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화 부산에서 온 환자 (3)
“어떤 거 같아?”
이현종은 통합진료센터로 돌아온 수혁을 향해 물었다.
환자는 지금 엑스레이를 찍고, 장내 병변 확인을 위해 내시경실로 이동한 참이었다.
언제까지 환자 컨디션이 이럴지 알 수 없으니, 괜찮을 때 바짝 검사를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괜히 질질 끌다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 내시경조차 도전이 될 수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몇 번 그랬던 경험이 있었다.
“아직은 모르겠어요. 기회감염이다 보니.”
“그래, 골치 아프지. 나는 그건 진짜 모르겠더라.”
평소와 달리 이현종은 뒤로 빠졌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 해도 안 맞는 부분은 있기 마련 아니던가.
이현종은 기회감염에 도통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재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어쩐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랬다.
“일단…… 마이코플라스마 아니면 히스토플라스마를 생각했는데. 마이코플라스마라고 하기엔 폐가 또 너무 깨끗해요.”
“음. 나한테 묻지 말고 장 교수랑 해. 아니면 신현태나. 나는 잘 몰라.”
“아, 네.”
그 말은 곧 이번만큼은 이현종의 괴물 같은 재능을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었다.
태화 의료원의 감염내과는 꽤 뛰어난 편이었으니까.
애초에 수혁도 감염이 젤 자신 있는 파트 아니던가.
신현태를 비롯한 교수진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증거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생각에도 역시…… 마이코플라스마를 의심해야 된다고 봐. 근데 그렇다기엔 확실히 폐가 깨끗하지.”
“반드시 폐 병변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죠?”
“그렇지. 면역이 떨어져 있다면 폐뿐만 아니라 피부나 장에도 침범이 가능하니까. 특히 출혈성 설사를 일으킬 수 있어.”
“하지만 그런 증상이 있을 때…… 폐 병변이 없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그건…….”
장덕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아직 통계로 잡히진 않았다.
워낙에 드문 경우니까.
하지만 장덕수는 리뷰 논문 외에 케이스 리포트도 쉬지 않고 탐독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적어도 태화 의료원 내에서는 도태되고 말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류의 인간들이 교수가 되기 마련이었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하지만 환자의 면역력을 생각해 봐. 마이코플라스마 감염의 매개가 딱히 폐일 필요가 없을 지경이야.”
“그건 그래요.”
범혈구 감소증이 에이즈가 아니라 다른 감염에 의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섣부른 추정은 위험했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주어진 단서를 토대로 하나하나 논리를 쌓아 가는 것이었다.
확실히 환자의 면역력은 엉망진창이니, 장덕수의 말처럼 폐가 아니라 다른 부위로 쳐들어왔어도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과연 폐가 매개가 되지 않더라도 마이코플라스마가 모든 기회감염 중 가장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겁니다. 비정형 형태의 감염을 말하는 것인데…… 그럴 확률은 희박합니다.]
‘그렇게 되면 히스토플라스마가 오히려 더 위로 올라오나?’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히스토플라스마일 확률도 낮습니다.]
‘결국…… 오리무중이 된 셈이네.’
[네.]
수혁이 이런 말을 꺼내자 장덕수도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확실히 마이코플라스마가 가장 흔한 기회감염원 중 하나일 수 있는 건 폐를 통해 감염을 일으키기 떄문이지 않은가.
폐가 아니라 다른 경로로 들어왔을 경우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놈 역시 다른 기회감염원들과 마찬가지로 확률이 대폭 떨어졌다.
“내시경실에서 검사 소견 올리고 있답니다.”
잠시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으려니, 대훈이 전화를 받아 수혁과 일행에게 알려 왔다.
검사 기록지를 켜 보니 과연 내시경 사진들이 주르륵 올라오고 있었다.
전 처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을 염려했으나, 부산대 병원 응급실 내원 후 제대로 먹은 게 없어 그런가 검사는 제대로 되어 있었다.
“음…….”
“일단 직장은 깨끗하고. 하행 결장은…… 어…….”
별 관심 없다던 이현종도 이 순간만큼은 가까이 와 있었다.
듣다 보니 장덕수도 수혁도 잘 모르는 눈치 아니던가.
더럽게 어렵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역시 천재 이현종이 나서 줘야 할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다고 갑자기 기회감염에 대한 지식이 샘솟는 것은 아니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수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상처가 있네요.”
“흐음……. 진짜 이건 상처로 보이네?”
“네. 장염이라기보다는 뭐가…… 할퀸 거 같은 상처네요. 소화기 쪽에서는 뭐라고 했죠?”
“아직 의견까지는 안 남겼어. 그냥 영상만 올라오고 있는데. 일단 쭉 보고 다시 확인하지.”
“네.”
보통의 장염이라면 이렇게 할퀸 듯한 상처가 아니라 표면이 궤양처럼 패이거나 하여간 좀 다른 양상의 소견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이런 패턴의 상처는 굉장히 낯설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감염내과 장덕수와 이제 갓 전문의를 단 수혁에게는 그러했다.
그냥 한 상처만 이렇다면 그런갑다 하고 넘어갈 텐데.
보다 보니 평행 결장 및 상행 결장에도 비슷한 소견이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상처마다 발생 시점이 다른지, 어떤 것은 다 나아가고 있고 어떤 건 피가 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의견…… 아, 들어왔어. 거기서도 외부 요인으로 인한 상처로 보인다고 쓰여 있는데…….”
“의심 가는 질환 같은 건요?”
“그런 건 없어. 아 여기. 하나만 있으면…….”
“하나만 있으면요.”
“이물을 삼켰을 때, 뭐 그러니까 닭뼈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거 먹었을 때 이런 식으로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데. 각 상처마다 생긴 게 며칠에서 일주일 넘게까지 차이가 나는 거 같대.”
“음.”
이물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하지만 확실히 이물이었다면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리 오래 걸려 봐야 하루 내지 이틀일 터였다.
게다가 그 뒤에 쓰여진 것처럼 상부 위장관에서 주로 나타나지, 하부 위장에 까지 상처를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먹을 게 아니라 열쇠나 작은 반지 같은 거라면 얘기가 좀 다르겠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가능성은 없다 이 말이었다.
“극히 드문 소견이다. 각 과의 협진이 필요하겠다. 통합진료센터 진료를 추천함. 이렇게 써 있어. 아……. 지금 통합진료센터에서 의뢰한 건데 의견이 뭐가 이래.”
“그래도 상처가 외부 요인이 의심된다는 걸 알아내긴 했네요.”
“정말 그런 건지는 알 수가 없어. 말이 되니?”
“하긴…… 그것도 그래요.”
대장 안에 뭐가 들어와서 할퀴고 나갔다는 얘긴데.
그게 심지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 아니,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니.
이걸 더 이상 의학의 범주에서 다뤄야 할까?
거의 미스터리물로 넘어가야 할 수준이었다.
“피부랑 관계없는…… 병변일 수도 있겠어.”
“하아.”
“다시 원점인가, 그러면?”
“네. 의심 가능한 질환이 70개도 넘어요. 수확이 있다면 마이코플라스마일 가능성이 떨어졌다 이건데…….”
“음.”
별 의미 없다는 얘기였다.
장덕수도 바로 그 뜻을 알아먹었기에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띵동.
그때 분위기에 비하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발랄한 벨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피자 배달부가 서 있었다.
병동까지는 배달이 안 되지만, 외래 동이나 센터까지는 직접 배달이 되기에 여기까지 직접 온 모양이었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해진 분위기 탓에 눈치를 보고 있던 레지던트 중 하나가 부리나케 몸을 날렸다.
누군가 하고 보니 하윤과 대훈이었다.
하여간 누가 수혁 팬클럽 회장 부회장 아니랄까 봐 수혁을 살뜰히도 살폈다.
“그래, 일단은 먹고 하자고. 당장 어떻게 될 거 같진 않잖아. 약도 우선 들어가고 있고.”
이현종은 그렇게 들고 온 피자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전혀 모르겠거든.’
뭔가 해답을 딱 주면서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겠지만.
정말이지 단 하나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드는 순간이었다.
일단 히스토플라스마가 기생충인지 원충인지도 헷갈렸다.
마이코플라스마일 확률이 떨어졌네 어쨌네 하는 것도 가슴속 깊이 와닿지는 않았고.
“그래도 어? 원장이라고 비싼 거 샀네. 존스 페이보릿에…… 치킨도 왔어. 61계 양념. 나는 치킨 중에는 이게 젤 좋더라.”
“네, 먹고 생각할게요.”
수혁도 이현종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기에 우선은 웃었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일단 먹어야 더 잘 돌릴 수 있지 않겠는가.
바루다도 그런 의견에는 동의한 마당이었다.
[네, 가뜩이나 성능이 그렇게 우수하지 않은데 연료라도 팍팍 넣어야죠. 당을 먹읍시다. 콜라 마셔요.]
‘콜라 건강에 안 좋은데.’
[아무리 마셔도 지금 저 환자보다는 좋을걸요.]
‘그렇게 말하니까 또…….’
해서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이니 옆에 있던 장덕수도 군침을 흘렸다.
하여간 피자랑 치킨 조합은 나이를 막론하고 유혹적인 법 아닌가.
여기서 그냥 일어날 수 있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네, 저도 먹어도 될까요?”
“장 교수도?”
“와……. 정 없게…… 나가요?”
“이거 원장님이 우리 센터에…….”
“와…….”
“장난이야, 장난. 너무 많잖아. 남기면 버려야 해.”
“짬 처리시키시는 느낌인데요.”
“어, 맞어. 자네 잘 먹잖아, 아무거나.”
“하.”
이쯤 되면 사실 일어나도 사람일 텐데.
장덕수는 고소한 냄새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꿇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굴복했다.
어찌나 잘 먹는지 수혁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올 지경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그래서 다 먹고 나서 바로 업무에 복귀하는 대신 산책에 나서야 했다.
“음, 이렇게 걸으면서 먹으니까 더 맛있네.”
먹을 거 앞에서는 눈치도 없어지는지 장덕수는 그 자리에도 따라온 마당이었다.
그것도 피자를 들고서였는데, 그마저 깨끗하게 먹는 게 아니라 마구 흘리면서 먹었다.
“주책이네. 커피나 마시지, 이게 뭐야 인마.”
“왜요. 남기지 말라면서요.”
“그건 그런데……. 아유, 그걸 통째로 흘리면. 여기 환자도 다니는 곳인데.”
“개미들도 먹고 살아야죠.”
“개미가 아니라 쥐새끼들이 먹어!”
“정말요? 여기 쥐가 있어요? 병원 산책로에.”
“농담이지. 있겠어? 그냥 보기가 안 좋아서 구박하느라 한 말인데 안 먹히네.”
“하하.”
대화하느라 떨어진 피자 조각은 그 누구도 집어 들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
다른 환자들이나 의료진들도 굳이 흙밭에 뒹구는 피자 조각에 신경을 쓰진 않았다.
덕분에 일행은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그 피자 조각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거 주워.”
“아, 더럽게.”
“네가 먹던 거야!”
“너라뇨. 레지던트들도 보고 있는데…….”
“그럼 흘리질 말든가.”
“알았어요, 알았어. 어이구 개미가.”
하도 구박을 받다 보니 장덕수도 더는 못 버티겠는지 피자를 집어 들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개미가 들끓었다.
“어이구, 막 파고든다.”
장덕수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도시 사람이었기에 호들갑을 떨었는데, 수혁이 끼어들었다.
기껏 산책에 나선 후에도 환자 생각에 빠져 있던 그였다.
“네?”
“어? 왜. 이거 먹게?”
“아뇨. 아뇨. 방금 뭐라고…….”
“아이구?”
“아뇨, 그 후에.”
“파고든다고.”
“아, 파고든다……. 파고든다. 잠시만요.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어, 왜. 왜? 어, 어디 가. 와, 빠르네. 수술했다더니. 지팡이 짚고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