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11화 (411/1,303)

411화 부산에서 온 환자 (1)

“뭐래?”

수혁이 전화를 끊자마자 이현종이 물어 왔다.

약간 불만 어린 얼굴이었는데, 이 전화 때문에 수혁과의 단란한 대화가 끊겨서였다.

하여간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아, 일단 피자 쏜다고 하셨어요.”

“피자? 아니, 센터 첫날 고작 피자야? 도시락 보내라고 해. 아웃백인가? 난 거기 투움바인지 염병인지가 맛있던데.”

“아니……. 회식은 나중에 제대로 하시…… 아니지. 그건 센터장님이 하셔야죠.”

“내가?”

“원래 그런건 센터장님이 챙겨야죠. 그렇지 않아도 맛집 많이 아시잖아요.”

“아, 그거야…….”

이현종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레지던트들을 둘러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둘, 안대훈과 우하윤이 기대감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도 수혁이 이현종이 이때껏 사 준 음식들에 대해 떠들어 재낀 탓이었다.

제철 음식부터 하이 엔드 코스 요리까지, 이현종의 미식 탐방은 끝이 없었다.

“그래, 그건 뭐. 근데 고작 피자 하나 사 준다고 전화한 거야?”

“아, 아뇨. 그건 아니고요. 부산대에서 환자 하나 보냈다고 하는데, 감염내과래요.”

“지가 보지.”

“회의 들어가야 된대요.”

“회의 그거 제껴도 별문제 없던데.”

“아니…….”

생각해 보면 이현종은 들어간 회의보다 안 들어간 회의가 더 많기는 했다.

한동안 태화에는 원장은 그저 얼굴마담일 뿐 실제 일은 기조실장이 다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으니 말 다 한 셈 아닌가.

하지만 신현태는 이현종과는 이런 면에서 많이 다른 인간이었다.

내과 의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 우직하고도 성실한 이미지에 딱 맞는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지금 태화 의료원은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추격해 오는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또 세계적인 무대에 뛰어들기 위해 태화 바이오가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공언한 까닭이었다.

“엄청 바쁘실걸요. 외래도 한 타임으로 줄였잖아요.”

“날로 먹겠다, 이거지. 의사가 진료를 해야지. 원장이 다 뭐야.”

“그…… 직전 원장이셨던 분이 할 말은 아닌거 같은데.”

“아무튼.”

이현종은 불리한 얘기가 나오면 화제를 돌리는 고약한 습성이 있었다.

그건 상대가 제아무리 수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말야. 장덕수는 뭐 하고? 분과장인데.”

“전원 보내기 전에 미리 보내온 자료 봤는데…… 전혀 모르시겠다나 봐요.”

“그래? 음.”

보통 전원 전에 자료를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다 같은 교수끼리 노티 하는 셈인데, 그건 좀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일단 그렇게 했다는 건 정말 더럽게 어려운 케이스라고 보면 되었다.

그러니 상급 병원의 상급 병원이라 할 수 있는 태화로 보낸 것일 터였다.

‘그래, 우리가 내과 쪽은 아직…… 짱이지? 그렇지?’

예전 같았으면 이게 당연한데, 지금은 칠성과 아선 떄문에 우릴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 할 판이었다.

이현종은 불쾌한 생각을 고개짓으로 애써 털어 낸 후, 입을 열었다.

“환자 어디쯤…….”

그 순간 누군가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털이 부숭부숭한, 장덕수였다.

조선시대 태어났으면 임꺽정이나 장길산 정도는 아니더라도 산길 하나쯤은 장악했을 거 같은 인상이었다.

털 빼고 자세히 보면 눈빛이 순하긴 했지만.

하여간 산적 두목이라는 별명이 과한 건 아니었다.

“인마 너 수염 좀 깎으라니까.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해.”

“센터장님, 외모 가지고 뭐라 그러면 요새 큰일납니다.”

“넌 인마 외모가 아니라 예의의 문제야. 환자들이 너 때문에 심장 마비 오면 내가 다 뒤치다꺼리해야 하잖아.”

“와……. 말이 너무 심하시네…….”

장덕수는 외모와 전혀 안 어울리게 순둥한 눈망울로 울먹거렸다.

하지만 수염 때문에 그런가 불쌍해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다른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수혁은 위로 대신 그거에 대해 묻기로 결심했다.

“근데 교수님.”

“어, 이 교수.”

“전원 오는 환자 떄문에 오신 거죠?”

“아아. 응. 전원 문의는 벌써 어젯밤에 응급실 통해서 했다고 하고……. 나한테 연락을 한 시간 전에 한 거라 아마 거의 다 왔을 거야.”

“그렇군요. 자료 보내온 거 혹시 같이 볼 수 있을까요?”

“어어, 그럴라고 왔지.”

예상대로 장덕수는 금세 업무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현종이 누구 놀려 먹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 않은가.

일일이 상처받다 보면 절대 일을 꾸준히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현종이 챙겨 줄 때는, 그러니까 분과장 자리 같은 거 내어 줄 때는 최선을 다해 힘을 써 준다는 걸 알고 있기에 딱히 불만도 없었다.

“이거야. 근데 부산대 쪽도 응급실에서만 본 거라……. 자료가 많지는 않아.”

“원래 다니던 사람이 아닌가요?”

“그런 거 같아. 신환이더라고.”

“음.”

쌩신환인데 감염이라.

지역 사회 감염이라면 너무 쉽겠지만, 고작 그런 거 가지고 보냈을 리는 없었다.

[아이고, 면역 결핍자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자료를 딱 열었더니, 랩이 죄 깨져 있었다.

백혈구니 림프구니 하는 수치들이 엉망이란 얘기였다.

바루다의 탄식이 과하지 않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기저에 뭐가 있죠? 암 환자인가?”

“아, 아니. 에이즈래. 검사에서 양성 나왔어. 환자는 모르고 있었고.”

“몰라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아닌데, 이름이 우리나라 사람인데.”

“뱃사람인데, 정기적으로 배를 타는 것도 아닌가 봐. 원양 어선 타려면 원래 검사를 해야 되거든, 이런 거 저런 거. 근데 이 양반은 검진받은 게 벌써 7, 8년 전이야.”

“그게 돼요?”

“외국에 있었나 봐.”

“아……. 외국.”

수혁은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외국의 이미지를 그렸다.

이젠 나름 출세해서 미국도 가 보고, 싱가폴도 가 보고 했지만.

여전히 외국이라고 하면 어쩐지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향락에 젖은 이미지부터 떠올랐다.

장덕수라고 해서 별반 다르진 않았다.

의사들이 다들 그러하듯 외국 생활이라고 해 봐야 연수 기간이 다였기에 그랬다.

“응. 좀 문란하게 살지 않았을까?”

“어디서 살았는데요?”

“남미 쪽을 돌아다녔다고 진술했는데, 이건 왔을 때 더 자세히 문진해 봐야 해.”

“의식은 있나 보네요.”

“아직은.”

“음.”

아직 의식은 있다는 말이 서늘하게 들려왔다.

언제든 의식이 사라질 수 있고, 죽을 수 있다는 말로 들려서였다.

허황된 말도 아닌 것이, 상대는 에이즈였다.

약이 나왔다고 하지만 그건 나머지 질환들 없이 얌전히 있을 때의 얘기였다.

이미 다른 감염병이 창궐했다면 예후는 극악으로 치닿을 수 있었다.

“일단 이 사진을 좀 봐.”

“어우.”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장덕수가 사진 하나를 띄웠다.

환자의 다리를 찍은 것이었는데 검붉게 변해 있었다.

미만성 피부염이 생긴 모양이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근질거리고 마는 질환 아닌가 싶겠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했고, 범위도 넓었다.

“여기만 이런 게 아니라 등, 팔 다 이래. 얼굴도 일부 그렇게 됐고.”

“통증은 없대요?”

“왜 없어. 아프지. 열도 나고.”

“가렵지는 않고요?”

“특별히 긁는 양상은 아닌데……. 그렇다고 아예 느낌 없는 건 아닌 거 같대. 아픈게 더 큰 느낌? 일단 진통제 썼는데 뭐, 효과는 별로…….”

“약은 뭘 썼을까요?”

온 피부를 뒤덮은 미만성 피부염은 딱 보기에도 심각해 보였다.

거기에 39도를 넘나드는 고열과 백혈구, 적혈구 등의 감소를 보이는 범혈구 감소증에 급성 감염 지표로 쓰이는 CRP 또한 13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걸 보고도 무슨 약을 안 썼다면 의사로서 직무유기였다.

“일단…… 단독이나 봉와직염을 염두에 둔 거 같아. 환자가 다쳤다는 진술은 없었지만, 뭐 원래 의식하지 못하는 부상도 많으니까.”

“그럴 수 있죠.”

아마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터였다.

딱히 어디 부딪치거나 한 적이 없는데, 무릎에 멍이 들어 있던 경우.

생각보다 의식하지 못하는 부상은 정상 기능을 가진 성인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만성 질환이 있다면 더더욱 흔했다.

감각 자체가 더 둔해서였다.

“그래서 세프트리악손에 레보프록사신, 메트로니다졸 쓰고 있어. 효과야 뭐 보다시피 별거 없고.”

“이 보고서 작성한 게 벌써 내원하고 24시간이 지나서군요. 지금은 48시간 다 되어 가고…….”

응급실에서 이만한 시간을 보내게 하다니.

애초에 입원시킬 생각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에게 들어가고 있는 항생제 효과를 떠올렸다.

[광범위하게 때려 부었어요. 이만하면 면역이 없다고 해도 약간의 반응은 있었어야 합니다.]

‘세균이라면 말이지?’

[네,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이라면요.]

‘그게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겠네.’

[이 환자의 경우 가능한 병원체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정상 면역을 가진 성인에게는 대개의 병원체가 아예 침입도 하지 못하거나 침입을 한 즉시 죽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만큼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아주 탄탄했다.

하지만 면역이 망가진 상태에서는 별의별 놈들이 다 감염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걸 기회감염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딱히 각광을 받지 못하던 분야였다.

면역 결핍 상태가 된 환자가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응 전혀 효과가 없어. 역시 비특이적인 감염…… 기회감염을 생각해야 해.”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분야네요.”

“그렇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니까.”

암 환자도 에이즈 환자도 예전보다 훨씬 오래 살게 되지 않았는가.

심지어 이 두 질환은 이제 하나의 만성 질환으로써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개념의 치료 접근 방식마저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기회감염이 창궐하게 되었는데, 이건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감염이었다.

그냥 우리 피부에 살던 균이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야 차라리 흔한 경우였고, 물이나 음식 심지어 건강에 좋다는 발효 음식 속에 있는 균조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것만 봐서는 전혀 모르겠어. 근데 내 경험상 이런 환자는 시간이 많지 않아. 어어 하는 순간에 죽어.”

“그렇겠죠.”

한 가지 더 기회감염이 도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시간 제한이었다.

면역이 결핍된 상황에서의 감염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환자를 죽였다.

의료진은 그사이에 이 감염의 원인을 파악하고 또 치료까지 완수해야 했다.

진단이 되고도 환자가 죽는 경우 또한 허다했다.

이미 늦어서였다.

“그래서 온 거야. 너라면…… 좀 다르겠지.”

“음, 아직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기는 한데. 그래도 열심히 봐야죠. 우선 이런 피부 병변이 가능한 질환은…… 머릿속으로 추렸습니다.”

“그래? 벌써? 몇 갠데?”

“한 70개.”

“아유.”

감별해야 할 질환이 70개라는 건 그냥 모르겠다는 말이나 진배없게만 들렸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감별해 낸 장본인인 수혁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바루다도 그랬다.

[문진만으로 지울 수 있는 질환이 반은 됩니다.]

‘더해야 할 질환도 있긴 하지?’

[네, 하지만 검사도 추가한다면…….]

‘내 예상으로 3일 안에 진단할 확률이 90%야. 감염질환이라면…… 내가 특히 자신 있는 분야니까.’

[과하게 들리지 않는군요. 좋습니다. 응급실로 가죠.]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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