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국시 준비 (1)
지상이 전화로 물어봤던 환자는 이현종의 지시를 따르고 나서는 별문제 없이, 정말이지 감쪽같이 좋아졌더랬다.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전화로 이만한 진료를 해낼 수 있을 줄이야.
“와……. 내가 진짜 원장님은 역시 원장님이란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니까.”
그 자리에서는 비록 뒤지게 혼나긴 했지만.
하여간 덕분에 환자가 자기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꼴을 보지 않게 되었을뿐더러 완전히 좋아지는 모습을 보게 된 셈 아닌가.
그날 이후로 지상이 틈만 나면 이현종 원장의 칭찬을 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응, 똑똑하시지. 특히 심장 쪽은 뭐 레전드지.”
게다가 오늘은 수혁도 참여한 자리였다.
늘 환자 또는 연구로 거의 교수급 이상으로 바쁜 수혁이 평범한 저녁 식사에 올 수 있게 된 것은, 이제 3년 차들이 전문의 시험 준비를 위해 뒷방으로 빠지게 되어서였다.
아니, 3년간 죽으라고 일하고 중간중간 공부했으면 됐지, 뭘 또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까지 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전문의 시험공부를 하고, 전문의가 된 사람들의 얘기는 완전히 달랐다.
인턴, 전공의 4년 또는 5년이 지난 6년간 의과대학에서 머리로 배웠던 지식을 체득하고 심화시키는 과정이라면, 전문의 시험공부 하는 시간은 또 지난 수련 시간 동안 몸으로 익혔던 것을 체계화하는 과정이기에 그랬다.
“하하, 맞아. 괜히 수혁이 네가 똑똑한 게 아니라니까. 역시 핏줄이다. 유전자가 짱이야.”
“아, 아니, 뭐.”
수혁은 이현종 얘기가 계속 나오는 건 별로 상관없었지만.
핏줄 얘기로 이어지는 것은 불편했다.
외모부터가 너무 다르게 생기지 않았던가.
굳이 말하자면 이현종은 좀 선이 굵은 추남이었고, 수혁은 좋게 보면 곱상한 축이었다.
학회에서 괜히 공공연히 수혁은 아마 외모는 외탁을 한 거 같다는 말이 도는 게 아니란 뜻이었다.
[화제를 돌리시죠. 진짜 아빠도 아닌데.]
‘그래야지.’
[뭘로 돌리실 겁니까?]
‘지금 다들 관심 있어 하는 주제가 있지.’
결심을 내린 수혁은 젓가락을 조금 시끄럽게 내려놓았다.
바루다가 주변 소음을 데시벨로 표시해 주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가 있었다.
“응?”
“음.”
다들 수혁을 돌아보았다.
애초에 의국장인 수혁은 주목받을 필요도 있었고, 또 그럴 권리가 있기도 하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방금 전까지 대화를 주도하던 유지상이 열과 성을 다해 수혁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이번 국시…… 쉽지는 않을 거래.”
수혁은 그런 동기들을 돌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수혁이 내과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태화 의료원의 규모가 국내 제일이었던 만큼─지금은 아선 병원이 신관을 신축하면서 더 커졌다─ 동기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28명.
작은 의과대학의 한 학년 숫자랑 비등할 지경이었다.
당연하게도 식당 하나가 꽉 차 있었다.
“아…….”
그럼에도 지금 식당은 조용하기만 했다.
어차피 식사가 막바지에 이르렀기도 했거니와 워낙에 중요한 사안이기에 그러했다.
다른 단과대학은, 그 단과대학에서 주로 치르는 시험이 있다 해도 일단 모든 인원이 다 치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예를 들어 경영대를 나와 회계사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먹고살 길은 아주 많았다.
하지만 의과대학을 나와 의사가 되지 못했다면 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지난 6년간 배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갈 지경이었다.
그것보다는 조금 사정이 낫겠으나, 내과 3년을 수련 받고 내과 전문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 또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다들 알고 있지? 작년 내과 국시 합격률이…… 95%였던 거.”
“음. 알고 있지. 되게 높았지…….”
해서 교수들은 개인적으로는 문제를 되도록이면 쉽게 내주고 싶어 했다.
미우나 고우나 자기 밑에서 3년 또는 4년 동안 고생한 이들 아닌가.
아닌 말로 레지던트가 없이는 대한민국 대학 병원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전공의 노동법이 생기면서 주 88시간 이내로 일해야 한다는 법이 생겨서 이 정도지, 이게 없을 땐 100시간이 아니라 120, 130시간 아니, 140시간 일하는 전공의들도 많았다.
병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비싼 전문의 쓰는 대신 싼 전공의를 마구 굴리는 것이 경영에 좋지 않겠는가.
“아마 이번에는…… 대폭 낮출 거라는 얘기가 있어. 학회에서는 85%까지도 얘기 나왔다더라.”
“응? 85?”
“아니, 그건 좀…….”
전공의들, 그러니까 레지던트들이 그 험악한 직업 환경을 견디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마치 은전 한 닢같이 전문의 자격증을 바라고 있는 것.
하지만 학회 전체의 입장은 교수들과 같지 않았다.
일단 모든 전문의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아무리 로컬에 나가 상대적으로 경한 질환을 보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중에 심각한 환자가 섞여 왔을 때는 적어도 걸러내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작년에 너무 높았잖아. 한번 거른다고 하더라고.”
“하…….”
“이래저래 올해가 빡세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작년 내과 학회는 보건복지부로부터 경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니네 과만 그렇게 쉽게 내서 아무나 다 전문의 따게 해 주면 안 된다, 뭐 이런 종류의 경고라고 보면 되었다.
변호사 협회와는 달리, 의사에 대한 처벌 권한은 의협이 아니라 오로지 보건복지부만이 가지고 있는 만큼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 정도는 훅 하고 합격률을 떨어뜨릴 필요가 있다, 이 말인데 그게 하필 올해였다.
“미치겠네.”
“아니……. 3년 동안 나 나름 열심히 했는데 막상 다시 보려니까……. 와, 이게 뭐냐. 왜 이렇게 모로는 게 많아?”
“그나마 우리 병원은 다행이지. 우리는 케이스가 엄청 다양하잖아. 작은 병원은 벌써 곡소리 나긴 하더라. 어려울 거라고 하니까…….”
“하아.”
때문에 수혁이 말한 85%라는 다소 가혹해 보이는 합격률도 그럴싸해 보였다.
실제 거짓말인 것도 아니었다.
[올해 국시 위원장이 우창윤이죠?]
‘응. 우창윤이지. 그 양반이 문제 어렵게 내기로 유명하다던데?’
[통계를 보면, 우창윤이 교육 이사로 취임한 이후 내내 전공의 시험도 어려웠습니다. 이 바루다는 체감할 수 없었지만요.]
‘잘난 척은 하지 말고. 아까 신현태 교수님 말씀 들었지? 마지막 미션이야.’
[들었죠. 데이터화해 두기까지 했습니다.]
이현종 피셜 사실이었다.
신현태는 이를 대비해 미션까지 주었을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내년에 이현종이 원장에서 내려오면서 신현태에게 원장 자리를 주지 않겠는가.
그게 더욱 부드럽게 이어지려면 과장으로서의 유종의 미를 잘 거두어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전원 합격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칠성, 아선보다는 더 많이 붙을 것이었다.
‘아선은 이번에 우창윤 교수 지시로 1인 1독서실에 펠로우들이 각 과별로 붙어서 특강까지 한대. 미친놈들.’
예년 같았으면 쉬웠을 텐데.
권력과 명예에 눈이 먼 우창윤 때문에 문제였다.
기조실장에 학회에서 감투까지 쓴 우창윤은 이제 국시 1등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었다.
‘칠성은 그런 거 또 곧잘 따라가잖아. 원래 2등, 3등이었던 놈들이라 그런가……. 개자식들. 고대로 베껴서 가더라고.’
신현태가 혀를 끌끌 차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아마 바루다가 딱히 데이터화를 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지금까지 했던 말도 그렇긴 했으나, 그다음 말이 더했다.
‘근데 우리는 학풍이…… 그렇지가 않잖아. 태화는 최고다, 이게 뿌리 깊게 있어서. 과장인 나만 급하지 아주. 다른 교수들은 특강이라고 하니까 다들 비웃더라고. 이런 제기럴.’
학풍이 문제였다.
대한민국 최고는 지지고 볶아도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
그 자부심 덕에 남들 잘 때 공부하고 또 연구해서 최고를 이어 오고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사실 아선과 칠성의 맹추격 때문에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게 아니었다.
“수혁이…… 네가 부럽다.”
“너는 지금 봐도 바로 붙지 않을까?”
“붙는 게 문제야? 얘는 바로 수석이지. 급이 달라, 급이.”
“하긴……. 와 존나 후달려.”
“야, 너 진짜 손 좀 떠는데?”
“아, 이건 수전증. 이거 때문에 수술과 못 갔지.”
“못 가?”
“아니, 안 갔지. 나는 죽었다 태어나도 내과!”
수혁이 잠시 입을 다물고 회상에 빠진 동안 동기들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후달리다 보니 다들 말이 많아져 있었다.
이해는 갔다.
85%가 목표라는 건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실제로 70%대로 떨어졌던 때도 있지 않은가.
난이도 조절이라는 것이 쉽지 않아서였다.
당시 떨어졌던 이들이 시위하고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남자들은 싹 다 군의관으로 끌려갔고, 여자들도 1년을 꼬박 꿇어야만 했다.
“그래서 말인데. 과장님이 한 가지 묘책을 내셨거든?”
“오.”
“뭔데?”
그런 상황에서 수혁이 다시 입을 열자 당연하다는 듯 동기들이 모여들었다.
“근데 너희들이 기분이 좀 나쁠 수도 있어. 괜찮을까 모르겠네.”
“야야. 기분이 나쁠 수가 있냐? 전문의만 붙게 해 주면 나는 진짜 뭐든지 할 수 있어.”
“나야 너한테 맨날 신세만 졌는데…… 무슨 얘긴데.”
미리 얘기가 된 유지상, 장규선 등이 입을 털었다.
둘 다 수혁과는 달리 동기 내 입지가 썩 괜찮았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얘기도 아니지 않은가.
전문의 자격증 하나 보고 일해 왔는데 그걸 따게 해 주겠다고 하면 만사 오케이여야 정상 아니겠는가.
게다가 여기 있는 이들 중 단 한 번이라도 수혁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일단 칠성, 아선은 펠로우 선생님들이 특강을 할 거래. 소화기면 소화기, 내분비면 내분비. 게다가 우리 국시 내시는 교수님들 끌려 들어가시는 거 다들 알기는 알잖아?”
“알긴 알지.”
멀쩡히 환자 잘 보던 사람이 지금 갑자기 휴진을 때렸다?
그것도 한 달 이상?
100% 국시 내러 들어간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평소 어디에 관심 있었는지 뭐 이런 것들 공유를 지들끼리 할 거래.”
“와……. 이런 개새끼들이.”
“진짜 나쁘네.”
“근데 우리는 다들 알다시피…… 교수님들 성향이 특강 이런 거 못 하잖아?”
“못 하지.”
“그래서 말인데, 그 특강은 나보고 하라고 하시거든? 괜찮을까?”
“오.”
특강을 같은 연차에게 듣게 된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수혁을 같은 급으로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당황에서 황당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지상이 입을 열었다.
‘네 역할이 중요하다. 너 개원이 꿈이지? 요새 그냥 열어서 안 되는 거 알지? 내시경은 할 줄 알아야 되는데……. 소화기는 경쟁이야. 이번에 잘 주도해서 해 보라고. 동기들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역시 수혁이는 짱이라고 생각하게 해. 그럼 장 교수한테는 내가 얘기해 볼게. 너 돌아올 때, 나 원장이다.’
신현태가 했던 당부를 떠올리면서였다.
“난 찬성. 수혁이가 1, 2년 차 애들 가르치는 거 나 사실 좀 도강했는데. 와, 도움 돼. 도움 돼. 아는 거 진짜 잘 알려 주더라.”
“나도. 와……. 장난 아냐.”
장규선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둘이 이렇게 나오니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그런가?”
“그럴까?”
“하긴 수혁이가 고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