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호흡곤란 (2)
리홍이가 수혁에게 전달받았던 명함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할리마 의원에 대한 치료는 계속되었다.
우선 숨찬 증세에 대한 처치가 우선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환자는 중환자실로 가야 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좀 어떻습니까?”
“아까보다는…… 아까보단 나아요.”
“다행입니다.”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토로하기는 했지만.
여하간에 꽤 오랜 시간 라포를 쌓아 온 모양이었다.
할리마도 일단 숨찬 증세가 조금이나마 좋아지자 아까처럼 공격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바이털은 어떻지?”
의사는 그렇게 할리마를 다독인 후, 담당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간호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사를 돌아보았다.
“혈압은 127에 60이고, 호흡수는 이제 22로 가라앉았습니다.”
“아까 28회였나?”
“네.”
“그건 다행이네. 근데 왜 그러고 있어?”
“열이 있어요. 38도입니다.”
“열이? 어디 봐 봐.”
간호사의 말에 의사가 급히 체온계를 들여다보았다.
의료에 있어서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리홍이가 보기에도 38도였다.
의사가 본다고 달라질 거 같진 않았다.
“음.”
의사는 잠시 당황스럽단 얼굴이 되었다.
아무래도 발열은 그가 예상한 증상에 들어가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음.’
리홍이는 아까보다 더 수혁의 명함을 단단하게 쥐었다.
어제 보았던 수혁과 비교하면, 눈앞의 의사는 아무래도 좀 실력이 없어 보였다.
수혁은 생전 처음 보는 시스템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탁탁 진단을 내리지 않았던가.
그 행위만 대단해 보였던 게 아니라, 말투나 설명하는 솜씨 등도 무척 똑똑해 보였다.
수혁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있어 보이게 포장하는 데 달인인 동시에 그것을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는 바루다라는 존재를 알 리가 없으니 이런 평가도 과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래도…….’
하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실책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의사를 부른다면 뭐라 생각할까?
아마 무척 기분 나빠 할 터였다.
의사의 기분이 상하는 것은 사실 그리 염려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할리마가 고르고 고른 의사겠지.’
의사를 제멋대로 바꾸는 건 할리마의 기분 또한 상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해서 리홍이는 잠시 뒤로 빠져 있었다.
그사이 의사는 이런저런 처방을 냈고, 그중에는 엑스레이와 흉부 CT가 섞여 있어 할리마는 검사실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그러던 와중에 정신이 들었는지 리홍이에게 이런 말도 했다.
“여기는……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가세요.”
정적은 아니더라도, 아직 공개적인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그녀 아니던가.
리홍이가 와서 이러고 있는 것이 편할 리가 없었다.
리홍이 또한 이보다 더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고.
또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루하기도 해서 알겠다고 하고 빠져나왔다.
물론 다음 날 짬이 나자마자 찾아가기는 했다.
“좀 어떻습니까?”
“비슷합니다. 어제랑……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음.”
하루가 지났으니 좀 나아졌겠거니 하는 기대를 안고 갔으나, 상황은 비슷했다.
할리마야 환자이니 오히려 자기 상태 파악이 덜 되지 않았을까 해서 의사를 불러 보았다.
“좀 어떻습니까, 할리마 의원 상태는.”
“아……. 네, 리홍이 의원님.”
의사는 할리마와는 달리 무척 공손했다.
잡음이 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여론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어찌 되었건 퍼스트 패밀리였다.
리홍이의 조부인 리콴유는 국부였고, 리셴룽은 제2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유능한 후계자였다.
“할리마 의원 상태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십니까?”
“대강은 압니다. 한 8개월 전부터 이 증상이 왔다 갔다 했다던데, 맞나요?”
8개월이라니.
말하면서도 아득한 세월이었다.
어제 보니 증상이 발작하면 꽤나 힘들어 보이던데, 어찌 이런 질환을 달고 있으면서도 험악한 국정 일을 해 나가고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이러니까 아버지가 신뢰하지.’
신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용하고자 하는 마음도 컸다.
아마 차기 대통령은 할리마가 될 거란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다.
역으로 말하면 그런 할리마가 자신을 내칠 수는 없다는 뜻이었으나, 계파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철통같이 단단하던 할아버지 때의 위세가 대를 거듭하면서 유약해진 탓이었다.
“맞습니다. 8개월 전 발생한 호흡곤란으로 내원하셨습니다. 당시 본원에서는 CT, X-ray를 찍었는데 거기서 이런 병변이 있었습니다.”
“음.”
의사는 엑스레이 중 어느 한 지점을 찍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게 병변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뭔가 덩어리진 모습인데 이에 대해 조직검사도 하고, 가래에서 뭐가 자라지 않는지에 관해서도 검사를 해 봤습니다. 결과 할리마 의원의 질환은 특발성 기질화 폐렴(Cryptogenic organizing pneumonia)으로 진단되었습니다.”
“특발성 기질화 폐렴?”
“네, 특별한 이유 없이 폐 안에 육아성 조직이 증식하는 질환을 의미합니다.”
“음.”
뭔가 쉽게 설명했다고 믿는지 의사는 이내 뿌듯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리홍이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멍청한가 싶어서 옆을 돌아보니, 비서 또한 비슷한 얼굴이었다.
“더 자세히 말해 주시죠.”
“아……. 네, 쉽게 말씀드리면…… 폐 조직 안에 폐가 아닌 다른 조직들이 자꾸 자란다는 겁니다. 그럼 숨을 쉬기가 어렵죠.”
“암입니까?”
“아뇨, 아뇨. 암은 아닙니다. 스테로이드를 쓰면 반응이 좋습니다. 실제로 환자분…… 그러니까 할리마 의원님은 스테로이드를 쓰고 반응이 있어서 퇴원했습니다.”
“음.”
확실히 8개월 전 호흡곤란으로 실려 갔다던 할리마 의원이 금세 퇴원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있었다.
그 후 간헐적인 기침은 있었지만, 쭉 괜찮게 지내다가 석 달 전 한 번 더 입원하고 어제 또 그런 이벤트가 있었던 것.
“그럼 이번에도 스테로이드를 씁니까?”
“아……. 지금은 열이 나서요. 영상을 보니 폐렴이 동반되어 있어서 항생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럼 증상은 언제 좋아질까요?”
“폐렴만 호전되고 나면 스테로이드를 쓸 겁니다. 그럼 좋아지겠죠.”
의사는 태평해 보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창 바쁜 사람이 쓰러졌는데 저런 태도라니.
‘이수혁 선생님은…… 나랑 일면식도 없는데, 심지어 외국인인데도 나를 도왔어.’
얼굴을 알아보고 한 일이라면 고마움이 좀 덜하겠는데.
명함을 건네주는 순간까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어제는 태도가 좀 달라져 있긴 했지만.
하여간 어제까지는 그렇지가 않았다.
심지어 어제도 환자를 더 보고 싶다는 말만 했을 뿐, 다른 것은 요구하지 않았다.
“원래 이 질환이 이렇습니까? 이렇게 왔다 갔다 해요?”
“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근데 스트레스가 심하면 이럴 수도 있어요.”
“아하, 스트레스요.”
“네, 스트레스. 만병의 근원이죠.”
리홍이는 그제 갔던 병원 의사를 떠올렸다.
그 인간도 스트레스 운운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수혁은 스트레스 얘기는커녕 딱 원인을 내놓고는 치료법도 제시했더랬다.
‘안 되겠어.’
자꾸 비교가 되지 않는가.
부르지는 않더라도 조언은 구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거 제가 좀 볼 수 있습니까? 영상이나 이런 거.”
“아……. 네.”
영상 자료는 사실 잘 보여 주지 않는 법이었다.
아까 엑스레이가 그랬듯, 보여 준다고 해 봐야 알 수 있는 게 없어서였다.
어떤 경우에는 좋아진 걸 나빠졌다고 지레짐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 의학은 정말이지 고도로 발달하고 있어 지식의 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도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리홍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이유를 불문하고, 의사는 할리마 의원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처음 왔던 때의 CT와 3개월 전의 CT 그리고 이번에 와서 찍은 CT를 전부 보여 주었다.
“음.”
“아, 찍으시게요?”
“네, 뭐. 할리마 의원이 우리 중진 의원이시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럽군요. 안 됩니까?”
“아뇨, 아뇨. 어디 유출하시진 않겠죠?”
“설마요. 할리마 의원의 리스크는 우리 인민행동당의 리스크입니다.”
“네네. 그럼요.”
인민행동당을 앞세우고 있는데 뭘 어쩐단 말인가.
해서 의사는 스크롤까지 굴려서 영상을 잘 찍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라 검사 결과들도 다 보여 주었다.
리홍이는 그것들을 잘 갈무리해서 수혁의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곤 문자를 하나 넣었다.
<이수혁 선생님, 이메일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송구스럽지만 진단명이 특발성 기질화 폐렴인지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리홍이 드림.>
예의를 갖춘 문자였다.
하지만 보내면서도 과연 답이 올까 싶었다.
생각해 보니 이 사람은 외국인이지 않은가.
그것도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인민행동당이란 이름이 통하기엔 너무 멀었고, 또 잘사는 나라였다.
‘뭐냐, 이건.’
그때 수혁은 클락키에 있었다.
어제 홀로 저녁 먹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신현태와 함께 나름 관광지에 온 참이었다.
[이메일로 뭐가 왔나 본데요?]
‘음.’
나올 때만 해도 신나서 나왔는데, 막상 둘이 나오니까 할 게 딱히 없었다.
신현태나 이수혁이나 한국에서도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아닌가.
특히 이수혁은 취미랄 게 딱히 없는 사람이었다.
외국에 나왔다 해서 갑자기 신바람이 날 리가 없었다.
“뭐 봐?”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다.
맥주나 홀짝일 뿐, 도저히 지금 클럽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처럼 뭘 할 생각이 들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선비 기질을 타고난 위인이었다.
“아, 그…… 환자 좀 봐 달라고 해서요.”
“미쳤나. 병원이야?”
“아, 아뇨. 다른 병원이요.”
“다른 병원? 아, 여기 친구?”
“네네.”
“어디 봐 봐. 할 것도 없는데 같이 좀 보자.”
“그럴까요?”
“응.”
해서 둘은 클락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나 건대입구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노트북을 켜고 리홍이가 보낸 메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참 찌질한 모습인데 뭐가 되었건 둘은 이제야 비로소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음…….”
“이게 처음 찍은 거?”
“네.”
“좌측 폐 상엽이랑 하엽으로 침윤이 있네. 폐 소와(hilum)도 확장되어 있고. 기질성 폐렴인가?”
“그렇게 보이긴 하는데요?”
“다음 것도 있나?”
“네.”
딱 봐도 어려운 케이스였다.
단순 폐렴이 아니라 기질성 병변을 지닌 환자.
근데 문자 내용을 보면 이게 정말 특발성 기질화 폐렴이 맞느냐고 묻고 있지 않은가.
그 말은 그게 아닐 거 같다는 말이었다.
영상에서 그렇게 보이는데, 임상 소견은 다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여기도 비슷해. 근데 좀 더 증가했네.”
“네. 심해졌어요.”
“치료를 안 했어?”
“스테로이드 치료를 했다고 쓰여 있어요. 여기 보시면.”
“음……. 고용량 때리고 점차 줄여서 테이퍼링 하고……. 루틴대로 했네. 마지막은?”
“여기도 비슷한데…… 더 심해졌네요.”
“흠, 뭐지?”
“일단 더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