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화 와 몰려든다 (3)
환자 셋은 거의 동시에 몰려들었다.
보호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환자가 와도 워낙 빨리 해결해 댄 탓에 다소 한가하다는 느낌까지 주던 센터는 금세 북적거렸다.
“제, 제가 담당입니까?”
아침 컨퍼런스에서 정해졌던 대로 주치의는 1년 차가 맡지만, 실질적인 책임은 3년 차 김석현에게 주어졌다.
3년 차가 제아무리 대학 병원에서 가장 활동적으로 날아다니는 연차라지만 이 정도는 너무 과한 대우라 할 수 있었다.
과하다 못해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응. 걱정 마. 사고 치는 거 같으면 바로 개입할 거니까.”
물론 수혁은 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어차피 1년 차 때부터 특별 대우를 받았던 몸이지 않은가.
또 2년 차부터는 아무것도 모르는 주치의들 백 봐주는 데 강제로 익숙해져야만 했다.
‘내가 있으면 사고를 치고 싶어도 칠 수가 없지.’
[네, 한순간에 파악이 가능하니까요.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직 이 환자가 뭔지 우리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혹시…….]
수혁은 바루다의 말줄임표에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웃으면 이상한 모양새가 되리란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웃었다.
‘설마 우리가 늦겠냐?’
[제가 말하는 제 경쟁 상대는 이 3년 차가 아닌데요.]
‘응? 그럼 뭐야.’
[감염체요. 환자 생각 안 합니까? 죽을 수도 있어요, 환자.]
‘아.’
하지만 바루다의 말뜻을 파악한 후에는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맨날 저보고 깡통이라고 하더니, 인간 맞습니까?]
‘그, 그만.’
[어휴.]
‘후.’
순간 인공지능만도 못한 인간이 되었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상한 표정 또한 짓게 되었는데, 다행히 누구도 수혁을 보고 있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 있던 김석현마저 환자 생각에 혼이 나가 있었던 탓이었다.
“일단 환자 보자.”
“어, 네? 교수님도 보시나요?”
“나도 봐야지. 설마 하루 이틀 너 보랬다고 나는 나 몰라라 할 줄 알았어?”
“아……. 아, 네. 감사합니다. 다행…….”
김석현은 수혁의 지시가 있고 나서야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환자야 정신도 힘도 없어 누워 있기만 했지만.
보호자들은 한창 병실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엇, 교수님 오셨다.”
“아, 안녕하세요.”
예전과는 위상이 달랐다.
레지던트가 아니라 교수기 때문이었다.
이런 반응이라는 게 반가워야 할 텐데, 수혁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 거기서 무슨 지침 못 들었나요?”
“네?”
돌아오는 게 인사가 아니라 질문이자, 보호자가 엇 하는 반응을 보였다.
젊은 놈이 싸가지 없다는 생각이 든다기보다는 쌔한 느낌이었다.
지침이라니.
뭐지?
“이 환자 호흡기 질환이고…… 나머지 두 환자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전염력이 있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아……. 저희는 그런 얘기는…….”
“하, 이런.”
수혁은 잠시 이마를 짚었다.
수혁을 포함한 레지던트 그리고 간호사들은 모두 n95 마스크를 끼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거기 과장이 개념이 좀 없네요.]
‘그러니까. 뭐……. 무리는 아니긴 한데…….’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날씨의 영향도 있어, 원래부터 전염병이 적은 나라이기도 하거니와 개발도상국을 벗어난 지 오래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염 학회에서도 원내 감염 및 기회감염을 제외하고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지경이었다.
당연히 일반 전문의들은 감염에 대한 경각심이 덜했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싶기는 했지만.
“일단 여기 감염 주의 병실입니다. 무조건 n95 끼고 들어오셔야 해요. 안내 못 들었나?”
조금씩 날카로워지는 수혁의 목소리에 담당 간호사가 끼어들었다.
“제가 말씀드렸는데 그냥 무작정…….”
“후……. 지금이라도 나가세요. 나가서 마스크 끼고 한 사람씩만 들어오세요. 짐 정리 급할 거 없지 않습니까?”
“아, 네네. 죄송합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젊은 의사가 무섭네.”
곧 보호자들이 우르르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간호사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다른 병실은 보호자들 안 들어왔어요. 거기서 안내 못 받았던 건 같은데……. 그래도 말 듣더라고요.”
“아휴.”
“이게 이상하게 간호사 말은 안 듣고 의사가 말하면 듣는 사람들이 있어요.”
“일단 효시해 주세요. 저도 유의해서 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진상이로군.
수혁은 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저 보호자들은 무조건 내일모레 응급실 통해 접수해서 엑스레이 찍도록 해 줘요. 원내 감염 특징이 정상 면역인들한테는 잘 감염이 안 되긴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상생활도 제한하라고 할까요?”
“일반 마스크 끼고 하는 건 문제 없다고 해 줘요.”
“네. 감사합니다.”
“검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해 주시고요.”
“네.”
감염체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격리하는 건 오버였다.
만약 그런 지침이 있었다면 현대 사회는 종종 마비되리라.
하여간 수혁은 거기까지만 하기로 결심했다.
“보호자 컨트롤은 네가 안 되니까 내가 했어. 자, 이제 환자 보자.”
“아……. 네. 감사합니다.”
해서 자연스레 김석현 뒤로 가 섰다.
김석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환자에게로 갔다.
3년 차이지 않은가.
단독 회진도 돌아본 몸이었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그…… 네. 안녕하세요.”
환자는 일반 공기에서는 산소 포화도가 조금 떨어져서 3리터가량을 코로 주고 있었다.
다행히 그렇게 산소를 주고는 숨이 차 보이진 않았다.
주관적인 증상 또한 아주 중요하기에 수혁은 바루다를 통해 데이터화했다.
그뿐만 아니라 환자가 숨 쉬는 모양새 또한 기록했다.
“환자분 주치의인 김석현입니다.”
“네, 잘 부탁…… 합니다. 어유,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라.”
“네. 지금 제일 불편한 게 뭐세요?”
“지금?”
“네.”
“원래는 숨이 찼는데……. 이거 하고 나서는…… 그거보다는 기침이…….”
주된 호소 증상의 확인도 중요했다.
너무 여기에만 매몰되었다가 아예 헛다리를 짚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역시 질환 또한 주된 호소 증상, 증 주소와 관계있었다.
“네, 기침이랑 호흡곤란.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수혁이 제일 처음 문진할 대상으로 이 환자를 고른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우선 환자가 제일 젊었고, 바이털 또한 안정적이었다.
제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 모르겠네. 1주?”
“1주일. 음. 바로 병원에 가셨나요?”
“아니, 아니. 걍 동네 병원 갔다가……. 이틀 있어도 하나도 안 좋아지고 나빠지기만 하니까 큰 병원 가래서 갔지. 그랬더니 또 가래서 여기 왔고. 의사 양반 나 심각한 건가?”
환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하긴 전원을 두 번이나 반복하지 않았나.
꽤나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평생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 일단 그걸 알아보려고요. 병실 오시면서 보셨겠지만, 태화는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입니다. 최선의 치료를 하겠습니다.”
“아, 뭐……. 그래요. TV 나온 의사도 있더구만.”
환자는 김석현 대신 묵묵히, 그러나 찬찬히 자신을 살피고 있던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그런 환자를 마주한 채 미소를 지어 주었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바루다의 조언을 통해 완성한 미소였다.
효과는 확실했다.
환자는 퍽 안심헀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더 여쭙고 검사를 해 볼게요.”
“네, 그렇게 하세요.”
김석현은 그에 힘입어 방금 말했던 대로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검사를 처방했다.
입원 처방에서는 딱히 실수할 만한 게 없다.
애초에 대학 병원급에 오는 환자들은 어려운 환자들이지 않은가.
때문에 검사는 소위 ‘긁는’ 느낌이 강했다.
이것만 하면 어지간한 건 놓치지 않는단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거의 다 나간다고 보면 되었다.
“후.”
김석현은 그렇게 세 환자를 보고는 스테이션 의자에 털썩 하고 앉았다.
사실 3년 차쯤 되면 병동 하나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긴장을 해서 그런지 무척 힘이 들었다.
‘태화 최고의 천재 이수혁…….’
그는 그렇게 의자에 포개진 채 수혁을 응시했다.
천재, 천재 하더니만 역시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나하나 다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질문 하나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안대훈과 꽤 친하게 지낸 탓도 있었다.
새끼가 어찌나 입을 터는지, 그 얘기만 들으면 이수혁은 거의 신이었다.
실제로 안대훈은 최근 들어 밥 먹기 전에 수멘이라는 말을 하고 먹기도 했다.
우하윤조차 그건 좀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지 만류하고 있었지만.
김석현이 볼 때 우하윤도 곧 따라 할 거 같았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잖아. 하, 오스키 시험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는데.’
오스키.
일명 실습 시험인데,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04학번이 첫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를 했으니 이제 겨우 10년이나 됐을까?
하여간 배우나 연영과 학생이 환자로 연기를 하고, 옆에 교수가 진료 과정을 지켜보면서 채점하는 시험이었다.
애초에 어떤 질환이 나온다는 건 알고 있는 데다가 거기서 떨어지는 사람이 드물기도 해서 다들 무시하는 시험이지만, 막상 들어가면 제일 떨리는 시험이기도 했다.
‘와, 그러고 보니까 이수혁 교수님도 주니어니까……. 시험 감독 들어가겠네. 거기서 저렇게 우두커니 서 있으면 붙을 애도 다 떨어지겠다.’
김석현이 이렇게 수혁을 되새기는 사이, 수혁은 환자 셋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잇대가 비슷해.’
[네, 그렇죠.]
‘입원했던 병실이 다 다르고.’
김석현은 모르고 있지만, 수혁은 아까 한번 더 슥 돌고 온 참이었다.
하루 이틀 두고 보겠다고 했지만 정말 뒷짐 지고 설 수는 없지 않은가.
뭔지 다 아는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수혁도 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해서 김석현이 빼먹은 질문을 하고 왔다.
그 결과 결정적인 단서 몇 개를 구할 수 있었다.
[네, 병실이 다릅니다.]
‘그 말은 원내 감염이라면 정말 의료진 손을 통해서라는 얘긴데.’
[그렇습니다. 근데 그 2차 병원 과장, 항상 눈앞에서 알코올 문질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응. 가능성이 떨어지지.’
[원내 감염이 아니란 얘기가 될까요?]
‘음.’
손을 닦았는데도 감염이 되는 경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알코올은 아주 강력한 소독제 중 하나이지 않은가.
물론 비누로 닦는 것보다야 약하긴 하지만.
바이러스가 세균이 죽지는 않더라도, 감염력은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단백질 구조가 파괴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증세가 지나치게 비슷해.’
[일단 검사 결과가 나와 보면 더 확실해지겠죠.]
‘그 양상도 비슷하면…… 연관성은 있다는 건데……. 뭘까?’
[기다려 봐야죠.]
‘하, 내일 언제 오나.’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여든 아니라 백 살까지도 거뜬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