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소아과 협진 (3)
‘선배……. 왜 땀이 납니까.’
이쯤 되니 대훈 또한 이변을 감지했다.
원래 수혁은 신체 검진하면서 이것저것을 언급하는 사람 아니던가.
거기서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툭툭 내던졌더랬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 특히 수혁의 팬클럽은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희열에 젖었는데.
오늘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설마 모르는 겁니까?’
적어도 대훈은 수혁이 뭘 몰라서 못 고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진단은 됐지만, 치료제가 없어서 또는 이미 너무 늦어서 못 고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일단 검사 결과도 좀 보겠습니다.”
“아, 네…….”
대훈이 이럴 정도니, 수혁은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하지만 3년 차쯤 되고 나면 담담함을 학습하게 되는 법이었다.
특히 환자 앞에선 더 그랬다.
의사가 흔들리면 환자나 보호자는 그 열 배는 더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치료할 수 있는 질환조차 기회를 놓치는 수가 생겼다.
의사는 무조건적으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우선 신뢰를 얻어야만 했다.
“그럼 잠시만…….”
“네.”
수혁은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처치실을 빠져나와 스테이션의 컴퓨터를 켰다.
엷은 한숨을 내쉬면서였다.
어찌나 분위기가 엄숙한지 대훈은 찍소리 하나 못 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기적 발열이라고 했지?’
[네. 그런데 그 주기가 깁니다. 일례로 지금 환아의 열은 3일째 내내 지속되고 있어요. 약이 듣지 않았으면 이미 손상을 입었을 겁니다.]
아마 이런 얘기 들어 봤을 것이다.
어린 시절 고열을 앓고 나서, 귀가 안 들리게 되었다 뭐 이런 가슴 아픈 사연들.
그냥 그런갑다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발열이 지속될 경우 달팽이관이 굳어 버리면서 청력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
청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여러 기관들, 특히 뇌가 다치는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소아과에서 이유 불문 열을 조절하고 있는 것은 아주 잘하고 있는 처사라고 보면 되었다.
‘그럼 말라리아하고도 양상이 다르네.’
[애초에 국내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는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보다 독성이 약합니다.]
‘그렇지. 음.’
게다가 검사한 것을 보니 말라리아가 검출되지도 않았다.
또 말라리아에서는 간 종대가 발생할 수 있는데, 아이는 그렇지도 않았다.
증상 또한 다르니 말라리아는 아니라고 봐야 했다.
주기적 발열에서 가장 흔한 질환을 제껴야 하는 상황이니만큼 표정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망할?’
[다른 검사 결과도 비특이적이군요.]
비특이적이다.
의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라 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이걸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뭐 이런 뜻이기에 그랬다.
어떤 검사에 대한 판독을 의뢰했을 때 답이 이렇게 오면 정말이지 분노가 급상승했다.
지금 딱 그런 상황이었다.
‘검사를 이것저것 긁기는 했는데…….’
[죄다 열날 때 동반될 수 있는 정도의 이상일 뿐입니다.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검사 결과는 없습니다.]
‘환장 돌아가시겠네…….’
[이러면 기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가시는 게 아니라요.]
바루다가 말하는 기본이란, 일단 지금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하는 것을 의미했다.
뒷말이 조금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틀린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일단 환자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기로 했다.
평소처럼 머릿속으로만 하면 헷갈릴 거 같기도 하고, 또 대훈이 소 뒷걸음질 치듯 뭔가 알아낼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해서 병동에 펜과 종이를 요청해 적어 내려갔다.
“환아 나이 6개월 성별 남. 발열 에피소드는 생후 한 달, 세 달, 그리고 지금. 다 비슷한 양상이었지만 이렇게 오래간 적은 없었다고 하고…….”
우선은 입원 기록에 있던 것부터 쭉 적었다.
확실히 머릿속에서 두루뭉술하게 떠올리는 것보다는 이렇게 문자로 명확하게 적고 보니 한결 파악하기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느낌뿐이죠. 어차피 제가 다 활자로 표현하고 있는데.]
‘시끄럽고.’
정말 느낌뿐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수혁은 환자에 대한 정보를 다 적어 놓고 종이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중간중간 대훈을 슬쩍 바라보았다.
대훈도 수혁처럼 종이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어떠한 코멘트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훈은 소아과도 아니지 않은가.
‘역시 쓸모가 없군.’
[충신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군요.]
‘속으로 했잖아. 속으로. 겉으로는 안 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부터가 잘못입니다.]
‘아무튼, 첫 문장부터 복기해 보자고. 일단 출생 당시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 없었고.’
[생후 한 달, 세 달째도 발열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때는 동네 소아과에서 받은 약으로 조절이 잘되어 태화에 오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소아과 기록을 보면……. 어?]
바루다는 수혁을 향해 프레젠테이션이라도 하듯 기록을 늘어놓다가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 이거…….’
[네. 한 달, 세 달, 여섯 달. 감이 오지 않습니까?]
학생 시절 주구장창 외워 댔던 것과 관련이 있는 시기였다.
바로 예방 접종.
종류는 다 다르겠지만.
하여간 필수 예방 접종 시기와 환아의 열 난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스캔 떠 둔 로컬 소아과 기록에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에방 접종 후 일시적인 발열로 판단하여 해열제 처방하고 경과 관찰하였음.]
원래 예방 접종이라는 것이 해당 균주 또는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교육하기 위함이지 않은가.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이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 과정에서 발열이 있을 수 있었다.
대개는 하루 정도 있다가 사라지기에 아주 경미한 부작용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 패턴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문제였다.
‘이번에는 양상이 좀 다르긴 하잖아. 전에는 하루 만에 다 멎었대.’
[하지만 시기는 같습니다. 이번에도 백신을 맞고 발열이 발생했습니다. 일반적인 백신 접종 후 발열과는 다르다고 봐야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음.’
선후 관계가 있어 보이긴 했다.
‘어떤 연관이 있는데, 이론적으로?’
[그건 이제 알아봐야죠.]
하지만 시간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인과 관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엔 수많은 우연이 존재하지 않은가.
이것을 무시하기엔 지금까지 발표된 케이스 리포트들이 너무도 많았다.
우연한 것들이 중첩되어 의료진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종래에는 환자에게 잘못된 처치를 했다는 케이스들.
애초에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선배들이 남겨 둔 기록이었다.
수혁은 그런 것들이 있는데도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음.’
[왜 일어납니까?]
‘기록 리뷰는 이만하면 됐어. 이젠 부족한 정보를 더 채워야 해.’
[문진입니까? 좋은 태도입니다.]
해서 환아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현대 의학의 맹점 중 하나가 진료 과정에서 자꾸만 환자가 배제된다는 데 있지 않은가.
각종 검사 장비들이 발전함에 따라 의사들은 거기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의사가 치료해야 하는 대상은 환자였다.
답은 언제나 거기 있다는 뜻이었다.
기기는 환자를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일 뿐이었다.
“보호자분.”
“아, 알아내셨나요?”
수혁이 재차 다가가자, 보호자는 아까보다도 더 지친 얼굴로 수혁을 반겨 주었다.
이때 고개를 끄덕였다면 더없이 멋졌을 테지만.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알아가는 중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어서요, 뭘 더 여쭤보려고요.”
다만 희망은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전혀 모르겠다든지 하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아, 네네. 얼마든지요.”
수혁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보호자는 열의를 보였다.
물까지 벌컥벌컥 들이켠 덕에 목소리에도 생기가 돌았다.
아마 수혁이 준 희망이 더 큰 이유일 터였다.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머리를 맹렬히 굴려야만 했다.
아직 아이는 그 누가 됐던 간에 포기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일단…… 이번에 백신 맞은 게 언제죠?”
“아……. 4일 전이요.”
“그럼 백신 맞고 하루 뒤에 발열이 있던 거네요?”
“네. 맞아요.”
“음.”
확실히 묻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접종 후 발열과는 양상이 달라서였다.
보통 접종 후 발열은 그 즉시 나거나 그날 나는 법이었다.
하지만 이 환아는 접종 후 발열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정확히 몇 시에 맞았고, 몇 시에 열이 났는지도 알고 계신가요?”
“아……. 제가 일을 하거든요. 그래서 8시에, 제가 출근하기 전에 백신을 맞혔어요.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엄마가 꼼꼼하거든요. 그날은 하루 종일 열이 없었어요. 다음 날 출근할 때도 그랬고……. 그런데…….”
“네, 어머니.”
수혁은 보호자의 기억력 또는 꼼꼼함에 감탄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아인 수혁에게는 이러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이 낯설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이제는 이현종 덕에 많이 희석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노골적인 감정을 들여다볼 때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점심 때쯤 연락이 왔어요……. 열이 난다고…… 그러니까…….”
“적어도 24시간 이후에 열이 난 거네요?”
하지만 의사는 그런 기분에 휩싸여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환자를 진료하고 있을 땐 그랬다.
해서 수혁은 눈물을 보이고 있는 보호자를 애써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이쯤 되면 조금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보호자는 감정에 충실하기보다는 아이 치료에만 집중하기로 작정한 마당이었다.
보호자 또한 겨우겨우 울음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네, 네.”
“흠.”
“왜 그러세요?”
“혹시 저번에도 그랬나요? 기록을 보면 한 달, 세 달 때도 접종 후 열이 있었다고 하던데.”
“아……. 잘은 기억은 안 나지만……. 접종하고 바로 다음 날 소아과를 가진 않았던 거 같아요.”
“음.”
수혁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백신 접종 자체가 원인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는 건 그 자체로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열이 난다, 이건가? 그런 질환은…….’
[꽤 있죠. 확실한 것도 아니고.]
‘결국, 아직도 오리무중이라는 건데. 얘는 발열만 있나? 다른 증상은 없어?’
너무 모호하지 않은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를 돌아보는데, 아까까지만 해도 얌전히 있던 아이가 갑자기 자지러지듯 울기 시작했다.
‘뭐, 뭐야.’
[수혁이 기도한 탓 아닐까요? 증상 있으라고.]
‘야, 기도까지는 안 했어!’
[의사가 돼 가지고……. 진단 좀 안 된다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놀란 마음에 다가가니, 이미 베테랑 간호사들이 달라붙은 후였다.
“시저는 아니지?”
“네, 아니네요. 바이털 괜찮고……. 혈압 오르는데.”
“복통인가.”
“어, 어. 토한다! 고개 돌려! 아스피레이션 생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