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역풍 (3)
“수혁아, 검체에서 마이크로코쿠스 특징 보인댄다. 토양 오염 의심되고.”
“아……. 마이크로코쿠스 루테우스(Micrococcus Luteus)일까요?”
“응, 아마도?”
“그럼 테트라싸이클린 추가하겠습니다.”
“오케이.”
신현태는 마치 교수라도 된 듯 모든 말을 알아먹고 행동하고 있는 수혁을 대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세상에 집단 감염이라는, 심지어 교수 짬밥 10년도 훌쩍 넘은 자신조차도 당황하게 만드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도 이런 초연함을 보일 수 있다니.
게다가 이만한 정보에서 바로 마이크로코쿠스 루테우스를 떠올릴 수 있다니.
‘이젠 진짜 이현종이 아들 같다니까.’
이현종이 레지던트 때도 꽤 날리지 않았던가.
물론 지금의 수혁을 그때 이현종하고 비교하는 건 좀 실례가 되긴 할 터였다.
이현종이 천재라면 이쪽은 괴물이니까.
그저 그만큼 임팩트가 강하다고 보면 될 일이었다.
다다다.
수혁은 신현태가 고민에 빠진 사이 처방을 넣고 있었다.
‘맞지? 마이크로코쿠스 루테우스.’
속으로는 바루다와 함께 자신의 추론을 체킹해 가면서였다.
[네, 토양 오염에……. 지금 보이고 있는 폐렴 양상까지 모두 마이크로코쿠스 루테우스를 가리킵니다. 적어도 마이크로코쿠스 속에서는 루테우스 말고는 의심할 만한 게 없어요.]
‘하긴 뜬금없이 바실러스는 아닐 거 아냐.’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그랬다면 이미 들었겠죠.]
‘맞네. 오케이. 이게 제발 들었으면 좋겠는데…….’
[들어야죠. 이번에도 빗나가면 적어도 이 환자는 죽어요. 다른 환자들이야 모르겠지만.]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모니터 너머의 환자를 바라보았다.
소변 비운 게 벌써 한참 전의 일인데, 아직도 거의 차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소변량이 줄었다는 뜻이었다.
중환자 관리에서 소변량의 감소는 거의 무조건 안 좋다고 보면 되었다.
‘아까 초음파 보고 뭐라셨지?’
수혁은 30분 전에 왔다 간 김진실 교수를 떠올렸다.
워낙에 긴급한 상황이다 보니 과에 상관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료진들은 총동원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복부 초음파에 능한 영상의학과 복부 파트 교수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무엇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신장이고, 신장의 부전은 수신증(hydronephrosis)이라는 형태로 초음파에서 쉬이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이 차고 있다고 했죠. 이대로 지속되면 투석 걸어야……. 아, 오네요? 투석기가.]
‘벌써 처방 내렸구나. 하긴 신장내과도 보고 있지, 참.’
태화 의료원쯤 되는 병원이 다른 일을 제쳐 두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과시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모든 환자가 수혁과 바루다의 판단에 늦지 않게, 심지어 어떤 환자들은 더 빨리 처치 받고 있었다.
아주 중요한 정보는 수혁과 신현태가 먼저 알아내고 알려 주고 있는 형국이긴 했지만.
톱니바퀴처럼 완벽한 처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어, 형. 나 현태.”
그사이 신현태는 이현종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화 의료원이 보유한 가장 우수한 의사인 이현종은 다른 중환자실에 가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러 기자진이 모여 있는 대강당과 가까운 본관 중환자실에 가 있었다.
무언가 정보가 뜰 때마다 각 병원에 전화를 돌리느니, 기자 회견을 통해 생방송으로 알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대외적인 보고 때문이었다.
내부적으로는 물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 또 뭐가 왔나?’
이현종은 이번 한 방으로 개선될 늙은 태화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겉으로는 돈이니 뭐니 하는 것들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본인이 학생 때부터 몸담았던 집단이 최고에서 점점 뒤로 처지고 있는 데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게 하필 본인이 원장 하고 있을 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니.
남몰래 속이 쓰린 나머지 위장약까지 먹은 적도 있었다.
“음, 뭔데.”
그걸 역전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이었다.
아무리 태연한 척하려 해도 목소리의 들뜬 기색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장덕수 교수한테 연락 왔는데, 다른 균주 찾았어요.”
“그래? 뭔데?”
“마이크로코쿠스. 자세한 종까지는 안 나왔지만, 정황상 루테우스 같아요.”
“아……. 아아, 그렇겠네.”
마이크로코쿠스 속은 기본적으로 비병원성 균으로 분류되는 녀석들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인데, 예외적인 놈들도 있었다.
바로 방금 언급한 루테우스가 그랬다.
직접 폐로 침입했거나, 숙주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경우에는 기회감염을 일으키기도 했다.
“테트라싸이클린 추가하라고 해야겠구나?”
“네네. 번거롭겠지만 수고 좀 해 줘요.”
“번거롭긴. 지금 댓글 반응 장난 아냐. 분위기만 봐서는 칠성이고 아선이고 입원 환자 다 전원 오게 생겼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도 전원 문의가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특히 두 개의 병원에 입원한 감염 관련한 환자들이 그랬다.
다른 건 몰라도 감염 관리 하나만큼은 태화가 최고라는 인식이 불과 한나절 사이에 번지고 있었다.
<태화에 A.I.가 있어 가지고 감염을 기가 맥히게 잡는다던데.>
<거기 원래 바루다도 있었잖아. 태화 전자에서 합작으로 만들었다는데……. 오죽하겠냐.>
심지어 커뮤니티에도 쭉쭉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근데 그거 고안한 게 이수혁이라는 레지던트라며? 천재 아님?>
<안 그래도 아까 태화 의료원 2대 천재라고 해서 돌아다니더라. 이현종, 이수혁 해 가지고.>
그중 몇 개는 태화에서 만들고 배포한 자료들도 있었다.
최대한 커뮤니티 말투와 유사하게 만들고 사진도 일부러 좀 후진 거 캡처해서 만든 자료가 거의 모든 커뮤니티 베스트를 휩쓸며 돌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진짜. 이거 크게 번지기 전에 막아서.”
“그렇지. 뭐 더 없으면 끊는다? 바로 강당 가야지. 안 그래도 지금 중환자실 앞에도 기자들투성이야.”
“네네, 형. 끊겠습니다.”
“그래, 수고한다.”
마침 이현종은 거기 달린 댓글을 확인한 참이었다.
원장이 훌륭하니 제자도 훌륭하다는 투의 댓글이었는데, 까칠하기 그지없는 이현종마저도 웃게 하기 합당한 댓글이었다.
덕분에 이현종은 부드러운 미소를 탑재한 채, 중환자실을 나설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벌떼처럼 날아들었다.
“원장님! 새로운 소식이 있을까요?”
“지금 칠성에서는 사망자가 나온 상황이라고 합니다! 태화는 어떻습니까?”
“중소 병원에서도 중환자 발생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현종이 파악하지 못한 정보를 떠들어 대면서였다.
‘음. 칠성에서는 죽었어?’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의사가 되어 가지고서 다른 이의 죽음에 조소를 머금는 건 안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칠성의 안국태에게 펼쳐질 미래를 생각하면 조금은 고소한 것도 사실이었다.
‘뭐……. 이거 알려 주면 조금은 반전되겠지.’
게다가 태화는, 이현종은 속절없는 죽음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야박한 사람들 같았으면, 예를 들어 칠성의 안국태였으면 정보 공유를 제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각자 병원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치료가 다를 거 같네 어쩌네 하면서.
그랬다면 들려오는 죽음의 수는 지금과는 비교도 없을 정도로 많았으리라.
“일단 강당으로 가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시급한 상황이라 길막 하시면 안 됩니다.”
“아……. 네.”
“길 터! 길 터!”
보안 요원들을 선두에 두고 이현종 원장은 마치 홍해 가르듯 기자를 뚫고 대강당으로 향했다.
기자 중 매너 없는 몇몇이 단독 특종 욕심에 길막을 시전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오히려 이현종은 그런 기자들에게 손가락 욕을 날리기까지 했다.
“당신 때문에 또 한 명이라도 더 죽으면 책임질 거야?”
평소 같았으면 난리 날 일이었다.
원장이 기자에게 욕이라니.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세상 모든 대의는 이현종에게 있었다.
<기레기 아님?>
<속 시원하네.>
<와……. 이제부터 내 마음속 세계 1등 병원은 태화다.>
댓글 반응도 좋았고, 심지어 현장 반응도 그랬다.
“거 좀 원장님 말 들읍시다!”
“보도 욕심내지 말고! 어차피 초 차인데 왜 이럽니까!”
매너 없게 나섰다가 욕만 들어 먹고 물러난 기자는 심지어 다른 기자 동료들에게까지 욕을 먹으며 쫓겨나듯 길을 비켜야만 했다.
그렇게 단상 위에 오른 이현종은 뜸을 들이지 않았다.
칠성 병원이 엿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지만.
적어도 환자 목숨을 담보로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저희 감염관리실에서 확보한 검체로 시행한 검사 결과. 아까 말씀드린 균주, 그러니까 응고 효소 음성 포도상구균 외에 다른 균주가 발견되었습니다.”
“종류가 뭡니까!”
“아직 밝혀진 것은 마이크로코쿠스 속의 일종이라는 것뿐입니다. 다만 정황상 마이크로코쿠스 루테우스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이에 따라 테트라싸이클린을 추가할 것을 권고합니다. 물론 각 병원의 감염관리실 의견을 따라야겠지만, 꼭 저희 의견을 참고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집단 감염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입니다.”
“마이크로코쿠스 루…….”
“루테우스입니다.”
이현종은 방금 알아낸 정보를 아낌없이 싹싹 털었다.
누군가는 어렵게 알아낸 것을 아무 대가도 없이 터는 게 좀 아깝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보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게 더 득이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반응은 어때요?”
거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회의실에 앉아 TV와 여러 모니터를 번갈아 가며 응시하고 있던 김다현 이사가 입을 열었다.
“폭발적입니다. 검색어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 전부 태화 의료원 관련이에요. 그중에서 나쁜 얘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답변한 것은 태화 생명의 남 이사였다.
그녀 또한 금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이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루다 프로젝트 실패 이후 쭉 내리막길을 걸었던, 그룹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태화 의료원이 대번에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커뮤니티 쪽은? 요새 SNS도 중요한데……. 이쪽도 중요하던데. 마케팅 이쪽으로도 많이 풀지 않나?”
“아유, 그렇죠. 지금 티 안 나게 배포한 자료들 쭉 돌고 있습니다. 저격글 올라오기도 하는데, 바로 묻힙니다. 분위기 탔습니다.”
“좋네. 이거……. 이대로 밀어붙여서 태화 바이오 분사할 때 힘 좀 받을 수 있을 거 같아?”
“물론입니다. 어쩌면 이사님 말씀대로…….”
“쉿. 여기 다 내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아, 네. 죄송합니다.”
김다현 이사는 짐짓 나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웃었다.
사소한 일에 기분 상해하기엔 너무 좋은 날 아닌가.
게다가 남 이사는 입 안의 혀처럼 구는 사람이었다.
유능하고 또 충직했다.
“뭐, 죄송은 무슨. 원래 포기하고 있던 그림이라……. 말하기 조심스러워서 유난 떤 거야.”
“그게 이제 가능할 것도 같지 않습니까?”
“응. 이번에 이현종…… 하고 이수혁이 그 친구가 아주 잘 해 줬어.”
“능력은 입증한 셈입니다.”
“그래, 이제 신의만 확인하면 돼. 그럴 만한 사람이다 싶으면 키워야지. 아주 본격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