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10화 (310/1,303)

310화 범위가 커진다 (2)

“뭘 종알거려?”

백정완 교수는 손 닦고 들어오는 길을 막고 서 있던 김효열 교수를 무릎으로 슥 밀었다.

“아, 죄송합니다.”

수술실에서 감히 집도의의 앞길을 막다니.

이건 무릎 아니라 발로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이비인후과 전설 백정완이지 않은가.

김효열 교수로서는 쩔쩔매는 수밖에 없었다.

“으음.”

백정완 교수는 그렇게 김효열 교수를 저리 비키게 한 후, 모니터에 뜬 영상을 바라보았다.

CT였는데 하필 어금니 쪽에 은니인지 뭔지가 있어서 영상에 노이즈가 있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이런 망할. 영상으로는 아무것도 분간이 안 가잖아?”

그가 그렇게 영상을 샅샅이 살피고 있는 동안, 원래 두경부외과 펠로우였던 김보영은 잉여에서 제2 보조의로 승격된 레지던트 김종세와 함께 환자의 드랩을 새로 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술의 범위가 더 커졌다 보니 드랩의 범위도 엄청나게 넓어져야만 했다.

특히 다리 쪽이 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게 문제였다.

“야, 거기 좀 들어 봐. 발만 잡고.”

“어, 네. 아……. 근데 무거운데…….”

“그럼 내가 들어?”

“아뇨, 아닙니다. 네.”

두경부를 할 생각을 했다는 것에서부터 이미 그 사람 성격을 일부 알 수 있다고 보면 되었다.

대개 걸걸한 편인데, 김보영은 그중에서도 좀 더 나간 편이었다.

‘까먹었다, 순간.’

김종세는 김보영이 레지던트 시절 별명이 호랑이 킴이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래 연차 입장에서 넋두리를 해도 되는 사람이 있고,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김보영은 후자였다.

‘김효열 교수님하고 이낙준 교수님하고만 일하다 보니까 긴장 확 풀었네, 나도 모르게.’

해서 김종세는 최선을 다해 다리를 들고 닦았다.

덕분인지 드랩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끝이 났다.

그래 봐야 물리적으로 가는 시간을 어찌할 수는 없는 법.

[수혁, 마취 시작한 지 2시간째입니다. 아이오 체크해 보시죠.]

‘아. 오키.’

환자 상태가 정상적이었다면 2시간 정도야 뭐 아무것도 아니라고 봐도 무방했을 터였다.

현대 의학이 많은 방면에서 두루두루 발전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하는데, 마취 기술 또한 엄청난 진보를 거듭하고 있기에 그랬다.

예전처럼 부작용이 있거나 위험한 방식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신장 또는 간 기능 등 장기 기능이 떨어져 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저, 잠시만. 저도 플로우 차트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네. 물론입니다.”

해서 마취과 쪽으로 다가가니, 레지던트가 환영한다는 얼굴로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마취과라는 걸 감안하고 보면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수술실 안에서만큼은 환자의 바이털을 주도적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다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이수혁……. 내과 천재 이수혁…….’

병원만큼 내부 소문이 빠른 곳도 드물었다.

특히 병원 안에만 메여 있는 존재들끼리는 정말이지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조차 과소평가일 정도였다.

‘두바이 가서 엄청 활약했다지?’

특히 마취과 쪽으로는 더더욱 그랬다.

같이 간 이 중에 마취과 쪽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두바이 측에서도 내과보다는 외과 쪽으로 더 많은 인원을 요청한 탓도 있었다.

하여간 그래서 레지던트는 수혁에 관한 얘기를 미친 듯이 들은 참이었다.

특히 류마티스 김문제, 아니 김문재 교수를 박살 냈다는 얘기는 인상적이었다.

‘내가 뭐라고 이 사람이 하겠다는데 막고 그러냐.’

해서 그는 그저 얌전히 옆으로 비켜나 있었다.

혹 뭔가 물어보면 그거나 성실히 답해 주자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역시 아웃이 좀 적군요.]

‘라식스 반만 줄까?’

[아직 신장 기능이 나가진 않았을 테니……. 그게 좋겠습니다. 일단 보리코나졸 말고는 신장에 부담 갈 만한 약도 없어요. 현재로서는 수액이 제일 큰 부담입니다.]

‘폐는 괜찮을까? 폐에 물이라도 차면…….’

[시간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시간이라.’

수혁은 처방을 넣으면서 환자 쪽을 돌아보았다.

드랩은 아까 끝났고, 지금은 절개 중이었다.

수혁이 말했던 바로 그 절개 방법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modified weber ferguson incision.

입술 정중앙에서부터 인중을 따라 올라가다가 콧방울 옆선을 따라 올라가는 절개.

듣기에는 끔찍해 보이지만, 얼굴을 열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흉터가 적게 남는 절개법도 드물었다.

원래 주름이 있는 부분을 따라가는 절개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여는데……. 으음.’

[지금 이 추세로 4시간이면 한계 도달할 겁니다.]

‘아까 경구개 절제하고 뼈로 재건한다고 했어. 다리 닦는 걸 보면……. 아마도 종아리뼈로 재건할 거 같은데. 우리 병원 유리 피판술 데이터가 혹시 있나?’

[가만 보면 수혁은 저를 데이터 은행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군요?]

‘있어 없어.’

[있습니다.]

바루다는 어쩐지 자존심 상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읽어 본 기억이 있어서 그랬어. 근데 이걸 내가 왜 봤지?’

[이현종 원장이 회의 빵꾸 내고 보고서 가라로 쓸 때, 좀 도와달라고 했었죠. 보니까 자료가 그래도 통계적인 의미가 있을 거 같아 데이터화해 두었습니다.]

‘아 맞아. 1년간 태화 의료원에서 행한 수술에 관한 내용이었지.’

[네, 결과가 꽤 흥미로웠죠.]

여기까지 들으니까, 수혁도 완전히 기억이 났다.

이현종이 이사회에 재정 지원 압박을 위해 쓴 보고서였더랬다.

새로운 기기를 넣은 과일수록 이전 연도에 비해 수술 건수는 늘고, 부작용은 줄고, 수술 시간도 줄었을 거라 예상했는데, 결과는 조금 다르게 나왔더랬다.

오히려 새로운 기기를 투입하고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는 수술 시간이 늘거나 별 변화가 없었다.

그다음이 되어서야 원래 원했던 결괏값을 도출했다는 얘기.

[인간이 새로운 무언가를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충 그 정도라는 뜻이겠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유리 피판술 얼마나 걸려.’

[백정환 교수의 경우 평균 6시간입니다.]

‘뼈를 이용하면?’

[8시간.]

‘이런 망할.’

8시간이라면, 상당히 많이 오버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백정완 교수에게 더 빨리하라고 닦달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유리 피판술을 4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어디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인간이지 않겠는가.

백정완 교수 정도 실력이면 그 필드 내에서 최고라고 봐야 하는데 이만큼이나 걸린다는 건, 그냥 그게 인류의 한계라고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제부터 이 환자 바이털은 우리가 맡아야겠습니다.]

‘절제 범위는 어쩌고? 그건 안 봐줘?’

[왔다 갔다 해야죠.]

‘왔다 갔다라는 게……. 내 뇌 기능을 가져갔다 돌려줬다 하겠다는 뜻이지?’

[그렇습니다.]

‘음.’

수혁은 잠시 그 모습이 얼마나 이상할까에 대해 생각했다.

비틀거리다가 갑자기 제정신이 든 채 차트를 뒤적거리고, 또 비틀거리다 몽롱한 얼굴로 거기 아닌데 하고 외치고.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해서 이런 걱정이 들었는데, 그걸 들은 바루다는 참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 난감해졌다.

당장 저기 있는 조태진만 해도 수혁을 정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여기서 뭘 더 걱정한단 말인가.

돌직구를 날리고 싶었지만.

바루다는 수혁이라는 숙주 상태를 고려해야만 했다.

그렇게 믿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이롭다면 착각 속에 살게 해 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해 줄 수 있었다.

[최대한 제가 어색하지 않게 조율해 보죠.]

‘음.’

[고민은 그만하고요. 이제…… 곧 열립니다.]

‘아.’

바루다의 말에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정말로 환자의 얼굴이 열리고 있었다.

무슨 뚜껑이라도 여는 느낌이 들었다.

“오. 이렇게 보는 건 또 처음이네요.”

어느새 다가가 있던 김효열 교수가 팔짱을 낀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비과 교수니만큼 노상 보는 게 코인데, 이렇게 갈라진 채로 보는 건 말 그대로 처음이었다.

그에 반해 백정완 교수는 얼굴이 그렇게 밝지만은 못했다.

“이거…… 여기 타고 내려갔어. 신경관을 타고 내려가서……. 음……. 여기 봐. 이거.”

“확실히…… 그냥 여기만 제거하고 보조 기구 끼는 건 안 될 거 같은데요?”

범위가 넓어서였다.

다리 잘라 내 이어 붙일 준비까지 하라고 하고 들어온 참이었지만.

내심 잘하면 그냥 경구개 부분 절제만 하고 나머지는 보조기를 끼거나 또는 근처 점막을 돌려 막을 생각도 하고 있었거늘.

절개하고 들어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딱 봐도 절제해야 할 범위가 좌우 2cm는 족히 넘어갔다.

이만한 결손은 제대로 된 재건을 해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경구개 전체가 허물어져 내려올 수 있었다.

“일단 마커 줘 봐.”

“네.”

해서 백 교수는 어두운 얼굴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절제할 곳을 정하기 위해 펜을 집어 들었다.

안쪽 경계는 쉬웠다.

절반을 넘어가진 않았으니까.

문제는 바깥 경계였다.

“으음…….”

이를 포함하게 되면 일이 아주 커졌다.

수술도 어려워지겠지만, 더 큰 문제는 그 후의 일이었다.

이의 20%가량을 잃는다는 건 삶의 질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억지로라도 잘 먹어서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하는 암 환자라면 더더욱 그랬다.

과의 특성상 암 환자를 주로 보는 백정완 교수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인가.’

[네, 지금입니다.]

이쯤에서 수혁이 나서 주어야만 했다.

“오, 또 오셨어?”

분연히 몸을 일으키고 있으려니 조태진이 부리나케 다가와 수혁을 부축해 주었다.

워낙에 체격 차이가 큰 두 사람인지라, 조태진의 부축을 받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지팡이조차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수술 부위 좀 보게 해 주실 수 있어요?”

“어……. 알았어. 들게, 그냥.”

“어……. 네. 그게 좋겠어요.”

“오케이.”

부축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어 들 수 있을 지경이었다.

“아, 뭐야.”

그 덕에 수혁은 백정완 교수의 눈에 거슬릴 정도로, 그러나 오염을 시키진 않는 선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꼭 좀 수술 부위를 보고 싶다고 해서요.”

변명은 조태진의 몫이었다.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미쳤어? 레지던트가 중요해? 지금 수술 중인데?”

“아, 저기 교수님.”

하지만 김효열 교수까지 가세하고 나선다면 어떨까?

“뭐야.”

“이 친구 눈이 좋아요.”

“뭔 소리야. 내과 의사가 눈이 왜 좋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여기 코안에 보시면……. 진짜 딱 살릴 거 다 살리면서 제거할 거는 또 깨끗하게 했죠?”

“너 잘한다고? 나한테 이런 어필을 해서 뭔 소용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거 저 친구가 도와준 거예요. 저도 긴가민가했는데…… 귀신같이 맞추더라니까요.”

“무슨 미친 소리…….”

백정완 교수는 그럼에도 수혁을 바로 믿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금 멍해진 얼굴로, 심지어 팔다리까지 축 처진 채 수술 부위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수혁을 확인하고 나서는 감히 말릴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뭐야.’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집중할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조태진까지 나서서 옹호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저, 교수님. 이거 진짜 우리끼리만 하는 얘긴데. 애가 좀 신기가 있어요.”

“조태진 교수……. 자꾸 그런 말 하면 우리 환자 항암 못 맡겨.”

물론 마구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의견을 들어 볼 생각을 들었단 뜻이었다.

“저, 교수님.”

해서 백정완 교수는 수혁이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역정을 내는 대신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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