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와라? (1)
“협진 잘했던데?”
담소를 나누던 신현태가 자못 당당한 얼굴로 서 있던 안대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대훈은 그게 지금 이 환자를 말하는 것인 줄 알고 더더욱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럼 이 환자는 어떤지 볼까?”
찬물을 끼얹은 것은 수혁이었다.
‘아……. 이 환자는 안 보셨구나. 하긴……. 맡긴다고 했지.’
나머지 협진 환자들은 사실 협진이라기보다는 광범위 항생제 사용 승인을 위한 신청서 정도라고 보면 되었다.
당연히 그걸 다 들어주는 게 아니라 환자 상태 및 검사 결과 및 검체 신뢰도를 다 평가해서 답을 줘야 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직접 가서 진료를 해야 하는 종류의 협진은 엄밀히 말하면 현상황에서는 이게 유일했다.
‘그래, 간다…….’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어찌 보면 다행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냥 차트 리뷰만으로 대훈의 성과를 알아주는 거보다는 아무래도 눈앞에서 잘난 척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당연히 수혁만큼의 임팩트를 주는 건 무리겠지만.
적어도 2년 차 중에서는 그래도 대훈이 제일 낫더라는 인상은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했다.
태화 의료원은 워낙 큰 병원이니만큼 내과 인원도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연차별로 교수가 꼭 한 명쯤은 나온다 이 말이었다.
“노티해 볼까?”
신현태도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실제로 나머지 협진 처리해 놓은 것을 보니 썩 훌륭한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혁이 같이 걸어오는 길에 입 턴 영향도 있었다.
‘제일 열심히 한다, 이거지?’
그래 봐야 레지던트 2년 차는 2년 차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2년 연속 수혁 같은 인재가 나오는 거야 당연히 욕심이나, 평년보다 나은 사람이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네. 처음부터 노티 드리겠습니다.”
“응. 좀 일찍 왔으니까……. 시간 있어. 천천히 해 보자.”
“네, 교수님.”
대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곤 수혁과 신현태 그리고 우하윤까지 돌아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환자분 62세 여자분으로 3년 전 좌측 유방에 덩이 만져지는 증세로 본원 일반 외과 외래 내원 후 시행한 조직 검사에서 원발 종양 크기가 5cm을 넘어갔으나 흉곽이나 피부 침범은 없어 T3였으며 림프절 전이는 12개로 N3, 원격 전이는 없어 M0였습니다. 처음엔 절제 불가능한 상태였고, 또 조직 검사상 HER-2 양성 소견 보여 허셉틴 및 파클리탁셀로 신보강화학요법(Neoadjuvant chemotherapy) 시행하였습니다.”
“음……. 항암 요법 몇 번이나 했지?”
“12회 시행 후 완전 관해 소견 보였습니다.”
“관해라. 그럼 치료 그걸로 종결했니?”
신현태는 다 알면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설마 여기서 걸려 넘어지지는 않겠지라는 표정을 지어 가면서였다.
만약 그럴 거 같았으면 1년 차인 우하윤이 있는 자리에서는 질문을 하지 않았을 터였다.
신현태는 인격자라 어지간하면 아래 연차 앞에서 위 연차를 깔아뭉개는 방식의 교육법은 택하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수혁이었을 땐 워낙 아래 연차일 때부터 잘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원칙은 이랬다.
“아뇨, 애초에 신보강화학요법을 시행한 것이 수술을 위한 것이었기 떄문에 환자는 좌측 유방완전절제술 및 선택적 림프절 절제술을 시행받았습니다.”
“그 후에는 항암 안 했고?”
“이후에는 수술 부위에 대해 항암 방사선 치료를 시행하였습니다.”
“흐음. 항암 레지멘은 뭐였는데?”
“허셉틴은 유지하고, 레트로졸 추가하여 시행했습니다.”
“아……. 레트로졸.”
레트로졸이란 호르몬 치료제로, 특히 유방암과 같이 특정 호르몬에 반응하는 암에 쓰이는 치료제였다.
효과가 썩 괜찮으면서 동시에 부작용이 적은 편이라 최근 자주 쓰이는 항암제라고 보면 되었다.
신현태야 직접 써 본 경험은 없었지만, 집담회나 월례 회의에서는 몇 번 들어 본 경험이 있었다.
“항암은 그럼 아예 혈액종양내과에서 전담했나?”
“네. 병원 프로토콜대로 수술만 일반 외과에서 하고 나머지 스케줄은 모두 혈액종양내과에서 담당했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과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항암에 대한 지식은 그것만 들들 파는 혈액종양내과가 제일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야 약 자체가 별로 없으니 수술한 과에서 그냥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약의 종류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다가, 부작용을 줄이면서 효과를 지키기 위한 조합법 또한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어서 혈액종양내과가 전담하는 병원이 늘고 있었다.
태화야 워낙에 대한민국 의료계에 있어 트렌드를 선도하는 병원이다 보니 일찌감치 시스템을 그렇게 잡은 지 오래였다.
“그래, 그 후로는 어떻게 됐어?”
“후속 치료하면서 계속 팔로우업을 했는데……. 하다 보니 혈장 HER-2 농도가 증가했습니다.”
“재발이야?”
“네. 폐와 간에서 전이 병변이 확인되었습니다.”
“아이고.”
신현태와 수혁 입에서 동시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미 차트를 봐서 알고야 있었지만, 암 재발 소식은 언제 들어도 안타까운 법이었다.
유방암이 암만 다른 고형암에 비해 예후가 좋다 좋다 하지만 그건 오직 통계적인 얘기일 뿐이었다.
환자 개개인에게는 그 사람에게 재발했는지 여부가 훨씬 중요했다.
“그래서 항암 레지멘을 아드리아마이신, 싸이클로포스패마이드로 교체했습니다.”
“아……. 그래, 그럼 뭘 예상하게 되지?”
아드리아마이신은 아까 사용했던 허셉틴에 비하면 아주 옛날 항암제라고 보면 되었다.
DNA 합성에 관여하는 항암제인 동시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러 부작용을 수반했다.
그중에는 면역력 저하가 끼어 있었다.
신현태가 물은 것은 아마도 이것일 거라고 대훈은 생각했다.
“면역력이 저하되고 따라서 기회 감염이 흔히 생길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이 환자가 이번에 온 건 무엇 때문이지?”
“내원 수일 전 발생한 발열입니다. 진술할 때마다 일시를 다르게 말했는데 대강 4일에서 5일 전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환자는 그게 열감인지 실제 발열인지 알 수 없지. 랩은 어땠어?”
신현태 말대로 환자는 단순 열감과 발열을 열을 재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면역 저하가 있는 환자에서는 열이 나야 되는데 그냥 열감으로 지나가는 경우도 있기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이런 환자에서는 랩, 즉 혈액 검사 결과가 훨씬 중요했다.
그걸 제대로 분석하는 능력이야 더 중요했고.
대훈도 익히 아는 사실인지라 좀 더 긴장한 채 입을 열었다.
“백혈구 수치는 4천대로 정상 수치였으나 중성구가 90% 이상으로 감염 질환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환자는 항암 치료 중인 환자는 백혈구 수치가 더 떨어져 있었을 거라 예상할 수 있기에, 상승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좋아. 너 열심히 하는구나?”
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신현태 입에서 칭찬이 나갔다.
수혁 또한 대견하다는 눈을 보냈고, 대훈은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었다.
‘됐다, 된다. 통한다.’
지난 1년 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지 않은가.
기분이 나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터였다.
“네,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 계속해 봐. 여기서 또 다른 랩은 뭘 봐야 하지?”
“우선 항암 중이기에 신장과 간 기능을 봤는데 그건 괜찮았습니다. 다만 급성 감염 지표인 CRP가 정상 수치의 60배로 올라 있었습니다.”
“그럼 일단 감염이 있네? 어디를 의심하지?”
감염이 있다 없다는 물론 중요한 단서지만.
충분한 단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뭔가 더 있어야만 했다.
“환자의 증상 중 숨찬 증상이 있었으며 응급실 내원 당시 시행한 동맥혈 검사에서 산호 분압이 40으로 크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당시 산소 포화도도 83%였습니다.”
“83이면 정말 낮은 건데……. 엑스레이는 어땠어?”
“양측 폐 아래쪽으로 음영이 증가해 있었습니다. 어, 보여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다시 봐도 흉부 엑스레이 소견은 아주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세균성 폐렴이 이 정도라고 한다면 산소 포화도를 83%까지 떨어뜨릴 거 같지는 않은 소견이었다.
원래 흉부 엑스레이 소견이라는 게 100% 신뢰할 수 있는 검사는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네가 보기에 흉부 엑스레이 소견이 어떤 거 같아. 중증인 거 같아?”
“어…….”
대훈도 이걸 찜찜해하지 않았던가.
그걸 마침 신현태 교수가 딱 집어서 물어보자 조금은 섬찟한 기분마저 들었다.
‘역시 이 괴리가 이상한 거야.’
동맥혈 검사에서 낮은 산소 분압을 언급하고, 엑스레이 소견을 묻고.
이 간극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엑스레이만 달랑 봤을 땐 지금 답하기가 정말 어려웠을 게 뻔했다.
아니, 불가능했을 거라고 봐야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폐렴인데, 아마도 비정형 폐렴일 거다 정도만 있었으니까.
아주 모자란 답변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2년 차 중 유망주 소리를 들을 만한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CT를 찍었습죠!’
하지만 지금은 할 말이 꽤 있었다.
검사를 더 했고, 그 검사에서 보이는 특이 사항을 잡아냈으니까.
해서 대훈은 정말이지 ‘후후’라는 말로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다소 건방진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엑스레이에서는 그리 심하게 보이진 않습니다. 그래서 원래 내일 새벽에 예정되어 HRCT를 푸시해서 찍었습니다. 여기 우하윤 선생이 수고해 주었습니다.”
“응, CT를 찍었어? 잘했네. 더 확실한 단서가 되겠네. 한번 까 봐.”
“네, 교수님.”
잘했네가 한번 더 나왔다.
교수는 그냥 입버릇처럼 할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듣는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이거보다 더 용기를 주는 말도 드물었다.
덕분에 대훈은 광대가 승천하려는 것을 애써 부여잡은 채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보시면……. 좌우 폐 하엽에 모두 GGO 패턴의 음영 증가가 있습니다.”
“응, 그러네. 그래서 뭘 의심하지?”
“환자의 면역력 저하와 폐의 음영을 고려하면 역시…….”
대훈은 마지막 말을 남겨 두고 잠깐 쉬었다.
신현태와 수혁의 놀란 얼굴을 보고 싶어서였는데, 과연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선배…….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 덕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그냥 의자 다 치우고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그만큼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거대세포바이러스증입니다!”
해서 이 말을 지르고 나서는 더더욱 열심히 둘의 눈치를 살폈다.
“음.”
“흐음.”
그런데 어째 반응이 뜨뜨미지근했다.
혹 기대했던 말이 아니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모든 단서를 되짚어 봐도 이거 말고는 답이 없었다.
아주 전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너무 놀랐나. 하긴 너무 놀라면 사람이 할 말을 잊을 수도 있지!’
때문에 대훈은 멋대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는 잘했다 아니, 나는 정답을 말했다라는 생각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바루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모자란 지식을 쥐어짠 느낌이기는 한데…….]
‘동맥혈 수치에 엑스레이 소견 보면 이거 말고 딴 걸 떠올려야지…….’
[실망인데요?]
‘너무 어려운 거였나?’
[그렇다기엔 신현태 교수 얼굴에도 실망이 가득합니다.]
‘흐음……. 어떡해? 내가 입 열어?’
[그래야죠. 이 분위기 수습 어떻게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