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51화 (351/1,303)

351화 준비하자, 세미나 (3)

어느새 굳게 잠긴 과장실에 신현태와 이현종 그리고 수혁이 나란히 앉았다.

테이블 위에 쌓인 수많은 자료를 내려다보면서였다.

“근데.”

“뭐요.”

“오늘 해야 할 일이 정확히 뭔데.”

먼저 입을 연 것은 이현종이었다.

감히 과장이 하극상을 벌여 자신을 가둔 것에 대해서는 딱히 불만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수혁을 위해 해야 할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오히려 적극적인 모습만 보였다.

“일단 전에 우리가 보낸 계획서 보여 드릴게요.”

“아, 그래.”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에 대해 굳이 감사를 표하진 않았다.

수혁을 위한 일인데 그럼 어련히 알아서 해야지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수혁에게 단단히 홀렸군요. 이건 단순히 제가 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닌데.]

‘내 인망이지.’

[미쳤나.]

‘뭐?’

[입력 오류입니다.]

‘하.’

바루다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인가 하는 고민에 빠진 동안 프로젝터가 구동되었다.

그리고 곧 신현태, 이수혁 팀이 전에 화이자에 제출했던 자료가 떴다.

보기엔 그럴싸했지만, 내실은 부족한 자료였다.

여느 사람이라면 속여 넘길 수 있겠지만 상대는 이현종이었다.

“그걸로 이따위 걸 냈다고?”

“흥분하지 마시고요……. 이거 낸 시점을 생각해 봐요. 만들기도 전이야.”

“아……. 그런가. 음. 그럼 이거 싹 뜯어고쳐야겠는데. 이것만 보면 이러이러한 것도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잖아? 이미 입증한 것도 두루뭉술하게 써 있고. 이래서 이거 투자가 되겠어?”

“그러니까요. 이걸 형이 좀 해 줘요.”

“어?”

신랄한 비난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던 이현종이 눈을 크게 떴다.

딱 봐도 이게 제일 급하고 어려운 일일 거 같은데, 이걸 대뜸 던져?

이 자식이 미쳤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신현태의 이어지는 말을 들어 보니 또 그럴싸하기는 했다.

“집단 감염 그거……. 나랑 수혁이는 실무를 본 거지 전체 윤곽은 잘 몰라요. 형이 언론 대응하면서 전체적인 거 다 파악했잖아. 다른 병원하고 차이가 얼마나 났는지 뭐 이런 거 말이에요.”

“음.”

“그러니까 형이 만드는 게 제일 좋아. 이게 뭐 절대적인 수치가 매력적이겠냐고. 아선이나 칠성같이 국제 무대에서도 통하는 병원들보다 훨씬 나았다! 이런 말이 매력적이지. 안 그래요?”

“뭐…….”

“그리고 사실 형이 만든 업적이잖아요. 안 그래요?”

“뭐…… 그렇지.”

게다가 신현태가 은근슬쩍 들었다 놓으니,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특히 아선과 칠성보다 훨씬 나았다는 말과 형이 만든 업적이라는 말들이 그랬다.

“그래, 그럼 내가 할게.”

“오케이, 그럼 그건 됐고.”

신현태는 속으로 똥 하나 치웠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이현종이 어리숙하게 일을 맡아 가긴 했지만, 결과물까지 그럴 리는 없지 않은가.

도리어 완벽에 가까울 터였다.

이현종 그레이드의 다른 교수들이야 그렇지가 못했지만.

이현종은 여전히 40대 교수들보다도 더 많은 논문을 내는 현역이었다.

논리 쌓아 나가고 결과 해석해 내는 솜씨가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럼 수혁아.”

“네.”

“이거 그냥 이대로 갈 거야? 프로그램 말야.”

“태화 전자에서 온 리포트 보니까…….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좀 바꿔 보려고 하긴 하는데, 시일이 될까요?”

“이건 꼭 결과물까지 들고 갈 필요는 없어. 이렇게 할 거다, 또는 이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이런 거 정도면 돼. 우리가 뛰어드는 마당에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렇지만……. 내가 보니까 미국에서 뭐 유망하다고 하는 기업들이 내는 프로그램들도 지금 뭘 하는 건 없더라고.”

신현태의 말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의 뜻이었고, 바루다라 해서 딱히 다른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게 맞죠. 다 사기꾼입니다. 말로는 꼭 저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 거처럼 하잖아요? 막상 보니까 왓슨도 별거 없던데.]

‘너야 뭐……. 일반적인 케이스가 아니니까.’

바루다와 같은 인공지능은 일반적으로 강한 인공지능, 즉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과 흡사한 인공지능을 뜻했다.

만약 이런 인공지능에 대해 현시점에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기꾼이 맞았다.

언젠가는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불가능하니까.

즉 지금 나오는 프로그램은 기껏해야 약한 인공지능들이었다.

인간의 업무를 보조할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들이란 뜻이었다.

[근데 꼭 얘기는 다 가능할 거처럼 하더군요.]

‘그래야 투자가 되나 봐.’

[우리는 이미 성과를 내지 않았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만.]

‘교수님도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닐걸.’

수혁은 태화 전자에서 보내온 피드백을 떠올렸다.

요약하면 지금처럼 단순 패혈증 관련한 인자만 분석하지 말고, 중환자실의 전반적인 모니터링을 해 보자는 얘기였다.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병원 현장을 모르는 공학도라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고.

하지만 불가능할 거 같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긴 했다.

세세한 조정과 교육을 능력 있는 의사가 해 줄 수 있고, 충분히 많은 데이터를 다룰 수 있다면 무리는 아닐 거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거 제가 한번 도맡아서 해 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는 일단 지금 조사해 둔……. 현재 나온 비슷한 프로그램이나 디바이스 정리해서 붙여 줄게. 그리고 이게…… 사실 전자 차트가 통합돼야 쓸모가 있을 거거든? 보니까 구글에서 북미 전 지역 전자의무기록시장을 공략하고 있더라고.”

“그래요? 구글이?”

“구글만이 아니라, 애플도 하고 있어. 거기가 우리나라보다 이쪽으로 거의 10년 이상 빠르다고 보면 돼.”

디지털 헬스 케어 분야에서 10년이 빠르다는 건, 그냥 영원에 가까운 차이가 난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뜻이었다.

해외 같은 경우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규제를 풀어 버리고 훨훨 날 수 있게 해 주지만,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규제 완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였다.

한편으로는 현 기득권, 그러니까 의사들의 저항 때문이기도 했다.

그쪽에도 당연히 논리가 있고 또 근거가 있었다.

현시점에서 뭐라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긴데, 신현태 개인적으로는 이미 세계적 추세가 기울어 버린 이상 이 흐름에 저항하는 건 당랑거철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거기는 이미……. 그래, 아까 현종이 형이 얘기한 것처럼 스마트폰을 이용한 진료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거든. 거기 쌓인 자료를 각 병원에서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뭐 이런 명목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 프로그램도 거기 통용되게끔 하면 더 좋겠지.”

“그렇군요. 음, 알겠습니다.”

“그래. 이게 정말 시일이 급하거든? 당장 다음 주까지는 만들어서 내야 해.”

“괜찮습니다. 집중해서 만들면 또 금방이죠.”

이런 말을 수혁이 아닌 다른 레지던트가 했다면 대번에 이런 건방진 새끼와 같은 욕이 튀어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이지 않은가.

‘그래, 우리 수혁이는 진짜 금방할 수 있지.’

신현태는 수혁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히려 이현종을 의심했다.

‘저 양반은 잘하려나.’

그리고 이럴 땐 또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이현종은 그런 신현태의 눈초리에 화를 냈다.

“이놈이. 너 할 거나 해, 인마. 남 의심하지 말고!”

“알았어요, 알았어. 근데 잘하고 있는 거 맞아요? 자료도 안 찾고 막 쓰는 거 같은데.”

“그때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아냐. 아직도 눈 감으면 수치가 생각나서 잠이 안 와.”

“아니……. 각 병원 감염자랑 치명률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요?”

“잉. 치매 왔어? 그런 걸 까먹나, 보통?”

“허…….”

신현태는 그런 걸 기억하는 게 이상한 일이란 얘기를 하려다, 뒤에 있는 수혁을 돌아보았다.

눈치를 보아하니 저놈도 대강의 수치를 다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수혁은 저 덕분이긴 하지만요. 이현종은 정말 대단하군요.]

‘나도 알어, 인마.’

[그럼 고맙다고 하세요.]

‘하.’

[하?]

‘고맙다…….’

수혁이 속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서 신현태도 그만 다 알고 있는 척을 하고야 말았다.

“아니, 뭐 그렇긴 하지. 근데 소수점은 좀 헷갈려서.”

“아, 그럴 수 있지. 너는 그냥 듣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발표를 직접 다 했다는 말씀. 이런 걸 까먹으면 진료 같은 거 보면 안 되지.”

“네, 그렇죠.”

“그런 놈이 있으면 멍청하다기보단 부도덕한 거야.”

“네네.”

신현태는 의도치 않게 던지는 비수에 상처를 한가득 받고서 일을 다시 시작했다.

‘망할. 천재들 틈바구니에 있으려니까 괴롭구만.’

분명 신현태도 머리가 좋은 편이지 않은가.

아니, 어디 가면 천재 소리 듣고도 남을 만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감염학회에서 신현태의 입지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현종과 수혁과 같은 방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음. 이렇게 하면 되나.”

“어……. 벌써 다 했어요?”

“벌써는 무슨 벌써야. 벌써 1시간이 다 되어 가는구만.”

“아니, 1시간이…….”

화이자에서 요구하는 서식은 엄청나게 빡빡하지 않던가.

기껏해야 계획서 아냐?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이 연구의 배경과 고찰을 아주 심도 있게 써야만 했다.

어찌 보면 논문 집필 수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이거 계획서 쓸 당시 신현태는 거의 3일 정도를 할애해야만 했다.

배경은 수혁이 써 왔음에도 그랬다.

“NEJM 낼 것도 아니고 뭐 이 정도면 됐지.”

“대충 쓰면 안 되는데?”

“그 정돈 아냐. 제약 회사에서 이 정도면 만족하지.”

“어디 봐 봐요.”

“그래, 봐라.”

해서 이 인간이 일을 망치려고 작정했나 하는 얼굴로 계획서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읽는 것만도 벅찰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졌는지야, 애초에 수혁이 심혈을 기울여 썼던 만큼 다시 봐도 완벽했다.

하지만 이후 이 프로그램이 낸 성과는 오롯이 지금 이현종이 쓴 것일 텐데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기존의 방식……. 그러니까 간호 인력이나 주치의들이 알람에만 의존했을 때하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 수치를 정확히 정리해서 보고받을 때하고의 차이가……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 이거 그냥 표로 만들었…… 아 밑에 그래프로 바꿀 것이라고 되어 있네. 그렇게 하면 한눈에 보이겠는데. 이거 수치가 정말 다 정확한 건가?’

경향성이야 신현태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수치가 문제였다.

‘아, 아까 괜히 소수점 어쩌고 해 가지고 정말 맞냐고 묻지도 못하겠고…….’

해서 고민만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다가온 수혁이 입을 열었다.

“오, 수치가 정말 다 맞네요. 음. 이만하면 저번 보고서랑 퀄리티 차이가 없는데요?”

절망스러운 얘기에 고개를 돌려 보니, 이놈도 완성된 자료를 들고 있었다.

‘개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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