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60화 (360/1,303)

360화 공룡들 사이에서 (1)

신현태는 후우 하고 심호흡을 내쉰 후 테이블에 앉았다.

팀이라 자신을 소개했던 이는 생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그런 신현태와 뒤늦게 따라 들어온 수혁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여러 모로 아까 마주했던 장첸하고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수혁이 이런 얼굴이었다면, 상대 호감 얻는 데 훨씬 유리했겠군요.]

‘뭐 인마?’

[사실이 그렇다 이겁니다. 딱히 평가하고자 하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면 그게 모욕이야.’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요?]

‘법이 그래. 그리고 의도가 없긴 뭐가 없어.’

아무래도 수혁과 바루다는 긴장이 훨씬 덜 되었다.

신현태가 앞으로 나선 마당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당사자가 된, 그것도 본인의 이익이 아니라 수혁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협상가가 되어 버린 신현태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땀 난다. 땀.’

손만 젖어 오는 게 아니라 콧잔등까지 촉촉하게 젖어 올 지경이었다.

돌이켜보면 과장까지 오른 다음엔 이만큼 긴장해 본 기억 자체가 없었다.

굳이 꼽아 보자면 이현종과 내기 골프를 할 때 정도나 있을까.

돈 때문이 아니라, 지면 이현종이 하도 몇 날 며칠 지랄을 해 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것보다도 더하네.’

만약 실수로 수혁이 손해를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첫째로 신현태 본인이 수도 없이 자책하게 될 것이 뻔했다.

내 일도 아닌데 그럴 거 있냐는 생각이 잠시 튀어 올랐지만, 수혁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도 거대했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친자식 바로 다음이었다.

‘게다가 현종이 형이 이걸 알게 되면…….’

이현종이 의외로 여기저기 프락치를 심어 두는 편이지 않은가.

이번 세미나라고 해서 예외로 뒀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수혁과 신현태가 필요 이상으로 친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지라도 누군가 심어 두었을 터였다.

‘그건 며칠 정도가 아니라 몇 년도 간다.’

끔찍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거들다, 맞습니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팀이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잔뜩 긴장한 와중에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였다.

누군가 그린 것처럼 아름다웠다.

마치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랄까.

[쓸데없는 인풋이 아직도 많군요. 역시 다 지워 버려야 되나.]

‘아직 여유 있다며!’

[뭐, 보류하죠. 시냅스가 늘어나면서 용량도 점차 늘고는 있으니.]

‘내가 여기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죠.]

수혁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신현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혁이나 바루다와는 달리 현혹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친절한 사람은 다 사기꾼! 친절한 사람은 다 사기꾼!’

이런 말을 외치는 게 뭔 소용이 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마인드 컨트롤에는 강하고 반복 가능한 구호가 도움이 된다는 논문도 있었다.

“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구글 팀장님과 얘기 나누셔서 아시겠지만, 현재 북미 쪽 의료계에서는 원격 진료가 핫이슈입니다.”

“음, 그렇더군요. 사실 저희도 마켓 조사에서 그 정도는 파악했던 참입니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거짓이 아니었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달라, 어떤 주는 의료 기관에 종사하고 있어도 심지어 근무 시간 내에도 원격 진료 행위를 허가하고 있기도 했다.

아무래도 대면 진료보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훨씬 간편한 데다가, 비용은 아주 많은 차이가 나지 않다 보니 어떤 의사들은 의료 기관에서의 진료, 즉 대면 진료보다도 원격 진료에 더 공을 들이고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 이 말이었다.

“현재 북미에서 원격 진료는 날마다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연히…… 현재 대형 병원들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죠. 특히 이쪽은 대면 진료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로스가 없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원격 의료에서 이루어진 기록을 그대로 받아쓸 수 있도록 한다, 이거죠?”

“네, 바로 그렇습니다.”

신현태 그리고 수혁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팀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의료법을 떠올렸다.

개인 정보법의 일환으로 진료 정보는 그 누구에게도 공개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의사에게는 그것을 누설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었고, 당연히 인터넷으로 기록이 돌아다니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보안에 대한 자신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규제보다는 성장을 택해서일까.

신현태는 알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도 아닌 일에서 벗어나 대화에 나섰다.

“그 기록을 지금 구글과 애플이 양분하고 있고요.”

“네. 기존의 전자 의무 차트 회사들도 뛰어들고 있지만, 모바일 기반의 환경에서는 아무래도 상대가 안 되죠. 개인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모바일 시대가 온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현상이었다.

개인 컴퓨터, 즉 PC(Personal computer)가 보급된 이래 단 한 번도 출하량이 감소한 적이 있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성장해 가고만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이폰의 등장이 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었다.

심지어 병원 내의 의무 기록조차 모바일이 빼앗아 가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저희가 신경 써야 할 곳은 아무래도 두 기업이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희 애플이라고 할 수 있겠죠. 대한민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는 아무래도 태화나 칠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북미에서는 저희 아이폰이 압도적입니다. 아직 오프 더 레코드인데, 이미 계약을 맺은 병원 수도 저희가 더 많습니다.”

“음.”

거짓말인 거 같지는 않았다.

특히 신현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가 태화 전자 모바일 팀에 있지 않은가.

맨날 고민하는 것이 북미 시장의 점유율 문제였다.

“그렇군요. 음……. 하지만 저희는 계약 조건이 중요합니다. 프로그램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디자인이 아주 잘 되었죠. 실제 진료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일 겁니다. 이 프로그램을 탑재하고 있으면 협상에 유리하게 될 겁니다. 의무 기록이라는 게…… 아무래도 편의성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다른 기록과 달리 의무 기록은 단지 기록으로서의 가치만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과거에 작성된 의무 기록이 지금 이 환자를 살리는 데 있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었다.

또 현재 작성되고 있는 의무 기록은 더더욱 그랬다.

팀은 이러한 바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업계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립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바를 이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미진한 면이 있으면 바로 답변 주시고요. 검토하고 개선이 가능하다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해서 시원한 답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이번에도 신현태는 팀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한숨을 쉬었다.

“어휴.”

“교수님 역시 최고입니다. 여지를 남기질 않으시네요.”

“최고는 무슨……. 잘한 거 같아?”

“네.”

“문제는 지금부터야.”

신현태는 수혁의 칭찬에도 마냥 웃고 있지 못했다.

계약서 선제시를 받게 된 것은 물론 잘한 일이었다.

업계 최고 대우니 뭐니 해 봐야 개뿔 아는 것도 없는데 이쪽에서 요구 사항을 어떻게 전달한단 말인가.

뭐가 되었건 두 곳에서 받아 보고 더 좋은 곳을 고르는 게 나았다.

문제가 있다면 그래 봐야 아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이거 뭐 정보 얻을 만한 곳이 없을까요? 그…… 사모님?”

“우리 아내? 안 돼, 거긴…….”

“왜, 왜요.”

아내 얘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저자세를 취할까.

이현종이 가끔 넌 왜 이렇게 공처가냐고 할 때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진짜인 모양이었다.

수혁은 누가 때리러 오는 것도 아닌데 몸을 숙이고 있는 신현태를 보며 당황했다.

[역시 결혼은 해가 됩니다. 이현종을 보십쇼. 사람이 얼마나 철이 없고 늘 행복합니까.]

‘결혼을 해야 된다고 돌려 까는 건지 뭔지 모르겠네.’

[지금 이 모습보다는 낫다 이 말입니다.]

‘그건 그런데…… 그래도 이현종 원장님은 부러워하던데.’

[이걸요?]

‘음.’

처음으로 태화 의료원 과장이자, 실력 있는 감염내과 의사 신현태가 안쓰러워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수혁은 이 모든 감정을 갈무리할 수 있었기에 신현태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우리 아내는 완전 태화 충성파야. 조건이랑 관계없이 무조건 구글이랑 하라고 할걸?”

“조언인데……. 그래도 그럴까요?”

“몰랐으면 모르겠는데, 알게 되면 무조건 구글이지. 내가 말 안 듣고 애플이랑 했다는 거 알게 되면…….”

신현태가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기에 수혁도 더는 감정을 숨기기가 어려워졌다.

‘왜 이러시냐……. 진짜 맞나.’

[방어에 적합한 자세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냥 내가 당신에게 굴복했다, 뭐 이런 제스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정도라고?’

[제 데이터상으로는 이렇습니다.]

‘흠.’

다행히 신현태는 체면 차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부스 안으로 들어오는 기색이 있자 마자 몸을 바짝 일으켰다.

“아까 보니까 아주 난리 났던데요?”

화이자의 헨리였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는데, 그리 놀라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 네. 아이고…….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미리 정보를 좀 줬거든요. 여기 보시면…….”

헨리는 다른 이들에게 보낸 것으로 짐작되는 메일을 보여 주었다.

이번 세미나에서 주목해야 할 부스 및 세션에 떡하니 거들다가 들어가 있었다.

당시에는 이름이 없어 그저 패혈증 예측 인자라고만 쓰여 있긴 했지만, 부연 설명을 보면 누구라도 혹하게끔 되어 있었다.

특히 차트 선점 싸움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터였다.

“아……. 어쩐지. 어떻게 알고 왔는지 이거야 원.”

“구글하고 애플 둘 다 왔죠?”

“아, 네.”

“계약 당장 하기로 한 건 아니겠죠, 설마.”

헨리의 말에 신현태는 역시 보류하기를 잘했단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닙니다. 우선 계약서를 보내 주기로 했습니다.”

“계약서 혹시 잘 보시나요?”

이 말엔 뭐라고 답해야 할까.

‘다 사기꾼!’

이현종의 말이 울려서 도저히 제대로 된 생각을 이어 나가기가 어려웠다.

그때 수혁이 나섰다.

[혠리의 얼굴 표정 분석해 봤을 때, 호의 100%입니다.]

‘믿을 수 있는 거지?’

[이 인간이 여기서 뭘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래.’

바루다와의 대화를 통해 결단을 내린 후였다.

“아뇨, 계약서 보는 법은 잘 모릅니다.”

“잉.”

신현태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헨리가 있지 않은가.

내색할 수가 없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마침…… 저희 화이자도 거들다의 계약 당사자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필요하다면 금전 지원도 하지만, 계약서 검토 등도 협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 측 직원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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