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국건영 (1)
국민연금사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주관하는 연구다.
그렇다면 마땅히 회의도 질병관리본부에서 해야 할 거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아직 제대로 된 팬데믹 상황을 겪어 보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질병관리본부는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윗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지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야지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형 건물이 본부 건물이었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너무 열악했다.
“국민연금…… 건물이네요?”
“어? 아, 응. 질본 건물은…… 어휴. 거기는 못 가.”
신현태는 서울역 근처에 자리한, 제법 커다란 빌딩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아 내려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 질병관리본부라는 게 감염병과 연관이 깊지 않던가.
해서 전임 교수를 받지 못한 후배들 중 극히 일부가 그쪽으로 진로를 정한 일이 있었는데, 고생한다고 밥 사 주러 갔다가 울면서 술 사 주고 돌아온 게 아직도 눈에 선했다.
‘월급도 제대로 안 주는데……. 대우도 그럴 줄은 몰랐지.’
술 취한 후배 녀석이 차라리 한번 팬데믹 제대로 오면 좀 나을까요 하는데, 의사가 돼서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는 호통조차 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대학 병원을 나설 때 보여 준 패기는 간 곳 없고 그저 세파에 찌든 공무원 하나만 덜렁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회한에 젖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 온 것도 아니고, 수혁과 함께 온 참 아닌가.
견학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원으로 참여한 것이니, 설명도 열심히 해 주어야만 했다.
“원래 국건영 사업이……. 통계청도 관여하고 있거든? 그래서 예전에는 통계청 건물을 썼어. 거기도 오래되긴 했는데 그래도 건물 크고 그렇거든. 근데…… 지금은 다 세종으로 내려가서 미팅은 보통 여기 회의실 빌려서 해.”
“아……. 세종시로 내려가진 않고요?”
“연구 태반을 서울에 있는 병원에 용역 줘서 하고 있는데 어떻게 세종에서 하냐. 우리만 해도 지금 엄청 서둘러 나와서 겨우 왔잖아. 세종에서 하면 아예 못 가지.”
“아, 하긴……. 그건 그렇네요.”
“아무튼, 가자고. 장소가 이래서 그렇지, 관련된 사람들은 다 와. 내 연구도 가면서 얘기해 줄게.”
“네.”
신현태는 주차를 하고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렸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워낙에 돈이 많은 곳이라 그런가, 서울역이라는 엄청난 중심가에 위치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신현태야 세금 내고 산 지 꽤 오래되어서 이런 게 그리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지만.
수혁은 달랐다.
“오……. 유리벽.”
“좋냐?”
“네? 아, 네. 과장님 앞에서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병원 나오면 그냥 좋더라고요.”
“하긴, 그렇긴 하지.”
신현태는 수혁이 무슨 말을 해도 허허 웃을 양반이지 않은가.
이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만 해 줄 얘기가 있어서 계속 웃고 있지만은 않았다.
“일단 내가 지금 연구 중인 건……. 우리나라 기생충 감염 통계 이용한 건데. 지금 어떨 거 같니? 우리 나라 기생충 감염 추세가.”
“아…….”
기생충이라.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보건 의료학적으로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놈이라고 볼 수 있었다.
방금 원충 감염 환자를 보고 온 마당에 그런 말을 해도 되나 싶겠지만.
기회 감염이 아닌 그냥 기생충 환자는 통계로 굳이 잡아야 하나 할 정도로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혹시 기생충학 관심 있는 친구들은 빨리 관심 버려요. 아, WHO나 NGO 단체 가서 해외 봉사할 생각이면 해도 되는데……. 그래도 그냥 임상과 해요.]
아직도 기억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기생충학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해 준 말이었다.
보통 교수님들은 본인이 선택과 과에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법인데, 그 양반만은 좀 달랐다.
’왜냐면 약 두 개 쓰면 다 죽거든. 세균이나 바이러스랑은 다르게 이게 뭐 내성이랄 게 없어. 벌써 수십 년 전에 나온 약이 그냥 최고야.‘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 내에서 기생충은 거의 씨가 말라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원래 있던 기생충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발견되는 기생충들에 비하면 그 중증도가 현저히 떨어지기까지 했다.
수혁은 그런 사전 정보를 취합하고는 입을 열었다.
“글쎄요. 의미 없을 수준일 거 같은데요?”
“응. 그랬어. 특히 너 배울 때……. 쓰던 교재로는 더 그랬을 거야. 근데 요새는 엄청 늘고 있다? 몰랐지?”
“잉. 그래요?”
“어. 유기농 채소 먹고 하면서 다시 기생충 알 섭취가 늘고 있거든. 게다가 예전에는 주기적으로 기생충 약 먹으라고 대국민 홍보 열심히 했잖아. 너 어렸을 때는 했을 거 같은데. 기억나?”
“아……. 네.”
수혁은 일반적인 가정이 아니라 보육원에서 자란 몸 아니던가.
국가 차원에서 하는 방역은 오히려 일반 가정 애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이쪽은 그렇다더라 하는 게 아니라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은 안 하지? 그렇다 보니까 슬금슬금 늘어. 예전과 차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뭘까?”
“음……. 유기농이면…… 설마 잘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발견이 되나요?”
“그렇지. 역시 수혁이는 척하면 척이야.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드물거든. 그래서 요거 연구해서 발표하려고 하고 있어.”
“재밌네요. 흥미로운데요?”
“그렇지? 국건영 데이터가 워낙 방대해서……. 딱 보면 한눈에 안 들어와. 그래도 의미가 없을 수는 없고, 거의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정도만 낼 수 있는 데이터도 있으니까 열심히 봐 봐.”
“네, 교수님.”
신현태는 그런 말을 하면서 회의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느낌이었다.
아선 병원 우창윤 기조실장, 칠성 병원 박국진 등등, 맨날 학회에서 보던 양반들이었다.
“여……. 신 과장님. 오셨어요?”
“기조실장 되더니 얼굴이 더 좋아졌네. 외래 늘렸는데 안 힘든가 봐?”
“하하, 의사가 환자 보는 게 힘들어서 쓰나. 요새 태화 의료원……. 그 사태 이후로 환자 늘었다면서요? 이거 엎치락뒤치락하는 통에 정신이 없다니까.”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분위기가 좀 냉랭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칠성과 아선이 1등은 태화에게 철저하게 양보하고 있던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은 모두 경쟁자였다.
그것도 아주 치열한.
“흥.”
“흥.”
그나마 아선과 태화는 좀 나은 편이었다.
칠성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특히나 신현태와 수혁은 칠성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일생일대의 위기 속에 칠성에서 보냈던 기자 얼굴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다행히 이 둘과 이현종의 기지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있던 화가 저절로 풀리는 건 아니었다.
‘아……. 저 이수혁 더럽게 끌고 다니네……. 원장이 어떻게든 연을 만들어 보라고 하는데…….’
박국진으로선 죽을 맛이었다.
안국태와는 달리 더러운 공작에 대해서는 아예 알지도 못할뿐더러, 원장에게 따로 지시받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리고 왜 날 째려봐? 내가 집단 감염 퍼뜨렸어?’
수혁을 꼬시라는 건데, 쉬울 리가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현종 원장 아들인데 어떻게 다른 병원에서 꼬실 수 있단 말인가.
만약 태화 내에서 찬밥 신세가 되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절대 무리였다.
이현종을 누군가 원장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신현태도 나가리가 되야 할 텐데 그럴 가능성보다는 그냥 박국진 자신이 원장한테 가서 쥐어 터지는 게 훨씬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다 오셨네요?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국건영 데이터에는……. 각 지역 의사회 및 보건소 데이터까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비인후과, 소아과 원장님들의 협조로 상기도 감염 질환 데이터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두 개원의사회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아이구,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비인후과, 소아과 개원의사회 회장은 사람 좋은 미소로 질본 사무관의 인사에 화답했다.
속으로 이게 어떻게 이어져서 조금이라고 저수가에 반영이 될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였다.
“모든 자료는 질병관리본부 통해서 다 공개가 될 예정이고요. 지금은 그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 중인 것들 위주로 보여 드릴 예정입니다.”
이제 갓 서른이 되었을까 싶은 사무관은 아주 당당한 어조로 발표를 주도했다.
그런 사무관를 보며 신현태가 수혁에게 속삭였다.
“꽤 유능한 사람이야. 의사 출신인데, 여태까지 했던 사람들 중에 제일 똑똑한 거 같아.”
“아……. 그럴 거 같습니다.”
“응. 잘 들어 보라고.”
수혁은 신현태의 말을 따라 사무관에게 귀를 기울였다.
짧은 단발에 새하얀 블라우스를 걸친 사무관은 연신 피피티를 넘겨 가면서 해당 자료와 관련된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흠.]
내내 잠자코 있던 바루다가 끼어든 것은 발표가 시작된 지 거의 30분이 지나서였다.
사실 국건영 데이터라는 게 워낙에 방대해서 감염내과 신현태에게 해당하는 자료가 많은 건 아니라 신현태는 아예 자리를 잠시 비운 참이었다.
수혁도 곧 있으면 정신을 놓겠다 싶었던 와중인지라 좀 놀랐다.
“엇.”
“네, 질문 있나요?”
“아, 아뇨.”
해서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를 내고 말았는데, 다행히 사무관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내색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렇지 못한 것은 바루다였다.
[어휴……. 남 발표하는데 졸고 앉았네. 이현종 있었으면 때렸다.]
‘이현종 원장님은 나갔을걸.’
[음……. 인정합니다.]
다행히 다방면에 있어서 빌런으로 활동 중인 이현종이 있어 분위기가 더 냉랭해지지는 않았다.
해서 수혁은 별 지체 없이 바루다에게 소리 낸 연유에 대해 물을 수 있었다.
‘아무튼. 뭔데. 왜 그래, 갑자기.’
[방금 상기도 감염 데이터 봤죠?]
‘어? 어, 봤지. 월별로 정리되어 있긴 한데……. 크게 의미있는지는 모르겠네. 겨울에 피크 찍는 건 당연하지 않나?’
[음……. 역시 이런 식의 분석은 무린가?]
다만 바루다는 수혁의 반응에 무척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혁으로서는 울컥한다기보다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실망해?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뭐야, 인마.’
[아, 걱정 마십시오. 이건 수혁 개인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판단입니다.]
‘야, 차라리 나한테 실망해. 네가 그렇게 말하면 무서워.’
수혁은 혹시라도 바루다가 인터넷에 연결될 기회 따위는 무조건 차단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뭔데.’
[제가 일반적인 정보라도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을 거라 판단이 되는 것들은 전부 데이터화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죠?]
‘그렇지. 그거 때문인가, 머리가 좀 무거워.’
[그건 거북목 때문이고요. 아무튼, 그렇게 데이터화한 내용 중 미세 먼지 수치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미세 먼지……. 그게 지금 이거랑…… 응? 너 설마 지역별 농도 다 기록해 놨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