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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287화 (287/1,303)

287화 낭중지추 (3)

바루다와의 대화를 통해 수혁은 지금이 적기란 것을 확신했다.

사실 확신이라는 말을 쓰면 좀 이상한 상황이기는 했다.

아직 진단에 대해 가장 명확한 증거라 할 수 있는 영상 소견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모든 원인은 감별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기서 만약 틀리면 그걸 통해 케이스 리포트를 써도 좋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바루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뭐 어쩌겠는가.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틀리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만했고, 또 해야만 했지만.

이젠 그런 수준은 아득히 넘어 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수혁과 생각이 일치한다면 적어도 이 분야 최고 권위자 둘이 동의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덕분에 수혁의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 차 있을 수 있었다.

“닥터 알 막툼. 이 환자 영상 찍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볼 수 있을까요? 흉부부터요.”

“아……. 네. CT 말씀하시는 거죠? 아까 CT 열어 보려고 하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알 막툼은 수혁의 말이라면 뭐가 됐든 들으려는 자세가 된 지 오래이지 않던가.

헌데 이렇게 자신 있게 말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부리나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모니터에 영상이 떴다.

그제야 수혁과 바루다 그리고 태화 의료진은 환자 하나하나마다 달려 있는 모니터 해상도가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미친 이거 얼마짜리 쓰는 거지?]

‘모르겠네, 판독실에 있는 거 정도는 아닌데…….’

[그걸 다 일일이 달려면 병원 하나 더 지을 돈 나오지 않을까요?]

‘하긴 아무리 오일 머니 오일 머니 해도 그건 안 되겠지. 그래도 엄청나다. 진짜 잘 보여.’

[당직실에 있던 컴퓨터랑은 비교도 안 되네요.]

‘그러니까……. 돈이 좋긴 좋아.’

수혁이 바루다와 더불어 놀라는 동안 뒤에 있던 이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알 막툼은 설마 한눈에 보이는 이상한 점이 있어서 그런가 하고 무척 놀랐지만.

좀 지나고 보니 그저 모니터 성능에 놀랐다는 걸 알고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어디…….”

제일 빨리 놀란 만큼 회복도 제일 빨랐던 수혁은 그사이 마우스를 잡고 슬금슬금 스크롤을 내렸다.

흉부 CT라고는 하지만 경부 하단 또한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별거 없는 거 같은데?’

[우측 폐 상엽에 폐결핵 앓았던 흔적을 놓친 건 아니죠?]

‘흔적이잖아? 지금 액티브 한 병변은 아니지.’

[그래도 언급은 해 주세요. 지금 다 수혁만 보고 있습니다. 기대 잔뜩 한 얼굴이에요.]

‘아……. 그래, 아직 쇼 타임이구만.’

아마 이현종이나 신현태 또는 조태진 앞이었다면 이런 건 그냥 넘어갔을 터였다.

셋은 무조건 수혁이 다 알고 있을 거라 여기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알 막툼도 그럴까?

설령 알고 있다 해도 위에 열거한 사람들만큼 굳건한 믿음은 없을 터였다.

[김다현 사장이 뭔가 보여 주라고 했던 것도 명심하세요. 부센터장으로 만들어 줄 사람입니다. 시키는 건 다 해야죠.]

‘그래, 못할 거 시키는 것도 아니고. 까라면 까야지.’

해서 수혁은 목을 가다듬고는 전반적인 해석에 돌입했다.

“우선 경부 쪽부터 다시 보면……. 나이에 비해 경동맥에 동맥경화 같은 소견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네요. 임파선들도 뭐 크게 종대되어 있는 소견은 없고……. 그런데 내려와 보면 우측 폐 상엽에 3x3cm 정도의 상흔이 관찰됩니다. 뭐 같아 보입니까?”

“예전에……. 폐렴을 앓았던 흔적 아닙니까?”

“그중에서도 특정하자면?”

“음……. 공동이 형성되어 있으니…… 결핵?”

대한민국이었다면 레지던트만 돼도 말을 흐리거나 하진 않았을 터였다.

폐결핵을 모른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무식하거나 공부 하나도 안 하는 놈이라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결핵에 대한 연구나 임상 경험이 적은 국가에서 결핵 진단은 상당히 도전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었다.

알 막툼이 이제라도 떠올린 것이 대단한 수준일 지경이었다.

아마 같은 사진을 미국에서 보여 줬다면 한동안 토론까지 해야 했을 터였다.

거긴 폐결핵이 정말로 드문 나라가 된 지 오래였으니까.

“네, 맞아요. 공동이 형성되어 있으니……. 나중에라도 객혈의 위험이 있기는 한데, 지금 당장 염증이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그저 결핵의 흔적이라고 봐야겠죠.”

“그렇군요.”

“더 내려와 보면 심장이 조금 커져 있는데, 환자 나이를 고려하더라도 과한 변화입니다. 아마도 고칼슘혈증으로 인한 고혈압이 심장에 부하를 준 것으로 보이는군요.”

“음.”

알 막툼은 이게 심장이 커져 있는 건가 하는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수혁이나 바루다처럼 흉곽 크기 대비 심장 사이즈가 한눈에 들어오려면 영상의학과 전문의 정도는 돼야 했으니.

다만 이론적으로 그럴 수 있는 상황인 데다가, 수혁의 말에 설득력이 있어 그런갑다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흉부는…… 이 정도 외에는 뭐가 없고. 복부로 가 보겠습니다.”

수혁은 대충 그렇게 흉부 CT 판독을 마치고 복부 CT를 열었다.

왜 대충이라는 단어를 붙였는고 하면, 여기서 볼 건 이미 다 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폐결핵 흔적 외에는 그리 주의 깊게 보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심장 크기 운운한 건 그야말로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음.”

복부 CT를 열자 폐 하부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조금 스크롤을 굴리자 우측에 있는 간이 나타났다.

“아…….”

간은 누가 봐도 좀 이상해 보였다.

하지만 정상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것과 정확한 소견을 말할 수 있는 건 천지 차이였다.

“어때 보여요?”

수혁은 일단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전에 알 막툼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개는 뒤에 있던 다른 태화 의료원 사람들에게 돌리면서였다.

그 뜻은 당연히 니들 중에라도 자신 있는 사람이 있으면 털어 보라는 뜻이었는데, 수혁과 바루다의 예상대로 침묵만이 감돌았다.

“음, 일단 제 의견을 말씀드리죠. 그럼.”

해서 수혁은 아까 준비했던 것을 조용한 가운데 쏟아 낼 수 있었다.

“우선 간에 다발성 결절이 보이는데……. 경계가 불명확한 결절, 즉 ill-defined nodule 소견이군요.”

그러면서 동시에 스크롤을 내렸는데, 그러자 좌측에 있는 비장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비장에도 수많은 결절이 관찰되었다.

그 양상은 간과 거의 흡사했다.

“비장에도 경계가 불명확한 결절이 다발성으로 관찰이 됩니다. 간과 비장에 있는 결절 모두 불규칙하게 흩뿌려져 있는 형태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원인이야 어찌 되었건 염증으로 인한 결절로 보이는군요.”

“이러한 형태의 염증…… 을 일으킬 수 있는 병이 뭐가 있을까요?”

“단순히 이 영상만 보면 떠올릴 수 있는 게 너무 많죠.”

수혁의 말대로 단순히 간과 비장에 다발성의 경계가 불명확한 결절을 보일 수 있는 병은 대단히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혁이 찾아낸 단서들을 하나하나 종합해 보면, 역시나 수혁이 의심하고 있던 단 하나의 진단명으로 귀결되었다.

‘그냥 말해?’

[아뇨, 아뇨. 일단 MRI 찍어 보라고 하죠. 우리처럼 점핑 해서 진단을 하면 별로 대단하게 보지 않거나……. 약간 사짜처럼 볼 수 있다니까요? 이현종이나 신현태, 조태진이 너무 수혁을 좋아하니까 덥석덥석 믿고 그러지……. 보통은 안 그래요.]

‘아, 하긴. 지금 좀 단계가 스킵되어 있긴 해.’

환자가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이라면 그래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혁이 보기에 지금 이 환자는 뭐가 어찌 되었건 원인 질환이 무엇인가보다는 결과로 나타난 고칼슘혈증이 훨씬 시급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우선 수액과 이뇨제가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여기에 비스포스포네이트 정도는 추가해야 더 좋아질 거 같기는 한데…….’

[그럼 그것도 같이 말하죠.]

뭐가 되었건 교정을 하면서 원인을 찾아 나간다면, 그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환자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보다 단단한 근거를 쌓아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니 안전한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까 폐결핵 흔적이 있었던 것, 그리고 환자가 고칼슘혈증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우선은 간 결핵을 의심해 볼 수 있겠습니다.”

“간…… 결핵이요?”

간 결핵은 사실 결핵의 흔한 형태는 아니긴 했다.

수혁 또한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복막염 형태의 결핵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케이스 리포트에서 본 적이 있기는 해서 아주 당황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네. 여기 잘 보시면……. 복막에도 좁쌀 같은 결절이 관찰되지 않습니까? 아마 시작은 결핵성 복막염이었다가 그게 간과 비장 등으로 번진 것으로 생각이 되는군요. 하지만 MRI 정도는 찍어서 정말 그런가 정도는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주치의에게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연락하시는 김에 한 가지 더 말씀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이수혁 선생님.”

알 막툼은 이제 거의 초창기 신현태 수준으로 수혁을 바라보기 시작한 마당이었다.

수혁은 바루다에게 그러한 상황을 전해 들으면서 입을 열었다.

“환자 고칼슘혈증 교정을 위해 수액도 주고 계시고……. 이뇨제도 쓰고 계시는 거죠?”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간 검사 보니까 여전히 14mg/dl가 넘습니다. 효과적이지 않다는 뜻인데…….”

“고칼슘혈증 교정이 어렵긴 한가 봅니다.”

“이런 경우 비스포스포네이트를 같이 쓰면 더 효과가 좋다는 논문이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이 비슷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일차성 부갑상샘 종양에 의한 고칼슘혈증에서 수술 전 효과를 본 적이 있고요.”

“아……. 네. 그것도 그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 막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해를 구한 후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치의라고 해 봐야 알 막툼보다 연차가 낮은지 통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환한 미소와 함께 수혁을 돌아보았다.

“네, 그렇게 하겠답니다. 마침 MRI실이 비어 있는데……. 바로 찍을까요?”

“그럴 수 있으면 그게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가실까요? 소견을 바로 보고 싶은데. 주치의도 바로 그쪽으로 온다고 합니다.”

“좋죠. 천천히만 갈 수 있다면 저는 좋습니다.”

“아, 네.”

확실히 병원이 아직 풀가동 상태가 아니다 보니 검사 기기들이 전부 여유가 있는 상황인 모양이었다.

태화 같았으면 MRI 찍으려면 한밤중까지 기다려야 했을 텐데, 이런 것은 좋다고 생각되었다.

‘아닌가? 센터 할당받으면……. 별로 안 밀리려나?’

[그럴 수도 있겠죠. 정말 엄청난 모험을 하는 셈일 겁니다, 태화도.]

엄청난 공간과 인력 그리고 장비를 쓰는 것이지 않은가.

아직 레지던트일 뿐인 데다가, 대부분의 의사가 그러하듯 정작 병원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수혁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다 왔습니다. 곧 세팅될 겁니다.”

“네. 알 막툼 교수님.”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일행은 MRI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송 요원들 또한 할머니를 데리고 MRI실에 도달한 참이라 곧 영상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일행의 눈이 당연하다는 듯 수혁을 향해 돌았다.

수혁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즉시 판독에 들어갔다.

“아까 보였던 결절들은……. T1 이미지에서는 낮은 신호강도를 보이고 T2에서는 약간의 높은 신호 강도를 보이는군요. 역시나 경계가 불분명하고요. 이것만 봐도 염증성 질환을 강력히 시사하면서 동시에 간 결핵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복강경하 결절 조직검사 하시고 결과 확인하는 대로 결핵약 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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