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새엄마? (1)
“뭔…….”
“무슨…….”
“아빠?”
태화 의료원 근처에 자리한 닭한마리집은 말 그대로 닭한마리 메뉴만 지난 20년 넘게 팔아 온, 유서 깊은 맛집이었다.
국물을 한 번도 안 떠먹은 놈은 있어도, 두 번 떠먹지 않는 놈은 없다는 말을 사장님이 심심치 않게 해 댈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별다른 지적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하지만 아마 사장도 지금 이 광경을 본다면 여태 해 왔던 말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무도 국물 다시 뜰 생각 따윈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숟가락을 내려놓기까지 했다.
“형, 뭐라고?”
“교수님, 방금 대체 뭐라고…….”
“아빠?”
신현태는 심지어 입가에 주륵 흐른 뿌연 국물도 인지하지 못했다.
훨씬 젊은 축에 속하는 곽미경이라고 해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곽미경 또한 손등에 주르륵 고기 섞인 국물을 흘린 채 이현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혼은 인간에게 있어 중대한 일이라 배웠습니다. 근데 이걸 하루 만에 결정하기도 합니까?]
‘아니. 보통은 안 그러지……. 사, 사기인가?’
이현종이 경력과 지위에 비하면 모아 둔 재산이 적기는 했다.
재테크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안 했기에 그랬다.
하지만 병원 출퇴근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또 변화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병원 앞에 있는 아파트를 오래전 매입한 것이 호재였다.
그렇지 않아도 강남에 있는 아파트인 데다가 병세권이기도 해서 미친 듯이 가격이 올랐는데 이 와중에 재건축까지 결정되면서 그야말로 수십억 거부가 된 참이었다.
그걸 노리고 누군가 붙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 인지했습니다. 음,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혁도 주의해야겠군요.]
‘나는 왜 갑자기.’
[이성 문제에 관해선 수혁을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말 그렇게 진지하게 하지 마. 진짜 같잖아. 내가 적어도 아빠보다는…….’
[도긴개긴.]
‘이 새끼가?’
[유유상종인가?]
수혁도 바루다와 이러쿵저러쿵 입씨름해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 나 장가간다고.”
반면 충격적인 발언을 꺼낸 이현종만큼은 침착했다.
아까부터 언제 이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렇다고 들은 사람들도 침착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수혁은 심지어 어제 미행까지 했음에도 그랬다.
분명 처음 만나는 거 같았는데 팔짱까지 끼더니만 장가를?
“아, 아빠. 다시 한번 생각을…….”
“뭔 생각을 또 해. 수십 년간 했어.”
해서 만류했더니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제 처음 본 사람 생각을 수십 년 했다는 건가.
아니면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 년간 남들 몰래 했다는 건가.
[뭐야, 시발.]
인공지능 바루다조차 과부하가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욕설까지 내뱉었다.
“뭘 수십 년을 해, 형.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수혁이 침몰하자, 바로 신현태가 나섰다.
수혁보다도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지난 수십 년간 이현종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지 않은가.
근데 갑자기 수십 년간 결혼을 꿈꿔 왔다고?
그런 놈이 그렇게 살았다고?
신현태의 눈에서 무언의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수십 년이야, 인마. 스무 살 때부터니까.”
“응?”
“진짜야.”
“으응……?”
하지만 스무 살부터 그랬다니까 뭔가 좀 묘했다.
말 자체도 그랬지만 이 말을 하면서 지은 표정이 그랬다.
아련하다고 해야 할까?
이현종 따위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닌 거 같은데, 짓고 있어서 정말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교수님. 교수님 결혼 전혀 관심도 없는 놈이 무슨 주례냐고……. 제 결혼식 주례도 안 봐주셨잖아요.”
신현태마저 침몰하자 마지막으로 곽미경이 나섰다.
아주아주 섭섭하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자격이 있었다.
곽미경은 이현종의 제자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술기를 흡수한 사람이지 않은가.
둘이 같이 쓴 논문만 해도 한 다스였다.
보통 이런 사이면 주례 정도는 당연히 서 줘야 하는데, 이현종은 이상한 핑계와 함께 거절했었다.
“미안, 미안. 너 두 번째 할 때는 내가 반드시 서 줄게.”
“뭔 말을…….”
하지만 이현종은 정도를 벗어난 사람이지 않은가.
제자의 한 맺힌 설움을 황당함으로 바꾸는데 걸린 시간이 1초가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를 침몰시킨 이현종은 품 안을 더듬더니만 핸드폰을 꺼냈다.
잠금 화면엔 당연하다는 듯 D-3가 떠 있었다.
‘아이고……. 아빠. 연애 처음 하시나.’
[무슨 뜻입니까? 저게?]
‘어제 날짜 쓰여 있잖아. 오늘 사귄 지 삼 일째라 이거지.’
[수혁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야, 내가 뭐 연애 한 번도 못 해 본 줄 아냐?’
[제대로 된 연애는…….]
‘사족 붙이지 말고.’
수혁도 그렇지만 나머지 둘도 비석처럼 화면만 보고 있었다.
D-3에서 장가란 단어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강렬한 충격을 받은 탓이었다.
하지만 잠금 화면이 풀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이현종의 여친 얼굴을 봤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으엇?”
“아니.”
“이건.”
신현태는 나름 스테레오 타입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너무 늦지 않게 결혼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아 아주 잘 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결혼과, 아이의 탄생과 입학과 졸업 등과 같은 나름 굵직한 사건을 모조리 겪어 온 사람이라는 얘긴데 지금만큼 놀랐던 적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 이기자 교수님?”
“이게 대체.”
“어…….”
곽미경 또한 얼마 전 득녀 하고 육아 휴직 갔다가 복직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처음 안았을 때보다 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다 할 경험이 없는 수혁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현종의 팔짱을 낀 채 근엄하면서도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기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어제 고백했어. 아니, 그제구나. 아무튼, 드디어 사귄다. 교수님 아니고 형수님이라고 불러.”
“아니……. 그제?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서요?”
“이제 원장도 내려놨겠다……. 수혁이도 부센터장이니 앞길 창창하겠다……. 나도 내가 하고 싶었던 거 좀 해 보려고.”
“하고 싶었던 거 다 하면서 살았잖아요.”
의학 연구도 원 없이 했고, 환자도 원 없이 봤고.
주말에 신현태 시간 되면 골프도 치고.
신현태가 보기엔 이현종만큼 인생 신나게 산 사람도 드물었다.
하지만 이현종은 그 말을 꺼낸 신현태의 입을 찰싹 때렸다.
닭기름이 묻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새꺄. 연애도 못 해 봤는데 하고 싶었던 걸 뭘 다해.”
“아니, 제가 수혁이 연애 못 한다고 걱정했더니 그게 뭐가 중하냐고 했잖아요.”
“수혁이 나이에는 그렇지. 근데 60 넘으면 좀 아쉬워져.”
“다 늙어서 무슨…….”
“이 새끼가. 나 인마 아직 한창이야. 얼마 전에 가연인가 어디서 전화도 왔어.”
“네? 결정사에서 전화가 와요? 거기 주식 들고 있는 사람들은 다 팔아야겠네. 정보력이 너무 없잖어.”
“하여간 이판사판이란 생각으로 고백했는데 의외로 너무 흔쾌히 받아 주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사별하고 바로 지르는 건데 그랬어.”
이현종은 이기자 교수 얘기를 했더니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깐족거리는 신현태를 보면서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이 어이가 없었다.
‘아니……. 결혼 전에 고백하는 선택지는 아예 없는 거야?’
굳이 사별하고 나서 개업할 건 없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여간 이현종은 후후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어제 드디어 어른도 됐고. 해서 나도 이제 좀 다르게 살아 보려고.”
“어른……?”
“해 봤다고.”
“아. 자세히 말하지는 마요, 제발.”
“그럴 생각도 없거든? 내가 미친놈이냐?”
“미친놈…… 맞……. 억.”
그러다 중간에 신현태는 한 대 때렸다.
수혁도 곽미경도 방금은 신현태가 선을 넘었다 생각했기에 별반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뜨악한 것은 숨어 있던 오진승이었다.
‘뭐야, 뭐야. 뭐야 이거!’
신현태가 이현종 라인이라면 오진승은 신현태 라인이었다.
때문에 이현종 원장과도 제법 가까운 사이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현종 교수님이랑 이기자 교수님하고 사귄다고?’
너무 놀란 나머지 북 하고 방귀까지 뀌었을 지경이었다.
“뭐야, 드럽게. 어떤 새끼야.”
“아.”
“아, 맞네…….”
이현종은 성을 내었고, 신현태와 곽미경은 그제야 오진승을 떠올렸다.
이현종 이상한가 안 이상한가 봐 달라고 불러 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뭐야, 여기 니들만 있는 거 아냐?”
“그, 진승이가 있어요.”
“진승이? 오진승? 그 입 싼 놈?”
“아유, 정신과 교수한테 입 싼 놈이라뇨…….”
“환자 얘기 못 하는 과 가니까 스트레스 받아 가지고 탈모도 왔었잖아.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 확성기처럼 떠들고 다니면서 머리 다시 났으니 입 싼 놈이지. 그놈이 있어?”
“그…….”
신현태는 도저히 실드를 쳐 줄 수가 없단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오진승은 상대를 환자라 인지하고 나면 절대 그 얘기를 떠벌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일에 대해서는 거의 무슨 메신저였다.
“야야. 일로 와 봐.”
다급해진 이현종이 오진승을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입이 근질거려 죽을 지경이 된 오진승은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다가왔다.
“네, 교수님.”
“너…… 너…….”
이현종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진승을 마주하고 보니, 이놈은 도저히 그럴 거 같지가 않았다.
대체 너는 왜 이렇게 입이 가볍다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 턱이 무거워서 자꾸 열리는 거라고 대꾸했을 때부터 포기하지 않았나.
“너 얘기할 거지?”
“참기 어려울 거 같아요.”
“벌써 한 건 아니고?”
“폰을 두고 와서 그건 아직.”
“미친놈.”
이현종은 어후 하고는 이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남의 입을 타고 소문이 나는 것보다는 공식적으로 밝히는 게 어떤가 해서였다.
<자기, 우리 사이 그냥 밝혀 버릴까? >-<>
신현태는 정말 우연히 그 문자를 보고 뒤로 돌아섰다.
‘하. 형…….’
요새 아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서지 않으면 돌아버릴 거 같았다.
<왜? 들켰어? 설마?>
<아니……. 그게…….>
<뭐 늙어서 좋은 일도 있지. 뻔뻔해져 보겠다며? 그렇게 해.>
<오! 고마워 자기 >-<>
<이모티콘은 좀…….>
그사이 이현종은 윤허를 받아 냈다.
웅.
그리고 수혁은 12시가 넘은 시간에 걸려온 전화를 내려다보았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통합 진료 센터는 응급실 진료도 겸하고 있었으니까.
[안대훈이군요?]
‘응급실 환잔가 보다.’
[이번 달 소화기인데, 아마 소화기 환자인 모양입니다.]
‘음.’
소화기라.
내시경이 나오면서 꽤 직관적인 과가 되었는데, 대체 어떤 케이스길래 이 시간에 전화를 할까.
안대훈이면 그래도 실력이 썩 괜찮은 편인데.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아들었다.
“교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