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40화 (340/1,303)

340화 유전 질환이라고 해서 (1)

“네?”

보호자는, 그러니까 아이 엄마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내내 인상 쓴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가 갑자기 알 거 같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솔직히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리 어려운 검사들은 아닌데, 혈액 검사가 포함되어 있어요. 약간 아파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본 수혁은 확신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제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 더했다.

‘선배……!’

그 모습을 가장 반가워하는 건 다름 아닌 안대훈이었다.

내내 쥐 죽은 듯 조용히 하고 있던 녀석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고 있었다.

누군가 눈여겨봤다면 미친놈인가 했을 법한 광경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 엄마는 오로지 수혁만을 보고 있었다.

“어떤…… 어떤 병이죠? 우리 애가 뭐에 걸린 거예요?”

“지금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바로 말씀드리죠.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그…….”

“그럼 처방할게요. 바로 시행해 주세요.”

수혁은 보호자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준 후, 보호자에게 자연스레 다가가는 외국인을 확인하고 컴퓨터로 향했다.

‘면역 글로불린 D 증후군…… 검사는 일단 혈액에서 메발로네이트 카이네이즈를 확인해야겠지?’

[네. 그것이 검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면역 글로불린 D…… Ig D는 의외로 높게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지? 나도 이거 문헌으로만 봐서 헷갈리네.’

[수혁, 저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이 질환을 문헌 외의 방식으로 접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역별로, 또 인종별로 질환군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예전엔 감염병이 가장 특징적이었는데, 초연결 사회로 접어든 지금에 와서는 유전 질환이야말로 지엽적인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는 질환이 되었다.

특히 거의 동아시아 인종의 DNA 특성만을 보이는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무래도 다른 인종에서만 주로 나타나는 질환을 보긴 어려웠다.

‘하긴 그렇지. 내가 안 봤으면 너도 안 본 거지.’

[그렇죠. 가끔 걱정됩니다. 수혁, 저는 수혁 안에 내재된 인공지능이지 다른 ‘인간’은 아닙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아무튼, 아무리 특징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해도 Ig D 농도는 확인해야 되고.’

[유전자 검사도 의뢰해야 합니다. 이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래도 가장 확정적인 검사가 될 수 있겠죠.]

‘그래, 그것도 내고.’

태화 의료원이 제아무리 거대한 의료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검사가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전 검사는 특히 더 그랬다.

외부 기관에 의뢰해야 할 공산이 컸다.

이 아이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대한민국에서 호발하는 질환이 아닌 까닭이었다.

‘그리고 소변 검사도 내자.’

[즉각적인 것은 오히려 소변이 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어떤 유전학적인 결핍에 의해 메발로네이트 카이네이즈라는 효소가 부족해지는 질환 아닌가.

메발로네이트 산이 분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소변에서 정상보다 훨씬 많은 양이 검출되는 것이 이 질환의 특징이었다.

“처방 확인해 주세요.”

“아……. 네. 음, 확인했습니다.”

토의를 마친 수혁은 처방을 입력했고, 담당 간호사가 처방창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베테랑 간호사라 해도 처음 보는 검사들이 너무 많았다.

질환 자체가 생소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르긴 해도, 한국에서 진단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않겠는가.

“이게…… 이게 뭐예요?”

병동 경력이 10년이 넘는 간호사도 처음 보는 질환이니만큼, 주치의도 아예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기는 뭐 했는지 조용히 다가와 거의 귓속말을 해 댔다.

“아……. 아무래도 면역글로불린 D 증후군이 의심이 돼서요.”

“네? 그게 무슨…….”

“주로 네덜란드나 프랑스, 북유럽 쪽에서 발견되는 유전 질환인데, 거기서도 드물다고 해요. 저도 뭐 케이스 리포트 읽어 보다가 얻어 걸린 거예요.”

“아……. 증상이 어떤 건데요?”

소아과 레지던트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그야말로 불타는 학구열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해는 갔다.

이런 열정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요즘 같은 때에 소아과에 지원할 수 있었겠는가.

[교수 하고 싶나?]

‘다들 그럴걸? 개원은 최후의 보루래, 이제.’

[그렇군요. 저야 뭐……. 그쪽은 자세히 모릅니다.]

‘나도 그렇지.’

사실 레지던트라 해서 개원가의 일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냥 건너 건너 듣는 것이 다이기도 하거니와, 개원은 어느 정도 개인 사업 비슷한 면모가 있어서 각자 처한 사정이 다르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대세는 있는 법이었다.

소아과는 이제 폐업하는 의원의 숫자가 개업하는 의원의 숫자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거 하나만 보더라도 소아과 개원가의 현실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환자 증상이 이 질환이랑 정말 잘 맞아요. 그렇다 해도 인종 특성이 안 맞으면……. 의심하기는 어려운데, 방금 아이 아빠가 외국인인 것을 확인했잖아요.”

“아……. 맞아요. 아, 이걸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아이 아빠가 프랑스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이 엄마는 어때요? 혹시 위에서 섞이진 않았나요?”

“그건……. 확인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땐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못 해서요.”

“뭐, 그럴 수 있죠.”

유전 질환을 의심하지 않고서야 어디 인종까지 파악할 생각이 들겠는가.

가족력이나 똑바로 적어놓았으면 다행이었다.

수혁은 비난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 보호자에게 다가갔다.

마침 보호자는 피 검사는 도저히 못 보겠는지 잠시 처치실에서 나와 있었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는 혈관이 작기 마련이고, 아픈 아이는 거기에 더해 혈관이 숨지 않던가.

제아무리 숙달된 간호사라고 해도 몇 번인가 실패할 수 있었다.

“어머니.”

“아, 네.”

다행히 더 이상 울고 있거나 하진 않았다.

아이 아빠가 온 것이 그나마 좀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보호자는 사내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채, 수혁을 돌아보았다.

[남자는 한국말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불어로 할 수는 없잖아.’

[데이터베이스에 불어는 입력하지 않았으니,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수혁.]

‘아, 이게 바로 안 돼?’

[정 그걸 원하시면 머리에 와이파이 칩이라도 심어 보십쇼. 혹시 제가 인터넷에 접근 가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냐. 그건 안 돼.’

스카이넷처럼 유능할지 어떨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류에게 있어 마냥 긍정적이진 않을 거 같았다.

게다가 와이파이 칩을 박는다고 해서 인터넷 연결이 될지도 의문이었다.

그냥 아프고 말 확률이 높았다.

“혹시 어머님……. 조상 중에 외국인이 계신가요?”

수혁은 애써 쓸데없는 생각을 뒤로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이 엄마는 눈에 띄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얼굴이었다.

“어……. 네. 있어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게 아이…… 아이 아픈 거랑 연관이 있나요?”

“네,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아…….”

이런 얘기를 할 때면 늘 조심스러웠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란 존재는 원래도 자책하지 않던가.

내가 그날 춥게 입혀서 그런가, 괜히 놀러 가자고 했나 뭐 이런 생각들.

유전 질환의 영역에 들어서면 훨씬 더 심해지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 이런다는 얘기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의사인 수혁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 어떤 병이 되었건 간에, 당사자에게는 그저 우연히 발생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몸도 아픈데 굳이 마음까지 힘들게 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옛날얘기 해 주신다는 느낌으로 해 주시면 됩니다. 편하게 해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해서 수혁은 최대한 가벼운 얼굴로 물었다.

연관이 있을 수는 있는데, 크게 상관은 없다 뭐 이런 뉘앙스였다.

그 덕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아이만 나으면 상관없다는 마음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 엄마는 곧 얘기를 털어놓았다.

“저희…… 증조할아버지가 외국인이세요. 프랑스 선교사셨는데……. 결혼해서 프랑스로 건너가셨다고 해요.”

“아……. 그럼?”

“아, 저도 뭐 그쪽에서 태어난 건 아니고요. 저희 아버지까지 거기서 살다가 엄마 만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셨어요.”

“사랑 따라 국경을 두 번 넘으셨네요.”

“네, 그런 셈이죠.”

나름 농담이었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이가 아파 슬퍼하는 어머니에게 통할 거라 기대하는 게 잘못이었을 터였다.

[하여간……. 사람 마음을 정말로 못 읽는군요, 수혁은.]

‘너한테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참 자괴감이 느껴져.’

[자기 감정은 이렇게 예민하신데, 어째 남한테는 둔감할까요.]

‘하.’

반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루다에게 비난마저 들은 수혁은 표정을 고친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증조할아버지가 프랑스 사람이었다는 거죠?”

“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뇨, 그냥 빨리……. 우리…….”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제 다 와 갑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진단과 치료 과정은 때로 마라톤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었다.

급성 질환이야 갑작스럽게 온 만큼 그저 지나가는 경우도 많지만.

만성 질환은 그렇지가 않지 않은가.

더욱이 이 아이와 같이 유전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했다.

평생 낙인처럼 따라다닐 터였다.

“아, 선생님. 결과 나왔습니다.”

잠시 뒤로 물러나 다른 환자들 검사 결과 확인 및 처방 수정을 하고 있으려니, 소아과 주치의가 다가왔다.

옆에 있는 컴퓨터에 뜬 결과를 가리키면서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붉은색이 제법 많았다.

내놓은 검사 중에 꽝이 거의 없다, 이 말이었다.

“유전 검사는 알아보니까……. 질병관리청에 의뢰를 넣어야 해서 결과 보기까지 일주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아, 그거야 뭐……. 그리 급한 건 아니죠. 나머지 검사만으로도 진단은 가능합니다.”

“아까 면역 글로불린 D 증후군이라고 하셨는데, 확실히 수치가 굉장히 높습니다.”

“게다가 소변에서도 메발로네이트 산이 확 증가해 있어요. 확실하네요.”

“그럼…….”

주치의는 굳이 뒷말을 이어 붙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혁은 눈앞의 전공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는 거겠지? 표정 엄청 심각하네.’

[아마 소아과에서 주로 보는 유전 질환이 심각해서일 겁니다.]

‘아, 하긴. 보통 애 좋아하는 애들이 소아과를 가는데…….’

그저 난 애들이 좋아, 뭐 이런 마음가짐으로 소아과를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아과가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과라면야 반대라도 가겠지만.

요새 소아과를 가는 친구들은 정말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게 되는 것은 아픈 아이들이었다.

심지어 죽는 아이들도 많았다.

특히나 유전 질환이 있는 아이들의 경우에 더더욱 그랬다.

처음엔 괜찮아 보이다가도 나이가 들면 아니, 나이가 들기도 전에 급격히 악화되어 세상과 이별하는 아이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다행히 이 케이스는 그렇지 않잖아?’

[그러니까 빨리 말해 주세요. 울겠어요, 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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