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내 심장이 고장 났나 봐 (3)
다행히 센터로 돌아왔을 땐 이현종도 더 이상 노래를 부르고 있진 않았다.
다만 홍조를 띤 얼굴로 묘한 미소는 짓고 있었다.
사정을 대강 예측할 수 있는 수혁은 기분이 나쁠지언정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곽미경은 이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설마…….’
원래도 기인으로 유명하던 사람 아닌가.
이제 와 정신이 아예 나가 버렸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곽미경은 이현종과 가장 친한 사람인 신현태에게 이런 부탁도 들은 바 있었다.
‘혹시 말야. 이상하면 바로 말해 줘. 다른 사람들 눈치채기 전에…….’
벌써 십수 년도 더 전에 들은 얘기였으니 더 진행했다면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이었다.
해서 곽미경은 몰래 신현태에게 문자를 보냈다.
<원장님. 이현종 교수님이 좀……. 아무래도 그 날이 온 거 같습니다.>
당연히 이 문자를 본 신현태는 혼비백산했다.
‘아니, 형! 이제 아들도 생겼겠다……. 원장도 물러났겠다……. 하고 싶은 진료만 하고 살면 되는데 왜…….’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평생 고독하게 살다가 이제야 아들도 생기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자리를 떨치고 일어선 신현태에게 눈길이 쏟아졌다.
태화 의료원의 원장이니만큼 얼마나 바쁘겠는가.
특히 지금은 다른 병원들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는 시기여서 더더욱 회의가 많았다.
“원장님?”
“왜 갑자기…….”
다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신현태는 이현종과는 달리 회의에 열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진료 영역에서의 역량은 조금 못 미칠지 몰라도, 원장으로서는 더 나은 것 같다는 평이 벌써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잠시, 잠시만 쉬죠. 지금 좀 급한 일이…… 급한 일이 생겨서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음. 빨리 오셔야 합니다? 오늘 안건도 이게.”
“네네.”
덕분에 신현태의 다소 막무가내식 발언에도 불구하고 대충 이해해 주는 분위기였다.
나름 훈훈하다고도 할 수 있었으나, 정작 배려를 받은 신현태는 웃지 못했다.
‘형……!’
친형제보다 더 돈독한 사이의 이현종인데.
비록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란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다다다.
신현태는 원장 체면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 곽미경이 말한 곳, 그러니까 센터를 향해 달렸다.
“음음.”
그동안에도 이현종은 이런저런 콧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레지던트들이 다소 멍청한 질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어? 심전도가 이상하다고? 하하……. 리드를 잘못 끼웠네. 우리 친구는 심장이 오른쪽에 있나 봐.”
“아…….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1년 차가 그럴 수도 있지. 다시 찍어 봐. 그리고 판독해.”
“네, 교수님.”
곽미경은 그 모습을 보면서 여태 이현종이 심전도 관련한 실수에서 저리 웃은 적이 있었나 돌이켜 보았다.
역시 없었다.
저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게 되었다.
‘안 돼…… 안 됩니다. 교수님은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그냥 인간적인 정 때문이 아니라, 의학적인 견지에서 봐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현종은 정말 대단한 의사였다.
특히나 그 전공 분야인 심장에서는 여전히 따라올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수혁조차 무리였다.
그는 처치를 못 하니까.
‘정말 잘 되셨나?’
[그랬을 확률이 높습니다. 오늘 이현종이 보이는 모습은 평소와 너무 다릅니다. 아예 분석이 안 될 정도예요.]
‘그렇지? 암만 봐도 이상…… 지금도 웃잖아. 새끼들이 일부러 쌓아 놨던 질문 저기 가서 다 터는 거 같은데?’
[그냥 두시죠. 안 그러면 이쪽으로 와서 질문 할 겁니다. 별 가치도 없는 질문은 받을 이유가 없죠.]
‘그것도 그렇긴 한데…….’
반면 수혁은 이현종이 대체 그 여자분이랑 어제 얼마나 좋은 일이 있었길래 저럴까 싶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였다.
“교수님, 그럼 항생제를 여기서 이렇게 바꾼 건 무슨 연유에서 그러신 건지요? 배양 검사상에서는 이 항생제도 충분히 효과가 있다고 나오는데요.”
눈치 빠른 김석현은 그야말로 이때다 싶었는지 질문을 쏟아부었다.
딱 들어도 3년 차 수준에서 질문하기엔 조금 민망할 만한 질문들이었다.
아마 평소라면 저딴 질문 던졌을 때 이미 한소리 튀어나왔을 터였다.
“아, 이거. 원래 균마다 특성이 있잖아? 이건 그냥 실험실 데이터라고 봐야지……. 실제 몸 안에서는 아무 효과가 없을 거야. 그러니 이 항생제를 써야지.”
“아, 그렇구나. 그럼 이거는요?”
“이거. 허허 공부 열심히 하네, 질문이 많어.”
“아, 아닙니다. 교수님.”
“전에 이수혁 교수가 강의했던 내용이랑 비슷하지. 이쪽 리드를 잘 보면……. 심방이 커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지? 그리고 다른 랩이나 엑스레이를 보면 심방에서 심실로 넘어가는 데 문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그러니…….”
“아, 구멍이…….”
“그래. 소아에서는 흔하지.”
심방중격결손마저 묻고 있었다.
3년 차면 저런 거 정도는 딱 봐서 모르더라도 몇 번 검색해 보면 알아낼 능력이 있을 텐데 그랬다.
신현태가 도착한 게 딱 그때쯤이었다.
‘왜 저렇게 웃고 있어.’
얼굴이 붉힌 채 멍청한 질문을 들으면서도 웃고 있는 이현종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 사실을 수혁이에게 알려야 할까?
‘아냐……. 가뜩이나 가족도 없는 놈이 우리를 얼마나 의지하는데……. 확실해지면 말해 줘야지.’
신현태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곽미경을 불렀다.
“계속 저래?”
“네. 아침엔 안 씻고 오신 모양이더라고요.”
“어? 안 씻어? 외박할 양반도 아닌데?”
“그러니까요……. 그거 까먹고 오셨나 봐요, 어떡해…….”
“아……. 안 되는데……. 우리 형 불쌍해서 어떡해.”
“흑.”
그리곤 대화를 통해 오해를 더 공고히 했다.
애초에 이현종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사이 오후에 오기로 했던 환자들이 도착했다.
고르고 고른 환자들이었으나, 이수혁과 이현종 콤비에게는 그리 문제가 될 만한 케이스는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문서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건 차이가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
게다가 둘 다 문진 및 신체 검진에 특화된 인간인지라 딱 보자마자 원래 써 있던 것에 비해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아까 5시에 수술 들어간다고 했지?”
“네. 흉부외과랑 안과 조인트 수술이에요.”
“흠……. 흉부외과라.”
이현종은 흉부외과란 단어를 되뇌면서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신현태와 곽미경은 불안해졌고, 이수혁은 여전히 상대가 누굴까만 궁금했다.
[아무리 그래도 수술방에 들어가진 않겠죠.]
‘그렇지. 게다가 그 교수님 앙숙이잖아. 들어가면 바로 기분 나빠질 텐데.’
그러면서도 이현종이 수술실까지 들어가진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현종은 보기 좋게 예상을 깨부쉈다.
“너 들어가?”
“저는 가 봐야죠.”
“그럼 나도 가지 뭐. 어려운 수술이잖아. 보기 드물기도 하고.”
“네? 들어가요?”
“어, 뭐 문제 있나?”
“아니, 그건 아니지만.”
수혁도 놀랄 정도였으니 곽미경과 신현태는 어떻겠는가.
곽미경은 또 눈물을 훔치러 화장실로 달렸고, 신현태도 애써 고개를 돌린 채 어깨를 들썩였다.
‘저 새끼는 왜 여기 와서 죽치고 있어. 또 수혁이 보러 왔나. 하여간 원장 일이나 할 것이지……. 내가 진짜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참는다.’
이현종은 그런 신현태를 바라보며 혀를 차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가 되었건 이제 어른이 되지 않았나.
이런 것 정도는 참고 넘어가 줘야 했다.
“수술방 어느 분이 가시죠?”
그때 이송 요원이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5시에 시작한다더니, 외래가 조금 일찍 끝난 모양이었다.
아니면 체외 순환기를 써야 하는 큰 수술이니만큼 미리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여간 예정보다 빨리 들어가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었기에 수혁은 웃으며 처치실에 있는 환자를 가리켰다.
“저기, 저분입니다.”
“아……. 같이 가세요? 교수님?”
“네.”
“알겠습니다.”
이송 요원은 환자가 누운 침대를 밀고 수술실로 향했다.
환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옆에 선 보호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와 계셨는데, 얼굴은 닮았지만 체형은 전혀 달랐다.
확실히 말판에 의한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아까 유전자 검사 냈지?’
[네. FBN1 유전자 테스트 냈습니다. 3주 걸린다고 하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그래.’
수혁은 그런 보호자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입으론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심려가 크시겠어요. 아드님이 너무 젊으신데…….”
“아이고……. 천만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교수님이랑 곽 교수님 아니었으면…….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수술도 좀 잘해 주십쇼…….”
아까 수술 및 질환에 관해 설명을 상세히 해서 그런가 반응은 좋았다.
오늘 오지 않았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데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특히 자식이 아플 때 부모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자식 잃은 부모는 지칭하는 단어가 없을 만큼, 이 세상에 없어야만 하는 존재니까.
“네, 태화 의료원의 흉부외과는 국내 최고입니다. 최선을 다할 겁니다.”
수혁은 잠시 이현종의 눈치를 살피며 흉부외과 칭찬을 했다.
걱정과는 달리 이현종은 별반 반응이 없었다.
‘아이고.’
‘형…….’
그럴수록 곽미경과 신현태의 낯빛은 어두워져만 갔다.
같은 이유로 둘 다 이 시간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술실에 따라갈 이유가 하등 없는 사람들임에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이 이러다 더 이상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잡아갈 생각이었다.
다행히 이럴까 봐 틈틈이 모아 둔 성금도 있고 하니, 어떻게 모실 수는 있을 터였다.
“어, 이 교수. 환자분이야? 이야 잘생기셨네.”
수술실 입구엔 흉부외과 교수가 나와 있었다.
외과가 다 그렇듯 호탕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환자가 젊어서 그런가 평소보다 더 아무렇지 않음을 가장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환자도, 보호자도 심지어 집도의 자신도 조금이라도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아유, 교수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건강하게 다시 볼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들어가죠.”
흉부외과 교수는 말하다 말고 잠시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 따라붙은 떨거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얘네들은 여기 왜 왔어?’
보호자만 없었으면 한마디 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는 게 한이었다.
수술실까지 따라 들어오면 면박이라도 줄 생각에 조금은 신나기도 했다.
“저기.”
하나 먼저 입을 뗀 것은 뜻밖에도 이현종이었다.
“응?”
“형.”
“교, 교수님.”
흉부외과 교수도, 신현태도 곽미경도 놀랐다.
하나 정작 당사자인 이현종은 뻔뻔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무 도발했었지? 미안해. 흉부외과도 흉부외과의 영역이 있는 건데, 하하.”
“어……?”
몸 따라 마음도 어른이 되기로 결심한 하루 아니던가.
안 그래도 찾아가려고 했는데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곽 교수…….’
‘네.’
동시에 신현태, 곽미경은 오늘 밤이라도 정신과 오진승에게로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