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소아과 협진 (5)
전반적인 신체 검진 요청이라.
이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하는 것보다도 전반적인 신체 검진이라는 게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이는 지금 꽤 아픈 상황이었다.
지금 옷을 다 벗기고 안을 들여다보겠다는 건 가혹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괜히 하는 말은 아니겠지?’
[네. 아이는 워낙 객체 차이가 심해서 평균화가 불가능합니다. 캘리브레이션이 어렵다는 건데, 그래도 상대적인 변화 차이는 감지 가능합니다.]
‘오케이. 그건 의미가 있겠어.’
하지만 바루다의 말을 들어보니 해 볼 만할 거 같았다.
방금 바루다에게 들었던 대로 절댓값 추정은 어려울지 몰라도, 한 객체 내에서의 변화 정도는 추정이 가능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었다.
현대 의학의 발전 방향 또한 전체 인류의 경향성보다는 개인 맞춤 의학으로 선회한 지 오래였다.
“저, 어머니.”
“네?”
그러자면 일단 보호자 설득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밤새 아이의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기에 어제보다는 반응이 싸늘했다.
[바이털은 그렇게 흔들리지 않았는데요.]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냐.’
의학적으로 좋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어제보다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위험하다는 판단이 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보호자가 그렇게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령 보호자가 의료진이라 해도 그럴 터였다.
해서 수혁은 이해한다는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었다.
“질환이 조금 진행한 것 같아요, 그렇죠?”
“병원에 와서 그렇게 됐는데……. 그게 그런 얼굴로 할 소리인가요?”
표정하고 나가는 말이 좀 어울리지는 않았기에 보호자의 반응은 싸늘함을 넘어 날카로워졌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이대로 대화가 단절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래도 의사가 강행한다면야 신체 검사야 할 수 있겠지만.
아이는 의사소통이 잘 안 되지 않은가.
어쩌면 중요한 정보는 오히려 어머님에게서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자면 의사-환자 관계, 즉 라포가 중요했다.
“그 말은 곧 진단의 실마리가 이제는 더 나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치료에도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하죠.”
“무슨…….”
“한 번 더 아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어제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의미 있는 변화일 겁니다. 치료에 도움이 될 거예요.”
“또 아이를 벗겨서 다 보시겠다고요?”
“네. 도움이 될 겁니다.”
“하아…….”
수혁의 말에 보호자가 한숨을 쉬었다.
말을 들어 보니 또 그럴싸하지 않은가.
비록 수혁에게 아주 좋은 감정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아무튼 간에 어제 물어봤던 것들이 꽤 의미 있어 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금 하는 말도 너무 설득력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게다가 이런 대형 병원에서 주도권은 대개 의사가 가지고 있는 법이었다.
태화까지 온 이상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달리 갈 병원이 없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환자는 여전히 약자였다.
1차 의료 기관에서야 얘기가 다를 수 있지만 여기선 그랬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혁도 보호자가 마지못해 허락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정도로 반응이 노골적이었던 까닭이었다.
해서 보호자에게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인 후 아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선 네가 파악한 거 싹 넘겨.’
[네.]
바루다에게 분석한 사항을 요청하면서였다.
‘음.’
[자세히 봐야 합니다. 이걸로는 그냥 변화가 있겠구나 싶을 뿐입니다.]
예상보다는 좀 자료가 허접했다.
배가 약간 더 불러 보인다거나, 아이의 울음이 좀 어색해졌다거나 하는 것들뿐이었다.
솔직히 화자가 바루다가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그저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할 거 같았다.
하지만 상대는 바루다였다.
왓슨의 실체를 알아본 수혁에게는 감히 세계 최고의 진단 및 치료 목적 인공지능이라고 생각되는 녀석이라 이 말이었다.
“어디 보자.”
수혁은 바루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머리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건 좋은 일이었다.
만약 머리둘레에서 변화가 생겼다면 그것은 수두증이나 기타 심각한 질환을 뜻하는 것일 테니.
‘눈, 코……. 다 변화 없…… 음? 원래 이런 거 없었는데.’
변화는 먼저 입안에서 감지되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수준의 염증일 뿐이었지만, 어제는 분명 관찰되지 않았던 헤진 병변이 보였다.
‘점막이 패였어. 다발성으로 보이고……. 아프타성 궤양처럼 보이는데? 아이 나이 고려하면 수족구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수족구도 초반에 병변 없이 열만 날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하기엔 유행 시기가 동떨어져 있습니다. 또한 감염병은 접촉력이 중요합니다.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오케이.’
입안이 해졌다고 해서 백 프로 수족구를 의심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흔한 병이지 않은가.
진단은 이렇게 제일 흔한 것부터 지워 나가는 것이 좋았다.
“저, 어머님?”
“네?”
“아이 입안에 어제 없던 점막 병변이 생겼어요. 수족구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시 어린이집을 다니진 않아요? 기록상에는 언급이 없어서요.”
“아……. 아뇨. 그냥 친정엄마가 봐줘요.”
“그렇군요. 그럼 딱히 의심되는 접촉은 없었나요?”
“백신 맞으러 병원 간 것 외에는……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까 아이 엄마에게 허락을 구한 보람이 있었다.
덕분에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원내 감염 가능성은 없겠지.’
[입원한 것도 아니고……. 외래 잠깐 본 거로 감염은 어렵죠. 게다가 시즌이 다릅니다. 다른 원인을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케이.’
수혁은 수족구를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만들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변화는 목 쪽에도 있었다.
‘임파절이 좀 커져 있어. 체인을 따라……. 음…….’
[딱히 경부 레벨에 따라 차이가 있진 않고, 전반적으로 커져 있군요.]
‘바이러스 감염 또는 자가 면역 질환 같은 것일 가능성이 있겠네.’
[아이이니만큼 악성 종양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아.’
경부 임파선의 비대가 일정 레벨에 따라 있다면 어딘가에서 넘어온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가령 편도선염이라면 레벨 II 임파선부터 커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은 전반적인 비대를 동반할 수 있었다.
또한 자가 면역 질환도 그랬고, 임파선 암도 그럴 수 있었다.
아이 나이를 고려하면 임파선 암도 가능성이 컸다.
“흐음.”
수혁은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시선을 하방으로 돌렸다.
[간과 비장의 비대가 관찰됩니다.]
‘비특이적인데…….’
[어제 알아낸 바와 정보를 섞어 봐도 그럴까요?]
‘있어 봐. 백신 접종 이후 발열이야. 뭐 그것보다는 스트레스 이후 발열로 생각되는데…….’
[그러한 히스토리와 오늘 관찰한 것을 같이 분석해 보죠.]
그 결과 일단 암의 가능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환아는 생후 한 달 때도 이미 비슷한 유형의 발열이 있지 않았던가.
소아에서의 암은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만약 그때 원인이 암이었는데 지금까지 방치했다면 사망에 이르렀거나, 무조건 진단이 되었어야만 했다.
‘감염도 그래. 반복되는 단일 원인에 의한 감염은 드물어. 아니, 있기 어렵지.’
[그렇습니다.]
감염에 의한 것 또한 반복적으로 나타나기는 어려웠다.
물론 특수한 환경, 즉 고아원 같은 경우에는 접촉이 빈번하면서 동시에 아무래도 일반 가정집보다는 위생 및 영양이 떨어지기에 가능하기는 했다.
또 가정 학대가 있는 경우에도 가능했다.
그러나 아이 엄마를 볼 때, 그리고 아이의 피부를 볼 때 학대 정황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럼…… 자가 면역 또는 류마티스성 질환일까?’
[네, 그쪽이 합리적인 판단입니다만……. 아이의 나이를 고려하면 한 가지 가능성이 더 있습니다.]
해서 수혁과 바루다는 암이나 감염병은 배제한 채 다른 쪽으로 사고의 가지를 뻗어 나갔다.
소아라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할 것은 바로 유전병이었다.
성인이라면 이미 증상이 발현된 지 오래겠지만, 아이는 아니지 않은가.
‘아, 그렇네. 그걸 생각 못 했어. 이런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 질환이 뭐가 있지.’
[한 가지 거의 들어맞는 것이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호발하지 않습니다.]
‘뭐? 아, 메발로카이네이즈 결핍(mevalonate kinase deficiency)?’
이름도 어려운 메발로카이네이즈라는 효소의 결핍으로 발생하는 질환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되게 심각할 거 같지만 생각보다는 썩 괜찮은 경과를 보였다.
즉 발열 에피소드만 없다면 일반적인 사람과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유전 질환과 구별되었다.
대부분의 유전 질환은 경증으로 잘 끝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네. 정확히 말하면 면역 글로불린 D 증후군(Hyper Ig D syndrome)입니다. 임상 경과는 상당히 잘 들어맞습니다만…….]
해당 증후군은 주로 생후 1년 내 반복되는 발열 에피소드를 겪는데, 필수 예방 접종이 있는 국가에서는 대개 백신 후 발열을 보이는 편이었다.
그와 동시에 복통 및 구토 그리고 경부 임파선 비대 및 간, 비장 비대를 보일 수 있었다.
이 환자와 딱 같은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유전 질환이지 않은가.
인종별로 발병 확률이 차이가 났다.
[심지어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조차 흔한 병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보고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그래. 어머니도…… 누가 봐도 한국인이잖아. 심지어 이거 상염색체 열성 질환이잖아.’
[그렇습니다. 위에서 섞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볼 수도 있겠습니다, 우연의 영역에 너무 깊이 기대야 합니다.]
‘하…….’
기껏 두 번째 봤는데, 심지어 거의 딱 들어맞는 질환을 찾았는데 그게 아닌 거 같은 상황이었다.
수혁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직 작아서 잘 모르겠지만.
굳이 따져 보자면 외국인스러운 면도 있었다.
‘근데 애가 코가 좀 높지 않냐?’
[한국인 중에도 코 높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혁이야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요. 아이 엄마만 해도 그렇네요.]
‘머리도 곱슬이잖아.’
[한국에도 곱슬이 있습니다. 이건 수혁도 그렇지 않나요? 가뜩이나 머리 관리도 잘 안 하는데 곱슬…….]
‘닥치고 있어 봐. 이렇게 보니까 외국인 같은데?’
[우기지 마십시오. 누가 이 아이를 외국이라고 합니까.]
바루다의 말이 옳아 보이긴 했다.
아무리 억지를 부려 봐도 한국인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더군다나 요새는 토종 한국인들도 얼굴이 좀 바뀌고 있지 않은가.
성형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경향이 그렇단 말이었다.
섭생과 행동 양식의 변화는 체격이나 키뿐 아니라 외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저 어머님.”
“네?”
해서 막 포기하려는데, 누군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빵 모자를 쓴 남자였는데, 전형적인 백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도 아니었더랬다.
“왜요?”
수혁이 불러 놓고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으니 당연히 아이 엄마가 날카롭게 되물어 왔다.
아마 방금까지만 해도 꽤 당황스러웠을 터였다.
답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검사를 해 보죠. 진단명을 알겠습니다.”
수혁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 얼굴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이국적인 느낌이 저 외국인과 딱 닮아 있는 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