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56화 (356/1,303)

356화 거들다 (2)

수혁과 신현태는 자못 긴장한 얼굴이 됐다.

둘 다 학회라면 꽤 경험이 있는 데다, 심지어 나름 사람들 앞에서 서서 발표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음에도 그랬다.

‘수혁아, 나 저 사람……. 이름 알 거 같다…….’

‘저도 그래요, 교수님. 교수님이 주신 자료에 나와 있던 이름이에요.’

사실 둘은 의사지, 디지털 헬스 케어의 전문가는 아니지 않은가.

대면 진료와 디지털 헬스 케어는 정보 획득 방식이나 획득하는 정보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건강을 다루는 분야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예 다르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보통 현대인들이 24시간 들고 사는 스마트 폰을 활용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주로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이들은 의사가 아니라, 실리콘 밸리의 공학도들이었다.

지금 흥미롭다는 얼굴을 한 채, 둘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이도 그랬다.

‘다니엘 러셀…….’

‘지금 텔레닥터의 설립자가 여기 있다고?’

그야말로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현재 북미 원격 의료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사람일뿐더러, 이 전에도 이미 한차례 성공적인 사례를 남긴 바 있었다.

‘저 사람 최윤섭 박사 아냐?’

‘아니……. 좀 도와달라고 할 때는 안 오더니, 왜 여기서 저러고 있대.’

‘어떻게 온 건대요? 화이자랑 무슨 관계가 있나?’

‘저 사람이 벤처 캐피탈 운영하잖아. 한국에서 유망해 보이는 디지털 헬스 케어 회사들은 죄다 저 사람이 투자하고 있으니까……. 저 사람 하나 잡으면 화이자에서도 편하지.’

‘아.’

뒤에 서 있는 인물들이라고 해서 처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하나 이름만 대면 적어도 이 분야에 속한 사람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는 이들이었다.

“바이털을 다루는 디지털 헬스 케어 프로그램 중에 이만한 성과를 낸 프로그램이 있었나?”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니엘이었다.

여전히 인상을 쓴 채였는데,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화가 났나 싶을 지경이었다.

“아뇨, 없었죠. 아직 바이털은…… 거의 불모지입니다.”

“그렇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문제는 아냐? 우리라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거 아니냔 말이야.”

“아뇨……. 집단 감염이라는게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 케이스는 마취 가스 내에 발생한 감염인데, 하필 장소도 협진 수술방이에요. 이걸 발생한 지 불과 하루 이틀 만에 의심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런 사례가 아예 없어요…….”

“평균치가 얼마나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게 맞아?”

“네. 애초에 지금 이 발표자가 사례로 들고 있는 게 다 논문으로 발표되거나 케이스 리포트 되었던 내용들이에요.”

“흠…….”

말이 안 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프로그램임에도 그랬다.

딱히 그런 걸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었다.

원래 이쪽 분야가 그랬으니까.

열난다 라는 어플이 대표적이었다.

단순히 열날 때 이 열이 위험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지역에서 발열 질환이 도는지 가장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그건 우연이 그렇게 된 거지만…….’

이건 치밀하게 잘 설계된 프로그램인 듯했다.

만들기 전부터 이 비슷한 결과를 예측하고 만든 느낌이랄까.

만약 우연히 발견된 이득이라면 이렇게 빨리 이상징후를 발견하고 조치를 취했을 리가 없었다.

‘신현태, 이수혁. 둘 다 처음 보는 이름인데…….’

대한민국 자체가 이쪽 분야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전 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하면 진짜 이상한 일이었다.

임상 분야에서 그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고 또 임상 시험 등 바이오 헬스 케어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후발주자로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나라에서, 심지어 아이티 강국이라는 곳이 디지털 헬스 케어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니.

개발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 소기업들이 있었으나, 규제에 가로막혀 있었다.

참다못해 북미 또는 유럽으로 진출하고 거기서 대박을 치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이만한 성과를 냈다?’

이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디지털이라는 말만 듣고 쉽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개발에 들어가는 품이나, 이후 서비스 적용까지 생각하면 결국 신약 개발하고 거의 비슷한 난이도를 지니고 있기에 그랬다.

“아……. 그런데 이 프로그램 말이에요.”

잠시 상념에 빠져 있으려니, 옆에 있던 이 그러니까 텔레닥터의 코파운더이자 믿음직한 동료 장이 말을 걸어왔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실리콘 밸리에서도 알아주는 인재 중 하나였다.

특히 형제 중 의사가 있어 이런저런 쓸 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물어다 오는 편이었다.

“응, 왜?”

“잘 보시면 수가가 없어요. 이거 그냥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사용한 것이지……. 금전적인 보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만한 성과를 냈는데도?”

“뭐……. 한국 보험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죠. 다 나랏돈인데 그거 허투루 주고 싶겠습니까?”

“그럼 이거 외국으로 나가야겠구나.”

“네. 북미 지역 진출을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여기다 낸 것일테고요.”

“흐음…….”

다니엘 러셀은 그간 한국에서 넘어왔던 프로그램들을 떠올렸다.

루빗에서 만든 뼈 나이 계산기니…… 뭄이니 하는 것들.

한국에서는 도저히 돈을 벌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넘어온 것들이었지만 북미에서는 각광 받았다.

루빗의 뼈 나이 계산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면서 동시에 진료에 편의성을 주는 물건이었기에 의료진들 사이에서, 특히 1차 진료의들에게 불티나게 팔렸다.

뭄이야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 아예 정식으로 당뇨 및 고지혈증, 고혈압 예방 프로그램으로 선정해 수가를 인정해 주고 있을 지경이니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건 될 거 같은데. 조금만 수정해서…… 우리 쪽에 적용만 시키면…….’

이 프로그램이 앞서 말한 두 개처럼 대박을 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니, 사실 그럴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봐야했다.

이건 대상이 바이털이 흔들리는 환자로 한정되니까.

구매할 의사를 표할 만한 곳도 대형 병원뿐일 거란 얘기였다.

하지만 집단 감염은 어느 병원에서나 두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조기 검출에 있어서 이 프로그램만큼 효용이 있는 것이 있을까?

다니엘 러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기, 다니엘?”

“왜, 또.”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또 방해를 해 왔다.

아무리 신뢰하고 있는 동료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저기 좀 봐요. 이 프로그램 관심 있으면 빨리 붙어야 될 거 같은데요?”

“응? 아. 이…… 이 세미나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원래 비즈니스는 그 전에 하잖아요. 빨리 붙어요!”

“아, 알았어.”

하지만 장이 가리킨 곳을 보니 마음이 덩달아 급해졌다.

뻘쭘하게 서 있던 신현태, 이수혁을 향해 주변에 몰려들어 있던 이들, 경쟁자들이 죄다 몰려든 탓이었다.

화이자야 어차피 돈줄을 쥐고 있는 지주회사이니 누가 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투자를 받은 자회사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성과를 내서 통매각을 하든지 아니면 ipo를 통한 엑싯을 해야 하지 않는가.

제일 좋은 방법이야 애초에 개발 중이던 건을 터뜨리는 것이었지만, 그게 안 되면 될 만한 프로그램이라도 사거나 제휴를 맺어야만 했다.

“야, 수혁아! 내 손 잡아라. 이 새끼들 왜 이러냐. 무섭게.”

“어어, 네. 어어.”

“옳지, 잡았어. 거 좀 줄 좀 섭시다! 줄!”

“네, 줄 서세요! 다 차근차근 설명해 줄라니까!”

그사이 신현태와 수혁은 서로 얼싸안은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나마 신현태가 완력이 괜찮은 편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놓쳐서 각각 한 명씩 둘러싸이게 되었을 판이었다.

“그래요, 줄 좀 섭시다!”

둘의 외침에 다니엘이 끼어 들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거물인 데다가, 최근 실리콘 밸리에서 디지털 헬스 케어 사업 좀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얼굴이기도 했기에 소란이 점차 수그러들었다.

그래 봐야 수혁과 신현태에게서 한 2미터쯤 떨어졌을 뿐이긴 했지만.

아까처럼 출퇴근길 9호선 급행처럼 마구잡이로 몰려들어 있지는 않았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래니, 수혁아…….”

“그러니까요.”

신현태는 어리둥절하다는 얼굴로 그러나 싫지만은 않다는 표정을 지은 채 수혁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손을 맞잡고 있어서 그럴까.

‘태진아 너는 손은 못 잡아 봤지? 난 비록 삼촌 소리는 못들었지만…… 아니지, 내가 미쳤나.’

신현태는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헐레벌떡 손을 내려놓았다.

물론 수혁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아니, 눈앞에 모여든 이들을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는 말이 맞을 터였다.

[아까 말했죠, 다니엘 러셀은?]

‘응, 저 사람은 누구지? 낯이 익은데.’

[퍼스트 더마입니다. 그 왜 있잖아요. 카메라로 피부 병변 근접 촬영하면 진단 내려 주거나 어떻게 하라고 하는 거.]

‘아. 원격 의료 파트구나.’

[북미는 대부분 그렇죠. 셀 스코프 대표, 닥터 엠디, HRX 등등 지금 보이는 대표들만 10명은 넘습니다.]

‘미쳤나, 왜 이래?’

이름이 생소해서 그렇지 유니콘 기업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몸값만 다 합쳐도 몇조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할 일 없이 여기 와 있을 리가 없었다.

[거들다에 눈독을 들이는 거 같군요. 영상만 보면 뭐 세계 최고의 프로그램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어째 질투하는 거 같다?’

[질투요? 설마요? 비슷해야 하지……. 저런 하잘것없는 프로그램 따위야…….]

‘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실 그런 말을 들어 본 적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 바루다가 보이는 모습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걸 지금 당장 지적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텔레닥터의 다니엘 러셀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개발자신가요?”

“아, 아뇨. 책임자입니다. 개발 자체는 전자팀에 외주를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어찌 되었건 개발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죠?”

“네.”

“잠깐 보니까 설계가 아주 잘 된 프로그램인 듯합니다. 실제 진료 현장에 지금 당장 적용해도 될 거 같아요. 혹시 더 자세한 설명이 가능합니까?”

“아…….”

작은 발표장같지 않은가.

다니엘이 질문하는 동안, 나머지 모두는 숨죽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앞열에 있던 사람들은 알아서 바닥에 무언가를 깔고 앉았다.

니들이 뭔가 더 얘기를 해 주지 않는다면 여기서 뜨지 않겠다, 뭐 이런 의지를 표명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수혁아.”

연구 책임자란에는 명목상 신현태 이름을 써 놓았지만.

모두가 로열티 등을 수혁에게 양보한 마당 아닌가.

여기선 수혁이 나서는 게 맞았다.

“아, 네.”

해서 수혁은 신현태가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지팡이에 몸무게를 지탱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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