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아이고 (2)
[왜 말이 없습니까, 수혁? 설마 모르는 겁니까?]
바루다는 충격 먹은 얼굴을 하고 있는 수혁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물론 진짜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이런 표정을 짓지 않았을 테니까.
“왜…… 왜 저러는 거죠?”
“글쎄요……. 저도 저건 잘…….”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바루다가 아니라 보호자와 하윤이었다.
둘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 목 안을 이리저리, 무려 5분이나 보다가 갑자기 넋 나간 얼굴이라니.
그동안 뭐라도 한마디 꺼냈으면 또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은 상황이지 않은가.
‘병증이 도지신 건가?’
아무래도 하윤은 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신현태도 심지어 수혁의 아버지를 자처하고 있는 이현종도 수혁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조태진이야 그것마저 신내림이라는 묘한 단어로 커버 치고 있지만.
둘의 말에 따르면 수혁은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도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금은 안 되는데…….’
해서 하윤은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뮤코마이코시스인가?’
하윤이 중얼대는 사이, 수혁 또한 입을 달싹거렸다.
밖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결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바루다는 명확히 알아먹었다.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즉시 콧줄을 뽑고, 코안을 내시경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부비동 CT 또한 찍어야 합니다. 몸 상태가 허락한다면……. 조영제를 써야겠죠. 마지막으로 나간 검사 결과를 토대로 판단하자면…….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영상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더 클 겁니다.]
‘이런 제기랄.’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듣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쏟아져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본인이 생각했던 그대로여서 그랬다.
조금이라도 엇나가기를 바랐었는데.
희망이 뭉개진 느낌이었다.
“하윤아, 가서 시린지 가져와.”
그래서 그런가, 한참 만에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연 수혁의 표정은 괴기스럽기 그지없었다.
범죄 조직이 아닌 이상 도저히 거기다 대고 예라고 할 수는 없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보호자를 옆에 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심지어 시린지라니.
자타해의 우려가 있는 상황 아닐까?
하윤이 별별 생각을 다 떠올리는 사이, 갑갑증이 도진 수혁은 손을 내밀었다.
“빨리! 콧줄 뽑아야 해!”
그러자 두려움이 더더욱 솟아올랐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저러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 저러는 거야. 저게 밥줄인데.’
해서 하윤은 대답 대신 밖을 내다보았다.
담당 간호사가 결연한 얼굴로 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하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분위기를 읽어 내는 데 딱히 대단한 통찰력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냥 상식만 있으면 되었다.
‘왜 이래?’
그 상식이 수혁은 결여되어 있었다.
[너무 갑자기 달라고 하니까 그렇죠.]
인공지능 바루다는 그런 수혁을 차근차근 달래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내가 왜 인간인 수혁에게 인간 감정에 대한 강의를 해 줘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미우나 고우나 이놈이 유일한 입출력자인 것을.
‘응?’
[지금 하윤은 아니, 수혁을 제외한 모든 의료진은 뮤코마이코시스는커녕 그 어떤 응급한 질환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불명열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죠. 근데 갑자기 시린지를 달라고 하면 당황스럽겠어요, 안 당황스럽겠어요.]
‘음.’
[이게 어렵구나. 어쩐다.]
바루다는 잠시 한숨을 내쉬다가, 뮤코마이코시스라는 것이 얼마나 응급한 질환인지를 떠올렸다.
그야말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질환이었다.
30분 전에 봤을 땐 눈을 살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살릴 수 없는 경우도 흔히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면역이 상실되거나 약화한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질환이기에 그랬다.
이 병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기 전의 의료진은 두 눈 시퍼렇게 뜬 채로, 실시간으로 곰팡이에 잡아먹히는 자신의 환자를 무력하게 바라봐야만 했던 때가 있을 지경이었다.
[그냥 제가 말하는 대로 하십시오, 수혁.]
해서 바루다는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주입식 교육으로 방침을 바꿨다.
‘음, 알았어.’
다행한 점이 있다면, 수혁은 이럴 때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 하윤아. 지금 이쪽 비강을 오리진으로 해서 뮤코마이코시스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래. 시린지 가져오면서 바로 이비인후과 콜 해. 스텝 콜까지 다 해 달라고 하고, 수술방도 준비하라고 해. 프리 옵은 우리가 챙기면 되니까, 빨리!”
“아, 아! 네!”
그렇게 제대로 된 설명이 듣자마자 하윤은 달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뮤코마이코시스라니.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들은 얘기는 많았다.
겪어 본 선배들에 따르면 그야말로 지옥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여기, 여깄습니다!”
쏜살같이 다녀온 하윤에게서 시린지를 받은 수혁은 콧줄에 붙은 반창고를 떼어내며 말을 이었다.
“거기선 뭐래? 이비인후과.”
“어……. 일단 와서 본다고 합니다.”
“스텝 콜은? 이거 레지던트 수준에서는 감당 안 돼.”
아직 범위가 어디까지 뻗었는지는 파악이 안 된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범위가 작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입천장의 검은 반점이 뭘 의미하겠는가.
최소한 경구개를 잡았다는 뜻일 터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유리 피판술까지 필요할 수 있어.’
유리 피판술이란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살이나 뼈를 떼어내어 결손이 발생한 부위에 붙여 주는 수술을 의미했다.
우리 몸이란 게 그냥 뗐다 붙였다 하게끔 만들어져 있는 건 아니기에, 새로 떼 온 부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혈관을 이어 주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혈관 문합술이 포함되는 수술이 대개 그러하듯 유리 피판술의 난도는 엄청나게 높았다.
[눈이 괜찮은지 모르겠군요. 환자가 계속 눈을 감고 있어서 움직임이 확인이 안 됩니다.]
‘아.’
뮤코마이코시스가 아래로만 침범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위로도 쭉쭉 타고 올라갔을 터였다.
주로는 눈을 침범하게 되는데, 그랬다면 눈까지 뽑아야 할 가능성이 있었다.
“환자 어딨죠?”
최악의 최악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이비인후과 당직의가 병실로 들어왔다.
이비인후과 2년 차 김종세.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사이였다.
“아, 여기요.”
“네, 이수혁 선생님. 뮤코…… 마이코시스가 의심이 된다고요?”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어지간한 협진 요청은 뭉개고 싶었을 터였다.
수술복 뒤에 주름이 잔뜩 져 있는 것을 보면 아예 자다 왔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뮤코마이코시스라는 이름 때문인지 눈만은 초롱초롱했다.
“네. 이쪽 비강이요.”
“우측 말씀이시죠?”
“네.”
“음.”
김종세는 여기 오면서 환자에 대한 정보를 간략하게 읽어 본 참이었다.
‘농성 비루가 있어서 드레싱을 했다고 했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에 대한 말은 없었다.
그저 엑스레이상에서 보이는 병변과 더불어 확인할 수 있는 콧줄의 존재를 통해 왼쪽에서 검사를 진행했겠거니 하고 유추했을 뿐이었다.
‘아마 축농증이 호전되지 않고 며칠 더 버텼으면 그때는 콧줄을 뽑았겠지?’
김종세 또한 협진 본 전공의의 판단에 동의하는 바였다.
그랬기에 다른 사람이 협진 요청을 해 왔다면 씹었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는 이수혁이었다.
‘이낙준 교수님이 인정하는 레지던트지…….’
진짜 의사니, 참의사니 뭐니.
수혁을 수식하는 말이 참 많았다.
언젠가 한 번 죽을 뻔했던 환자를 살려 줘서인데.
교수가 그렇게 대놓고 칭송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수술 범위가 좁아 여전히 도제식 교육이 주를 이루는 이비인후과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교수 눈 밖에 났다가는 필수적인 수술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볼게요.”
해서 김종세는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가져온 포터블 내시경을 슥 하고 콧구멍에 집어넣었다.
비강 진입부는 그저 붉을 따름이었다.
조금 하얘진 부분도 있긴 했는데, 그건 아마도 콧줄에 눌린 흔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아.”
하지만 조금 더 내시경을 집어넣고 보니, 비로소 이상한 부위를 찾아낼 수 있었다.
시야가 검었다.
내시경의 불이 꺼져서는 아니었다.
점막이 검게 변해서였다.
“이런 시발.”
김종세는 다른 과 레지던트들은 물론, 환자 보호자마저 있다는 사실마저 잊은 채 욕설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얼마 전 잃었던 환자가 떠올랐으니까.
심지어 수술까지 했음에도 그랬다.
“그…… 어…….”
하필 수술에 들어간 시간도 지금이랑 비슷했다.
새벽까지 이어졌던 험악한 수술 끝에 마주한 것이 환자의 죽음이었을 때의 처참한 기분이라니.
‘이렇게 만들 거면 그냥 두지 그랬어요!’
더욱이 환자의 몰골을 목도한 보호자가 이렇게 외쳤을 때는 더더욱 참담했다.
그 말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김종세도 교수도 환자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건들지 않았을 터였다.
“뭐 해요? 빨리 전화하라고.”
아연한 기분에 멍하니 있으려니 수혁이 재차 재촉을 해 대었다.
그제야 김종세는 눈앞에 둔 환자가 그가 수술했던 그 환자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연락이 올 때부터 알지 않았던가.
남자 21세.
젊다기보다도 어린 나이의 환자.
모든 생명의 무게는 같다지만, 아무래도 어린 환자가 위급할 때 더욱 긴장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 네네.”
“누가 들어오실 수 있지?”
“김효열…… 김효열 교수님일 거예요.”
“아.”
김효열이라면 손 좋기로 유명한 사람 아니던가.
그라면 어찌 되었건 잘라 내야 할 부분은 잘라 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이 환자의 경우 아주 높은 확률로 재건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절제는 아무래도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수혁은 수술로 가닥이 잡힌 이상 내과는 그 계획 자체에는 끼어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잠시 깼다.
“저기.”
“네?”
다행히 김종세는 그런 수혁을 딱히 무례하다고 보지 않았다.
원래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였지만.
방금 본 질환 때문이기도 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비강에서 생기는 질환을 이비인후과보다도 먼저 캐치해 낼 줄이야.
“재건술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입천장에 이미 검은 반점이 있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서 수혁의 요청을 제대로 들어주었다.
수혁은 그럼에도 곧장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응, 수혁아. 웬일이야?”
전화를 받은 건 당연히 조태진이었다.
밥도 많이 먹었겠다, 수혁도 왔겠다.
간만에 발 뻗고 자려던 조태진의 목소리에는 졸음이 가득 묻어 나왔다.
다른 사람이 단잠을 깨웠다면 조금 언짢을 수도 있었단 얘기.
하지만 상대가 수혁이다 보니 반응은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김환기 환자분……. 발열 있은 지 3일 된 환자분이요.”
“아, 그 환자. 왜? 뭐 문제 생겼어? 그럴 만한 컨디션은 아니었는데?”
“콧줄 빼고 보니 뮤코마이코시스가 보여서요.”
“뭐?”
“지금 이비인후과랑…….”
“가, 갈게. 지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