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뇌경색? (3)
“어떤 거 같아?”
“잠시만, 잠시만요.”
곧이어 내려온 신경과 의사는 영상과 환자를 번갈아 보며 고뇌에 빠졌다.
어떻게 봐도 아는 얼굴이었다.
적어도 싱가포르에 살면서 이 얼굴을 모르면 안 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근데 이건 대체 무슨 소견이지? 왜 여기만……. 관련 동맥은 괜찮아 보이는데. 의무 기록 코드를 봐도 별로 앓고 있던 병도 없고…….’
그에 반해 MRI 소견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였다.
아예 모르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어디가 먹혔는지는 대번에 알아보았다.
내려오기 전부터 어느 이미지에서 어떻게 보인다는 말을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가 고뇌에 빠진 동안, 수혁 또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몰라. 여긴 외국이잖아, 오지랖 떨기는 좀 그런데.’
[그럼 좀 기다려 보죠. 수혁의 진단이 맞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하긴, 그렇지.’
[삽질하기 시작하면 그때 나서요.]
‘오케이.’
여기가 태화 의료원이었다면 벌써 병명 기록하고 처방까지 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도 아니고 싱가포르였다.
해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
한시적으로나마 그러기로 했다.
“일단…… 뇌경색 병변이 관찰됩니다.”
그사이 신경과 의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는 환자에게 향했다.
“아.”
뇌경색이라니.
환자는 충격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
구토와 메스꺼움은 좋아졌다고 진술했으나, 여전히 우안의 내안근은 마비되어 있는 상황 아니던가.
그로 인한 양측 눈동자의 괴리가 환자의 얼굴을 더더욱 고통스러워 보이게 했다.
“아…….”
절망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뇌경색은 그런 병이었다.
누군가의 일상에 돌연히 찾아와 다시는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이른바 도적 같은 병.
“다행히…… 병변이 아주 크지는 않아요. 지금 빨리 조치를 취하면, 더 이상 진행은 없을 겁니다.”
“눈은…… 눈은 어떻게 되지?”
환자의 물음에 신경과 의사는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일단 좌측 눈과 우측 눈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어 어느 쪽 눈을 봐야 할지도 좀 헷갈렸다.
또 이제부터 해야 할 말에 별로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되는지 나도 좀 알면 좋겠네요.’
생각보다 자주 접하는 상황이었다.
의사들이 물론 일반인들에 비해 질환이나 우리 몸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건 사실이었다.
평생 그것만 공부하는데 그럼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그럼 모든 걸 아는가?
이건 또 아니었다.
‘대체 뭘까.’
터무니없이 어렵거나, 드문 상황 또는 비틀린 케이스들을 처음 마주했을 땐 별반 다를 게 없을 때도 있었다.
그나마 의학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되어 있으니, 시행착오 끝에 뭔가 밝혀낼 수는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같은 고뇌를 해야만 했다.
[모르는 거 같은데요?]
‘음……. 그런 얼굴이긴 하지?’
[개뿔도 모르는 거 같은데?]
‘그렇게까지 말할 거 있냐?’
[저는 그저 제가 분석한 바를 말씀드릴 뿐입니다. 팩트에 기반한 거예요.]
‘음.’
수혁이나 바루다도 비슷한 고뇌를 많이 해 본 몸 아니던가.
덕분에 지금 신경과 의사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었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는 환자 앞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질환 또한 마주하고 있었다.
“우선 항응고제를 쓸 겁니다. 사실 그…… 안구 움직임에 관여하는 근육들은 아주 작습니다. 그에 들어가는 혈관도 작죠.”
“음.”
그럴 땐 일단 아는 얘기들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게 좋았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날수도 있고, 무엇보다 환자를 덜 실망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혈류가 항응고제로 인해 반드시 회복될 거라 보기는 어렵지만, 같은 이유로 수술이나 다른 처치도 어렵습니다. 지금 뇌혈관 중에서는 눈에 띄는 병변이 없어요.”
“흐음.”
“다만 만약 이게 교정이 안 되면……. 그러니까 지금 복시요. 물체가 두 개로…… 보인다고 하셨죠?”
신경과 의사는 망설이는 말투로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딱히 환자의 진술이 필요치 않아 보였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두 개로 보이겠다 싶을 만큼 두 눈동자는 따로 놀고 있었다.
“그렇…… 그렇지.”
갑작스러운 복시는 어지럼증뿐 아니라 두통도 일으킬 수 있었다.
괴리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그랬는데, 환자는 꽤 벌어져 있기에 증상이 심할 터였다.
얘기를 하다 말고 한쪽 눈을 가린 것이 이해가 갔다.
“이건 수술로 교정이 가능할 겁니다. 지금 하는 치료가 효과가 없었을 때 생각해 볼 만한 옵션이죠. 무튼……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치료를 해 보겠습니다.”
“항응고제?”
“네.”
“그럼 부탁하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경과 의사는 자신의 설명에 특히 본인이 위로받은 듯했다.
그래, 설령 이 치료가 효과가 없더라도 방법이 있어, 뭐 이렇게 되뇌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확실히 복시는, 특히 내안근 마비로 인한 복시는 수술로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이 꽤나 있었다.
하지만 정답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잠시만요.”
해서 수혁이 나섰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네.]
바루다의 말을 배경음 삼아서였다.
평소 같았으면 좀 심하네라는 말이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응? 이분은…….”
“아, 호텔에서 신세 진…… 분이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야.”
“그렇군요. 근데 무슨…….”
신경과 의사는 떨떠름한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이 지금은 꽤 유명인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원내 한정이지 않은가.
최대한 넓게 잡아 봐야 내과 학회 내에서의 얘기였다.
싱가포르 내에서까지 명성이 통하리라 바라는 건 무리였다.
“이 환자분, 뭐라고 생각해서 항응고제를 쓰려는 거죠?”
이럴 땐 좀 공격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
“어, 수혁아?”
평소에도 케이스 토의를 할 때면 그리 나긋나긋한 편도 아니지 않은가.
오늘은 그 정도가 더 심해 보였다.
신현태는 상대가 외국인이고 또 동시에 여기가 외국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수혁을 불렀다.
‘아이구, 이 외골수 자식.’
진짜 이현종 아들도 아니면서 왜 닮았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삼촌, 궁금해서 그래요. 에비던스가 있는지가 중요한 거잖아요?”
“어? 어어. 그렇긴 하지. 또.”
하지만 삼촌이라고 부르는 통에 마음이 녹아내리고 말았다.
심지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내과 의사라면 아니, 의사라면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땐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했다.
옛날에야 내가 경험이 있으니 내 말이 맞아라는 주먹구구식 진료가 통했겠지만.
이미 근거 중심 의학이 주류가 된 지 오래였다.
“어…….”
비단 대한민국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전 세계적인 추세가 그랬다.
글로벌 시장에서 볼 때, 결코 수준이 낮지 않은 싱가포르 의과대학 출신인 신경과 의사야 당연히 근거 중심 의학을 중심 개념으로 탑재하고 있었다.
“그…… 당신 누굽니까?”
해서 메시지를 공격하진 못했다.
대신 메신저를 흔들어 보았다.
“그러게, 누굽니까, 당신.”
응급실 의사도 가세했다.
어떻게 봐도 외국인이 진료에 참여하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그랬다.
지금까지는 지인이라고 하고 뭐 도움을 줬다고 했으니 참았지만.
방금 선을 넘은 느낌이 들었다.
“저는 대한민국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태화 의료원 이름은 모두 들어 보셨겠죠?”
“음.”
수혁은 그런 둘의 적의 어린 시선을 담담히 받아 가며 태화를 입에 올렸다.
일선에서 활동하는 의사들이라면 도저히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이름이었다.
일 년에 태화에서 쏟아져 나오는 굵직한 논문들만 해도 수십 개였다.
특히 간이식이나 심혈관계 질환 그리고 구강암 등에 대한 논문은 늘 최신 지견을 제공하고 있었다.
중화권에 속하는 싱가포르로서는 그중에서도 구강암과 간이식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그것도 발효차를 마시는 문화는 구강암과 직결되었고 독주를 마시는 문화는 간이식과 연관이 있었다.
‘통합진료센터는 뭐야?’
‘부센터장이면 높은 거 같은데…….’
세계적인 명성을 놓고 보면 싱가포르 병원은 열심히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잠시라도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래요, 이수혁 부센터장의 실력은 제가 보증합니다. 아, 저는 태화 의료원 내과 과장 신현태입니다.”
게다가 내과 과장까지 나선 마당이었다.
대한민국 의료 체계에서 과장은 그저 때가 되면 다는 직함에 불과하지만.
싱가포르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야말로 그 과의 왕을 의미했다.
“음.”
“그럼 다시 여쭙겠습니다. 어떤 병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되면 뭐가 되었건 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환자도 왼눈을 빛내며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마당이지 않은가.
무언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싱가포르 국립 의료원을 대표하는 곳의 교수들이었으니.
“그…… 중뇌의 허혈성 병변이죠.”
최선을 다했으나, 나오는 답은 처절했다.
“진단명이 아니라, 영상 소견 아닙니까?”
“허혈성 뇌 병변이 어찌해서 영상 소견에 불과합니까? 진단명이지.”
“아, 그럼 그냥 허혈성 뇌 병변으로 생각하는 겁니까? 그래서 항응고제를 쓰는 것이고요.”
“네.”
“그렇다면 왜 뇌혈관 조영술에서는 전혀 이상이 없나요?”
“그건…….”
신경과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줄곧 보아 온 천장임에도 불구하고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일시적으로…….”
“일과성 뇌혈류장애를 말하는 겁니까? 그럼 지금 남은 후유장애는 뭘로 설명합니까?”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뭐죠?”
“그…….”
모르겠다는 말이 혓바닥 위에서 뛰노는 기분이었다.
부센터장이니 뭐니 해 봐야 어린놈 같은데.
어찌 눈빛이며 말투며, 특히 질문이 이토록 날카로울까.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을 부른 응급실 의사에게 모든 짐을 씌우고 튀고 싶었다.
“그…….”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응급실 의사는 귀신같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CPR이라고?”
소머즈라도 빙의했는지, 아무도 듣지 못한 CPR를 운운하면서였다.
하여간 응급실 놈들은 저 핑계만 대면 무적이었다.
‘자라 같은 새끼.’
욕설만 되뇌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뭘 생각하고 처방을 내린 겁니까? 단순 뇌혈관 병변이라고 하기엔 근거가 부족합니다.”
그사이 수혁이 다시 한번 질문을 찔러 넣었기에 그랬다.
‘이 새끼도 자라 같네.’
생각 같아서는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환자의 눈에서 기대감이 슬슬 옅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빈자리를 메운 것은 의구심이었다.
이걸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단순 뇌혈관 병변도 이렇게 보일 수 있어요. 다른 질환을 떠올릴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게다가 항응고제는…….”
“동류의 질환에서 거의 쓰이는 약이라 덮어놓고 써도 된다, 뭐 이런 얘깁니까?”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럼 당신은 대체 뭘 의심합니까?”
“medial longitudinal fasciculus의 손상으로 인한 ILO 증후군이죠.”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