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아이고 (5)
수술실 분위기는 금세 침통해졌다.
이미 뮤코마이고시스라는 것을 다 알고 들어왔음에도 그랬다.
실제로 점막만 봤을 때는 어라? 생각보단 괜찮은데? 뭐 이런 생각도 들었어서 그랬다.
“이런 제기랄. 그럼 경구개 잘라야 해요?”
특히나 조태진의 반응이 격했다.
수혁은 이미 환자 기록을 다 읽었기도 했거니와 데이터화까지 마쳐 둔 덕에 왜 저러는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김환기 환자는 응급실에서 노티 된 후 쭉 조태진이 맡아서 보던 환자였다.
보통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게 되면 삶을 비관하게 되는데, 환자는 그러는 대신 희망을 품고 조태진의 치료를 아주 잘 따라오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하지만, 정말이지 100점짜리 환자라고 할까?
그런데 이따위 결과물을 받게 된다고?
‘시발. 시발…….’
이럴 때마다 조태진은 자신이 굳게 믿고 있는 현대 의학에 대한 일종의 신앙이 조각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노력한다고 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공허해야 하는가?
아니, 이렇게까지 처참해야 하는가?
조태진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일단…… 하아……. 점막을 더 벗겨 볼게. 근데…….”
“으음.”
“일단 두경부외과 콜하자. 오늘 뭐 학회 있거나 그런 날 아니지?”
“네. 정한기 교수님 콜 하겠습니다.”
정한기라면 현재 두경부외과의 막내 교수였다.
그 말은 곧 궂은일은 혼자 다 하고 있다는 뜻인데, 어쩌면 이 새벽에도 병원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바람에 사람이 폭삭 늙었다고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다.
특히 외래에서 그랬다.
처음 교수가 됐을 땐, 환자들이 왜 교수라는 사람이 저렇게 어려 보이냐고 했었는데 지금은 완연한 중년 교수로만 생각한다고 했던가.
김효열 교수는 짠한 후배의 인생을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백 교수님 콜 해. 이거 봐라. 재건하려면…… 뼈 돌려야 될 텐데…….”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태화 의료원 두경부외과 교수가 못 하면 누가 할 수 있나 싶기도 하겠지만.
두경부외과 한 분과만 놓고 보더라도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했다.
정한기는 아쉽게도 경부를 보는 사람이라 무리였다.
“어……. 백 교수님이요?”
그에 반해 백 교수, 즉 백정완 교수는 올라운더였다.
아예 두경부외과라는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마이너 서저리가 아니라 외과였다면 더 널리 알려졌을 사람이었다.
[데이터를 보면……. 이현종 원장도 백정완 교수는 존경한다는 언급이 있군요. 실력은 확실한 모양입니다.]
‘그 사람이 와서 절제를 완벽하게 한다면 결과가 좀 달라질까?’
이비인후과 쪽에서 백 교수를 부르기로 합의되는 사이, 수혁은 그 대화를 토대로 바루다와의 토의를 이어 나갔다.
아쉽게도 그리 희망적인 방향은 아니었다.
[완벽하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80% 이상의 생존율을 보일 겁니다. 다만 영역이 두경부라는 게 걸립니다.]
‘응?’
[수혁, 제가 수혁의 감각 기능을 데이터화할 수 있게 되면서 엄청난 성능 개선이 발생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죠? 그만큼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에 있어 감각 기능이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알고 있지. 인마 내가 바보냐? 왜 그런 얘길 지금……. 아.’
[네, 얼굴에 감각 기능이 몰려 있습니다. 이를 모조리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의 생존율입니다.]
사람이 왜 날아오는 주먹을 보면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팔을 들어 얼굴을 방어하려고 할까?
얼굴에 흉터라도 남으면 남들이 싫어할까 봐?
연애를 못 하게 될까 봐?
그보다는 얼굴에 있는 기능들이 너무 중요해서라고 봐야만 했다.
때문에 두경부외과는 그 기능을 최대한 살리면서 동시에 암이나 지금의 뮤코마이코시스와 같은 병변을 제거하는 것에 최대 가치를 두었다.
‘그걸 우리가 도울 수 있나?’
[음. 조금은요.]
‘조금?’
[어차피 잘라야 한다고 판단이 서면 잘라야 합니다. 다만 그 범위를 더 정확하게 잡을 수는 있죠.]
‘그럼 그렇게 하자. 아니, 해 줘.’
[엄청 어지러울 텐데요?]
바루다가 뇌의 기능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수혁이 본인의 운동 기능에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 줄지 않는가.
바루다가 염려하는 것은 그러다 넘어지거나 하는 것이었다.
숙주가 다치는 것은 바루다에게도 해가 되는 일이었으니까.
수혁은 걱정 말라는 얼굴로 옆에 선 조태진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있잖아. 또 신 내렸네, 어쩌네 하면서 잡아 주실걸.’
[아, 하긴.]
하지만 조태진이 있다면 안심이었다.
어떻게 보면 수혁을 제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간이지만.
그만큼 더 배려심이 넘치는 인간이기도 하지 않은가.
확신이 선 바루다는 조금씩 수혁의 두뇌 기능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수혁은 확실히 몸을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교수님.”
“응?”
“저 약간 힘들어서 그런데 의자 앉을게요.”
“어? 어어어. 당연히 앉아야지.”
조태진은 수혁의 요청에 즉시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주었다.
어차피 조태진은 장딴지가 어지간한 사람 허벅지만 한 사람이다 보니 앉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 좀 비틀거리면 잡아 줄 수 있어요?”
“어? 느낌 오니?”
수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한 보조를 요청했다.
조태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호기심에 찬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이현종과 신현태가 그런 거 아닐 거라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조태진은 홀로 수혁은 아마도 신내림 비슷한 것을 경험하고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체 왜 혼자 중얼중얼한단 말인가.
심지어 그럴 때마다 기막힌 답을 내놓기까지 했더랬다.
최근엔 중얼거리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어디 애매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알지.’
조태진은 그게 수혁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럴 거라 확신했다.
“네?”
“느낌…… 오냐고.”
뭐라 대답해야할까?
수혁은 바루다에게 물었다.
[대강 둘러대세요.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신 내렸지, 뭐.]
‘넌 현대 과학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는데, 미신에 대해 굉장히 열렸구나?’
[모르는 분야니까요. 진짜 신 내리는 사람이 있을 지 없을지 어떻게 알아요?]
‘만약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환자로 오면 어떡할 건데?’
[고쳐 줘야지. 그럴 리가 있나.]
‘너 지금……. 되게 말 이상한 거 알지?’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대꾸하는 대신 뇌 기능 차용을 좀 더 늘렸다.
그 바람에 수혁의 몸이 조금 비틀거렸다.
서 있었다면 반드시 넘어졌을 정도의 흔들림이었다.
“왔네, 왔어.”
결과론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별말을 덧붙이지 않았음에도 조태진은 확신하며 수혁을 부축하기 시작했다.
“근데 왜 수술방에서 오시냐. 여기서는 뭐 별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연신 혼자만의 생각을 중얼거리면서였다.
이걸 누군가 들었다면 필시 정말로 이상하게 여겼을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술에 임한 이들은 누구도 조태진이나 수혁을 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참여하고 있지 않고 그저 모니터만 보고 있는 하윤 또한 그랬다.
“음……. 다행히 경구개는 이 정도고……. 내측벽은 뭐 이거…….”
수술이 계속 진행 중이었기에 그랬다.
두경부외과를 부른 건 부른 것이고, 그 전까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놔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항암 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못한 환자인 데다가 감염까지 생긴 마당이었다.
뭐든지 간에 서둘러야만 했다.
“여긴 다 잘라야겠는데요? 반대편은 괜찮으려나.”
김효열 교수의 말에 펠로우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측벽, 즉 비중격이 죄 새카맣게 변해 있었기에 그랬다.
[키스톤 보전은 불가할 거 같다고 말씀드리세요. 지금 잘라 낸 부위에서도 피가 거의 안 납니다. 저 정도의 출혈은 제대로 된 조직에서 나는 게 아니에요. 이미 먹었다고 봐야 합니다.]
‘피가…… 나긴 나잖아?’
[분석 결과 흐르던 피일 가능성이 적어요. 울혈되어 있던 혈액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게 분간이 가냐?’
[수혁 눈알이 그래도 쓸 만한 부분이 있네요. 아주 정확하지는 않아도……. 흐르던 피인지 고여 있던 것인지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저거 안에 곰팡이 드글드글 할걸요?]
‘이런 제기랄.’
수혁은 바루다의 말이 사실이라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뭐라 판단하기에는 뇌 기능을 너무 많이 뺏겨서 그런가 귀찮기도 했고.
그럼에도 욕을 한 이유는, 대체 집도의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싶어서였다.
[일단 질러요. 말 안 들으면 그거 뭐 어쩌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
하지만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해서 수혁은 크흠 소리를 낸 후 말을 이었다.
“저, 교수님. 김효열 교수님.”
“응? 왜, 내과 선생. 뭐 이상해? 환자 바이털 흔들려?”
의외로 김효열 교수는 수혁의 말에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효열 교수는 이비인후과 의사고 또 동시에 비과 파트 아니던가.
바이털이 흔들리는 환자를 볼 경험이 적다는 뜻이었다.
어느 상황에서건 진짜 의사 내과 의사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게 되는 수밖에 없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지금…… 키스톤 영역 남겨 두시는 건가 해서요.”
“어?”
하지만 이젠 그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얘가 왜 키스톤을 알지.’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라면야 당연한 일이었다.
3년 차인데 키스톤을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니까.
하지만 내과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거기까지 자르면 코 모양이 망가지기야 하겠지만 침범하셔야 됩니다. 거기서 나온 출혈…… 그거 출혈이 아니라 고여 있던 피일 가능성이 커요.”
“잉.”
이제는 하다못해 주제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디서 감히 내과가 수술에 대해 가르치려 든단 말인가.
해서 화를 내려는데, 조태진이 나섰다.
뭔가에 단단히 홀린 얼굴을 하고서였다.
‘온 거지? 그렇지, 수혁아. 온 거지?’
조태진은 그런 얼굴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교수님, 잘라 주시죠. 수혁이 말이 맞을 겁니다.”
“아니, 김 교수. 김 교수까지 왜 이래. 이거 수술이야. 니들이 수술 들어와 본 경험이 얼마나 있다고…….”
“그래도 한 번만 들어주세요. 진짜 보증합니다.”
“아니, 키스톤은 건드리면 코 무너져. 안장코 된다고.”
“어차피 제 환자예요. 안장코로 사는 게 낫지, 우뚝한 코로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아니, 이 사람이 이거.”
김효열 교수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펠로우를 돌아보았다.
헌데 펠로우 표정이 좀 이상했다.
‘저 새끼……. 괴물이라고 하던데.’
펠로우는 참으로 고달픈 직급이지 않은가.
레지던트와 같은 계약직이라지만, 레지던트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어디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펠로우를 하지 않는 전문의 동기들에 비해 벌이도 절반가량이었다.
그렇다고 교수가 확정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하면서 달려야 하는, 어찌 보면 대학원생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 보니 모든 펠로우들은 동료 의식이 있었는데, 당연히 고충과 고난을 많이 나누게 되었다.
‘허투루 저런 얘기 할 리가 없어.’
펠로우는 수혁에 대해 들었던 얘기를 상기했다.
그리고 나서 상처를 보니 확실히 좀 이상했다.
피가 나오다 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지지기라도 했으면 또 모르겠는데,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이랬다.
“저, 교수님.”
“뭐야, 넌 또 왜 그래.”
“한 번만 잘라 보죠.”
“아이 시발 진짜 왜 다들 이래. 나도 흔들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