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아이고 (1)
킁킁.
뭔 냄새가 난다는 걸까.
수혁으로서는 바루다가 말하는, 데이터에 잡히지 않은 냄새가 무엇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딱히 그가 둔감해서는 아니었다.
애초에 환자의 몸에서 나는 체취가 워낙에 고약해서였을 터였다.
“선생님?”
실제로 하윤은 마스크를 두 개나 끼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환자 앞에서 혹 실례되는 행동을 할까 봐서였다.
그런 준비를 하고 있던 하윤이었기에 지금 수혁의 행동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딱 자신이 피하고자 했던 짓을 하고 있었다.
“흐음.”
물론 수혁은 하윤의 부름에 바로 응답하지 못했다.
자신을 이 자식은 대체 뭔데 갑자기 와서 냄새를 맡고 있나 하는 얼굴로 보고 있는 보호자의 눈빛에도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따름이었다.
‘오래 씻지 못해서 나는 냄새랑……. 약간의 고름 냄새는 알겠는데……. 여기에 뭐가 더 있어?’
[말로 설명 드리기는 어렵군요. 하지만…… 데이터화하지 못했던 냄새가 끼여 있습니다. 반드시 그게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수혁과 함께하자마자 냄새를 데이터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요.]
정말로 그랬다.
사실 냄새가 어떤 질환을 특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은 아주 오래되었다.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고.
하지만 아주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인간의 후각은 그렇게 예민하지도 못할뿐더러, 동시에 후각은 적응이 굉장히 빠른 감각기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장되어 가는 것을 굳이 차용할 만큼 초기의 바루다나 수혁이 여유롭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맡아 보았거나…… 겪어 본 케이스일수도 있다 이거지? 단지 데이터화가 안 되었을 뿐.’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의미가 아예 없을 거 같진 않군요. 어찌 되었건 데이터베이스에 하나를 추가하는 겁니다.]
‘오케이. 그럼……. 좀 더 가까이 가 볼까.’
지금의 수혁은 1년 차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지 않은가.
비단 머릿속에 든 지식이나 그것을 토대로 겪은 경험치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이현종을 비롯한 병원 실세들의 배려로 인해 물리적인 시간도 많아져 있었다.
덕분에 여유가 생긴 둘은 이런저런 일들을, 주로 1, 2년 차 때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도하고 있었다.
“아, 보호자분. 저는 이수혁입니다. 우하윤 선생과 함께 조태진 교수님 환자를 보고 있습니다.”
결심이 선 수혁은 우선 경계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는 보호자를 향해 자기소개부터 했다.
예전 같았으면 별 소용은 없었을 터였다.
태화 의료원의 내과 레지던트 이수혁이라는 이름은, 같은 병원 의사들에게가 아니라 환자들에게라면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했으니까.
허나 수혁은 이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사람이었다.
“아……. 이수혁 선생님? TV에 나오셨던?”
“네네. 바로 그 사람입니다.”
“어……. 음. 음……. 좀 다르네요, 화면이랑?”
“네, 뭐.”
그렇다고 상처받을 만한 반응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이해는 갔다.
당시 수혁의 비주얼은 확실히 원래 수혁이 갖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으니까.
이를테면 남지연 태화 생명 사장이 일을 너무 잘한 탓이란 얘기였다.
아무튼, 수혁은 외모에 대한 공격을 당하긴 했으나 어렵지 않게 보호자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환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환자분?”
“으, 으?”
“김환기 환자분 맞죠?”
“어……. 으.”
환자는 말소리에 반응하는 정도의 의식 수준이었다.
특히 이름을 부르면 아주 잠시 눈빛이 명료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은 어려웠다.
심지어 어디가 아프냐는, 다소 간단한 질문에조차 답을 하지 못했다.
‘차트에는 의식 수준이 drowsy(졸림)라고 쓰여 있었지?’
[네, 하지만 지금 보면 거의 stupor(혼미)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더 악화되고 있다는 뜻이야.’
[하지만 랩상에서의 변화는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원래…… 전신 상태가 워낙에 안 좋으면 그렇지.’
몸이 아프다는 건 그만큼 어떤 공격에 대한 반응이 굼떠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뇨를 비롯해서 면역력이 억제되는 질환에서 초기 감염에 의한 증상이 모호한 것이 다 이 때문이었다.
물론 본격적으로 균이 자라기 시작하면 그 어떤 환자에게서 더욱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만.
그때는 사실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전에 어떻게든 감염 징후를 발견해서 처치해야만 했다.
‘흐음…….’
[그냥 이렇게 봐서는 아까랑 다른 것을 못 찾겠습니다.]
‘코안이 보이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
[그렇죠, 아무래도. 근데…….]
‘근데 뭐.’
[이상하긴 한데, 일단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혁은 어느새 환자의 코앞에 서 있었다.
그 말은 즉 아까보다는 많은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위치란 것인데.
안타깝게도 코는 안쪽에 내시경을 넣지 않는 이상에는 더 많은 시각적 정보를 얻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냄새라면 어떨까.
바루다는 보다 진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동시에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뭔데, 말해 봐.’
[환자의 입안에서도 같은 냄새가 나는군요.]
‘그래? 입안에서? 뭔 냄새를 말하는 거지.’
바루다는 분명 수혁이 주는 정보를 인지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수혁의 코는 뭐가 어찌 되었건 바루다가 말하는 냄새를 맡고 있다는 뜻이었다.
헌데 왜 나는 못 맡지?
수혁은 그런 생각으로 환자의 입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음…….”
“원래…… 이수혁 선생님이 좀 괴짜에예. 천재 스타일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좀 하세요.”
“으음…….”
“조금 있으면 뭔가 실마리를 찾긴 할 거예요. 딱 저런 얼굴 하고 계실 때 그러시거든요?”
아마 TV에 나온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보호자는 벌써 수혁을 환자와 떨어뜨려 놨을 터였다.
그만큼 지금 수혁이 하는 짓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뭐 하러 코를 킁킁거립니까? 코와는 달리 입은 열리잖아요?]
‘아.’
심지어 바루다가 보기에도 그랬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수혁 또한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제길.’
뭐 자책을 오래해 봐야 뭐 하겠는가.
수혁은 짤막한 욕설을 끝으로 하윤을 돌아보았다.
“조금 이상해요.”
“아하.”
“엇.”
여태 수혁을 다소 이상한 방식으로 비하하던 하윤이었기에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바루다와의 세계에 있다 온 수혁으로서는 하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하고자 했던 말을 꺼낼 뿐이었다.
“설압자랑 펜라이트 좀 줄래? 환자 입안 좀 보려고.”
“어……. 네. 네. 근데 제가 아까…….”
“응, 그래도 한 번 더 보게.”
“네, 알겠습니다.”
오전에 봤던 입을 왜 오후에 또 보려고 할까.
하윤은 설압자를 가지러 가면서 동시에 아까 보았던 소견을 곰곰이 떠올렸다.
혹 놓친 부분이 있을까 봐서였다.
‘편도염? 아냐, 아냐……. 아니었어. 그렇게 보이진 않았어.’
물론 약간의 발적이 있기는 했더랬다.
하지만 원래 이렇게 전신 상태가 좋지 못한 환자들의 경우에는 그런 소견이 흔하게 발견되는 법이었다.
편도가 붓는 데에는 아주 다양한 원인이 있으니까.
해서 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려 가며 설압자를 건네주었다.
‘이 선배가 괜한 짓을 할 거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수혁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원래도 1년 차 4월이면 위 연차가 다 신처럼 보일 시기 아니던가.
게다가 수혁은 다른 위 연차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었다.
아까 조태진이 보였던 태도만 생각해도 그랬다.
[드디어! 드디어 수혁이가 온다! 집에 갈 수 있다!]
조태진이 또라이도 아니고.
일개 레지던트 하나 온다고 그렇게 난리 법석을 피울 이유가 있겠는가.
이게 다 수혁이라서 그런 것이었다.
‘대체 뭐가 보이는 걸까.’
하윤은 지난 세월 동안 수혁이 보여 준 기적과도 같은 광경을 기대하며 수혁의 뒤에 섰다.
그래 봐야 수혁의 손과 머리에 가려 환자의 입안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발견을 하게 될 것이라면 거기에 동참이라도 했다는 느낌은 갖고 싶었다.
‘으음……. 건조하구만.’
일단 입을 벌린 후 수혁이 받은 첫인상은 구강이 참으로 건조하다는 것이었다.
원래 침샘 기능이라는 것이 전신 건강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는 기관일뿐더러, 항암제에도 영향을 받는 기관이기도 하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열을 일으킬 정도로는 안 보이는데.’
하지만 그 외에 수혁이 확인한 여러 부분, 즉 잇몸, 혀, 치아, 편도, 인후두에는 큰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발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따끔함이나 이물감의 원인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발열의 원인이 되기는 어려웠다.
특히나 의식 변화를 일으킨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야, 걍 개소리 아냐? 생각해 보니까 내가 뭐 후각이 그렇게 어? 예민하지도 않은데.’
그렇다 보니 수혁으로서는 당연히 바루다에게 비난을 쏟아 내는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좀 더 인격자였다면야 이러진 않았겠지만.
아쉽게도 수혁은 딱 그런 인간이었다.
‘야, 설압자 뺀다? 지금도 너무 길게 보고 있어. 이 새끼 이거 민망하니까 입 다물고 있는 것 좀 봐.’
해서 끊임없이 시비를 걸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전에 없이 진중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잠시만, 수혁.]
‘응?’
그렇다 보니 수혁도 더 난리법석을 피울 수는 없었다.
적어도 바루다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땐 자중해야 했다.
[저기…… 입천장 쪽을 좀 더 비춰 보시겠습니까?]
‘입천장……?’
입천장은 아주 단단한 뼈가 위치한 곳이었다.
그곳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는 뭐 먹다가 데는 게 아니라면 극히 드물었다.
지금 이 환자는 콧줄로 식사를 하고 있으니, 더더욱 염증이 있기는 어려울 터였다.
쓸데없을 확률이 높겠단 생각으로 불을 비추어 보니 역시나 별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적어도 수혁의 눈에는 그러했다.
[역시.]
하지만 바루다에게는 좀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뭐야, 뭐가 역시야.’
[자세히 보십시오. 검은 반점이 있습니다.]
‘검은…… 반점?’
그리고 바루다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과연 반점이 보였다.
좁쌀보다도 작아서 잘 눈에 띄지 않았지만.
편견 없는 인공지능의 눈을 이용하면 볼 수 있었다.
‘아……. 보인다. 이거…… 이거 뭐지? 왜 경구개에 저런 게 있어.’
[반점이 우측으로 약간 치우쳐져 있죠?]
‘응.’
[환자의 콧줄 또한 우측에 들어가 있고요.]
‘그렇지.’
[그 말은 곧 이비인후과에서 콧줄이 들어가 있는 쪽은 검진이 어려웠을 거란 얘기입니다. 드레싱이야 어떻게 가능할지 몰라도……. 검진은 안 되죠.]
확실히 그랬을 터였다.
그럼 빼고 보면 되지 않냐는 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환자에 있어 콧줄은 곧 밥줄이었다.
물론 발열이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뽑아낼 텐데, 아직 그럴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입천장에 검은 반점이 보이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기존에 축농증이 있던 비강 측에 동반된 입천장의 검은 반점입니다. 무엇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수혁은 바루다의 무미건조한 질문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