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
‘어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아이의 얼굴에서 별반 이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황달이나 점막의 색 등에서 객관적인 이상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바루다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같은 정보를 습득해도 분석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사람하고 인공지능은 그런 차이가 났다.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아, 그러냐.’
물론 이럴 때가 더 많기는 했다.
수혁은 바루다의 능력 부족에 대해 한마디 보태고서는 아이를 향해 웃어 보였다.
이미 교수가 될 만큼 많은 사회 경험이 쌓이기도 했거니와 바루다 덕에 보다 객관적이고 효과적인 훈련을 해 온 덕에 꽤 보기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안녕, 나는 이수혁이라고 해.”
“아……. 안녕하세요.”
덕분에 김시아 환아의 경계심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모든 환자 의사 관계에서 이 과정이 중요하지만, 특히 소아 환자와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중요했다.
아이는 상대가 옳다고 생각할 때 입을 여는 게 아니라, 상대가 좋다고 생각할 때 입을 열기에 그랬다.
어떻게든 소아과 의사들이 아이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애쓰는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누구…… 시죠?”
둘이 대화를 시작하려니, 병실 안쪽에 있던 사람 하나가 다가왔다.
초췌한 인상의 여성이었는데 환아와 얼굴이 무척 닮아 있었다.
아이의 엄마일 터였다.
“아, 네. 저는 통합진료센터의 이수혁입니다. 아이를 좀 보려고요.”
“아……. 네.”
아이 엄마는 수혁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엘리베이터만 타면 볼 수 있는 얼굴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병원 생활을 한 지 얼마 안 되었다면 모를까, 벌써 몇 번이나 다닌 입장에서는 수혁이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명한…… 유명한 사람이라고 들었지.’
아이와는 조금 다른 이유로 경계심이 허물어졌다.
물론 찝찝한 구석도 있기는 했다.
엄마가 알기로 이 사람은 내과였다.
아이의 담당 교수는 뭐가 되었건 아이가 앓고 있는 병이 소아 신경과 관련한 병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고.
애초에 처음 이쪽에서 진료받기를 권유했던, 다른 병원 소아과 교수도 그렇게 판단하고 김수민 교수에게 보내지 않았나.
이제 와 내과 교수가 와서 본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서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어머니?”
“아……. 네.”
고민하는 사이 수혁이 질문을 던져 왔다.
딱히 거절하기 애매한 말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도 꽤 유명한 의사가 왔는데 그냥 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해서 고개를 끄덕였고, 수혁은 그대로 서아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바루다는 겉모습에서는 이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두통을 주소로 왔다고 했지.’
두통이라.
흔한 증상이면서 동시에 어려운 증상이었다.
그중에서도 긴장성 두통과 같이 그리 심하지 않은 두통이 아닌, 이 아이처럼 갑자기 심해지면서 동시에 지속되는 종류의 두통은 더더욱 그랬다.
“지금도 머리가 아프니?”
“지금요? 지금은 괜찮아요.”
다행히 서아는 수혁의 질문에 곧잘 답을 해 주었다.
키는 무척 작지만 우선 초등학교 3학년이라지 않는가.
말이 통하는 나리와 그렇지 않은 나이는 천지 차이였다.
“그래? 그럼 마지막으로 아픈 게 언제야?”
“그건…… 어제?”
아팠다는 얘기를 하면서 아이는 인상을 썼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모양이었다.
집이 아니니,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할 텐데도 그랬다.
[기록을 보면 편두통으로 진단하에 약 한 달간 토피라메이트를 처방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약 먹고도 전혀 호전이 없었다던데?’
[네. 아무튼, 그렇게 판단했다면 아이의 두통 정도는 꽤 심할 겁니다.]
‘그렇지. 하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토피라메이트는 편두통이 아닌 다른 두통에는 잘 쓰지 않는 약이지 않은가.
편두통은 꽤 통증의 정도가 심한 편이니, 다른 병원 의사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아이의 통증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었다.
“그때 혹시 같이 불편한 게 있니? 눈앞이 흐려진다거나?”
“아……. 네. 있어요.”
“그렇구나.”
편두통은 여러 진단 기준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전조 증상이었다.
아이는 별 고민도 없이 전조 증상에 관해 묻자 그렇다고 했다.
그 말은 곧 두통의 원인이 편두통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토피라메이트는 전혀 효과가 없었을까.
“그럼 머리 아픈 게…… 점점 심해지니?”
“아……. 네. 심해져요. 너무 아파요, 요새는…….”
아이는 아프다는 말을 하면서 어쩐지 엄마 쪽을 돌아보았다.
눈치를 보는 듯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이는 부모의 반응에 민감하지 않은가.
아파할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를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서아야, 아픈 건 잘못이 아냐. 네가 뭘 잘못해서 아픈 게 아니거든? 그냥 더 아파지는지 아닌지……. 그것만 말해 주면 돼.”
거기에 더해 아픈 게 일종의 벌이라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이건 사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흡연이나 음주와 같이 명백히 통계적으로 증명된 습관을 가진 암 환자들은 흔히 자신을 책망했다.
‘통계는 병에 걸리기 전까지만 의미가 있는 거예요. 병에 걸리고 나서는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치료에만 전념하세요.’
이현종은 그런 이들에게 늘 이런 말을 했다.
수혁도 이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하는 바였기에 비슷한 말을 해 주었다.
아무래도 애한테 이런 말 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가 아주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서아는 수혁이 의도적으로 시야를 좀 가렸기에 더 엄마 쪽을 돌아보는 대신 그저 답을 이어 나갔다.
“음……. 네, 더 아파요. 더 자주…… 어…….”
“왜, 왜 그러니?”
그러던 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울 것 같은 얼굴이 되면서였다.
“아, 이런! 서아야!”
영문을 알 수 없어 머뭇거리는 수혁과는 달리, 아이 목소리만 듣고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아차린 엄마가 후다닥 달려와 아이를 안았다.
“어, 엄마.”
“괜찮아, 괜찮아.”
이미 호출 버튼을 눌렀는지 간호사도 뛰어왔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있진 않았다.
두통은 엄마의 포옹으로도 예방할 수 없었다.
“으, 으으으으!”
곧 서아의 비명이 병실 안을 채워 나갔다.
다른 아이들은 그런 서아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그러나 익숙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벌써 여러 번 이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금 몇 시죠?”
뒤늦게 뛰어온 주치의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전자시계를 보고는 어두워진 얼굴로 답했다.
“오후 2시요.”
“아……. 이번엔 19시간? 만 하루가 안 되는 거죠?”
“네.”
“점점 주네……. 이거…… 아……. 어쩌지?”
간격이 준다고 하더니 객관적으로도 그런 모양이었다.
이런 제길이라는 욕설이 절로 나왔다.
[수혁.]
‘어, 나 입 밖으로 욕 안 했는데.’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수혁이 입 밖에 내든 말든 뭔 상관입니까?]
‘응? 그럼 뭐지?’
그때 바루다가 수혁을 불렀다.
개소리라도 하려나 하고 봤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루다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수혁의 시야를 조작했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아이의 눈동자 움직임을 따라가는 실선을 만들었다.
좌우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안진? 아니, 안진이라기엔 느려.’
[네. 안진은 아닙니다.]
안진이란 안구의 진동을 의미했다.
주로 어지럼증이 있을 때 나타나는 소견이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편두통성 어지럼증이라는 진단명도 있었으니.
하지만 아이에게서 지금 보이는 눈동자 움직임은 안진이라기엔 느렸다.
그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일렁이는데?’
[네.]
‘편두통 전조 증상 시에 아지랑이가 피잖아. 그런 거랑은 다르지, 지금?’
[네, 다릅니다. 게다가 지금은 증상이 생기기 전이 아니지 않습니까?]
바루다의 말대로 아이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으…… 으!”
얼마나 아프길래, 아까까지만 해도 생글거리던 아이가 저런 표정이 될까.
어찌나 힘을 주는지 앙다문 이 사이에서 피가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그나마 주치의가 젖은 거즈를 물려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치아에 손상이 올 거 같았다.
[거기가 아니라, 아이의 눈을 봐 주십시오. 자꾸 시야가 움직이면 분석이 안 됩니다.]
‘아, 알았어.’
마음은 아팠지만, 공감만 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될 터였다.
수혁은 여기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러 온 게 아니라 환자를 치료하러 온 것 아닌가.
해서 수혁은 아이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이는 그사이 계속 이곳저곳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견디기 어려운 통증 때문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했으니.
[흠.]
‘패턴이 있어?’
그나마 약이 들어간 까닭에 극심한 통증은 몇 분 내에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남은 통증이 잔불처럼 남아 있었기에 아이는 더 일어나 있지 못했다.
대신 눈을 가리고 침대에 누웠다.
편두통에서는 빛과 같은 자극이 통증을 유발할 수 있어서였다.
[아직 잘 모르겠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
[네. 아이의 눈동자 움직임과 아이의 망막에 비췄을 만한 풍경을 재구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두뇌 가동 범위도 평소보다 더 넓어야 하고요.]
‘나 그럼 누워야겠네.’
[네. 그렇습니다.]
한때 우리는 우리의 뇌를 1%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뭐 이런 소리가 있었지만.
그게 사실이었다면 이미 뇌의 크기는 쪼그라들었을 터였다.
뇌는 잘만 쓰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향으로 쓰이지 않을 뿐이었다.
대부분은 운동하고 몸을 움직이는 데 쓰였다.
해서 바루다가 보다 강하게 구동하려면 운동을 제한해야 했다.
“조금 이따가 다시 오겠습니다.”
수혁은 곧장 병실을 떠나 당직실로 향했다.
[아니, 아니죠.]
‘뭔 소리야. 누워야지.’
[개미 눈곱만큼이라도 더 잘 돌리려면 카페인이 필요합니다.]
‘아……. 그래. 그건 인정.’
그러다 중간에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까지 추가해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 수혁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익숙한 사람도 많았다.
원체 커피를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머리 굴리려고 먹어 왔기에 그랬다.
‘음.’
수혁은 도핑까지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자, 그럼 갑니다.]
‘그래.’
[가요, 진짜?]
‘아, 가라 좀……. 으.’
그럼에도 바루다가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기묘한 감각이 찾아왔다.
몸 여기저기가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 이렇게 되면 멀미도 생겨야 하는데, 바루다가 그건 필사적으로 막아 주었다.
‘야, 오래, 오래 걸려?’
[아뇨. 오랜만에 풀로 가동하니까 꽤 성능이 좋네요.]
‘그래서 얼마나…….’
[이제 곧이요. 말만 안 걸었으면 벌써 끝났습니다.]
‘이런 시발.’
그럼에도 힘들긴 했다.
해서 수혁은 욕설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고, 정말 얼마지 않아 몸의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 어때?’
[보여 드릴게요.]
‘뭘?’
[아이가 어떤 식으로 풍경을 봤는지요.]
‘그게 가능해? 아.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