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이게 왜 (4)
“속보입니다! 태화 의료원 집단 감염 사태로 시끄러운 가운데, 태화 의료원 측의 첫 소규모 기자 회견이 있었습니다.”
“의료진이나 원내 직원으로 인한 원내 감염이 아닌, 외부의 요인으로 인한 감염이란 말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네. 수술방 내에 공급되는 마취 가스액이 감염원이라고 합니다.”
“마취 가스액이요? 그게 어떻게 쓰이는 건지 제가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저라고 잘 알 리가 없죠. 그래서 전문가 한 분을 모셨습니다. 태화 의료원 감염내과 교수이신 장덕수 교수님이십니다.”
“아, 안녕하세요.”
처음 기자가 다녀간 이후 불과 한 시간도 채 안 된 상황이었다.
장덕수는 자신이 왜 여기 나와 있는 건지 이해도 못 한 채 카메라 앞에 앉아야만 했다.
‘미안하다.’
TV를 보고 있던 신현태가 고개를 떨궜다.
어색해하는 게 화면 밖까지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현종은 역정만 냈다.
“저, 저…… 덩치는 큰 놈이 왜 저래. 그러게 네가 나가라니까. 뭐 하는 거야, 자꾸 더듬고. 전문가가 말 더듬으면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실력은 괜찮잖아요. 실력이 중요하지, 말 더듬는 게 뭐가…….”
“야! 그 실력을 다른 사람들이 아냐? 그리고 실력이 좋긴 뭐가 좋아. 과장이랑 수혁이가 다 알아서 한 거 떠다 먹었는데.”
“아니……. 그건…….”
“아무튼, 분위기는 어때.”
“잠깐만요.”
신현태는 머리를 긁적이며 뉴스 댓글을 살폈다.
아까까지만 해도 태화에 대한 악플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돈만 밝히더니 이럴 줄 알았네.
-대학 병원이 얼마나 쓰레기처럼 돌아가면 집단 감염이 일어나냐.
-우리 아빠 입원 중인데 곧 돌아가실 거 같아요. 집단 감염이라는데……. 의사는 코빼기도 안 비치고 진짜 나쁜 새끼들입니다.
심지어 새빨간 거짓말이 베플을 먹은 기사도 적지 않았다.
세상에 의사가 코빼기도 안 비친다니.
지금 모든 감염 환자 앞에 의사가 적어도 하나둘씩은 죽치고 있는데.
이럴 때마다 신현태는 이현종의 인터넷 실명제라는 상당히 급진적인 사상에 대해 은근슬쩍 찬성하고픈 심정이 되고야 말았다.
-칠성 병원도 감염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데? 오히려 태화만 일찍 감지해서 치료 중인 거 아님?
-방금 장덕수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모든 감염 환자들 1인실 아니면 중환자실에서 따로 치료 중이라는데……. 방치한다던 사람 어디 감? 댓삭튀?
부글부글하고 있으려는데, 슬슬 댓글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이 보였다.
‘댓삭튀는 뭐여. 욕인가?’
아무래도 나이가 좀 있는 데다가, 인터넷 커뮤니티라곤 아예 안 하는 위인이다 보니 이해가 좀 느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못 알아먹진 않았다.
“형, 그래도 훨씬 좋아지고 있어요. 여전히 개수는 악플이 많은데……. 선플이 베스트 올라가. 실시간으로 좋아요가 막 찍히는데?”
“다행이네. 아오, 칠성 이 새끼들. 이제 진짜 뒤졌다.”
“근데…….”
“근데 뭐.”
“형 그쪽에도 마취 가스액 납품되는 거 알고 한 거예요?”
“당연히 알지. 원장 되면 이것저것 보고받는 게 얼마나 많은데. 최소한 상대보다 비싼 게 아니면 똑같은 거라도 써야 될 거 아냐. 특히 칠성, 아선 이 두 놈들 거는 알고 있어.”
“와……. 그럼 처음부터 거기도 집단 감염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귓구녁에 촛농 박았냐. 알고 있었다잖아. 당연히 연결이 되지.”
“햐…….”
신현태는 과연 이현종이 원장 되고 지금까지 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살아남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권모술수에 능할 줄이야.
‘나 원장 할 수 있을까?’
삼국지로 따지면 조조 뒤에 갑자기 유선 같은 놈이 등장하는 꼴 아닐까, 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뭘 얼 빼고 있어. 환자들은 좀 어때?”
“아……. 괜찮아요. 일단 신장내과 쪽 환자 둘이 제일 안 좋은데……. 홍 교수랑 수혁이가 하나씩 전담 마크하고 있어요. 나머지는 워낙 환자들이 젊기도 하고, 사실 이런 상황 아니었으면 중환자실 안 내려도 될 환자들이 절반은 돼서 걱정 안 해도 돼요.”
“너무 자신 있게 말하니까 불안해지는데. 진짜 괜찮은 거지?”
“아, 괜찮다니까요. 나 신현태야. 감염은 내가 형보다 낫지.”
“뭐…….”
아니라고 하기엔 신현태의 감염내과에서의 위치가 썩 괜찮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던 이현종은 다른 쪽으로 화를 내 보기로 했다.
“보호자들은. 황당해할 텐데? 얘기는 되고 있어? 병원비 같은 거 말야.”
“네? 아니, 나는 진료만 하고 있죠. 무슨……. 무슨 보호자야, 갑자기.”
“이 봐라, 이거. 이 자식은 전인적인 치료는 개나 줬나. 우리 잘못이 아니래도 어찌 됐건 안 생겨도 되는 감염이 생겼잖아. 어떻게든 위로는 해야지.”
“그, 그건 원장님 몫이지…….”
“와……. 야, 나 지금 뭐 하고 있냐?”
“뭐 하고 있긴…….”
신현태는 뭐라 대꾸하려다 말고 이현종의 나비넥타이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잘 어울린다는 말이 나오진 않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 중요성 하나만큼은 신현태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뭔가 획기적인 발표 전에는 이놈의 오래된 나비넥타이를 매 오지 않았던가.
“기자 회견 준비하잖아. 네가 대신 할래? 어? 이번엔 한국방송만 오는 게 아냐. 칠성도 오고 어? 다 온다, 너?”
“아니……. 나는…… 나는 못 하지.”
“감염내과 애들 특징인가. 왜 이렇게 숫기가 없어. 솔직히 감염 관리실장인 네가 내 옆에 딱 버티고 서서 당당한 눈빛 좀 쏴 주고 해야 가오가 살지.”
“일본말은 하지 말고…….”
“꼬투리 잡지 마, 야마 돌아.”
“그…….”
이현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대고는 신현태의 어깨를 훅 하고 밀었다.
“비켜, 인마. 나 혼자 간다.”
“다, 다녀와요.”
“그동안 환자들 빈틈없이 챙기고. 태화 생명에서 연락 없어? 돈 얘기 없냐고.”
“아직요. 얼마 책정할지 회의 중이래요.”
“돈도 많이 벌면서 좀 팍팍 주지.”
“그 돈 우리가 까먹잖아요.”
“넌 새꺄, 누구 편이야.”
이현종은 이 자식이나 좀 본격적으로 까다가 갈까 하는 마음이 들어 신현태를 마주 보고 섰다.
하지만 이현종은 끝내 본인의 바람을 이루진 못했다.
“원장님. 준비됐습니다. 총…… 9개 방송국에서 왔고, 신문은…… 32군데입니다. TV 고려, 한국 방송…….”
“그만, 그만. 그거 언제 다 듣고 있어. 갈게요, 갈게.”
“네. 원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근데…….”
“근데 왜요.”
“나비넥타이는 일부러 하신 거예요?”
“멋있죠?”
보통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 줘야 하지 않나?
홍보팀 직원은 제 말이 맞지 않나요 하는 얼굴로 신현태는 바라보았다.
신현태도 동의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려운 눈빛이었지만 직원은 용케 알아먹었다.
평소 이현종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있던 덕이었다.
“네, 가시죠.”
“오케이. 갑시다.”
해서 직원은 군말 없이 이현종을 앞세운 채 병원 대강당으로 향했다.
대강당 안은 번잡스럽기 그지없었다.
직원이 말해 준 대로 온갖 방송국가 신문사 기자들이 죄 몰려온 덕이었다.
아침부터 칠성에서 태화를 까더니, 점심 지나기 전에 한국방송을 필두로 오히려 태화를 두둔하면서 칠성을 깠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흥.”
이현종은 그 와중에도 용케 아까 새벽녘에 찾아왔던 칠성 측 기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분하다는 얼굴로 이현종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이현종으로서는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선빵 날린 주제에 반격기 좀 들어갔다고 억울해해?
‘사람 새끼냐?’
이현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단상 위에 섰다.
찰칵.
찰칵.
기다렸다는 듯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다행히 이현종은 옛날 옛적, 그러니까 스텐트 시술의 대가가 되었을 때부터 이런 일에는 익숙한 사람이라 가만히 눈을 감고는 조금 기다렸다.
기자들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한 시간 내내 플래시를 터뜨리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대략 1분 정도 기다리자 플래시 세례가 잦아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태화 의료원 원장 이현종입니다. 집단 감염에 대한 현재 우리 병원의 대처를 알려 드리기 위해, 또 아직 미처 진단하지도 못한 다른 병원들을 돕기 위한 자리입니다. 우선 간단하게 대처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칠성 측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아주 도발적인 표정을 지으면서였는데, 이현종은 손사래와 함께 가볍게 무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은 충분히 드릴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들으시죠.”
라이브였기에 이 모습은 고스란히 수혁에게도 송출되었다.
[와, 발언 시원하네요. 피 대신 사이다가 흐르나.]
‘원래 이현종 교수님 빡 돌면 저렇대. 좀 더 젊었을 땐 진짜 개무서웠다는데.’
[그에 비하면 수혁은 아직 애송이군요.]
‘야 인마…….’
[기자들 앞에서 저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어렵…… 어렵긴 하지.’
학회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 대해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과 저렇게 날 선 기자들, 그것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건 아예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보면 되었다.
적어도 지금의 수혁에게는 무리였다.
“그러니까, 지금 환자 처치는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터넷에 간혹 이미 죽은 환자가 열 명이 넘는다는 얘기가 도는데, 모두 낭설입니다. 제 자리를 걸고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환자도 돌아가시지 않았으며 제일 위독한 환자도 순조롭게 회복 중입니다. 이만하면 우리 태화의 집단 감염에 대한 대응은 충분히 말씀드렸다고 생각…….”
하지만 이현종은 단 한 번의 떨림도 없이 다다다다다 쏟아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발음도 좋고 톤도 적당해서 단 한 음절도 흘리는 느낌이 없었다.
딱 한 번, 그러니까 지금 막 멈췄는데 그마저도 누군가 이현종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인 탓이었다.
“아,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네요. 태화 생명에서 이번 집단 감염으로 치료 기간이 연장된 모든 환자분들의 치료비를 전액 지원한다고 합니다. 혹 이로 인해 후유 장애가 발생할 경우, 태화 생명이 제공하고 있는 최고 등급 보험상품 가입자에 준하는 보상도 지원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태화에서는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 병원에 하나뿐인 몸을 맡겨 주신 환자 그리고 보호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
비단 한국 일보나 한국 방송 측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자들마저 술렁거릴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말을 들어 보면 태화에는 별로 잘못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외부에서 들어온 감염원을 재빨리 캐치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저렇게까지 강력한 보상이라니.
정말이지 대단한 집단이었다.
“질문 있습니다!”
물론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칠성 측 인원들이었다.
“뭔가요?”
“칠성에도 괴질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근거가 있는 말씀입니까?”
“아, 근거요.”
이현종은 아까 전해 들었던 말 중 하나를 떠올렸다.
‘프락치를 새끼들아, 너네만 심니?’
비열한 미소를 지으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