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03화 (303/1,303)

303화 기다렸다구! (4)

세상에 유튜브라니.

온갖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플랫폼 아니던가.

물론 제대로 된 정보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내용을 레퍼런스로 삼는 인공지능이 또 있을까?

수혁은 대체 왜 바루다가 이렇게 됐을까 잠시 고민했다.

“선생님!”

그래 봐야 이동 중에 한 고민인지라 그리 길지는 않았다.

어느새 혈액종양내과 병동이었다.

스테이션엔 우하윤이 서 있었는데, 그야말로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일단 머리가 지나치게 기름졌다.

오늘 하루 종일 맨발로 신고 뛰어다녔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크룩스 안쪽은 묘한 습기감이 느껴졌는데, 가까이 가면 냄새가 무조건 날 거 같은 그런 모양새였다.

[개고생한 모양이군요.]

‘일부러 시위하는 느낌인데, 그렇진 않겠지?’

[글쎄요. 하여간 답이나 해 주시죠. 지금 눈살 찌푸리려던 거 보정하고 있습니다.]

‘오. 내가 그랬어?’

[네.]

다행히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별반 티를 내지 않고 화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가진 않았다.

여기서 냄새까지 맡아 버리면 좀 그럴 거 같아서였다.

다행히 하윤은 워낙 힘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수혁이 반가워서 그런가 미묘한 거리 두기를 눈치채진 못했다.

“일단 이 환자들……. 처방은 이런 식으로 내고, 내일모레 싹 퇴원시키자.”

“오.”

게다가 수혁이 우선 김환기 환자에 관한 얘기보다는 더 상태가 좋은 환자들에 관해 얘기를 해 주었기에 하윤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꺼번에 8명이 가다니.

오전 오후에 한 명당 5분씩만 할애한다고 해도 벌써 2시간 가까이 세이브되는 셈 아닌가.

중증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더 늘어난다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이 환자는……. 일단 약을 좀 바꿔. 지금 임프레션 잡은 거 중에 이게 제일 가능성이 커 보여. 검사 이렇게 나가고……. 내분비내과 협진도 좀 보자.”

“아……. 네.”

나머지 꼬인 환자들도 수혁이 나서니까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와 동시에 답답했던 속도 풀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윤은 역시 수혁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긴장이 풀렸고 하품이 쏟아져 나왔다.

수혁은 그런 하윤을 돌아보며 비로소 본론에 들어갔다.

피곤이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묻어 있기는 하지만.

간단한 환자들은 대강 정리했으니 그래도 되지 않겠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마지막으로 이 환자. 김환기. 이 환자는 좀 어때? 상태가?”

그리고 하윤은 수혁의 질문에 정성껏 답하기 시작했다.

피곤해 죽을 지경이긴 하지만, 그래도 선배가 손수 찾아와 도움을 주고 있는 마당 아닌가.

게다가 김환기라면 아까 오후에도 조태진 교수와 함께 원인에 대해 잠시 고민했던 환자이기도 했다.

수혁이 보기에도 특별해 보인다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 네. 남자 21세고…….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대해 항암 치료 중인 환자입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세상에 뭔 놈의 암에 급성이라는 단어가 붙나 싶겠지만.

의외로 태화같이 큰 병원에 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그리 드물지만은 않은 질환이었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엄청나게 빠른 경과를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었다.

주로 갑작스러운 출혈 경향을 보여, 환자는 멍이 많이 들었다거나 피로하다는 일반적인 증상을 호소하며 내원하곤 했다.

“내원 석 달 전 무릎과 팔뚝 전반에 걸친 멍과 전신 피로감을 주소로 내원하여 시행한 검사상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되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윤은 진단 직후 바로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는 기록을 읊어 주었다.

적어도 이 과정에서는 에러가 없었다.

진단하자마자 입원해서 항암이라는 게 너무 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서 치료가 조금이라도 지연되었다가는 출혈 경향으로 인한 뇌출혈 등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일쑤이기 때문이었다.

그 덕택이라고 해야 할까, 환자는 적어도 출혈로 인한 합병증을 겪지는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싸이클 돌리고 지내던 중 내원 7일 전 전신 피로감 다시 심해져 입원했습니다. 3일에 걸쳐 시행한 검사상에는 재발의 증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입원 도중 발열이 시작되었습니다.”

“검사 긁었는데……. 축농증 말고는 깨끗해서 이비인후과 협진 진료 보는 중이고?”

“네.”

“항생제는…… 컬쳐 나간 거 참고해서 쓰고 있는 건가?”

“아, 아뇨. 일단 경험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1차 약제는 오구멘틴이라고 하는데……. 내성 가능성이 있어 레보플로사신으로 쓰라고 답신 받았습니다.”

“음.”

축농증에 1차로 레보플로사신이라.

상당히 과한 처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환자의 전신 상태를 고려하고 보면 또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다.

뭐가 되었건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두고 도박을 하는 사람 아니던가.

모자란 것보다는 과한 것이 항상 나았다.

해서 수혁은 항생제에 대해서는 별반 코멘트를 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근데 환자 상태는 어떻지?”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발열이야……. 약 쓰면 좋아지는데, 효과 떨어지면 바로 올라오고요.”

“그럼 축농증이 아닐 가능성은 없나?”

“다른 검사를 해 봐도……. 걸리는 게 없어요. 혹시 몰라서 전신 신체 검진을 해 봤는데, 그래도 보이는 건 없었습니다.”

“전신이라는 게…….”

“양해 구하고 병실에서 다 벗긴 상태에서 봤습니다.”

“음.”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에서 신체 검진이 갖는 유용성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특히 하윤이 진행한 전신 검진은 더더욱 그랬다.

무언가 열을 일으키는 질환이 있다면 거기가 아플 텐데 뭐하러 다 벗기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세상엔 통증을 일으키지 않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얼마든지 있었다.

특히 환자의 낮아진 면역 상태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혹시 사진 있어?”

“아, 네.”

하윤은 즉시 컴퓨터 바탕 화면에 있는 폴더를 열었다.

“죄송해요. 차트에 옮겼어야 하는데 도통 시간이 안 나서.”

찍어서 여기다 옮겨 두기만 했던 모양이었다.

수혁이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했다면 게으른 것일 테지만.

수혁이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했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었다.

“아냐, 아냐. 진짜 바빴을 텐데.”

게다가 하윤은 온몸으로 시간 없었음을 피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인턴 돌 때도 이렇게까지 망가진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수혁은 의식적으로 냄새를 참으며 하윤이 힘겹게 찍어 둔 사진을 바라보았다.

발가락부터 성기 그리고 가슴팍에 겨드랑이까지 세세하게 찍혀 있었다.

일부 발진이 돋아난 부분이 있긴 했지만.

발열원으로 보이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흐음…….]

‘아무리 봐도 없어.’

[그렇네요. 이렇게까지 검진했을 줄은 몰랐네요. 우하윤이……. 집념이 대단한데요?]

‘그러니까. 지금 다시 본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당장 어제 시행한 검사입니다. 별로 의미는 없을 겁니다.]

‘그렇군.’

대견한 마음 반 아쉬운 마음 반이었다.

대견한 것은 하윤이 정말 좋은 의사라는 점에서 든 감정이었고.

아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데서 든 감정이었다.

“어때요?”

“내가 봐도 이상한 건 없어. 교수님도 보셨지?”

“네. 교수님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혹시 몰라서 신현태 과장님께도 여쭈어봤는데, 일단은 축농증 말고는 발열원을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으흠.”

감염내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조차 그렇게 판단했다면 확실히 다른 발열원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터였다.

그렇다고 대체 왜 이 환자는 안 좋아지고 있을까.

그냥 약이 안 듣는 거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약이 들어도 면역이 버티지 못해 세균에 의해 잡아먹히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백혈구 수치가 그래도……. 천은 넘습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이비인후과 차트에 기록이 있지 않았을까요?]

‘으음……. 글쎄.’

태화 의료원 내과는 대학 병원답지 않게 꽤나 좋은 교수들이 포진하고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더더욱 드물게 각 분과별로 사이도 좋았다.

해서 협진이 아주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과들은 어떨까?

특히 수술 과들은 협진을 그렇게 잘 봐주는 편이 못 되었다.

워낙에 바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이 환자 일반의 협진으로 들어가 있잖아. 보니까 매일 새벽에……. 다른 환자 드레싱 하면서 중간에 보는 거 같은데.’

[정확한 판단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거군요.]

‘응, 내 생각은 그래. 인턴 때 경험을 떠올려 보면…….’

수술과의 새벽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정신없는 시간을 총칭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수술 시작 시각이 다른 대학병원보다 한 시간 이른, 다시 말해 7시인 태화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4시부터 수술한 환자들 소독하고 상처 확인하고 어제 당직 서면서 본 환자들 다시 한번 확인하고 6시 반부터 회의하고 7시 땡 치면 수술실로 들어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와중에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할까?

아닐 거 같았다.

“아무리 봐도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는 거 같아. 그럼 코인데…….”

“이비인후과에서는 일단 별로 변화 없다고 답신해 오긴 했습니다. 오히려 밖으로 흘러나오는 농은 줄었다고도 하고요. 사진상으로 봐도…….”

고민 끝에 입을 연 수혁의 말에 하윤은 부리나케 오늘 아침에 있는 환자의 안면부 엑스레이를 띄웠다.

확실히 양측 상악동을 가득 메우고 있던 농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자가 누운 상태에서 찍었기에 백 퍼센트 확신하기는 어려웠지만.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파악이 가능했다.

“그래도 한 번 더 제대로 봐주면 어떨까 싶은데.”

“음……. 그럼 내일 교수님 외래로 협진을 낼까요?”

“내일이라.”

수혁은 환자의 발열이 3일 이상 지속되고 있음을 상기했다.

사실 이건 별거 아닌 문제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하지만 의식 수준의 변화는 어떻게 판단해야 한단 말인가.

[급한 문제라고 판단하십니까?]

‘아닐 거 같아?’

[아직 환자를 직접 보진 않은 상황이죠.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보고 결정해야겠네, 그럼.’

[네, 직접 보는 것을 권유 드립니다.]

아무리 내과가 검사 결과를 보고 머리를 굴려야 하는 일이 많은 과라고 하지만.

진단이나 치료에 있어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되어 주는 것은 결국, 환자 그 자체였다.

수혁은 어떤 스텝을 밟기 전에 환자부터 보기로 결심했다.

“병실 어디지?”

“아……. 이쪽입니다.”

환자는 2인실에 있었다.

그렇다고 둘이 쓰고 있지는 않았다.

환자 혼자 2인실을 쓰고 있었다.

아마도 조태진이 그렇게 요구했을 터였다.

아직 무균실에 들어갈 정도로 백혈구 수치가 나빠진 것은 아니더라도, 굳이 다른 환자들과 같이 있을 필요는 없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1인실을 쓰라고 하기엔 비용이 너무 부담될 테니, 병실에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는 주로 이렇게라도 배려를 해 주는 편이었다.

“음.”

환자는 정말 젊다 못해 어린 느낌이었다.

남자 21세라고 적혀 있는 것만 보다가 얼굴을 보니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병색이 완연했다.

죽음이 문턱까지 다가왔다는 느낌.

[음.]

그 죽음의 내음을 맡은 건 수혁이 아니라 바루다였다.

녀석의 심상찮은 반응에 수혁은 즉시 대화를 요청했다.

‘뭐야?’

[코에서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농…… 냄새 아니고?’

[아뇨. 데이터에 잡힌 적이 없는 냄새예요. 가까이 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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