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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350화 (350/1,303)

350화 준비하자, 세미나 (2)

신현태는 잠시 철없는 두 어른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수혁과 자기 사이에 진전이 있을까 봐 여기 왔을 줄이야.

‘이거 진짜 미친놈들 아냐?’

잠시 이현종에게까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좀 미안하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하는 짓이 그런데.

솔직히 아랫사람이었으면 등짝이라도 후렸을 터였다.

“아야, 왜 때려요!”

조태진한테 그런 것처럼 망설임 없이,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때렸을 것이 분명했다.

“야, 왜 조 교수 때리면서 노려보는 건 날 노려보냐? 나 헷갈리게? 하극상이야?”

신현태는 그런 마음을 눈빛으로나마 표출하면서 대꾸했다.

“지금 둘이 하는 짓이 정상이에요? 세미나 갈 사람들 방해하지 말고 빨리 가요.”

“어딜 가. 나 외래도 없고, 오늘 시술도 끝났어.”

“그럼 집에 가!”

“와…….”

일단 ‘와’라고 하고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너무 맞는 말이긴 했다.

할 게 없으면 집에 가야지 왜 병원에서 뭉개고 있단 말인가.

‘생각하자, 생각해! 이현종!’

하지만 이대로 떠나긴 싫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질투였다면 이제부터는 자존심 문제였다.

신현태에게 논리에서조차 밀린 채 사라지는 건 완전 지는 기분이지 않은가.

“뭘 그렇게 눈알을 굴려요. 조태진, 너도 이때다 하고 버티지 말고 가. 여기 뭐 볼일 있어?”

“그…….”

조태진 또한 논리에서 밀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할 일도 없는 놈들이 일터에 있는 게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조태진도 이대로 떠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원장님……. 저희 왜 여깄죠?”

해서 이현종에게 붙었다.

부담감이 배가 된 셈인데, 그렇다고 해도 딱히 뾰족한 수가 나지는 않았다.

의학적인 고뇌도 아니지 않은가.

천재 의사라는 타이틀도 이럴 땐 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하시려나.’

[글쎄요. 이건 이현종이라고 해도 졌는데.]

바루다도 수혁도 저 상황에 처했다면 하고 생각해 봤는데 딱히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해서 이현종이 선택한 것은 우기기였다.

“이, 이놈이……. 난 인마 마누라도 없는데 집에 가면 뭐 해. 가족이 없다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인 거 알죠? 맨날 수혁이 자기 아들이라고 해 놓고선?”

“우리끼리 얘기니까 하는 말이지만, 이 녀석은 내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잖아.”

“그 아들 좀 놓아 주시라고……. 일해야 된다고…….”

“같이 일하자.”

“아이…….”

“너 지금 씨라고 하려 그랬냐?”

“그러면 안 돼요?”

“와, 이놈 봐.”

“알았어요, 알았어……. 일단 과장실로 갑시다.”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신현태는 성정이 부드러운 사람 아닌가.

이렇게까지 선배가 자존심 내려놓고 매달리는 게 내칠 만큼 까칠하게 굴 수가 없었다.

“넌 은근슬쩍 붙지 말고. 가족도 있잖아.”

“아니…….”

“그래, 조 교수. 가는 게 좋겠어. 뭐 하러 오는 거야.”

“어…….”

물론 조태진까지 받아들여 주진 않았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할 일이 너무 많아서였다.

신현태도 수혁도 바쁘단 핑계로 세미나 준비를 차일피일 미뤄 왔더니, 기일에 맞춰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우선 그간 쌓인 데이터 및 성과에 맞춰 계획서도 다시 써야 했다.

“그럼 가.”

“그래, 가.”

해서 조태진을 보낸 후, 과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머리를 굴렸다.

‘이미 파일럿이라고 하기엔……. 성과를 내 버렸어.’

이만하면 패혈증 조기 예측 가능성 정도는 입증하고도 남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게 돈이 되냐 마냐 하는 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안 돼. 수가 인정은 안 해 줄 거야.’

집단 감염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막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데이터 쪼가리에 돈을 줄 것인가 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보편적 다수에 대한 복지를 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 건강보험 시스템은 언제나 돈이 쪼달리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미국이나 기타 다른 선진국에서는 1차 약제로 쓰고 있는 면역 항암제도 대한민국에서는 2차 약제로 쓰고 있지 않은가.

돈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는데, 그 때문에 살 수 있었던 환자가 매년 수백씩, 수천씩 죽어 나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신현태로서도 감히 이 프로그램에 대한 수가 인정 주장을 강하게 하기 어려웠다.

‘외국이라면 다르지.’

특히 미국은 이쪽으로 완전히 열려 있었다.

의외로 중국도 그랬다.

심지어 원격 의료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미국 같은 경우 주마다 세세한 조항이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전격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한 국가는 없었다.

“야, 뭐 해. 네가 열어 줘야지.”

“네, 교수님. 이거 어떻게 열어요?”

딴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과장실 앞이었다.

이현종이 멍한 얼굴의 신현태를 보면서 혀를 찼다.

“이거 봐, 이거. 내가 이거 어떻게 믿고 아들을 맡기겠냐고.”

참 사람 열 받게 하는 얼굴이었고, 말투였다.

신현태는 삑삑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자료를 탕탕 소리가 나게끔 두드렸다.

“형, 이게 다 디지털 헬스 케어인지 나발인지에 대한 자료예요. 내가 이거 다 알아보고 정리하느라 얼마나…….”

어찌나 자료가 두터운지 진짜 탕탕 소리가 났다.

두들길 때마다 자부심도 널리널리 퍼져 나갔다.

진짜로 개고생해 가며 알아본 내용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네가 알아본 거라고?”

“그렇다니까?”

“흠.”

그런데 이현종의 반응이 어째 뜨뜻미지근했다.

신현태는 그것이 바로 주류 의학에 속한 이들이 바라보는 디지털 헬스 케어에 대한 시선이라 생각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제일 심하지.’

적개심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좋게 보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형, 이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수혁이가 만든 거야. 그거 토대로 논문도 쓰고 돈도 벌고 하려고 찾은 자료라고. 시비 걸 생각하지 마요.”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닌데.”

“그럼 뭔데요. 왜 입술이 사발만큼 나왔어.”

“이 자료 나 본 적이 있는데.”

“잉?”

“최윤섭 박사……. 그 사람 자료 아냐?”

“어…….”

이건 또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세상에 최윤섭을 알다니.

그 말은 곧 이현종이 이쪽 일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힙 한 것과는 관계가 먼 정도가 아니라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현종이 그렇다고?

신현태는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되뇌며 물었다.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어디서 주워들었어?”

“뭔 미친 소리야 이놈이. 내가 원장인데. 같이 인마 회의도 했어.”

“회의를…… 해?”

“우리 그룹 주요 계열사가 어디냐. 전자 아냐. 전자에서 뭐 만들어.”

“어…….”

이쪽에서 먼저 질문 했는데, 저쪽에서도 질문으로 응수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질문에 대한 답변 회피의 정석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답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교수님?’

수혁이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이놈만 있으면 기대에 부응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혁도 언제고 자신의 기대에 부응했어서 그런 건가 싶었다.

하여간 신현태는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렸다.

“그래, 컴퓨터!”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고, 또 지금 당장 보이는 태화 전자 제품이 컴퓨터뿐이었기에 옹색한 답변만이 가능할 따름이었다.

이현종은 그런 신현태를 보며 다시 한번 혀를 츠츠 찼다.

“아버님이 울겠다. 아버님이 우시겠어.”

“함부로 불효자 만들지 마요……. 내가 얼마 전에 우리 아버지 건강 검진도 풀로 해 드렸어.”

“야, 원래도 VIP신데 뭘 네가 해 드려. 나도 검사 중간에 가서 인사했는데.”

“그…….”

“인마, 태화 전자 하면 핸드폰 아냐.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파는 회산데, 이걸…… 이걸 몰라?”

“그게 뭔 상관이에요, 우리랑.”

“어휴.”

이현종은 계속 혀를 찼다.

아니, 계속이라기보다는 ‘포르테’ 그러니까 점점 강하게 차고 있었다.

“핸드폰 너 지금 어딨냐?”

“어딨긴요. 들고 있죠.”

“너 그거 떼어 놓을 때가 있어? 한 2m 이상.”

“어……. 없죠.”

질문은 여전히 이상했지만 하여간 답은 했다.

괜히 묻는 건 아닐 거 아닌가.

이현종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짓을 노상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방금 수혁 때문에 바쁘다고 한 마당에는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이현종이 의외로 이쪽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군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에 대한 일이라고 하면 관심이 많잖아. 통합진료센터만 해도 그렇지.’

[하긴. 수혁은 참 운이 좋군요. 저 다음에는 신현태, 이현종이라니.]

‘조태진 교수님 빼먹지 말자. 잘해 주기로 따지면 거기도 만만치 않아.’

[그렇게 고마우면 아까 잡지 그랬습니까.]

바루다는 조태진의 쓸쓸한 뒷모습을 재생시켜 주었다.

이상한 bgm까지 깔아서 그런가, 더더욱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어디 인간극장에라도 나와야 할 거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은 좀 방해가 될 거 같긴 하더라고.’

[수혁은 참 계산적인 사람이군요.]

‘은근슬쩍 욕하지 말고…….’

[칭찬입니다. 기계 같다는 말이에요.]

‘그…… 아니다.’

수혁은 여전히 이게 정말 칭찬인지 아니면 고도의 돌려 까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화를 종료했다.

물론 그동안에도 이현종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 그럼 그거 이용해서 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 어떨 거 같아.”

“어……. 뭐 모르는 게 없겠죠?”

“그렇지? 24시간 들고 사니까.”

“네. 근데 그게…….”

“야, 우리 진료실에서 환자 오래 보면 몇 분이냐? 10분 정도나 보냐?”

“태화 의료원은 워낙 환자가 많아서 그렇게 보는 분도 거의 없죠.”

그나마 태화는 3분에서 5분은 지키고 있는 참이었다.

하지만 당일 외래를 표방하고 있는 아선과 칠성은 점점 더 환자 한 명에게 할애하는 진료 시간이 줄고만 있었다.

병원에 경영 논리가 너무 강하게 끼어든 탓이었다.

“그럼 그 시간 동안 우리가 환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많겠어……. 아니면 핸드폰 정보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많겠어.”

“아.”

“태화가 여기 관심 있는 게 당연한 거야. 물론 뭐 의료법이 워낙 까다로워서 사업화 하고 있는 건 아직 없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둘 수는 없다고. 실제로 해외 수출용 디지털 워치는 심장박동도 다 재 주잖아. 우리나라만 안되고.”

“아……. 그래서 아시는구나.”

“그리고 수혁이가 비슷한 거 만들었는데 내가 회의를 빠질 수가 있나. 당연히 나가야지. 그러니까 지금 뭔 얘기를 해도 내가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거다 이 말이야.”

“하.”

신현태는 이제 정말로 이현종을 배제할 명분은 사라졌다는 생각에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이 인간이면 도움이 되기는 할 거야.’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천재 아닌가.

가뜩이나 시간은 없고 해야 할 건 많은 상황에서 이만한 손 보태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알았어요, 대신…….”

“왜 문을 잠가?”

“오늘 할당량 채우기 전에는 못 나가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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