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화 와 몰려든다 (5)
똑똑.
수혁은 방금 다녀온 병실 문을 두드렸다.
반쯤 열려 있기는 했다.
상태가 급변할 수 있기에, 스테이션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나름의 조치를 취한 까닭이었다.
“아, 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퍽 멀쩡해 보였다.
산소 요구량이 늘었음에도 그랬다.
그나마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10년은 젊어서 그럴 거라고, 수혁은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어제보다 확연히 더 지쳐 보이는 환자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만 봐도 뭔가 핀트를 놓치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환자분.”
“네.”
하지만 이젠 아닐 터였다.
그 때문인지 수혁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환자도 그걸 느꼈는지 자세를 조금 고쳤다.
수혁과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혹시 여기 같이 온…… 성기원, 이종익 환자 알고 있나요?”
“네? 그게 누구…….”
“누군지 모르세요?”
“네, 모르는데.”
예상 외의 대답이었다.
당연히 알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이상한데?’
[레지오넬라가 아닐까요?]
오염된 물로 인한 감염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사람끼리는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특징을 가진 균이었다.
어제 보호자들이 보여 준 행태가 이상해서 2차 병원 과장에게 물어보니 보호자들은 이미 집에서부터 밀접 접촉을 해서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했다.
그 말은 곧 사람끼리 감염을 잘 일으키지 않는 균이란 얘기가 되지 않는가.
게다가 지금 환자 검사 결과에서 보이는 저나트륨혈증, 저인산혈증 그리고 간 수치 증가 및 엑스레이의 형태 또한 레지오넬라와 아주 유사한 특징을 보였다.
‘이상하네? 같은 공간에서…… 에어컨으로 인한 감염이 제일 설득력이 있는데?’
[그러니까요. 근데 아무리 분석해 봐도 이 얼굴은 진짜 모르겠다는 얼굴입니다.]
‘음.’
해서 확신하고 있었는데 정반대되는 대답이 튀어나온 상황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재차 머리를 굴려 봐도 여전히 레니오넬라 이상의 확률을 가진 감염체는 나오지 않았다.
항생제 사용 이력을 봐도 그랬다.
이놈은 지역사회성 폐렴이면서도 세프트리악손이나 타조신이 잘 듣지 않았으니까.
한데 모른다고?
“음……. 잠시만요.”
“네.”
일단 작전상 후퇴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해서 수혁은 손을 내젓고 밖으로 나왔고, 잔뜩 기대하고 있던 김석현과 환자는 조금 김빠진 얼굴이 되었다.
‘뭐지? 헛발질하신 건가?’
특히 김석현은 실망의 정도가 좀 더 심했다.
아까 보여 준 귀신 같은 삽관도 그렇고, 안대훈에게 들은 것도 있어서 정말 내심 기대를 하고 있던 탓이었다.
그사이 수혁은 다른 병실에 들어갔다.
성기원 환자가 있는 병실이었는데, 이 환자는 산소 요구량이 좀 더 높기도 하거니와 나이가 거의 70에 가까워 컨디션이 그리 좋지 못했다.
지금도 자고 있었는데, 문진을 하려면 깨워야 했다.
찰칵.
한데 수혁은 깨우거나 문진을 하는 대신 얼굴 사진만 찍고 다시 나왔다.
김석현은 이제 실망스러운 마음보다는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뭐여.’
대체 뭐 하자는 걸까.
해서 벙찐 얼굴로 서 있는데, 수혁이 다시 아까 병실로 들어갔다.
“어어.”
아무리 그래도 교수가 회진 도는 데 따라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뒷방 노인네 취급받는 교수도 아니고, 수혁은 현재 병원 내에서 실세 중 하나로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딱히 수혁 본인은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주목을 받았다.
딱 이현종이 그랬기에 그랬다.
“환자분, 이분 모르세요?”
뭐 하나 봤더니, 수혁은 방금 찍은 환자 얼굴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 약간 추한데.’
설마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 못 해서 저러나.
김석현은 저도 모르게 옅은 한숨을 쉬었다.
하나 환자 반응이 아까와 조금 달랐다.
“어……. 모, 몰라요.”
모른다는 말은 여전했다.
하지만 비언어적 전달은 달랐다.
[거짓말하네요?]
‘이름은 모르는데 얼굴은 안다?’
바루다는 그런 종류의 언어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발달한 분석 체계를 갖추게 된 지 오래였다.
상대의 교감신경 톤만 봐도 알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원리이지 않은가.
거짓말 탐지기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가진 바루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같은 공간 안에 있는 건 맞지만,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아냐, 스쳐 지나간 정도론 이렇게 단번에 알아보긴 어려워. 게다가 이 환자 얼굴이 평소랑 조금 다를걸.’
[음, 타당한 의견입니다.]
아프면 얼굴이 수척해지기도 하지만, 누워 있다 보면 붓기도 하지 않은가.
사소한 변형이지만 스쳐 지나간 정도로만 보아 온 사람이라면 알아보긴 어려울 정도의 변화이기도 했다.
그렇다는 건 어느 정도 밀접한 접촉이 있었단 얘기였다.
한데 이름은 모르고, 얼굴은 알아보는데 거짓말을 한다.
‘이상한데…….’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걸까요?]
‘일단 2차 병원 쪽에 전화를 좀 해 봐야겠어.’
[네.]
환자가 숨기고 있는 걸 털어놓을 거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해서 수혁은 더 얘기 나누길 포기하고 밖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 김석현은 조금 더 실망했으나, 환자는 명백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후.”
수혁이 나간 것만으로 뭔가 안도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수혁은 그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바루다 덕이었다.
[확실히 수상하군요].
해서 수혁은 서둘러 2차 병원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네. 이수혁 교수님.”
아직 8시도 안 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아무래도 벌써 출근한 모양이었다.
하여간 내과 의사라는 게 그리 만만한 직업은 아니었다.
“어제 보내 주신 성기원, 이종익, 임병욱 세 분 말입니다.”
“아, 네. 뭔가 문제가 생겼나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요.”
“네네.”
“환자분들 외에 또 비슷한 증상 보이는 환자 없을까요? 그쪽 병원 말고 다른 병원이라도요.”
“어……. 제가 여기 혼자 있는 건 아니라서요. 한번 알아보려면 시간이 걸릴 거 같습니다.”
“네, 그거 알게 되면 연락 주세요.”
“네네.”
수혁은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곤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처방을 바꿨다.
중환자실에 간 환자의 항생제는 퀴놀론 제제인 씨프로사신으로, 다른 두 환자는 아지스로 마이신으로 바꾸었다.
“음?”
항생제 변경은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다.
근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는 얘기.
김석현은 혹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벌써 혈액 배양 검사나 객담 배양 검사 결과라도 떴나 하고 컴퓨터를 뒤졌다.
하지만 고작해야 어제 나간 검사가 벌써 나왔을 리가 없었다.
1주일 이상 걸리는 검사들이니 당연했다.
“아, 이거.”
“네.”
“음.”
수혁은 그냥 말해 줄까 말까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레지오넬라 폐렴 알지?”
“아……. 알죠.”
이름이라면 수도 없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해서 김석현은 조금 자신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내일 아침에 준비해서 발표해 봐.”
“아.”
“왜?”
“아뇨, 네. 하겠습니다.”
하지만 발표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예 학생 시절에 하는 발표라면 딱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를 가르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김석현은 3년 차였다.
내과가 3년제가 되었으니, 다른 과 같으면 4년 차 입장이란 얘기.
그 말은 곧 피교육자인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부담되겠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요?]
‘뭐……. 열심히만 하는 애면 발표만 준비할 거고…….’
센스까지 있는 놈이라면 이 환자들의 진단명이 레지오넬라라는 걸 알고, 그에 맞춰서 발표 방향을 맞춰 나갈 터였다.
어쩌면 진료에도 도움을 줄 수도 있었고.
이미 수혁이 나선 마당에 뭐가 더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2차 병원 과장에게 전화가 온 것은 오후 4시경쯤이었다.
원내 정보만 알아오더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지역 병원에까지 다 전화를 돌린 모양이었다.
“네, 과장님.”
“알아보니까…… 저희 병원에도 하나 있고요. 다른 병원에도 둘이나 있습니다. 말씀 주신 대로 발병 일시랑 저나트륨혈증, 저인산혈증, 간 수치 증가 등을 참조했더니 공통점을 보이는 환자들이 보이네요.”
“그 환자들 나잇대가 어떻게 되죠? 히스토리나 뭐 이런 것중 특이한 것은 없었고요?”
“아……. 그게, 저희 병원에 있는 분은 제가 직접 찾아가 봤거든요.”
“네.”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다면 이런 식으로 얘기를 꺼내진 않을 터였다.
운을 띄우는 폼이 약간의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해서 기대에 찬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사실 약 들으면 더 알아볼 필요는 없지 않나요? 아까는 수혁에게 휩쓸려서 오판을 했는데, 치료하는 데 여기서 뭘 더 알아내지 못한다 해도 문제없을 거 같습니다만.]
‘어, 그렇지. 그래도 궁금하잖아. 뭐길래 숨겨?’
[음.]
‘방해하지 마. 어차피 물어봤으니까.’
[알겠습니다.]
바루다의 투덜거림을 잠재우는 사이, 과장이 말을 이었다.
“딱 봐도 심상치 않게 생기셨더라고요. 아세요? 금목걸이 딱 하고, 쫄티 입고.”
“아……. 뭔지 알 거 같아요.”
“문진하다가 슬쩍 무슨 일 하시는 분이냐 물었더니 하우스 운영한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하우스냐고 하니까 하우스가 비닐하우스지 뭐, 라고 하는데……. 이게 아무래도 좀 이상하잖아요? 선생님 말씀하신 게 맞다면 레지오넬라고, 검사 양상이 레지오넬라에 합당한데 무슨 비닐하우스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겠습니까.”
다른 병원 환자들 중에 나이 든 여자도 있고 아주 젊은 사람도 있었다.
태화에 온 사람들도 나이도 직업도 다양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비닐하우스에 모일 일이 뭐가 있겠는가.
환자가 말한 하우스는 별로 좋지 않은 의미의 하우스일 가능성이 컸다.
“더 캐묻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거기 에어컨에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위생에 신경 쓸 이유가 없겠죠.”
“근데 아직 4월인데 벌써 에어컨을 돌릴까요?”
“좁은 공간에 여럿 모여서 도박하느라 열 올리면 한겨울 말고는 덥지 않을까요?”
“아,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수혁은 학창 시절 책 치기 하던 걸 떠올렸다.
고작해야 판돈 100원, 200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기는 뜨거웠다.
그 판돈이 만 원, 2만 원 수준이 아니라 수십만 원 단위로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튼, 감사합니다.”
“아, 네. 저희도 약 바꿨습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수혁은 감사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그러시죠?]
‘야, 생각해 봐. 도박장이 불법 시설인데 거기 에어컨 필터를 갈까?’
[안 가나요?]
‘그럴 가능성이 작지. 그럼 이런 환자 계속 나올 거야. 이번엔 운 좋아서 기저질환이 별로 없지만……. 아니지. 다 파악이 안 되었을 가능성이 더 커. 어디선가 죽어 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음. 그렇게 생각하면 큰일이군요.]
‘해결을 해 봐야 될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