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3년 차 (4)
수혁이 바루다와 함께 그저 차트 리뷰만으로 진단을 해내고 있는 동안, 안대훈은 그야말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만 느끼고 있었다.
“선배, 어떻게 할까요?”
하윤은 1년 차의 권한을 십분 이용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서는 안대훈만 보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1년 차 3월은 원래 그런 법이니까.
문제는 2년 차는 이제 좀 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점이었다.
“어……. 우선 혈액 배양 검사 나갔나?”
“아……. 네.”
하윤은 대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환자 처방 기록을 뒤졌고, 입원 당시에 배양 검사가 나갔음을 확인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감염 내과로 협진을 내긴 했지만.
아무튼 간에 혈액종양내과 환자 아니던가.
내과 의사라면 기본적인 처치는 마땅히 해야만 옳았다.
“어……. 그럼 고해상도 CT(High Resolution CT, HRCT)는?”
“처방은 나갔는데, 아직 실시되지는 않았습니다. 푸시할까요? 예약은 내일 새벽으로 뜹니다.”
“어, 어 그래. 푸시하자. 이거 아무래도 그냥 폐렴은 아냐.”
“네, 선생님.”
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긴장해야 된다는 생각만큼은 아주 확실하게 들었다.
엑스레이 소견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데, 이렇게까지 숨찬 증세가 심하다니.
환자가 쇠약해 있어서라거나 엄살이 심해서라는 생각은 감히 떠올릴 수도 없었다.
그게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될 생각이라서가 아니라 동맥혈 검사로도 환자의 상태를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혁 선배라면 여기서……. 뭘 더 해 봤을까.’
소위 말하는 비정형 폐렴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지역 사회에서 획득 가능한 감염은 이렇게 상식을 넘어가는 증상을 잘 보이지 않지 않은가.
‘환자의 특징을 떠올려 보라고 할 거야. 환자의 특징이라…….’
대훈은 지난 1년간 수혁과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초반의 수혁은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대번에 처방을 내리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얘기를 해 주기 시작했더랬다.
주로는 교수에게 노티할 때였지만.
시간이 날 때는 대훈에게도 설명해 주었다.
덕분에 수혁이라면 어땠을까를 가정하는 거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환자는 암 환자고……. 재발해서 현재까지도 항암 치료 중인 환자야.’
항암제의 기원은 애초에 독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차 세계 대전 당시 화학 무기로 쓰였던 질소 머스터드 가스가 시초라고 보면 되었다.
이것에 노출된 병사들은 곧 피부가 검게 썩어들어 가면서 동시에 다양한 감염병에 걸려 사망했다.
피부가 검게 썩는다는 건 그냥 넘어가 줄 법한 일이었지만, 감염병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해서 부검을 해 보았더니, 림프절이 크게 작아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나아가 머스터드가 인간의 면역 기능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것 그리고 그 기전이 면역 기능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빨리 자라는 세포를 타깃으로 해서였다는 것까지 알아내었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어. 증상만 봐도 그래. 이 정도로 숨이 차다면.... 엑스레이랑 관계없이 열이 더 나야 할 거 같은데 기껏해야 38도도 안돼. 백혈구 수치도 겨우 정상 수치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고.’
항암 치료를 하게 되면 머리가 빠지고, 면역 기능이 떨어지고, 점막 손상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비록 지금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표적 항암제도 나오고, 심지어 면역 항암제로 패러다임 슈팅이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불행하게도 모든 암에서 그게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항암제가 보험 수가에 묶여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라면 써 볼 수 있는 약이라도 수가 때문에 못 쓰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렇다면 이 환자는 면역력 저하가 있다고 봐야 해. 감염이……. 기회 감염일 가능성이 높아.’
때문에 여전히 면역력이 크게 떨어지는 환자를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일부는 자연 상태에서는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병원균에 의한 감염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를 기회 감염이라고 불렀다.
아직 에이즈나 오래 사는 암 환자를 접해 본 경험이 현대 의학에서도 적기 때문에 비교적 새롭고 생소한 분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뭐 하면 될까요?”
우하윤은 안대훈이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CT실과의 통화를 마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훈은 아, 내가 2년 차가 되기는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사실 레지던트 입장에서 제일 귀찮은 일인지라 1년 차가 전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천사라 할 수 있는 수혁조차 전화 업무는 1년 차에게 내렸으니까.
“뭐 하면 될까요?”
“아, 어.”
하지만 지금은 마냥 고양감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는 순간이었다.
환자는 시시각각 나빠져 가고 있을뿐더러, 진단이 어렵기까지 했다.
여차하면 수혁이나 교수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 두 손에 환자를 맡겨 준 지 이제 겨우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참 아닌가.
지금 당장 전화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해서 대훈은 두뇌 풀가동에 들어갔다.
아는 게 아예 없다면 가동을 하건 말건 별 상관 없었을 텐데, 다행히 수혁과 다른 의국원들에게 지난 1년간 배운 일이 아주 헛짓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비정형 폐렴……. 레지오넬라, 마이크로플라스마, 클라미디아 검사 내고.”
“아……. 네.”
“그리고 아, 그래. 거대 세포 바이러스(Cytomegalovirus, CMV) 검사도 나가자.”
“씨엠브이 말씀이시죠? 네. 그리고 또 낼 거 있을까요?”
“음……. 그…… 기관지 내시경 안 해 봤지? 안에 세척해서 검사 나가면 좋을 거 같은데.”
“기관지 폐포 세척 말씀이지요?”
“어.”
기관지 폐포 세척이란 말 그대로 기관지 내시경을 진입시킨 후, 그 안을 세척해서 나온 물을 검사하겠단 뜻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괴로울 거 같겠지만.
실제로 보면 더더욱 그랬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거절하기 마련이었다.
“시, 싫어요. 저는 그건…… 그건 싫어요.”
이 환자가 그랬다.
대훈은 미리 환자의 병력을 좀 더 잘 조사했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안 불편…….”
“안 불편하다고요? 해 보셨어요?”
“그건 아니지만…….”
“진단에 반드시 필요한 거면……. 이거 아니면 진단이 안 되는 거면 할게요. 근데 그거 아니라면……. 제발요. 저 진짜 하기 싫어요.”
환자는 숫제 애원하고 있었다.
이해가 안 가는 일이라면 차라리 나을 거 같았다.
하지만 기관지 내시경 보조에 들어갔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혹 필수가 되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땐 하셔야 됩니다?”
“네네. 저 협조 잘해요. 항암도 열심히 맞고……. 이거…… 이거 숨차는 것만 어떻게 좀 해 줘요.”
“알겠습니다. 일단 다른 검사들부터 진행하겠습니다.”
“네, 선생님.”
“원래 CT가 새벽이었는데, 아마 곧 찍을 거 같습니다. 연락 오면 이송 요원 분이 모시고 내려갈 거예요.”
“네…….”
해서 대훈은 기관지 내시경은 단념한 채 뒤로 돌아섰다.
마침 이송 요원과 마주쳤는데, 푸시를 아주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
분명 새벽에 하기로 한 검사를 지금 하게 되었을 줄이야.
‘요새 또 환자 엄청 늘어 가지고 CT 찍기 어렵다던데. 대단하네.’
한참 환자가 하락세로 돌아서서 1, 2등 하던 것이 이제 2, 3등 하겠다 싶었었는데.
집단 감염 사태 이후로는 언제 입지가 흔들렸냐는 듯 공고한 1등을 지키고 있었다.
그 바람에 이현종의 원장 임기도 연임으로 늘어나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되면 차기 원장 소리가 나돌던 신현태로서는 아쉬워해야 정상이지만, 그는 오히려 좋아하고 있었다.
아직 자기는 그릇이 덜 되었다고 하면서.
“어, 하윤아. 방금 내려가더라. 푸시 잘했어.”
“네, 선생님. 방금 이수혁 선생님한테 연락 왔는데요.”
“어……. 연락 왔어? 이 케이스 때문인가?”
“아뇨. 신현태 교수님 국건영 회의 때문에 일찍 나가신다고 30분 뒤에 회진 도신다고 합니다.”
“아……. 국건영?”
국건영이 뭔데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까.
대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묻다가 중간에 하윤은 1년 차라는 사실을 깨닫긴 했지만.
일단 한번 털어 보았다.
하윤은 로열이니까.
어쩌면 이쪽 방면으로는 아는 게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아마 국민건강영양조사일 텐데. 요새 그게 워낙 데이터가 크다 보니까 그걸로 연구 용역 받아서 많이 진행하시더라고요. 신 교수님 원래 연구 욕심 많으시잖아요.”
“아…….”
“근데 이수혁 선생님도 같이 가시나 봐요.”
“응? 그거 국가 어쩌구면……. 국책 연구 사업 아냐? 거기에 레지던트가 껴도 되나?”
“3년 차 되시면서 석박 통합 과정 들어가시나 봐요. 원래 이현종 교수님이 자기 밑으로 받으려고 했는데 원장은 그게 안 된다고 해서 신 교수님이 받았죠.”
“으음.”
대훈은 잠시 질투심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왜 나는 모르는 이수혁의 근황을 얘는 아는 걸까.
“왜 그러세요?”
그게 얼굴에도 드러났는지, 우하윤이 물어 왔다.
그 얼굴이 워낙에 맑고 투명해 보이는 나머지, 대훈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그에 비하면 원래도 없는 머리숱에 살까지 찐 자신의 질투는 너무 추해 보였다.
“아, 아냐. 일단 같이 가신다 이거지? 대학원생……. 그러니까 연구원이네?”
“네. 그렇죠. 이거……. 이따 노티 하라고 하실 거 같긴 해요. 눈치가…… 그랬어요.”
“그래? 검사 나간거 뭐가 안 나왔는데 아직.”
“다행히 CT는 지금 내려갔으니까요. 그거라도 오면 단서가 더 생기지 않을까요?”
“음.”
대훈은 이수혁 선배라면 그렇겠지만, 난 아니란 말을 굳이 덧붙이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모자라 보이는 시점 아닌가.
물론 감히 우하윤에게 호감을 살 생각 따위는 없었다.
대훈도 이미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고는 있었지만.
아무튼, 우하윤은 수혁이 좋아했던 사람 아닌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내 옆에 있던 대훈은 알 수 있었다.
“그래, 그럼 CT를……. 아, 올라온다. 영상. 확실히 요새 이게 빨라.”
“네. 음……. 아.”
HRCT는 그야말로 폐를 잘 보기 위해 만들어진 세팅이라고 보면 되었다.
당연히 폐만큼은 그 어떤 검사보다 잘 보였다.
“양쪽으로 모자이크 패턴의 GGO(Ground glass opacity)가 있네? CMV 같은데?”
GGO란 옅은 음영이 뿌옇게 드리운 것을 의미했다.
여러 가지 질환을 시사할 수 있는데, 이 환자의 경우엔 역시 거대세포바이러스 가능성이 크다고 대훈은 생각했다.
‘기회 감염이잖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어. 아니, 이거야. 나 혹시 천재인가?’
스스로 생각할 때 얼마나 뿌듯했던지.
자아도취에 빠져들 지경이었다.
“아……. CMV! 환자 면역력 떨어져 있으니까요?”
“응.”
“와……. 진짜 그럴 수도 있겠는데요?”
심지어 1년 차긴 하지만 아무튼 간에 1등 졸업인 하윤도 거들자 확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 오신다.”
그때 수혁이 신현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 그렇듯 지팡이를 짚은 채였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유독 더 반가웠다.
‘와라.’
대훈은 주먹을 꼭 쥔 채 수혁을 바라보았다.
뭔 말을 해도 근거 중심 의학으로 싹 얘기해 줄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