것이었다.
그런 병이 있지 않은가.
어릴 땐 무던히도 사람을 괴롭히지만 다 자라고 나서는 사라지는 병들.
편두통도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있었다.
“아무튼, 어릴 땐 심했다는 거죠. 그때 본 환각들이 소설의 영감을 주었을 겁니다.”
“아……. 편두통이 심하면 그런 증상이 생길 수 있나요?”
“네. 애초에 아지랑이도 아주 약한 인지 왜곡이잖아요. 편두통의 기전 자체가 측두엽의 마비와 연관이 있는데 이게 아주 심해지면…… 더 강한 인지 왜곡도 발생할 수 있죠.”
“아…….”
“그게 이 앨리스 증후군입니다. 약이 달라져야 해요.”
“아……. 저는 정말 처음…….”
“그럴 거예요. 케이스 리포트에나 나오는 병이니까. 소아과 교과서에는 한 줄 나오고 맙니다.”
“아.”
소아과 주치의는 벌써 몇 번이나 아를 반복했는지는 자각하지 못했다.
대신 마지막 수혁의 말이 좀 이상하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소아과 교과서에는 한 줄 나오고…… 만다고? 다 읽고 외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싶은 일이었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적어도 담당 교수님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소아 질환명이 수혁의 입에서 나왔다.
담당 교수도 만만치 않은 사람인데, 그보다 더 소아과에 대해 잘 알려면 어딘가 괴물 같은 면모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으음.”
그때 선잠에 빠졌던 아이가 깨어났다.
확실히 약까지 맞고 자서 그런지 통증은 확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표정부터가 달랐다.
수혁은 그런 아이에게 주머니에 있던 볼펜 한 자루를 쥐여 주었다.
그리곤 메모장을 내밀어,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아까 아플 때 봤던 거 그려 볼래?”
“음……. 네.”
아주 어린아이였다면 협조가 안 되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요새 12살은 아이라는 말도 좀 어색할 정도로 조숙한 면이 있었다.
게다가 아픈 아이들은 원래 더 성장이 빠른 법 아닌가.
덕분에 서아는 침착하게 그림을 그려 나갔다.
“어…….”
“아, 정말…….”
수혁이 말했던 대로의 그림이었다.
벽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다 흔들리고 있었다.
구불거리는 선마다 우연이 아니라는 듯, 서아는 한 번 두 번 겹쳐 칠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치의를 돌아보았다.
“약, 아미트리프틸린으로 바꾸죠. 이제 차차 좋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