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집단 감염 (3)
“어, 이수혁 선생. 과장님이 일단 이리로 가 보라고 해서.”
한 30분가량 폭풍 처방을 내고 있으려니 장덕수 교수가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진짜 일어나자마자 왔는지 가운 안쪽은 거의 파자마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아, 네. 교수님. 이쪽……. 내과계는 정리됐습니다.”
“그래? 집단 감염이라고 했는데.”
“아……. 과장님이 자세히 말씀은 안 해 주셨어요?”
“그…….”
장덕수는 방금 전 통화를 떠올렸다.
솔직히 신현태랑 이현종이 싸우는 건지 뭔지, 말이 많아서 무슨 소린지 제대로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신현태가 가라고 한 곳이 수혁이 있는 곳이란 점이었다.
“어, 너한테 물어보라고 하시더라.”
“아, 네.”
세상에 감염관리실장하고 통화했는데 자세한 건 레지던트가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이만하면 병원 망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수혁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아까 중환자실 첫 처방은 홍 교수님까지 세 명이서 같이 돌면서 낸다고 했지?’
[돌이켜보면 그렇게 두면 안 되었습니다. 신현태 교수와 이현종 원장 지금 만담 찍느라 정신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환자 처방이 잘못되진 않겠지, 설마.’
[신현태 교수가 감염내과학 대부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홍창기 교수는 호흡기내과 교수기도 하지만 중환자 의학 선두 그룹 중 하나고요.]
‘하긴.’
이현종, 신현태, 홍창기라면 적어도 중환자실 환자 처치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라 해도 좋을 조합이었다.
어쩌면 지금 당장 숨넘어가는 환자도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있게 할 수 있을는지도 몰랐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외에 다른 기능을 기대하긴 어렵단 점이었다.
지금 장덕수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눈앞에 서 있는, 이 산도적 같은 교수는 정말이지 돌아가는 일을 단 하나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교수님. 일단 암센터 3번 방 마취 가스 증발기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증발기? 그럼 수술했던 환자들 다 감염됐어?”
다행히 장덕수는 신현태 교수에게 제대로 배운 사람이었다.
한마디를 해 주면 주변 상황 열을 알았다.
“네,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중에서 이미 패혈증으로 진행한 환자들은 일단 중환자실로 내렸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1인실로 옮겼고요.”
“음.”
아마 속으로 별 효용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실제로 지역 사회 감염이 아닌, 마취 가스 증발기로 인한 호흡기 감염은 주변으로 쉬이 번지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제대로 된 면역 체계를 갖춘 사람에게는 감염을 일으키지 못하는 균들이 나올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프로토콜이 괜히 있겠는가.
만에 하나 있을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위험이 생명에 관한 거라면 낭비되는 면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병원은 그럴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아직 원인균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증발기라고 100%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거 제가 뒤집어쓰고 있는 거고요.”
“아……. 어쩐지 왜 레벨 D를 입고 있나 했네. 그 방에 일단 그냥 들어갔던 거지?”
“네. 원래 같았으면 미리 입고 갔을 텐데……. 산모분이 들어가 있었나 봐요. 원장님이랑 과장님 아니었으면 거기도 같은 마취 가스 들어갈 뻔했습니다.”
“허……. 진짜 큰일 날 뻔했네.”
장덕수는 저도 모르게 시계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1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이 시각에 수술실에 들어갈 산모라면 대개 응급 제왕 절개 케이스이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뜻인데, 거기서 감염까지 일어나게 된다면 뒷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 일단 마취 가스 증발기 감염이라는 거지? 일단 CNS랑 마이크로코쿠스……. 정도 커버하면 되려나?”
“네, 항생제는 일단 일괄로 교체해서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 그럼 일단 활력징후 보면서 따라가는 거지? 다발성 장기부전 모니터링하면서.”
“네, 교수님.”
“여긴 네가 다 했어?”
장덕수는 빠르게 상황 파악을 끝낸 후, 내과계 중환자실을 둘러보았다.
중환자실이니만큼 여기저기 분주하긴 했지만.
적어도 아이고 난리 났네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마 조금 전의 서혜원이 이 말을 들었다면 화를 냈을 텐데.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네, 외과계는 아직입니다.”
“오케이. 그럼 거긴 내가 가서 맡을게.”
“네, 교수님. 근데…….”
“괜찮아. 외과계 쪽 여기랑 순환 근무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익숙하더라.”
“아……. 그래요?”
“어. 과장님이 지시했어. 아무튼, 아침에 무사히 살아서 보자.”
“네!”
의사들이 과에 따라 하는 일이 천차만별이듯, 간호사들 또한 소속된 병동에 따라 하는 일이 천차만별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응급실 간호사와 수술실 간호사 그리고 회복실 간호사, 외래 간호사는 각각이 아예 다른 직업이라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유독 중환자실이라고 하면 그게 어떤 중환자실이건 다 비슷할 거라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태화에서 그랬는데, 그러다 보니 자잘한 사고가 있었다.
다들 베테랑인 데다가, 병동 간 협조가 잘되는 편이라 크게 불거지는 사고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작은 사고라 해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차만별이었다.
‘순환 근무라……. 엄청 빡셀 텐데. 그걸 그래도 중환자실에서 받아들여 줬나 보네?’
[그러게요. 분석 결과 내과계랑 외과계 중환자실은 하는 일이 아예 다르다고 봐야 하는데, 두 일에 모두 숙련되려면 만만치 않을 거 같습니다. 모두가 저를 달고 일하는 건 아니니까요.]
‘꼭 그렇게 너는…… 어필을 해야겠냐?’
[지금 제 우수함을 잠시 잊고 있는 거 같아서요.]
‘너 우리 개발 중인 A.I.에 위기감 느끼는 거 맞구나?’
[위기감이라뇨. 저는 세계 최고의 의료 목적 A.I.인데요.]
애써 부정하는 바루다의 얼굴이 좀 애처로워 보였다.
당연히 봐줄 생각이 들진 않았다.
여태 당하기만 한 세월이 있었으니까.
해서 더 놀리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중환자실이 안정되니까 이제는 위에서 난리였다.
“어, 나 수혁이.”
“네, 선생님. 저 이비인후과 정용기입니다.”
“응, 왜?”
처치실인지 1인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이 엄청 시끄러웠다.
아마 환자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항생제를 바꿨다 해도 이게 효과를 내려면 만 48시간은 지나야 하지 않던가.
어찌 보면 이 밤이 제일 힘든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야, 용기야! 빨리 진짜 의사 불러!”
수화기 너머로 조금 나이가 있는 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다급해 보였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낙준 교수님……. 이 시간에 나오셨구나.’
환자 생각을 지극히 하는 양반이니 그럴 수 있을 거 같았다.
마이너 서저리라 아무래도 바이털 다루는 건 서툴겠지만.
마음이야 어디 그렇겠는가.
“지, 지금 올라와 주실 수 있으세요? 일단 중환자 팀 콜 하긴 하는데……. 오늘 이거 집단 감염 때문에 여기저기 난리인가 봐요. 지금 별관이라는데…….”
“아, 아마 그럴 거야. 내가 일단 갈게. 지금 혹시 혈압은 어때?”
“네, 그 혈압이 떨어져서요! 이거 정말 어찌해야 할지…….”
“약은 아직 안 썼지?”
“네? 아, 네. 그…… 항생제만 일단.”
“그래.”
패혈증 상황에서, 그것도 비정형 박테리아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혈압 잡겠답시고 아무 약이나 막 쓰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혈관 수축제는 신체 말단 부위의 혈관마저 수축하게 만들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괴사 및 절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도저히 쓰지 않으면 사람을 살릴 수 없을 땐 그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럴 거 같지 않았다.
수혁과 바루다가 설렁설렁 환자를 골라 내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둘이 판단하기에 오늘 일반 병실에 남긴 환자들은 당장 어떻게 되진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우선은 물로 따라가고, 나 지금 엘리베이터 탔거든? 환자 몸무게랑 심전도, 동맥혈 검사만 챙겨 줘. 동맥혈 검사는 무조건 앨런 테스트하고 해야 해. 지금은 진짜 조심해야 되는 거 알지?”
“아……. 네. 감사합니다!”
수혁만 일반 병실로 출동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중환자실 환자들이 안정화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콜이 울리고 있었다.
원래 두 팀이나 되는 상주 중환자 의학팀이 있음에도 손이 턱없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때문에 신현태, 이현종, 홍창기, 장덕수도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
“도파 달고! 아……. 안 되겠는데. 일단 내려! 중환자실 하나 프렙해 놨어!”
“옳지……. 옳지. 혈압 잡힌다. 환자분이 젊어서. 일단 방심하진 말고……. 처치실로 빼놔! 이상한 거 있으면 바로 콜 하고.”
“이런 거로 부르면 어떡해! 가뜩이나 지금 온 병동 난린데! 이거 괜찮은 거니까 일단 봐!”
“어……. 산소 포화도 떨어진다! 삽관할게요! 앰부 잡아! 앰부!”
누구 하나 할 거 없이 성질을 부려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환자 생명이 정말이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게 괜히 집단 감염 사태가 아니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너무 많은 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급기야 콜 당직이라 집에 가 있던 레지던트들까지 대거 투입되었음에도 벅찬 밤이었다.
“하…….”
적어도 환자 보면서 진땀 흘려 본 적이 있었나 싶었던 수혁조차도 동이 터 올 무렵에는 탄식마저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죽겠다, 진짜.”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고. 또 울리면 어쩌려고.”
“아, 미안해요.”
“알면 됐다…….”
신현태나 이현종 또한 마찬가지였다.
차마 원장실이나 과장실 하다못해 같은 층에 있는 수술실 탈의실에도 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저 암센터 중환자실 앞에 비치된 보호자 대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후. 나 오늘 외랜데.”
홍창기는 그야말로 살려고 먹는 쓰디쓴 커피를 입에 머금은 채 고개를 저어 댔다.
장덕수는 여전히 파자마 차림을 한 채 그 옆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눈이 반쯤 감긴 것이 아무래도 꿈나라로 떠난 듯했다.
생각 같아서는 신현태도 떠나고 싶었지만.
그가 맡고 있는 엄중한 책무가 붙잡았다.
“어, 아냐. 아냐. 자기는……. 지금 중환자실 앞이야. 잠깐 나왔어.”
“네, 교수님. 일단 증발기 배양 검사 들어갔는데요, 이게 워낙에 안에 균이 득시글해서요……. 대강은 오늘 결과 나올 거 같습니다.”
“그래? 뭐 같아?”
“일단 응고 효소 음성 포도상구균으로 생각됩니다.”
“아……. 그래? 증발기였구나.”
그렇다면 오염되었을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신현태는 밤새 그를 더 힘들게 했던 보호 장구를 벗어 던지며 말을 이었다.
“일단 반코 유지하고 있을 테니까……. 항생제 테스트도 바로 할 수 있을 정도야?”
“네? 아, 네. 해야죠, 당연히.”
“좋아. 그럼 이거 토대로 해서……. 보고 자료 만들어야겠네. 응?”
땀에 전 옷을 휘휘 흔들거리고 있으려니, 누군가 눈에 들어왔다.
최대한 신분을 숨기려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수상한 복색을 하고 있는 남자.
누가 봐도 기자였다.
실무진이 집단 감염 사태를 인지하고 움직인 게 이제 겨우 7시간째인데 벌써 언론에서 와?
이건 진짜 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따가 걱정해도 될 일이었다.
이현종이 벌써 상대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달려가고 있었다.
“뭐야, 당신. 여기 어떻게 왔어?”