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공룡들 사이에서 (3)
“어……. 애플이랑 구글에서 왔다 갔다고요?”
하루 뒤 합류한 태화 의료원 홍보팀 직원이 벙 찐 얼굴로 되물었다.
뒤에 선 다른 직원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리는 아니었다.
의료 계통 세미나에 갑자기 웬 애플이랑 구글인가 싶지 않겠는가.
모르는 사람도 다 아는 세계적인 아이티 기업들이었다.
“그렇다니까 그러네.”
“어…….”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이현종이 아니라 신현태였다.
이현종이라면야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러면서도 전혀 실익이 없는 구라도 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학문적인 성취로만 보면 정말이지 어떤 식으로든 폄훼가 안 될 만한 사람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이 사람이 좀 모자란가 싶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진짜야?’
‘나도 몰라. 장단이나 맞춰.’
‘근데 사실이면…… 계약 검토는 누구 소관이야?’
‘어……. 우린…… 우린 아니지 않을까?’
‘그치? 그렇지?’
‘어, 그렇게 하자. 야, 만약 맞으면 너무 큰 건이야.’
하지만 신현태는 얘기가 좀 달랐다.
노상 이현종과 붙어 다니는 인간이긴 해도, 동류라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과장 달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잘 몰랐던 사람이긴 한데.
하여간 과장직을 달고 나서 보여 준 행보는 전형적인 내과 과장 그 자체였다.
융통성보다는 규칙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란 얘기였다.
“뭘 그렇게 눈짓을 해요?”
“아뇨, 아닙니다. 과장님. 믿…… 아니, 그렇죠.”
“사람 말을 못 믿네. 야 수혁아, 너도 좀 거들어 봐.”
그런 인간이 이수혁에게만은 예외를 두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수혁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한때는 그저 원장의 숨겨진 아들이라 그런단 말도 있긴 했지만.
이제 더 이상 홍보팀 직원들 중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수혁에 대한 홍보물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부서가 아닌가.
뭐라도 하나 가공하려면 날것 그대로를 알아야 하는데, 홍보팀 직원들은 좋으나 싫으나 수혁이 한 일들을 그대로 봐야만 했다는 뜻이었다.
“네, 맞습니다. 진짜로 구글이랑 애플에서 왔어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처음엔 이 나이에 이 정도라니 진짜 대단하다 싶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런 인간도 한 몫 거들고 나서자, 직원들도 도저히 믿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그렇군요.”
“그럼 계약은 어떻게……?”
“우선 검토해 봐야죠. 두 분도 손 좀 거들어 주세요. 저희가 이쪽으로는 잘 몰라서.”
“아……. 아니, 근데 그쪽은 너무…….”
“아무튼, 오늘 잘 부탁드려요. 저희는 세션 쪽으로 가 볼게요.”
“아……. 네네.”
수혁과 신현태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서 있는 둘을 뒤로하고 부스를 빠져나왔다.
원래대로라면 개발자들이 자리를 지켜야 하지만.
둘은 사실 개발 책임자이긴 해도 개발자는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화이자에서 수혁을 초청해 준 이유 자체가 바로 세션 참여에 있었다.
설마하니 1년 만에 뭘 만들어서 낼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냥 와서 한번 보고 많이 배우고 느껴라, 뭐 이 정도였다는 뜻이었다.
“관심 가는 세션 있어?”
“아……. 저는 아무래도 이쪽이요.”
“면역 항암제? 하긴 그쪽이 지금 완전 트렌드지.”
암과 인류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20세기까지 이루어진 전쟁 양상은 거의 일방적이었다고 보면 되었다.
인류는 여전히 암을 정복했다고 말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성적을 거두었다.
물론 기적의 산물이라 불리는 약들도 일부 나오고, 생존율의 비약적인 향상도 있었지만 대부분 조기 검진에 의존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면역 항암제가 나오면서 아예 치료 양상이 바뀌었습니다. 개발에 직접 참여하진 않더라도 동향은 알고 있어야겠죠. 안 그러면 순식간에 옛날 의사 돼 버리는 겁니다.]
‘그렇지. 옛날 의사 되어 버리지.’
하지만 선진국 대부분이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사실상 노화로 인한 병이라 할 수 있는 암에 관한 연구는 날이 가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었다.
그 결과 기존의 항암제를 대체하기 위한 수많은 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표적 치료부터 시작해 유전자를 이용한 항암제 등등.
그러다 이번에 나온 것인 바로 면역 항암제였다.
[인체의 면역 조직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왜 그전까지는 못했을까요?]
‘암이 원래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거잖아. 면역 기전 회피가 당연한 건 줄 알았지.’
[역시 당연하다 여기는 건 위험한 일이군요.]
‘그래, 정말 그래.’
암이 우리 몸의 면역 세포의 공격을 어떻게 피해 가는가에 관한 연구 덕분이었다.
기본의 편견을 뒤집어엎은 채 시작한 연구였는데, 그 결과 암마다 어떤 물질을 앞세움으로써 면역 세포를 속인다는 걸 알아내었다.
면역 항암제는 그 속임수를 지우는 약이었다.
암에 대한 공격은 면역 세포가 대신했다.
당연히 부작용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효과는 아주 좋았다.
특히 아직 환자의 면역이 건재한 초지에 시행했을 때의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교수님은요?”
“나? 나는 병원 내 감염 관리 시스템에 대한 세션으로 가 보려고.”
그만큼 현대 의학에 있어 가장 커다란 화두였다.
하지만 모든 의사가 거기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었다.
감염 내과 의사인 신현태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대한민국 또한 초고령 사회이니만큼 응원은 하겠지만.
심도 있는 공부까지는 전혀 할 생각이 없었다.
“아……. 그건 그럼…….”
“앱이야. 필요하면 병원에 도입해야지. 너무 비싸게 부르면 안 되겠지만……. 하여간 감염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거든.”
“맞는 말씀입니다.”
소독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병원은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의사들의 손과 흰 가운은 감염의 온상이었고 동시에 매개체였다.
그러던 것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든 것은 제멜바이스라는 걸출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손 좀 씻자는 말을 꺼낸, 1850년대를 훌쩍 지나서였다.
당시 의사들은 당신이 손을 안 씻어서 이 많은 환자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마음속에는 어떤 동요가 있었을는지 모르겠으나, 실제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의료진 손 씻기 비율이 90%를 넘을 수 있을까?”
당시의 의료진들에겐 그래도 변명거리라도 있었을 터였다.
몰랐으니까.
아직 증명되기 전이니까.
우리 손에 얼마나 많은 세균이 사는지, 그 세균이 환자의 몸에 들어가 어떤 짓을 하는지 아무도 정확히 규명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요. 아니, 대체 왜 안 씻는 거야.”
“뭐…… 막상 해 보면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 그래도 우리 병원 정도면 꽤 많이 닦는 편이야. 70%는 넘어가니까.”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무수히 많은 통계와 논문이 의료진의 손 씻기에 환자의 감염률, 더 나아가 생존율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밝혀냈고 또 밝혀내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여전히 의료진의 손 씻기 비율은 보통 60%대에 머물고 있었다.
그 이상으로 치고 올라가는 병원은 세계적으로도 드물었다.
“강제적으로라도 해 봐야지. 그것만 해도 더 많은 병을 예방할 수 있어.”
“네, 교수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음, 이거 세션 끝나고 밥이나 먹자고.”
“네, 교수님.”
획기적인 방법이 있다면 거금을 들여서라도 도입할 생각이었다.
해서 신현태는 남다른 각오와 함께 해당 세션이 있을 방으로 향했다.
수혁도 면역 항암제에 대한 세션이 열리는 쪽으로 돌아왔다.
[여기가 메인이군요.]
‘감염 관리가 중요하긴 해도…… 딱히 매력적인 주제는 아니잖아.’
[돈이 안 된다 이건가요?]
‘그렇게 말하지 말고.’
컨퍼런스 룸은 크다는 말도 모자라, 거대하다는 표현을 써야 할 지경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방 세 개를 터서 사용 중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워낙 많아서 뒤쪽으로 서 있어야 할 지경이었다.
수혁도 하릴없이 벽으로 향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저, 닥터 리 아닙니까? 태화 의료원에서 온.”
“아……. 네.”
헨리인가 해서 돌아봤더니 모르는 얼굴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자리 맡아 놨습니다.”
“네? 누구신데요?”
“구글 헬스케어의 폴입니다.”
“아.”
화이자 직원이었다면 바로 따라갔을 텐데.
구글이라고 하니 망설여졌다.
“계약 건 때문이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랑 장첸은 잘 알지도 못해요.”
“그럼?”
“원래 오기로 했던 놈이 펑크 내서 자리가 남는 것뿐이에요. 닥터 리의 얼굴을 아는 건, 당시 제가 구글 코리아에 있다가 뉴스에서 봐서입니다.”
“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어떻게든 계약에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수혁 혼자뿐이었다면 홀라당 속였을 수 있겠으나.
안타깝게도 수혁은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었다.
[초조해 보이는군요. 여유로운 척하지만…… 수혁이 딴 데로 가면 어쩌나 하면서 11시 방향을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볼 필요 없습니다. 아까 수혁이 고개 돌리면서 보았던 것을 다시 재생합니다.]
‘애플이네. 팀이 있어.’
[네, 저쪽에서도 아마 자리를 마련해 두었을 겁니다.]
‘내가 이 세션으로 올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지금 열리는 세션 중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닙니까? 항암제는 그야말로 21세기 의학의 화두입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 아무튼, 어쩌지?’
수혁은 바루다의 분석을 가만히 듣고 있기만 하는 대신 의견도 물었다.
그래 봐야 돌아오는 게 최선의 답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수혁 혼자 내리는 결정보다는 나을 가능성이 컸다.
[다리 상태로 미루어 볼 때, 벽에 기대어 있으면 세션 끝나기 전에 부스로 돌아가 쉬어야 할 겁니다. 반드시 들어야 할 내용들이 있으니, 일단은 앉을 수 있으면 앉기를 권합니다.]
‘구글을 따라가, 아님 애플을 따라가.’
[알아서 하십시오.]
‘그게 조언자가 할 말이야?’
[자꾸 잊으시나 본데, 저는 의료 목적 인공지능입니다. 그 이상을 바라면 아주 곤란합니다.]
‘음.’
너무 맞는 말이지 않은가.
사람이었다면 이러다 처맞는 수가 있지만.
아쉽게도 바루다는 기계였고, 심지어 실체가 없었다.
“그럼 가죠.”
“네, 커피도 받아 놨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해서 수혁은 일단 구글을 따랐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슬슬 다리가 아파 오고 있어서였다.
컨벤션 홀이 쓸데없이 크다 보니 오는 사소한 부작용이었다.
[눈에 띄게 안심하는군요.]
‘나한테도 보일 정도더라.’
[박빙인가 봅니다. 이렇게 되면 많이 뜯을 수 있겠죠.]
‘방금 의료 목적 인공지능이라고 한 주제에 깡패처럼 말하지 마.’
[수혁은 원하지 않습니까? 산해진미.]
‘원…… 원하긴 하지.’
[그럼 제 말대로 하십쇼. 뜯어요. 왕자한테는 돈 말고 실물만 받게 생겼지만 이건 얘기가 다릅니다.]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