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이걸 빈혈로 내? (1)
[상기 환자 남자 72세로 수 주간 지속된 혈뇨를 주소로 내원 후 시행한 검사상 빈혈(Hb 9.2) 소견 보여 입원하여 워크업 중입니다. 혈뇨에 대한 비뇨기과적 검사에서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며 혈뇨로 인한 혈액 유실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습니다. 빈혈에 대해 협진 의뢰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바루다는 우선 협진 의뢰서 중 누가 봐도 악의적이라 생각되는 것 하나를 뽑아 읽어 냈다.
세상에 혈뇨를 주소로 와서 현재 비뇨기과에 입원 중인 환자를 혈액종양내과에 협진을 낼 줄이야.
‘원래 혈뇨 부심 좀 있지 않나……? 비뇨기과?’
[부심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메인으로 보는 과죠.]
‘근데 협진을 냈네?’
[아까…… 김문제 아니 김문재 교수와 비뇨기과 교수 중 하나가 눈을 마주쳤습니다. 공교롭게도 협진 낸 교수 이름이 그 교수와 같군요.]
박상헌.
딱히 수혁이 신경 쓰던 사람은 아니었다.
바루다도 그랬다.
비뇨기과 또한 마이너 서저리 아닌가.
개인적으로 엮이지 않는 이상, 찾아다녀야지. 안 그러면 만날 일도 없었다.
‘이렇게 엮이네.’
[별로 좋은 일은 아니군요. 비뇨기과……. 음.]
‘왜.’
[비뇨기과가 현재 태화 의료원에서 로봇 수술을 제일 많이 하는 과입니다. 그만큼 돈을 잘 벌겠죠. 이런 과랑 대립해서 좋을 일이 있을까요?]
‘너 벌써 경영자 마인드구나.’
[부센터장이니까요. 장강명 교수를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이현종 원장보다는 아무래도 그쪽이 더 경영자 같군요.]
‘그거야…….’
수혁은 제아무리 양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실드가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이현종은 일반적인 경영자와는 거리가 좀 있지 않은가.
뭔가 꽂히면 미친 듯한 천재력을 발휘하지만.
꽂히는 경우가 드물다는 게 문제였다.
또 보통은 돈이 아니라 다른 것에 꽂힌다는 것 또한 위에서 볼 땐 문제였다.
아마 이현종이 스스로 원장에서 물러나 센터장이 된다고 했을 때, 모르긴 해도 위에서는 꽤 좋아했을 터였다.
너무 잘해서 자를 명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돈 버는 데는 관심 없는 경영자가 스스로 내려가겠다고 하는데 왜 안 그렇겠는가.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일단 협진이 왔잖아. 환자를 봐야지.’
[그렇죠. 모를 일입니다. 진짜 그냥 평범한 협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비록 비뇨기과에서 항암 의뢰 외에 다른 내용이 담긴 협진이 온 것은 처음이지만.
게다가 비뇨기과의 전문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혈뇨 환자에 관해 묻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일일 테지만.
하여간 좋은 마음으로 환자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보기도 전에 기분 잡치고 시작하는 것보단 이게 낫지 않겠는가.
[환자는 4년 전 전립선암을 진단받았군요.]
‘꽤 진행한 상태였는데……. 그래도 수술이 가능하긴 했네.’
수술이 가능하긴 했지만, 전립선암에 대해서는 이례적이게도 배를 열어서 진행했던 모양이었다.
전립선 전절제술은 물론이거니와 근처 임파선까지 모조리 긁어낸 바 있었다.
꽤 큰 수술이었을 텐데, 다행히 환자는 잘 회복해서 지금까지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외래 기록을 살펴보면 그랬다.
‘그러다 최근 유독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하는데……. 이건 빈혈 탓일까?’
[헤모글로빈 9면 낮은 편입니다. 노인이니 원래도 정상보다 낮았을 수도 있겠지만, 남성이니 꽤 낮은 수치라고 봐야 합니다.]
‘급성으로 발생했다고 봐야겠지?’
[그렇습니다. 급성 빈혈일 겁니다.]
‘기분 탓인가. 얼마 전에도 본 거 같은데.’
[파티마를 얘기하는 거겠죠? 하지만 상황이 전혀 다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
파티마 또한 혈뇨가 있으면서 동시에 빈혈이 있던 환자이기는 했다.
하지만 파티마는 젊고 건강한 사람이지 않았던가.
그에 이 환자는 나이가 많았다.
심지어 기저에 암도 있었고.
자가면역질환이 호발하는 나이도 아니었다.
증상은 비슷할지 몰라도 원인은 전혀 다를 거라 보는 게 맞았다.
이것이 바로 의학이 어려운 점이었고, 동시에 재밌는 점이기도 했다.
‘워크업 했다며. 뭔 검사를 했나.’
[소변 검사를 했군요. 음, 양이 적지 않군요.]
지금 당장 환자를 만나러 갈 수도 있겠지만.
수혁은 바루다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면 그 전에 문서로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을 전부 파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루다 또한 십분 동의하는 사안이기도 했기에 우선 환자 기록을 살폈다.
그중에서 지금 주목한 것은 입원 당시 진행한 검사들이었다.
‘음……. 그렇네. 헤모글로빈 검출이 꽤 많이 되는데.’
[이 정도 양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면……. 혈뇨 자체가 빈혈을 일으켰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비뇨기과에서는 왜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했지?’
[그래야 협진을 낼 수 있으니까……. 아닐까요?]
‘설마 원인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냈을까?’
수혁은 욕을 주워 넘기면서 물었다.
만약 그랬다면 진짜 개새끼들 아닌가.
원래 다 알면서, 심지어 아주 어려운 문제라는 것도 알면서 모르는 척 묻는 놈치고 좋은 놈은 없는 법이었다.
수혁의 입에서 욕설이 한 댓 번 반복되었을 때쯤에 이르러서야 바루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무슨 근거로? 너 설마 박상헌 교수 편드니?’
[아뇨. 그럴 리가요.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저는 수혁과 같은 감정의 노예가 아닙니다.]
‘그런 것치고는 지금 좀 발끈한 거 같은데……. 아무튼, 근거가 뭔데.’
[치료를 위한 처방이라고는 수혈밖에 없습니다. 만약 원인을 알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처치가 들어갔을 겁니다. 단지 수혁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리는 없습니다.]
‘하긴……. 서효석도 아니고, 그치?’
[네.]
서효석이 진짜 유별나게 이상한 새끼인 것이지, 다른 의사들은 그보다는 전부 좀 낫다고 보면 되었다.
적어도 자기가 맡은 환자 생명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놈은 없다 이 말이었다.
최소 본인 앞날이 걱정되어서라도 그러지는 못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확실히 아직 비뇨기과에서도 원인 파악은 못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영상은 없나? 원래 암이 있었으면……. 찍었을 텐데?’
전립선암 또한 혈뇨의 원인이지 않은가.
비록 전 절제술을 했다고는 하지만 암이란 놈은 재발이라는 것을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암덩이는 신생 혈관을 마구 만드는 성긴 조직이기에 출혈을 아주 잘 일으켰다.
그걸로 인해 숙주가 죽어 가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
[있네요. 그래도 신장 기능은 괜찮은 모양이네요. 조영증강이 되어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출혈 보려고 찍었을 텐데 당연히 했겠지.’
하여간 수혁의 바람대로 환자는 CT를 찍은 상황이었다.
해서 켜 봤는데, 이미 판독이 나와 있었다.
[전립선암의 재발 소견은 없음. 그 외의 소견은 비특이적임.]
비특이적이라 함은 진단할 만한 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CT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인데, 이럴 땐 판독의가 누구인지도 중요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판독의가 누구냐에 따라 정확도에 차이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아, 김진실 교수님이네.’
[실수했을 가능성은 적겠군요.]
‘그렇겠지. 내가 봐도……. 이상한 건 모르겠어.’
[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딱히……. 전립선이 관찰되지 않는다는 거 말고는……. 음……. 굳이 뽑자면 장 유착이 조금 있군요.]
‘배 열고 수술했으니 있을 수 있지.’
[배에 지방이 좀 적기도 한데, 그거야 노인인 데다가 암까지 앓았으니 충분히 있을 법한 소견입니다.]
‘이걸로 더 뭘 얻기는 어렵겠는데.’
[동의합니다.]
판독의가 김진실 교수인 데다가, 수혁이나 바루다가 봐도 비특이적이었다.
그 말은 곧 이제 환자에게 가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시계를 보니 8시.
모르는 누군가를 찾아가기엔 충분히 늦었다고 할 만한 시간이지만.
병원에서는, 특히 대학 병원에서는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입원해 봤으면 알겠지만, 의료진은 자기가 시간 될 때 환자에게 가지, 환자가 편한 시간에 가는 법이 없었다.
수혁도 그랬다.
‘갈까?’
[그러죠. 아.]
‘아?’
[명색이 3년 차인데 우하윤은 안 데리고 갑니까?]
‘음.’
우하윤이라.
확실히 가르쳐야 할 대상이기는 했다.
하지만 수혁이 없는 동안 너무 고생을 해서 그런가, 애가 좀 곯아 있기도 했다.
‘내일 데리고 가지 뭐. 지금 잘걸.’
[하긴 사람 꼴이 아니긴 했습니다. 어제 또 밤을 새우기도 했고. 두고 가죠.]
‘오케이.’
해서 수혁은 바루다와의 동의하에 하윤을 두고 홀로 비뇨기과 병동으로 향했다.
비뇨기과 병동은 다른 마이너 서저리 과들, 즉 안과, 성형외과 그리고 이비인후과와 같이 별관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간이 꽤나 걸렸다.
“아, 선생님. 협진 보러 오셨어요?”
병동에 도착하자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 하나가 따라 나왔다.
아무래도 환자의 담당 간호사인 듯했다.
잘된 일이었다.
수술이나 외래에 들어가야 하는 레지던트에 비해 병동에 있는 시간이 긴 간호사는 그만큼 환자 상태를 잘 알았으니까.
“네, 환자분 성함이……. 아, 그래 이기일. 이기일 환자분 보러 왔습니다.”
“제가 안내할게요. 할아버님이 기력이 좀 없으셔서 말 알아듣기가 조금 힘드실 거예요.”
“기력이요? 원래 그랬다고 합니까?”
“아뇨, 아뇨. 한 2, 3주 전? 그때까지만 해도 동네 산책 잘 다니셨다고 해요. 좀 마르긴 하셨지만 그래도 운동 기능은 좋았다고 해요.”
“갑자기 기력이 쇠하신 거네요?”
“네.”
“음.”
수혁은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아까 보았던 환자 기록과 방금 새롭게 습득한 정보를 정리한 후,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비뇨기과는 워낙에 수술이 많은 과이긴 하지만 동시에 턴오버가 빠른 과이기도 해서 환자는 다인실에 있었다.
어떻게 자리가 난 모양이었다.
[지린내가 나는군요.]
‘비뇨기과니까…….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6인실이었는데, 어떻게 된 게 6명 환자 모두 소변줄을 끼고 있었다.
본래 소변줄이 잘 안 들어가는 환자가 있으면 비뇨기과를 호출할 만큼 소변줄이라는 게 비뇨기과의 시그니처이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냄새가 나서 더 그랬다.
“환자분, 좀 어떠세요?”
코를 벌름거리고 있는 사이, 간호사가 환자에게 다가가 커튼을 쳤다.
아무래도 진료해야 하는 부위가 부위이니만큼 프라이버시 신경 쓰는 게 습관이 된 모양이었다.
“힘들어……. 너무 힘들어.”
환자는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간호사를 보며 하소연을 해 댔다.
딱히 엄살로 보이진 않았다.
‘암액질까지는 아닌데, 말랐어. 아까…… CT 영상에서 복부 지방이 없었다고 했지?’
[네. 거의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노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이죠.]
‘이건 급성으로 진행한 것이 아닌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오래된 원인입니다. 단순 노화일까요?]
‘그걸 이제부터 알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