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72화 (372/1,303)

372화 리홍이 (1)

“역시 그게 좋긴 하죠…….”

“응. 너무 큰 빵이라……. 혼자 먹으면 입천장 다 델걸.”

신현태는 조심스레 김다현이 했던 말을 전했다.

어차피 김다현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던 시점에서부터 예상했던 일 아닌가.

바루다가 제아무리 똑똑하다고 해 봐야, 이런 일에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그쪽으로는 발전을 안 하고 있을뿐더러 할 생각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서운한 척해야지.’

[왜요?]

‘떡밥이지.’

[아……. 사기 치려고?]

‘그래.’

[믿습니다.]

그럼에도 수혁은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수혁이 말끝을 흐린 참이라 신현태로서는 덜컥 겁이 났다.

‘이 녀석……. 이거 아까워하는 건가?’

아마 친아들이었으면 도리어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터였다.

늦둥이라 실제로 어리기도 하지만, 원래 부모 눈에 자식은 늘 더 어리게만 보이기에 그랬다.

하지만 상대는 이수혁이었다.

대등하게까지 생각되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라면 어쩌면…….’

병원 사람이 어찌 리홍이와 같은 거물과의 연을 이용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수혁이라면 또 모를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울겠는데.]

‘응, 이 양반도 참…….’

해서 침울해져 있으려니, 수혁이 입을 열었다.

“정치인이랑 엮일 일이 없겠죠?”

“어? 어어. 그렇긴……. 하지?”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요.”

“어, 뭐 그렇지. 그럴 거야.”

신현태를 안심시켜 주면서 동시에, 리홍이와의 연이 얼마나 큰 건이었는지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덮어놓고 이런 얘기를 꺼냈다면 잘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신현태는 수혁이라면 일단 과하게 평가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딱 수혁이 의도한 대로 받아들였다.

‘그래……. 이 녀석은 참 착해. 자신이 있었는데, 그래도 내가 자기 생각해 준 걸 아는구나.’

미안하면서도 대견해하는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이 말이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원래 그런 걸 바라고 진단해 준 것도 아니고요.”

“그, 그래. 우리 수혁이는 참 속이 깊어.”

“아, 맞다.”

“응, 뭐가 맞아?”

“제가 싱가포르에 친구가 하나 있거든요.”

“어? 그래? 여기에 친구가 있어?”

신현태는 수혁의 가정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원장의 아들이 아니라, 고아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근데 대체 언제 싱가포르에 친구를 사귀었단 말인가.

‘미국 갔을 때 만났나?’

수혁이 아니라 다른 녀석이었다면 의심을 이어 나갔을 텐데.

이게 또 수혁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머리가 좋은 쪽으로만 흘러갔다.

‘하긴 우리 수혁이가…… 누가 봐도 친해지고 싶은 녀석이지.’

실상은 또라이로 명성이 드높았었고,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는 해도 동기 사이에 경원시되는 존재라는 걸 모르지 않음에도 이랬다.

편애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건데, 자각을 못 하고 있으면 더했다.

“네, 꽤 친해요.”

“미국 갔을 때 만났니?”

“아, 네. 아이오와에서요.”

“그래, 그럴 만하지. 영어도 잘하고 뭐……. 그래, 그래서?”

“내일 저녁 먹자고 하는데 내일만 좀 다녀와도 될까요, 삼촌?”

이미 미국에서 사귀었을 거라 확신하고 있던 참 아닌가.

심지어 말끝에 삼촌이라는 말까지 붙은 상황이었다.

‘내일은 그럼 누구랑 시간을 떼우나.’

소중한 하루를 잃는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막 섭섭하지는 않다는 얘기였다.

약간은 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도 일었다.

요즘 애들은 특히 꼰대 싫어한다지 않던가.

“응? 그럼, 왜 안 돼? 그런 거 허락받을 필요도 없지, 뭘.”

수혁은 방금 번뇌하는 모습을 보인 주제에 이런 말을 꺼내는 신현태에게 미소로 보답했다.

바루다의 도움이 있어 엄청나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어어, 뭘, 하하. 짠이나 할까? 슬링, 이거 맛이 썩 괜찮네. 현지인들은 아무도 안 마신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그러니까요. 사실 칵테일이란 걸 안 마셔 봐서 그렇긴 한데. 맛있어요.”

“응, 그러니까.”

그리곤 밤이 깊도록 술을 마셨다.

처음엔 레지던트와 과장이 할 만한 대화가 주를 이뤘으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신현태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아, 이 녀석이…… 연애를 아예 하기 싫은 건 아니구나.’

아마 이건 이현종은 모를 만한 사실일 터였다.

애초에 그 양반은 이기자 교수에게 처참하게 차인 이후로 억지로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 아닌가.

뻔히 사정을 다 아는데 나는 의학이랑 결혼했다고 입 터는 것을 보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하여간 남녀 간의 연애를 애써 없는 일인 양 치부하고 있는 사람이니, 수혁도 당연히 의학이랑 결혼할 생각이라 여기고 있을 터였다.

처음엔 이기자 교수에게 차인 이후 발생한 방어기제, 그러니까 콘셉트였는데.

지금은 콘셉트에 잡아먹힌 건지 뭔지, 응당 그래야만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될 거라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조태진은 좀 위험하지만…….’

조태진으로 말할 거 같으면 요즘 유행하는 연상연하 커플의 선구 주자라 할 수 있었다.

PK, 그러니까 실습 학생으로 산부인과 갔다가 레지던트도 아니고 펠로우랑 사랑에 빠져 인턴이 되자마자 냅다 결혼부터 한 놈이지 않은가.

그야말로 로맨스를 아는 남자라 이건데.

최근 제수씨가 갱년기가 와서 그거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형 소리 듣겠답시고 그 난리 법석을 친다는 게 대단하긴 했으나 그 이상은 무리일 터였다.

‘그럼 나만 알고 있네? 진짜 알아볼까? 저놈이야 늘 병원에 있는 데다가…….’

소개팅이라도 주선했다가 덜컥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평생 은인이 되지 않겠는가.

마침 내과 과장이라 의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을 두고 있던 참이었다.

‘안대훈하고 하윤이한테 물어보지, 뭐. 둘이 그렇게 팬클럽이니 뭐니 하는데 뭐라도 하나 모르겠어?’

둘을 캐 볼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제법 늦은 시간이었지만 별로 부담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할 일이 없지 않은가.

이럴 때 예상을 뒤엎고 바쁜 날이 된다면 좀 힘들었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신 교수님. 자리 맡아 놨습니다.”

“이수혁 선생님, 이쪽으로.”

다만 구글과 애플이 질척거리는 게 좀 성가실 뿐이었다.

다행히 피곤한 기색을 보이자, 둘도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대형 기업이 서로 계약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피차 알고 있는 상황 아닌가.

갑 중의 갑이란 얘기였다.

“그럼 여기 커피…….”

“저희 부스 뒤에 침대 있는데 좀 주무실래요?”

덕분에 낮 동안 피로가 쌓이기는커녕 도리어 풀려 버리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신현태에게보다는 수혁에게 잘된 일이었다.

신현태는 오늘 하루 낙동강 오리 알처럼 별로 할 일도 없이 방치될 뿐이겠지만.

수혁은 리홍이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하지 않은가.

“그 친구 보러 가니?”

“아, 네.”

“시간 있지? 저녁이니까.”

“아……. 네.”

해서 3시쯤 나오려는데, 신현태가 그를 찾았다.

“옷 사 줄게. 친구 만나러 가는데 멋지게 하고 가야지. 외국인 친구라 뭐 자주 보지도 못할 거 아냐?”

“아……. 옷이요?”

“그래, 옷. 내가 보니까…… 너 옷이 이거. 이거 어디서 산 거니?”

“음…….”

어디서 샀더라.

별로 기억이 없었다.

아마 인터넷에서 사지 않았을까?

거의 100% 그랬을 터였다.

수혁은 어디 갈 시간이 없었으니까.

“인터넷이요.”;

“그럴 줄 알았어. 따라와 봐. 물어보니까, 여기 그래도 괜찮은 브랜드가 있더라고.”

“오…….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삼촌이 조카 선물 사 주는 건데. 허허.”

신현태는 어제 자기 전 수소문해 알아낸 브랜드로 들어가 수혁에게 정장을 하나 사 주었다.

캐주얼 정장인데, 들었던 대로 수혁의 체형과 딱 맞았다.

원체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스타일이 막 나쁜 편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꽤 비싼 브랜드라 그런지 제법 귀티 나 보였다.

“잘 어울린다.”

“감사합니다.”

“그래, 늦겠다, 얼른 가 봐.”

“네, 삼촌.”

수혁은 그 대가로 삼촌이라는 호칭과 감사하다는 말을 동시에 남긴 후, 리홍이가 보자고 했던 곳으로 향했다.

호텔 같은 곳에서 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냥 로컬 식당이었다.

허름하다고 하면 허름하단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저기 있네요.]

사람이 꽤 많았으나 그중 리홍이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제 봤을 때처럼 깔끔한 정장 차림에 단정한 머리, 그리고 큰 키를 한 사내는 서울처럼 한껏 꾸민 사람이 적은 싱가포르 시내에서 눈에 확 띌 수밖에 없었다.

“아, 닥터 리. 오셨습니까.”

“기다리셨어요? 빨리 온다고 빨리 왔는데…….”

“아뇨. 저도 방금 왔습니다.”

어제 검색한 바에 따르면 리홍이는 그야말로 왕가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마저도 두바이에서 봤던 왕자처럼 배다른 자식이 많아 후계 서열이 밀려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미 후계자로 낙점된 사람, 즉 차기 왕이었다.

그럼에도 소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눈치를 보는 모양인데?’

[왜요?]

‘싱가포르가 그래도 자본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는 나란데……. 독재 세습이 말이 되냐? 이상한 모습 보이면 바로 밀리지.’

[음, 그건 잘 모르겠군요.]

바루다에게는 그저 그런 모습인 모양이지만, 수혁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독재자와는 상당히 달라서였다.

“알아보니, 학회 차 오셨던데. 오늘은 발표가 있으셨나 봅니다.”

상대를 관찰한 것은 비단 수혁만은 아니었다.

리홍이 또한 수혁을 보고 있었다.

어제에 비하면 훨씬 멀끔해진 모습이라 그렇게 추정한 모양이었다.

“아, 네. 간단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왜 거짓말을 하나요?]

‘굳이 틀렸다고 할 필요가 있냐?’

[사기의 기술이군요.]

틀린 얘기였지만 수혁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호감을 끌어내야 하는 자리 아닌가.

굳이 어깃장을 놓을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수혁은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면서 동시에 이전보다 이런 면에 있어서도 많이 컸다는 생각을 했다.

[자화자찬 보소.]

바루다가 기다렸다는 듯 비난했으나 별 영향은 없었다.

“여기 딤섬이 아주 맛있습니다. 한번 드셔 보시죠.”

“아……. 네, 딤섬 좋아합니다.”

“잘됐군요.”

리홍이는 처음부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대신 우선 맛있는 딤섬부터 대접했다.

호언한 대로의 맛이라 수혁도 바루다도 흡족해졌다.

특히 바루다가 그랬다.

[좀 싸길래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군요?]

‘원래 음식 맛이 반드시 가격이랑 비례하지는 않지.’

[한 수 배웠습니다.]

심지어 뭔가 깨달음을 얻었단 얼굴이 될 지경이었다.

“알아보니.”

리홍이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바루다의 요청에 의해 딤섬을 예정했던 것보다 무려 세 접시나 더 먹은 다음이었다.

수혁이 잘 먹은 게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까보다도 더 미소가 진해져 있었다.

“화이자와 함께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아, 네.”

“아시다시피……. 화이자는 이곳 싱가포르에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허가할 때 저희 아버지가 관여했습니다. 싱가포르의 미래가 금융과 바이오에 있다고 생각하시거든요.”

놀랄 일은 아니었다.

바이오를 미래 먹거리라고 칭하는 곳은 너무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공장 같은 건 별 의미가 없었다.

화이자에 지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정말 단순한 협력 관계일 뿐이었다.

‘뭐가 되었건 내 친정은 태화지.’

[맞는 말씀입니다. 태화 전자야말로 제 창조주시죠.]

‘그런 얘기는 아닌데.’

그에 반해 태화는 고향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화이자보다는 태화 측 사람입니다.”

“그것도 알아봤습니다. 젊으시던데…… 대단하시더군요. 태화도 싱가포르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접촉은 없지만…….”

동시에 수혁은 의사였다.

연구 쪽보다는 임상 측 의사.

그중에서도 통합진료센터에 있는 아주 특출난 의사.

그런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저도 싱가포르가 바이오, 특히 의료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병원을 유치하고 계신다고 하시던데, 맞나요?”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쌓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곳에서 오는 환자를 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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